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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2. 틈과 여유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1513 추천 수 0 2005.12.30 12: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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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살며 언젠가 한 번은 뜰 앞 장독대 주변으로 봉숭아를 심은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 손톱 끝에 봉숭아물을 들이는 경험을 나누고 싶어서였지요. 물을 주며 관심을 보였더니 봉숭아는 잘 자라났고 머잖아 좋은 꽃을 피우겠다는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집에 들러 차 한 잔을 하고 돌아서던 이웃집 할머니가 봉숭아를 보더니만 이내 봉숭아 몇 개를 쑥 쑥 뽑아 내던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필요 없는 잡초를 뽑아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서로 어깨를 견주고 자라던 봉숭아를 사이사이 뽑아내니 마치 이가 빠진 듯 듬성듬성한 게 보기에도 안 좋았고, 묻지도 않고 뽑는 것도 그랬고, 아깝게 심어 잘 자란 것을 왜 뽑나 싶기도 하고, 나는 당황스럽고 아까운 마음인데 할머니는 당연한 일을 한 듯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심술로 그러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지라 할머니께 여쭤보았습니다. 할머니의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이래야 지대루 자라유."
식물이 서로 너무 가까이 붙어 있으면 결국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자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 이야기가 맞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할머니가 뽑아 없앤 빈자리는, 이 빠진 듯 허전하게 보였던 빈자리는 바로 옆에 있던 봉숭아가 훌륭하게 메워주고 있었습니다. 봉숭아가 저렇게 크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것임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려는 듯 당당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마을과 함께 해온 초등학교가 학생수가 너무 적어 폐교 위기에 처했을 때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기로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동네는 학교도 지킬 수 없을 만큼 너무도 작지만, 실은 세상이 얼마나 넓고 아름다운지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눈물겨운 꿈이었지요. 결국은 22명의 전교생과 4명의 전 교사와 함께 10일간 미국여행을 다녀왔답니다.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마을분이 빌려주신 밭에 보리를 갈았습니다. 학부모는 물론 마을 어른들 대부분이 나와 일을 도와주었지요. 보리를 간지가 벌써 30여 년 전, 그때의 기억이 서로 희미하여 어떻게 씨를 뿌릴지, 고랑을 어떻게 터야 할지 등 많은 얘기를 나눠야 했는데 그때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옛 어른께 들었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드문 곡석(곡식)은 광을 채워도, 보인 곡석은 광을 못 채운다."는 말이었습니다. 씨앗을 드문드문 심은 것은 나중에 많은 소출을 보아 광을 채우게 되지만, 보이게(촘촘하게) 심은 것은 오히려 소출이 적어 광을 못 채운다는 뜻이었습니다. 씨를 많이 뿌려야 많이 거둘 것으로 생각하기가 쉬운 터에 오히려 드문 곡식이 광을 채운다는 뜻밖의 말은 신선하고도 환했습니다.
봉숭아도 그랬고, 보리도 그랬습니다. 생각해보면 틈과 여유가 없이는 곡식이든 사람이든 그 무엇도 제대로 자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2005.8.17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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