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시골편지] 옹가, 긍가, 강가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206 추천 수 0 2016.04.25 23:58:16
.........

l_2015012901004172500325561.jpg


검정 스키 마스크를 눌러쓴 멕시코 게릴라군 부사령관 마르코스. 그가 불러낸 안토니오 할아버지의 구수한 옛이야기를 기억해. 내일이라고 부르는 빵의 재료는 고통이라고 그랬지. 옥수수와 설탕으로 만든 빵 마르케소테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이 담겨있다지. “가난(Hamhre)과 사람(Hombre). 최초의 신들. 세상을 창조한 이들은 죽음과 삶을 그렇게 불렀다네. 가난은 죽음이라 불렀고, 삶은 사람이라고 불렀네.” 배고픈 사람이 없도록 빵은 나눠 먹어야 하지. 외롭게 죽지 말아야 해. 옥수수가 오두막집에 들어찰 때까지 빈곤과 고통을 이겨내야 해. 겨울 빈터. 대지에 내려앉은 건 두꺼운 얼음장뿐. 쪼글쪼글한 할매 주름살처럼 고랑마다 이랑마다 깊게 파인 상처들. 핏빛 붉은 흙바람이 불면 어둡고 추하고 서러운 땅에 꽃씨들이 눈을 뜰까. 빈터의 가난을 이겨내고 봄날에 만나 사랑하자던 약속.

 

저물 무렵 떠도는 영혼 같은 진눈깨비를 보았네. 찬비에 섞여 날리는 진눈깨비가 철모르고 피어난 산수유를 꾸짖는 밤. 한기를 피해 사람들이 모인 곳에 몸을 깃들이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큰 목소리. “옹가?” 남도 사람들은 ‘옹가, 긍가, 강가’ 이렇게 딱 세 마디면 인생 함축이렷다. 이야기가 무르익으면 “긍가?” 긍게로, 긍게 말이시… 말끝마다 장단 맞춤. 동병상련이 굳이 아니더라도 긍가로 힘껏 동의하고 지지하며 진심을 알아준다. 동참과 동행은 옹가로 표현된다면, 더불어 있을 때는 긍가로 힘을 실어주고, 멀리 떠날 때, 헤어질 때면 강가로 작별을 서운해들 한다.


이 세상이 아무리 고통의 나날일지라도 옥수수가 자랄 때까지 긍가, 긍게로, 긍게 말이시 격려해주는 당신이 있어 살 만해. 화단에 뿌려진 봉숭아씨는 땅속에서 늦잠을 자고 있겠지. 봄이 옹가? 나는 긍가라는 말을 서둘러 내뱉고 싶다. 죽음과 삶 사이, 가난과 사람 그 사이에 입술을 떨며 하는 말 긍가는 사랑이겠다. 사소한 구원이요, 희망이겠다. 강가는 생각만 해도 슬퍼 당신 입술을 빌리고 싶은 말. 아쉬워 차마 꺼낼 수 없는 작별의 인사말.


임의진 | 목사·시인  2015.01.28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540 이현주 착각하지 마라 이현주 2016-05-30 108
9539 이현주 제가 무슨 짓을 하는지 이현주 2016-05-30 98
9538 이현주 차라리 모두 잃어라 이현주 2016-05-30 93
9537 이현주 나는 지금 꿈속에서 이현주 2016-05-20 162
9536 이현주 아담의 순례 이현주 2016-05-20 125
9535 이현주 사람은 하늘을 이현주 2016-05-20 138
9534 이현주 모든 가짜들이 이현주 2016-05-20 129
9533 이현주 주님은 사람을 곱하기로 만나서 이현주 2016-05-20 133
9532 이현주 네가 나로 너를 사랑할 때 이현주 2016-05-20 221
9531 이현주 기억하라 이현주 2016-05-20 103
9530 이현주 한 길 가는 일행이었다 이현주 2016-05-20 94
9529 이현주 사랑 안에서 실종되어라 이현주 2016-05-12 140
9528 이현주 사랑은 무엇이 아니다 이현주 2016-05-12 155
9527 이현주 들꽃과 햇빛 이현주 2016-05-12 134
9526 이현주 아이와 늙은이 이현주 2016-05-12 129
9525 이현주 아버지와 아들 이현주 2016-05-12 119
9524 이현주 짧게 이현주 2016-05-12 108
9523 이현주 비밀 [1] 이현주 2016-05-05 166
9522 이현주 수레와 바퀴 이현주 2016-05-05 373
9521 이현주 당신과 우리 사이를 이현주 2016-05-05 139
9520 이현주 침묵 이현주 2016-05-05 144
9519 이현주 질문 이현주 2016-05-05 107
9518 이현주 화내지 않는 사람 이현주 2016-05-05 143
9517 이현주 사랑하지 않겠다 이현주 2016-04-28 159
9516 이현주 풍랑 이는 바다 이현주 2016-04-28 164
9515 이현주 빛은 모든 사물에 이현주 2016-04-28 143
9514 이현주 빛은 이현주 2016-04-28 116
9513 이현주 강물 이현주 2016-04-28 113
9512 임의진 [시골편지] 삼시 세끼 file 임의진 2016-04-25 152
9511 임의진 [시골편지] 꿩이 꿩꿩 우는 날 file 임의진 2016-04-25 243
9510 임의진 [시골편지] 강철 새잎 file 임의진 2016-04-25 149
9509 임의진 [시골편지] 군산 노을 file 임의진 2016-04-25 333
» 임의진 [시골편지] 옹가, 긍가, 강가 file 임의진 2016-04-25 206
9507 임의진 [시골편지] 바라나시 file 임의진 2016-04-25 132
9506 임의진 [시골편지] 마을 위를 날아서 file 임의진 2016-04-25 188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