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시골편지] 그리운 사람의 별명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39 추천 수 0 2020.03.14 23:10:23
.........

l_2019012401002663100213781.jpg
북쪽 황해도에선 장인을 가시아바이, 장모는 가시오마니라고 부르고 친정은 가싯집이라 한단다. 신혼초야를 마치고 가싯집에 인사를 가는데, 닭과 술과 떡을 장만했다. 바보 신랑은 닭이 생각이 안 나 ‘꺽거덕 푸드덕’. 술은 ‘울르렁 출르렁’. 떡은 ‘찐덕찐덕’. “허허. 이름도 하나 기억을 못하는 바보천치 사위를 얻었구먼. 불쌍한 내 딸.” 가시오마니는 열불이 터져 울었다. 신랑은 주는 대로 덥석 받아먹으라는 부모님 말씀대로 삶은 콩을 껍질 채 홀라당 삼켰지. 각시가 껍질은 벗겨먹으라고 나무라자 송편을 까설랑 알맹이만 쏙 파먹더란다. 떡보에 바보인 새신랑은 그래도 진실하고 착했어. 둘은 쥐두리별(북극성)이 높이 뜬 날, 수왕길(은하수의 황해도말) 건너는 끝날까지 콩 먹고 떡 먹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지.
요새는 떡보를 구경하기 어렵다. 길거리에 떡집은 없고 빵집만 성황. 어려서 나도 흔한 떡보다는 귀한 빵에 환장했다. “이 돈은 교회에다 헌금해라.” 엄마가 헌금하라고 용돈을 주시면 “빵 사먹고 빵집 주인이 헌금하게 하면 안될까용?” 머리가 요쪽으로 텄던 놈이다. 읍내에 빵집이 한 군데 있었는데, 카스텔라 크림빵이 먹고 싶어서 어머니 손을 끌고 졸랐지. 그러나 당도한 곳은 호떡을 굽는 노점상. 호떡도 감지덕지였다.
나이가 먹은 뒤, 그토록 침을 흘렸던 빵은 관심 밖. 떡이 문득 궁금해진다. 난롯불에 하얀 가래떡을 구워설랑 꿀에다 콕 찍어먹고 싶어라. 찐덕찐덕 입안에 녹아 구르는 떡과 꿀.
입맛이 담백하면 삶조차 소박해진다. 미식가는 성질머리만큼 고약한 똥냄새. 대식가는 변소에 쭈그려 앉아 남보다 배는 더 길게 대사를 치러야 한다. 간뎅이가 붓고 대담한 사람은 구설수 환란을 비켜갈 수 없다. 아이스크림이 도처에 깔린 겨울, 떡보는 쑥떡을 먹게 될 봄을 기대하며 침을 꿀꺽 삼키지. 욕심조차 소박해라. 찍어먹으려면 꿀단지도 아껴야 해. 작은 걸 아끼고 귀히 여기는 마음. 낮고 천한 사람도 그처럼 깍듯하게 대하리라. 예전에는 떡보, 울보, 째보, 땅딸보, 느림보, 털보, 뚱보, 꾀보, 바보가 친구의 모두였다. 그리운 사람은, 바로 그런 별명의 친구들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2019.01.23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820 이현주 이현주 2017-02-14 32
9819 이현주 눈 쌓인 은석산(銀石山) 이현주 2017-02-14 69
9818 이현주 딱따구리 이현주 2017-02-14 26
9817 이현주 고맙다, 몸아 file 이현주 2017-02-14 41
9816 이현주 한 발짝 이현주 2017-02-08 51
9815 이현주 나무들! [1] 이현주 2017-02-08 40
9814 이현주 시(詩)에 대하여 이현주 2017-02-08 28
9813 이현주 더 이상 언어의 마술은 없다 file 이현주 2017-02-08 123
9812 한희철 성주(星州) 한희철 2017-02-07 51
9811 한희철 성주(城主) [1] 한희철 2017-02-07 36
9810 한희철 질문 한희철 2017-02-07 55
9809 한희철 겉과 속 한희철 2017-02-07 66
9808 한희철 당신 한희철 2017-02-07 49
9807 한희철 없다 업다 한희철 2017-02-07 222
9806 이현주 행복한 나라 이현주 2017-02-03 92
9805 이현주 도토리 나무 이현주 2017-02-03 54
9804 이현주 방귀 소리가 너무 커서 이현주 2017-02-03 112
9803 이현주 노간주 나무 이현주 2017-02-03 43
9802 이현주 곶감 맛 귤 맛 file 이현주 2017-02-03 83
9801 한희철 동행 한희철 2017-01-31 93
9800 한희철 시인의 서점 [1] 한희철 2017-01-31 118
9799 한희철 행복한 사람 한희철 2017-01-31 95
9798 한희철 어떤 말도 한희철 2017-01-31 55
9797 한희철 작은 행복 한희철 2017-01-31 99
9796 이현주 그렇겠구나 이현주 2017-01-24 67
9795 이현주 나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이현주 2017-01-24 91
9794 이현주 얼음도 물은 물이지만 이현주 2017-01-24 46
9793 이현주 유자차를 마신다 이현주 2017-01-24 45
9792 이현주 죽은 나무 이현주 2017-01-24 61
9791 이현주 아침 풍경 이현주 2017-01-24 60
9790 이현주 시간 문제 file 이현주 2017-01-24 40
9789 한희철 권사님의 기도 한희철 2017-01-22 109
9788 한희철 한희철 2017-01-22 44
9787 한희철 봄 -서로를 한희철 2017-01-22 38
9786 한희철 봄 -심술도 한희철 2017-01-22 53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