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영혼의 샘터

옹달샘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시골편지] 전기장판

임의진 임의진............... 조회 수 54 추천 수 0 2020.03.19 23:48:52
.........

l_2019022101001849400153161.jpg

배고픈 호랑이가 참다못해 마을로 내려왔어. 두둥게둥실 애기를 키우는 집에서 말소리가 났지. “이놈의 징글징글한 가난. 떨어지지도 않고 벗어날 길도 없소. 호랑이보다 무서운 이 가난. 아이고 팔자야.” 엄마랑 애기가 우는 소리. 듣자하니 저보다 무서운 가난이란 게 있다는데 고건 뭘까. 요전날 서당 마당을 어슬렁거릴 때 훈장이 내뱉은 소리도 기억났다. “적을 모르면 백전백패 진다. 그러나 적을 알면 백전백승 이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그놈이 어떤 놈인지 알면 살 수가 있지. 쫄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리면 된단다.” 이 말에 덜컥 놀랐던 일. 호랑이는 ‘알지 못하는 적 가난’이 두려웠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서 다시 산으로 돌아갔다는 얘기.
입춘 지나자 보일러 기름을 아껴보자며 전기장판 한 쪼가리 등에 대고 누운 어르신들. 깔밋한 새집에 전기장판이 놓인 방은 드물다. 대개 거우듬하고 울퉁불퉁한 방바닥. 냉기로 썰렁한 방은 어쩌다 한 번씩 기름보일러를 돌린다. 아랫목이 자글거리던 옛집은 꿈속만 같아라. 나무를 해올 기운도 없고, 기름 값은 호랑이보다 무섭지.
땟거리 장만하여 동태나 된장국으로 끼니를 삼는다. 전기장판에 누워 솜이불에 체온을 실으면 스르르 눈이 감긴다. 늙으면 초저녁잠이 많아지는 법. 봄 아지랑이가 필 때까지 빨간 내복과 전기장판으로 의연하게 견디는 분들.
“전기장판에 누워 겨울을 난다. 어떤 추위에도 끄덕하지 않는다. 부연 입김이 터져 나오는 꿈이라도 따뜻하다…. 종일 떨다 돌아온 날에는 온도조절기에 빨갛게 불이 들어온 것만으로 안심이 된다. 세상 끝 옥탑에 보일러가 도는 기분.” 박소란 시인의 ‘전기장판’이란 시다. “전기장판에 누워 겨울을 난다. 어떤 슬픔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간난이 할머니가 누워 잠든 전기장판. 생각하노라니 민들레의 사투리가 ‘말똥굴레’라 일러주신 권정생 샘의 오두막이 떠오른다. 민들레는 전기장판에 납작 누워 있는 사람들 같다고도 하셨다. 나는 그다음부터 민들레를 보면 똥을 굴리던 말똥구리가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모습, 전기장판에 누워 하얀 솜이불을 덮은 할매들 모습을 동시에 상상하게 되었다.
임의진 목사·시인
2019.02.20


댓글 '1'

나무

2020.03.19 23:49:49

나는 전자파에 민감해서
온수매트로 산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855 이현주 자세히 보니, 새다 file 이현주 2017-03-07 35
9854 한희철 너희도 가려느냐 한희철 2017-03-02 82
9853 한희철 그만큼 한희철 2017-03-02 72
9852 한희철 어디로 갔을까 한희철 2017-03-02 53
9851 한희철 꽃으로만 한희철 2017-03-02 43
9850 한희철 봄꽃 -추위와 한희철 2017-03-02 64
9849 한희철 봄꽃 -당연하게 한희철 2017-03-02 45
9848 한희철 바보 바보들 한희철 2017-03-02 48
9847 이현주 내 눈 또한 유리에 지나지 않으니 이현주 2017-03-02 42
9846 이현주 주먹을 펴려면 이현주 2017-03-02 40
9845 이현주 나는 곶감이 좋다 이현주 2017-03-02 45
9844 이현주 해 아래 무엇이? 이현주 2017-03-02 32
9843 이현주 올라가겠지 file 이현주 2017-03-02 26
9842 이현주 그럴 수밖에 이현주 2017-02-24 83
9841 이현주 어둠별 이현주 2017-02-24 59
9840 이현주 먹기전에 이현주 2017-02-24 46
9839 이현주 팔자걸음 file 이현주 2017-02-24 40
9838 한희철 별들의 바다 한희철 2017-02-21 73
9837 한희철 베임 한희철 2017-02-21 114
9836 한희철 나무의 길 한희철 2017-02-21 53
9835 한희철 말없는 말 한희철 2017-02-21 67
9834 한희철 이슬 한희철 2017-02-21 36
9833 한희철 나를 이기소서 한희철 2017-02-21 77
9832 한희철 주님 죄송합니다 한희철 2017-02-21 107
9831 이현주 마찰 이현주 2017-02-18 45
9830 이현주 날된장 이현주 2017-02-18 62
9829 이현주 아무도 산을 감추지 못한다 이현주 2017-02-18 59
9828 이현주 밥사발 뚜껑이 깨어졌다 이현주 2017-02-18 58
9827 이현주 오늘 점심상에는 file 이현주 2017-02-18 35
9826 한희철 우수(雨水) 지나 한희철 2017-02-14 67
9825 한희철 시선 시선 2017-02-14 79
9824 한희철 닮다와 닳다 한희철 2017-02-14 239
9823 한희철 엄정함 한희철 2017-02-14 63
9822 한희철 한희철 2017-02-14 49
9821 한희철 한계 한희철 2017-02-14 114

 

 

 

저자 프로필 ㅣ 이현주한희철이해인김남준임의진홍승표ㅣ 사막교부ㅣ ㅣ

 

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글의 저작권은 각 저자들에게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글을 다른데로 옮기면 안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