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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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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판이 안 생겨 연일 술추렴이던 미장이 국씨. 사랑판이었던 이불을 끄잡아 당기다 시계 한번 쳐다보던 그때 장독가 제비꽃이 슬금 땅문을 열고 피어났지. 여우 꼬랑지 털은 빨랫줄에서 빳빳이 말라 하늘로 승천하고, 간만에 분 바르고 장에 나간 여인네는 전화도 안 받고 이게 뭐시라냐.
꾸무리한 먼 산에 영감이 누워계시는데 뒤따라 할매가 맥이 끊어질락 말락 나눔병원으로 실려가신다. 삐요삐요 응급차 소리에 메아리도 삐요삐요 재방송. 저수지 아래 최씨네 샛노란 병아리떼도 삐요삐요 배웅이다.
익비 생비 비빔밥 한 그릇 비벼 먹고 나와 교대로 이빨을 쑤시던 공사판 아재들, 나무그늘에 옷 깔고 누워 삼십분은 잠을 자야 할 시간. 봉고차에 올라타자마자 들리는 노래는 오정선의 ‘마음’. 곡성 보성에서 건너온 아랫바람에 실려 창문 밖으로 또 꽃길로 튕겨져 나온 노랫소리에 듣는 모두 흥에 겹다.
“하늘엔 별들이 흩어져 내리고 언덕엔 꽃들이 바람에 날릴 때, 나는 어여쁜 소녀의 손에 의해 사랑 가득한 세계로 날아가리. 살며시… 흐르는 구름이 비 되어 내리고 부딪치는 햇살에 내 목이 마르면 나는 어여쁜 소녀의 손에 의해 사랑 가득한 세계로 날아가리. 살며시….” 진짜 살며시 어디론가 사랑 가득한 세계로 날아가고 싶어라.
꼬방동네 사람들의 공목사 허병섭 목사님. 생전에 가끔 뵙고는 했지. 목사직을 버리고 일용노동자들과 함께 건설협동조합을 처음 만드셨던 분. 가까운 무주로 내려와 사셨는데 두어번 내 산골집에 오셔서 다담을 나누기도 했었다. 일판 사랑판이라는 책에 사인해 주셨는데 “노동하는 손은 부르터서 아름답습니다”라고 적어주셨지.
“사람이 몸으로 일을 해야 맑아지는 것이지 머리로만 일을 할라치면 고스톱 쳐서 푼 사람처럼 온통 불만스럽고 복잡해집니다.” 사랑 가득한 세계로 데려가 줄 어여쁜 소녀의 손도 아름다우나 우리는 시방 노동하는 부르튼 손이어서 부끄럽지 않구나.
오월 메이데이. 맑은 영혼의 노동자들을 위해 언덕엔 꽃이 피고, 꽃잎은 져서 한 점 두 점 바람에 흩날리누나. 꽃잎 날리듯 일판 사랑판 곳곳에서 흥겨운 노랫가락 울려 나거라.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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