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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순간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49 추천 수 0 2022.12.13 11: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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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순간
산이 강에게 말했다
네가 부럽구나
늘 살아 움직이는 게
강이 산에게 대답했다
나는 네가 부러워
한 자리 변함없는 게
-산과 강
남한강이 흐르는 외진 시골에서 살 때 낙서처럼 썼던 짧은 글을 얼마 전에 다시 대하며, 문득 목사님 생각이 났습니다. 한 자리 변함없는 것이 부럽다고 한, 강의 대답에서였습니다. 멀리 떠나오며 인사를 드린 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목사님은 같은 자리 여전하시겠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닮는 법, 산을 좋아하시는 목사님은 어느새 산을 닮아 하나의 산처럼 되셨습니다. 저야 목사님께서 원주 근방으로 산행을 오실 때 서너 번 동행했을 뿐이어서 산에 대한 느낌을 말하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목사님에 대해 말하라면 대뜸 산을 떠올리게 되고 그런 느낌은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서너 번 동행한 제게도 그러하니 목사님과 많은 시간 함께 했던 분들이나 두루두루 함께 산을 찾았던 분들에게는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고 나니 치악산, 감악산, 명봉산, 미륵산 등 목사님과 함께 산을 오르던 시간이 그리움으로 떠오릅니다. 하산 길 잠깐 잠에 빠진 목사님을 찾으며 사고가 아닐까 당황했던 감악산에서의 기억과, 명봉산 암자에서 들려주신 이야기들, 그 이야기 속에서 느낄 수 있었던 목사님의 체취 등이 새롭습니다.
곳곳에 그윽한 품으로 자리한 산을 찾아가 그 산을 땀 흘려 오르며 그곳에 사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눠 오신 삶, 그것은 지극한 은총과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한결같은 은총과, 내 나라 내 땅 그곳에 사는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 지극한 마음이 없었다면 어찌 그 삶이 가능했겠습니까. 한 자리 서서 변함없는 것 중 산만한 것이 또 무엇일까 싶은데, 목사님은 예의 그 한결같은 삶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산처럼 남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제 마음 속 목사님에 대해 산보다도 가깝고 친숙하고 고맙게 남아있는 느낌은 '이야기'와 관련된 것입니다. 이야기의 소중함을 저는 목사님을 통해 배웠습니다. <소리새>라는 동화집을 내면서 '이야기 속에는 슬픔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목사님을 통해 배웠던 이야기의 소중함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책은 제게 이야기의 소중함에 대한 구체적인 가르침으로 다가왔습니다. 81년 봄 군 입대를 위해 학교를 휴학하고 있을 무렵 그 책을 만나게 되었고, 군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와선 그 책을 부대로 가지고 들어가 3년 여 같이 지냈습니다. 대개의 군 생활이 그렇지만 지나가는 시간이 무미건조하다 싶을 때면 마른 마음에 물기 적시듯 책을 꺼내보곤 했습니다. 덕분에 제가 지금 가지고 있는 책은, 표지에 허수아비가 그려진 정가 1,600원의 초판인데 덕지덕지 형편이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나중에 말쑥한 차림으로 새롭게 나온 책보다도 허름한 몰골을 하고 있는 이 옛 책에 더 정이 갑니다.
페스탈로치에 푹 빠져 있던 김정환 선생님, 사자머리로 역사를 가르치며 불같은 성격을 지녔던 김용석 선생님과 뜻밖에도 그 분의 몽둥이찜질을 면하게 했던 게오르규의 <25시>, 쌀 떨어진 한가위 아침 따뜻한 아침상으로 마음을 울렸던 정연무 선생님의 사모님, 4.19 시위를 나가는 학생들을 위해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셨던 황광은 목사님, 에베레스트의 꿈을 안은 채 설악에 묻힌, 인우학사 같은 방을 쓰던 최수남, 일 년 동안 교목으로 한 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기억 속 집요하게 스승으로 남아있는 홍동근 목사님, 이름을 따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른들이 일으킨 전쟁에 상처만 입고 학교를 떠나가는 아이들이 안쓰러워 해가 지도록 6학년 교실에서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선생님, 그 교실 창가에 참새처럼 매달려 이야기에 빠져들던 저학년 학생들, 그 중에는 목사님도 계셨지요.
목사님께서 들려주시는 어릴 적 선생님들 이야기는 역시 목마르기 그지없었던 제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했고,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했던 선생님에 대한 소중한 기억 하나를 되살려 주기도 했습니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 여름이었습니다. 마침 그 날은 수요일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종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수요일 오후에도 어린이 예배가 따로 있었지요. 비가 많이 내려 선생님이 안 오신 것인지, 빗소리에 가려 종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인지, 갈까 말까 망설이던 나는 그냥 빗속에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일찍 비어둠이 내린 현관으로 들어서자 역시 신발장에는 신발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교회에 왔으니 잠깐 기도를 드리고 가야겠다며 몸을 떨어 비를 털어낸 뒤 예배당 안으로 들어섰는데, 안으로 들어서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예배당엔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둑한 예배당 제단 앞쪽에 누군가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이셨는데, 아마도 선생님은 예배당 측면에 있는 문으로 들어오신 듯 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이 누구였는지, 그 날 예배를 드렸는지 기도만 드리고 마쳤는지 따로 기억되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비가 몹시 오던 수요일 아무도 오지 않은 텅 빈 예배당에 홀로 무릎 꿇고 있던 선생님은 제 마음 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잃어버릴 뻔한 선생님을 목사님의 글을 읽으며 되찾을 수가 있었고, 그 날 이후 제 마음 속에 남은 선생님은 대단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키는 것이 거룩한 일이라는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등불 이야기는 제 마음 속에도 등불처럼 남아 있습니다. 이백여 리 세 시간이 넘는 아들의 기차통학을 위해 밤마다 쪽마루 끝에 등불을 내걸고 아들을 기다리셨던 아버지, 밤늦게 기차에서 내려 산중턱에 등불이 보이지 않는 날은 대개 날이 궂은 날이었는데 그런 날엔 으레 등불이 플랫포옴에 내려와 있곤 하였다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너무도 고단하여 깜박 잠이 들어 내릴 곳에 내리지 못하고 종점까지 갔다가 이십여 리를 걸어오던 날이 있었고, 비 오는 가을 밤길이 더없이 무서워 뛰다시피 집으로 향하다가 거반 집에 이르러서는 자신도 모르게 발을 정거장 쪽으로 옮겼는데, 바로 그곳에서 등불을 만났다 하셨습니다. 기차가 지나간 지 이미 두 시간이나 지난 시간이었고, 다시 올 기차도 없었는데.
목사님은 왜 그 때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발길을 정거장으로 돌렸는지 모르겠다 하셨지만 어찌 모르셨겠습니까. 목사님이 모르셨다 하셨던 것은 아버지의 사랑의 깊이였을 뿐, 목사님은 이미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있었습니다. 충분히는 아니라도 터무니없는 시간에도 발길을 정거장으로 돌릴 만큼은 충분히. 목사님은 그 날 일을 두고 '내 아버지는 곧 하느님이시다'며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하느님, 당신은 그러십니다. 내가 알게 모르게 내가 가야 할 길을 지나쳤다면 비가 오시는데도 당신은 등불을 켜들고 내가 돌아가야 할 그곳에 그렇게 촛대처럼 서 계십니다.”
그 고백을 대하며 나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그렇게 구체적이고도 따뜻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고백이 어디 흔하겠습니까.
"단 한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등불을 내건다는 것, 위로를 받아야만 하는 단 한 사람을 위하여 등불을 들고 찾아 나선다는 것, 이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길이라고 나의 아버지는 지금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제 가슴에 등불처럼 간직하고 있는 그윽한 가르침입니다.
'울며 걷는 시골길'도 목회의 길을 걸으며 때마다 기억하는 이야기입니다.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젊은 목회자들에게 자리를 빼앗긴 채 당신의 아버지가 달구지에 짐을 싣고 시골로 향할 때, 당신은 연방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며 다짐에 다짐을 하였지요. '나는 커서 죽어도 목사는 되지 않을 테야!'라고요. 한창 꿈을 키울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의 다짐이었으니, 그 다짐이 얼마나 아픈 것이었는지를 헤아리게 됩니다. 그랬던 당신이 목사의 길을 걷는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목사의 길은 어느 하찮은 아이의 눈에서도 다시는 눈물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안간힘일 뿐입니다.“
오늘 목회의 길을 걷는 이들이 위대한 일을 꿈꾸는 대신 목사님의 그 다짐을 마음에 새길 수 있다면, 어쩌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액자 대신 목사님의 고백을 마음에 새기고 그 일에 정말로 안간힘을 쓸 수 있다면, 최소한 오늘 교회에서 목회자와 관련하여 벌어지고 있는 터무니없는 일들은 사라지고 없을 텐데요.
춘천의 한 화교 학교 앞을 지나다 본, 학교 건물 벽에 크게 써 붙여놓은 교훈 생각이 납니다. '창조' '질서' '화합' 등 흔하게 보아오던 교훈과는 달리 그 학교 벽에는 '廉恥'라는 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뜻밖에도 부끄러움을 가르친다는 그 말을 한동안 자리에 서서 바라보며 그 의미를 새긴 적이 있습니다.
판소리의 대가 송만갑에 얽힌 귀곡성 이야기도 그랬고,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절단된 자기의 머리를 들고 부하들 앞까지 달음질쳤다는 슈븬블그의 '필사의 경주'도 그랬고, 자기의 손바닥에서 죽어갔던 한 마리 나비로 평생을 괴로워했던 니코스카찬차키스 이야기도 그랬고, "내가 스파르타쿠스다" 하며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던 장면도 그랬습니다. 때마다 절실하고 간곡한 가르침과 당부로 다가옵니다.
빛바랜 어린 시절 추억의 갈피와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 말씀의 행간을 읽는 깊이 등 재미있고 곱씹을만한 이야기로 가득한 이 책이 제게 전해준 선물은 '이야기의 소중함'입니다. 아무리 하찮은 것,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순간이라 하여도 그것을 눈여겨보게 되면 사실은 빛나는 보석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추운 겨울 방안에 촛불 하나면 켜두어도 방안의 물이 얼지 않는다 했던 제가 아는 치악산 한 화가의 말처럼, 자신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단 하나, 오직 단 하나의 이야기를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 하여도 그럴 수만 있다면 생의 추위를 얼마든지 이길 수 있음을, 그 힘이 바로 '이야기' 속에 있음을 배웠습니다.
산을 좋아하다 어느새 산처럼 되신 최완택 목사님. 제 품에 든 모든 것 가리는 법 없이 품어주고 키워주고 재워주는 뭇 산처럼, 이제 목사님께서 잘 익은 산이 되셔서 흔들리는 뭇 영혼들을 넉넉히 품어주시기를 멀리서 빕니다.
<기독교사상> ‘책에서 길어올린 풍경’
<아름다운 순간>을 읽고
*추위 앞에 옷을 벗고 앙상한 가지로 선 겨울나무들, 겨울산을 보아도 빙긋 웃는 웃음이 선하다. 그만큼 넉넉한 걸음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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