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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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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2943
씨앗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를 며칠 앞둔 한낮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예배당 마당에 낯선 것들이 낮게 날고 있다
바람을 타는 씨앗들이었다
꼬리잡기라도 하듯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을 보니
한 방에서 함께 떠난 형제들이겠다 싶다
작은 새를 붙잡듯 얌전해진 씨앗 하나를 붙잡는다
최소한의 것을 최소한으로 간직한 듯
까만 씨앗은 얇고 가늘게 말라 있는데
씨앗 꼭대기에서 사방으로 퍼진 하얀 솜털들은
씨앗의 무게를 단숨에 지울 만큼
가늘고 긴 촉수를 날개처럼 펴고 있다
무슨 말인지 씨앗이 자꾸 말을 건네는 것 같아
손바닥 안에 담아 책상 위에 두었더니
미세한 움직임에도 자꾸만 몸을 보챈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는 듯
내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는 듯
어서 바람을 타게 해달라는 듯
그러면서 그러면서도
바람을 타지 못하는 건 무겁기 때문 아닌지
가볍지 않기 때문 아닌지
씨앗이 말없이 건네는 말 들릴 듯 말 듯 하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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