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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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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 목사] 같이 간다는 것은
철원을 같이 다녀오면 어떻겠냐는 전화를 받은 것은 전날 오후였습니다. 서울에서 철원은 두 시간가량이 걸리는 거리, 반나절 이상을 비워야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수첩을 꺼내 확인을 하니 마침 다른 약속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철원으로 나선 것은 두루미를 찍기 위해서였습니다. 때마침 전날 많은 눈이 내려 눈과 어울린 두루미를 찍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전화를 건 지인은 몇 년 전부터 특별한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연말이 되면 부부가 달력을 만듭니다. 테이블 위에 올려둘 수 있는 새해 달력을 만들어 연하장처럼 가까운 사람들과 나눕니다.
그 달력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달력으로, 오직 두 사람만 만들 수 있는 달력입니다. 남편이 찍은 사진과, 아내가 쓴 시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계절에 맞는 사진과 사진에 어울리는 시가 어우러지니 한 달 한 달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눈과 어울리는 두루미를 찍으려는 것도 미리부터 다음 해를 준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철원군은 지극한 마음으로 두루미를 보살피지 싶습니다.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할 텐데도 날을 정해 옥수수를 뿌림으로 먹을 것을 줍니다. 이번에 가서 보니 강가를 바라보는 곳에 예닐곱 개의 컨테이너 박스를 두고, 그곳에서 두루미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입장료가 15,000원이었는데, 그중 10,000원은 지역상품권이어서 얼마든지 현금처럼 철원에서 사용할 수가 있었습니다.
컨테이너 창을 통해 바라보는 강가는 그야말로 철새들의 천국이었습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오리 떼, 우람한 자태를 뽐내는 고니들, 어디선가 날아왔다 다시 날아가는 우아한 날갯짓의 두루미들이 하얗게 눈이 쌓인 겨울산과 윤슬 반짝이며 흘러가는 강물과 어울리니 그런 절경도 드물겠다 싶었습니다.
새를 사랑하는 이들이 그렇게 많은 것도 놀라웠습니다. 눈길에 길이 미끄러웠을 텐데도 이른 아침부터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들도 대단했습니다. 카메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내가 보기에는 엄청난 장비였습니다. 렌즈의 굵기는 군 생활을 하며 가까이 지냈던 105mm 곡사포의 포신을 닮았고, 연속으로 터뜨리는 셔터 소리는 마치 기관단총을 쏘아대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지닌 카메라는 아기 주먹만 한 카메라,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장난감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나의 관심은 새들을 바라보는 것, 겨울 풍광을 즐기는 것, 사진에 푹 빠진 이들과 대화하는 것, 그렇게 망외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었으니까요.
다녀와서 찍은 사진을 보니 그래도 마음에 드는 사진이 한 장 있었습니다. 열댓 마리의 두루미가 눈 쌓인 겨울 산을 배경으로 날고 있는데, 용케 초점이 맞았습니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마음에 닿는 것이 있었습니다. 활짝 펼친 두루미 날개 위에 머물러 있는 환한 햇살이었습니다.
언제부턴가 하루에 한 생각씩을 적고 있습니다. 두루미 날개 위 햇살을 보다가 짧은 글을 적었습니다. ‘같이 간다는 것은, 같은 볕을 쐰다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교차로> 202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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