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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편지] 집밥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128 추천 수 0 2016.06.21 12: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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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떠나면 사람도 개고생, 개야 원래 개고생. 알랭 드 보통 아저씨의 르포 <일의 기쁨과 슬픔>을 보면, 식사시간에 현지인들은 각자 집으로 사라져 생선과 코코넛, 양파를 맛나게 튀겨 먹는단다. 집 떠나 외지에 근무하는 현장일꾼들은 가게에서 산 것들이 고작. 초콜릿이나 비스킷, 케첩을 발라먹는 게 전부. 이건 한마디로 ‘일의 슬픔’이겠다. 집 떠나면 너도나도 집밥이 그리운 것이다.

귀가가 늦은 식구들을 위해 아랫목에 뜨신 밥 한 그릇 파묻고 솜이불로 다뿍 덮고, 별빛동무삼아 동구 밖에서 마중하시던 어머니. 별똥별처럼 눈물이 뚝 하고 떨어지게 되는 어머니 마음. 그런 뜨신 밥을 수도 없이 먹었는데 어머닌 시방 별이 되고. 명왕성 너머 별빛이 되어 저 하늘에 계시는 지금, 나 당신을 잊지 못해 뜨신 밥을 아랫목에 묻고는 한다.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밥과 된장국, 철따라 달라지는 반찬들. 노릿하게 구운 생선과 내가 농사지은 풋고추 서너 개. 어디 나돌다가 집에 돌아오면 이런 집밥이 행복하다. 자취가 수십년, 나름 셰프요, 한식요리사. 말장난이 아니라 요리조리 잘 해서 먹으니 요리사요, 조리사다. 동네분들이 가져다주신 묵은 김치. 면소재지 부식가게에서 산 두부 한 모. 가끔 눈먼 돈이 생기면 살집이 통통한 생선이나 비계가 절반인 고기 한 토막에 군침이 간다.

매미소리 쨍쨍거리는 여름날 마당에서 밥을 먹기도 하는데 개들이 저도 달라고 컹컹 짖어대. 야생고양이가 이제 막 젖 뗀 아가들을 데리고 찾아오기도 한다. 공깃돌 굴리듯 조심히 던져준 고깃덩어리를 아가들이 먼저 핥는다. 엄마는 조심조심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하는데 배가 고픈 만큼 겁도 없지. 이 산골집에서 인간인 나 혼자 먹을 수 있는 건 포도주와 커피뿐이다. 인간이기 위해서 오늘도 집밥을 달게 먹고 하와이에서 누가 사온 귀한 커피콩을 잘게 갈았다. 하루가 정말 후딱 가. 금세 해가 저물고 어둑해졌어. 해는 살구만 해지고 달은 자두만 해진 어느 배부른 여름밤.

임의진 목사 시인 201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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