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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상

한희철 한희철............... 조회 수 681 추천 수 0 2002.06.26 10: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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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 보호상

  지난 주 속초를 다녀왔습니다. 늘 마음 속에 고마움과 든든함으로 남아있는 지인(知人)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의논도 할 일이 있었습니다.
휴가의 한창 때가 막 지난 때문인지 미시령을 넘는 길은 한적하게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이 길을 빠져나가는 데 예닐곱 시간이 족히 걸렸다는 이야기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길이 길다웠습니다. 부는 바람 속에 이미 담기기 시작한 선선함은 조용한 음악과 함께 설악의 한 고개를 넘는 즐거움이 제법이었습니다.
임대아파트에서 우리를 맞아준 그분은 반바지 차림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또 얼마나 편하고 좋던지요. 정장을 하고 맞았다면 우린 괜스레 긴장부터 했을 텐데요. 편한 반바지, 덩달아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거실 바닥에 놓여있던 두 권의 스케치북을 보여주었습니다. 설악의 각가지 풍경들이 담겨있는 그림이었습니다. 한 장 한 장의 그림이 참 좋아 그림을 그리는 따님이 다녀가며 그린 것이겠거니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직접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나이로나 능력으로나 얼마든지 더 할 수 있는 큰 일을 훌훌 털고 서울을 떠나와 자연 속에 들어 살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며, 그분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그려 보는 그림이 너무 좋아 때론 시간을 잊고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한가로움은 하늘이 특별히 사랑하는 이에게만 주는 선물이라더니, 그분이 꼭 그랬습니다.
그림에 이어 얼마 전 쓰셨다는 시를 읽고 있는데 “이것 좀 보실래요?”하며 웬 종이 한 장을 건네었습니다. 32절지 쯤 되는 종이에 서툴게 쓴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직접 손으로 쓴 상장이었는데, 상의 이름과 내용이 뜻밖이었습니다. 상의 이름은 ‘보호상’,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위 사람은 61세나 되었는데도
어린이를 잘 돌봤으므로
이 상을 수여함

위에는 할아버지의 함자를 또박또박 적었고, 맨 아래에는 날짜와 함께 상을 주는 자신의 이름을 적어 놓았습니다. 사연이 궁금해 물었더니 초등학교 1학년인 외손녀가 만들어 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상을 많이 탔다는 외손녀의 이야기를 듣고는 잘했다고 칭찬을 해 준 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아무 상도 못 탔는 걸” 했는데, 슬그머니 손녀가 없어졌답니다. 그리고는 얼마 후 자신이 만든 상장을 가지고 와선 할아버지에게 보호상장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노벨 평화상보다도 멋진 상이네요!”
할아버지를 향한 외손녀의 마음이 너무나 예뻐 감탄에 감탄을 했습니다. 할아버지를 향한 지극한 사랑과 존경심이 없었다면 만들 수 없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상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요, 저도 이제까지 받았던 어떤 상보다도 좋은 상이라고 생각해요. 누구에게라도 자랑하고 싶은 상이지요.”
그분도 마음을 다해 인정했습니다. 자녀들이 준비해 준 환갑잔치 비용을 의미 있는 일에 전액 기부한 것도 물론이지만, 사랑스런 손녀에게 ‘보호상’을 받은 그 하나만의 이유로도 그분의 노년은 이미 충분히 아름답고도 행복해 보였습니다. 200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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