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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그러나 너무도 아픈 선물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37 추천 수 0 2022.12.17 07: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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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그러나 너무도 아픈 선물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는 인디언의 가르침을 기억합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와 그 사람과 같은 입장이 되어 갖는 생각이 같을 수는 없는 법, 충분히 그 사람의 입장이 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네 삶에는 적지가 않겠지요.
부모가 죽으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청산에 모시는 거야 얼마든지 당연하다 하여도, 먼저 간 자식을 가슴에 묻는 일은 겪지 않으면 헤아릴 길이 없는 아픔이겠지요. 어렴풋 아픔을 헤아리며 위로를 건네기도 하지만, 허공을 맴돌 뿐 정말로 슬픔을 당한 이의 마음에 닿는 말이 얼마나 될까 모르겠습니다.
자식을 먼저 앞세우는 고통을 두고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슬픔이라 하여 ‘참척’(慘慽)이라 하더군요. 특히 아들의 죽음을 두고는 빛을 잃어 천지가 캄캄하다는 뜻으로 ‘상명’(喪明)이라고도 불렀고요. 참척과 상명이 아무리 큰 슬픔을 나타낸다고 하여도 정말로 그 고통을 겪은 이들에게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자신의 고통을 그렇게 단어 하나에 담아낸다는 것이 오히려 허망하게 여겨질 것 같습니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러 갔구나!’
어린 아들을 ‘고운 폐혈관이 찢어지는’ 폐렴으로 떠나보낸 시인 정지용이 ‘밤에 홀로 유리를 닦듯’ 코앞에 닥친 슬픔을 마주하며 쓴 글도 막막한 아픔으로 닿을 뿐 그 마음 충분히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육친의 죽음을 두고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라 하여 천붕지통(天崩之痛)이라 했던 것에 비해 자식 앞세우기는 창자가 끊어지는 애달픔이라 하여 단장지애(斷腸之哀)라 했지만,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지 않고서는 헤아릴 길이 없습니다.
누구도 헤아릴 길 없는 큰 아픔을 겪으신 목사님께 괜한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홍목사님,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홍목사님이라 부릅니다. 목사님이 쓰신 <뜻밖의 선물>을 읽으며 일종의 연대감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지역은 달라도 같은 시대에 같은 목회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도 그러했고, 비슷한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끈처럼 다가왔습니다.
목사님의 글을 읽으며 목사님은 자청하여 또 한 번 죽음의 세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묻어두고 싶은 일, 돌아서고 싶은 일, 그런데도 하나하나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것의 의미를 정리한다는 것은 자신의 죽음과 다름없는 자식의 죽음을 또 한 번 경험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한 신학자가 ‘고난은 제3의 성례전’이라 했다지요. 고난을 통해서만 깨달아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신비가 따로 있을 터, 목사님은 다시 고난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신비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있다 싶었습니다.
늠름하게 자란 큰 아들, 가족들에게는 물론 친구들에게도 반듯했고 따뜻했던 아이, 교회와 학교 어느 곳에서라도 자기 주변을 웃음과 활기찬 분위기로 수놓던 아이, 운동과 음악을 좋아하며 소중한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아이, 막 어른 티를 내며 푸른 빛 일렁이는 눈부신 시간을 보내던 청소년, 볼수록 잘생겼고 볼수록 아까운 아이, 내 삶의 분신이라 하여도 무엇 하나 어색함과 부족함이 없을 믿음직한 큰아들, 그토록 건강하던 아이가 어느 날 생각지도 못했던 병을 얻고, 그 후 겨우 팔 개월, 서로의 속을 새까맣게 태웠을 뿐 속수무책으로 서로 헤어져야 하는 아픔과 절망이 목사님의 책 갈피갈피마다엔 담겨 있었습니다. 16년 10개월, 아들이 이 땅에서 숨 쉬었던 시간만큼이나 그와 함께 보냈던 모든 순간들을 얼마든지 떠올릴 수가 있는 데도 모든 것 내려놓고 거짓처럼 훌쩍 떠나간 아이, 아들의 부재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텅 비어버린 세상에 애써 참았던 목사님의 눈물은 장대비처럼 쏟아져 책을 읽는 마음이 덩달아 젖곤 했습니다.
회개도 했다가, 원망도 했다가, 하소연도 하고, 애걸복걸 사정도 하고, 그러면서도 하나님도 소용없고, 자신이 목사라는 사실도 무의미하여 아무 것도 잡을 수 없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시간 시간들. 아무리 마음을 다부지게 고쳐먹는다 하여도 그만큼 무너짐도 심했던 순간순간들. 물조차 넘기기 힘들어하는 아들 옆에서 꾸역꾸역 밥을 먹어야 하는, 피눈물이 강이 되어 흐르는데도 절망의 나락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할 수 없었던 지독한 어둠의 터널. 너를 보내고는 내가 견딜 수가 없어 차라리 나를 데려가 달라는 기도가 가장 정직하고 유일한 기도인데도 견고한 성처럼 여전히 변함없는 하늘의 침묵. 내가 위로해야 할 교우들에게 내가 위로를 받는 곤혹스러움과 고마움과 서러움.... 그야말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는 시간이었지만 목사님은 그 모든 고통의 순간을 곱다시 마주하며 그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를 기름 짜는 틀에 자신을 집어넣듯 묻고 또 묻고 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물을 길어 환한 데 쏟아 붓는 두레박처럼 말이지요. 절망의 어둠은 깊었지만 그리도 긴 고통의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물이기에 우리는 더욱 소중한 마음으로 받게 됩니다.
우리 생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것, 유한하다는 것, 그러기에 매 순간순간이 소중하다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사랑해야 한다는 것, 모르지 않는 이야기들이 상명과 참척의 아픔을 겪은 목사님의 두레박으로 인해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됩니다. 가장 소중한 것이 떠나며 남긴 빈자리를 교우들을 향한 진정한 사랑으로 채우며, 그것을 고난이 준 뜻밖의 선물로 새기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지며 환해집니다. 문득 입장의 동일함을 관계의 최고 형태로 보았던 신영복 선생의 사색이 다시 한 번 그윽함으로 와 닿네요.
상실을 통해 몰랐던 연대감을 확인하는 목사님처럼, 목사님의 글을 읽으며 저 또한 일종의 연대감을 느끼게 됩니다. ‘비슷한 아픔’이라 하기에는 조심스러운, 그렇지만 목사님의 아픔을 어렴풋 헤아리게 되는 일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막내아들을 먼저 보냄으로 상명과 참척의 고통을 겪으신 어머님을 그냥 바라보아야만 했으니까요.
조심스럽습니다만 막내 동생 얘기를 할게요. 제가 막 군 입대를 했을 때였습니다. 훈련을 마치고 자대에 배체를 받자마자 저는 부대 배구대표선수로 뽑혀 합숙훈련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제법 규모가 큰 대회였는데, 우승을 하면 포상휴가를 나올 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 막내 동생은 매일 밤 형의 우승을 위해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무척이나 따르던 동생이었지요. 나중에 자기도 신학을 공부하여 형이 목회하는 교회에서 같이 교회를 섬기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생은 은근히 탁구시합을 벼르고 있었습니다. 입대하기 전에 가르쳐준 탁구를 열심히 했다며, 열 개를 접으면 형을 충분히 이길 거라 자신을 하고 있었지요.
동생의 기도 덕분인지 저는 배구시합에 나가 우승을 했고, 꿈같은 휴가를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작대기 하나를 달고 포상휴가를 나왔으니 아마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헤아리기가 힘든 기쁨일 것입니다.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딴 것도 아닌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자랑스레 쳐다보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고, 고향으로 달리는 기차는 더뎠지만 날아가는 듯했으니까요.
다섯 시간여 기차를 타고 고향에 도착해선 곧장 집으로 가는 대신 교회부터 들렀습니다. 예배당에 앉아 기도를 드리고 목사님께 인사를 드리러 사택 문을 두드렸을 때 뭔가 일이 잘못된 것을 알게 되었지요. 절 보신 사모님이 왈칵 눈물부터 쏟았으니까요. 뒤이어 나오신 목사님도 내가 당연히 모든 것을 알고 찾아온 것으로 여겼다가 아무 것도 모르고 왔다는 걸 아시고는 오히려 크게 당황하셨으니까요.
혹시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 아닐까 가슴이 철렁했는데, 전혀 생각하지 못한 막내 동생이었습니다. 형이 우승하도록 밤마다 기도를 드리던 동생이, 포상휴가를 나오면서 누구보다 보고 싶었던 막내 동생이, 동생이 기도한 대로 형은 포상휴가를 나왔는데 동생은 없었습니다. 그토록 착하고 해맑고 건강하던 동생이 학교 숙제로 시를 쓴다고 들어간 방에서 세상을 뜰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연탄가스였다니 더욱 허망했지요. 군에 입대한지 고작 3개월, 집에서는 행여 내가 놀랄까 알리지도 않고 장례를 마친 끝이었습니다. 믿을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몸저 누워계신 어머니와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봉분이 그 모든 것이 현실임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동생을 보낸 아픔은 견디기가 힘들었지만, 당신 생의 유일한 벗을 잃었다시는 어머님의 슬픔 앞에서는 감히 내색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꾸역꾸역 눈물을 삼켰지요. 다시 기차를 타고 귀대하던 날, 저는 가만 기도를 드렸습니다.
‘내 것 아닌 것, 애써 내 것이라 고집하지 않게 하소서.’
조선시대 시인 박은의 시가 비로소 가슴에 닿았습니다. 평생을 농사지으며 살자 약속했던 아내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슬픔을 이렇게 노래했지요.
'인명기능구, 이갈여우잠' ‘사람의 목숨이란 게 어찌 오래 가랴, 소 발자국에 고인 물처럼 쉬 마를 테지’ 하는 뜻이었습니다.
소가 뚜벅뚜벅 걸아가고 여름철의 더위를 단번에 씻어주는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지면 소가 남긴 발자국엔 물이 고입니다. 그러나 언제 비 쏟아졌냐는 듯 뜨거운 볕 쨍하고 쏟아지면 소 발자국에 고여 있던 물은 이내 마르고 맙니다. 그렇게 마르고 마는 한 줌의 물에서 생의 덧없음을 바라보는 시인이 마음이 비로소 가슴 저리게 다가왔지요. ‘나와 사망 사이의 거리는 한 걸음 뿐이다’ 했던 다윗의 고백도 새로웠고요. 목사님이 이야기한 대로 슬픔을 잊다니요, 오래 전 그렇게 떠난 동생을, 그렇게 스러진 동생의 꿈을 저는 지금까지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를 비워 당신을 채우시는 주님의 신비를 우리는 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비워 더욱 소중한 것을 일깨우시는 그 분의 손길엔 차라리 손사래를 치고 싶기도 합니다. 내가 사라지는 아픔과 내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아픔 속에서도 까마득한 절망의 나락으로 두레박을 드리워 샘물을 길어 올린 목사님, 우리 생이 매 순간 소중하다는 것, 우리는 남이 아니라는 것, 사랑의 끈으로 묶여 있다는 것, 목사님이 건네시는 샘물을 겸허하게 받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우리 곁을 떠나며 남긴 선물은 소중하지만 아픕니다. 아들의 떠남을 통해 뜻밖의 선물을 발견하신 목사님께 주님의 위로와 평화가 함께 하셔서 더 많은 이들을 진정한 사랑으로 품어 주시기를, 그래서 사랑하는 이는 아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는 것임을 확인시켜 주시기를 빕니다.
<기독교사상> ‘책에서 길어올린 풍경’
<뜻밖의 선물>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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