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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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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는 구름이 스르르, 아래로는 얼음이 사르르. “아버지 뼈를 뿌린 강물이 어여 건너라고 꽝꽝 얼어붙었습니다. 그 옛날 젊으나 젊은 당신의 등에 업혀 건너던 냇물입니다.” 이곳 담양이 고향인 손택수 시인의 ‘담양에서’라는 짧은 시다. 개에게 목이나 축여주려 냇가에 한번 갔다가 듬성한 얼음조각을 보았다. 어린 시인을 업고 건넜던 냇물인가. 쩡쩡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나기도 했는데 입추 지나면서 더 요란해졌을 것이다. 밤길에 목격한 노루는 한밤중에 몰래 찾아와 물로라도 배고픔을 달랬으리라. 얼음물을 좋아하는 수선화 알뿌리는 어디에서 또 고운 노란빛을 감추고 있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터키 소설가 사이트 파이크 아바스야느크의 단편 ‘제비꽃 피는 계곡’에도 시냇물이 흘러나온다. “제비꽃. 사방에서 제비꽃 향기가 났다. 길 한가운데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어제저녁 집에 올 때 우리가 이 시냇물을 건넜던 걸까? 그런데 발도 젖지 않았구나… 우리는 시냇가를 걸었다. 바이람은 밭에서 곡괭이로 상추를 뽑고 그의 부인은 아욱을 수확하는 것 같았다… 아래 계곡에 5월의 날을 두고 걸어가자 채찍 같은 2월이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봄을 시샘하는 2월의 바람은 냉랭하고 매서워라. 하지만 불을 때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꽃향기가 맡아지곤 한다.
잘츠부르크에 가지 않아도 FM에선 적당한 음악을 들려주고 화보집을 꺼내면 샤갈의 그림이 바로 여기 풍경. 얼기설기 지어진 집들과 상단부터 하단까지 가르는 시냇물. 공중에서 본다면 정말로 아름답겠지. 마르크 샤갈의 그림 가운데 ‘마을 위를 날아서’(1915)는 샤갈과 그의 연인 벨라가 하늘을 나는 그림이다. 샤갈의 마을이 멀지 않은 바로 이곳임을 뉘라 모를까. 사람이 욕심을 버릴 때 하늘을 날게 된다. 천사는 날개가 필요하나 사람은 욕심만 비우면 돼. 솜털처럼 가벼워지고 시냇물처럼 자유로워지리라. 호주머니에서 구린 돈 냄새 말고 제비꽃 향기를 꺼내주길. 욕심 없는 사랑으로 얼음세상이 어서어서 녹아 흐르기를. 총리는 욕심쟁이들이나 좋아하시고 우리는 모두 마을 위를 날아가 버리자.
임의진 | 목사·시인 2015.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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