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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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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에 싹이 나서 잎이 나서…” 둥그렇게 모여 묵찌빠 놀이를 즐기던 아이들은 전자오락기 앞에 각자 따로들 한심스럽고, 회관에 모여 찐 감자를 나누며 나랏일 걱정하던 장년들도 벼멸구처럼 야비한 웃음을 흘리는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굽실대는(딱 선거운동 기간만) 먹을 복 앞에서나 히히대는 통. 그래도 나는 감자가 좋더라. 감자탕엔 뼈다귀 말고 감자가 푸짐해야 행복하고, 잘게 썬 감자로 끓인 된장국을 좋아라 하며, 한뎃바람을 피하고서 난로에 굽고 호호 까먹는 감자는 얼마나 고소하고 배부르던가.
몇 해 전 아일랜드 더블린에 한 달포 머물며 지냈었다. 이른바 ‘감자 대기근’으로 굶어죽은 사람들을 형상화한 조각상들을 오다가다 거리에서 두려움으로 마주치곤 하였다. 감자 하나에 목숨 하나였던 나라가 어디 아일랜드뿐이었겠는가. 우리도 그만한 무서운 가난을 헤쳐나온 민족이었다. 애지중지 씨감자마저 나누고, 상부상조하면서 서로의 논밭을 돌보던 정이 넘치는 민족이었다.
키 작은 감자꽃을 닮은 문턱 낮은 집에서 빠져나온 김씨 어른은 “이따가나 비온닥하듬마 두엄을 어야 내야쓰겄는디 워짜까.” 녹물 짙어진 삽이며 쥐가 물어뜯어 해진 삼태기를 리어카에 싣고서 비짝비짝 답답한 걸음이시다. 리어카 한 대 분량이라도 거들어드릴 겸, 호박 구덩이에 넣고 그러게 두엄 조금 얻을까 청하였더니 “집째 떠메고 가도 괘안응게 암걱정 말고 쓰시쇼이” 아들네 대하듯 정겨운 목소리. 고흐의 ‘씨뿌리는 사람’ 그림 같은 풍경이 들녘을 가득 수놓고, 후북이 봄비 내리기 전에 마음조차 바쁘다들. 땅속에 묻힌 씨감자는 울창하게 밭을 덮을 꿈으로 새근새근 잠들었겠다. 그대의 씨감자도 같은 꿈을 꾸고 누웠을까.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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