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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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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3 짧은 금 긋기
한 스승이 제자들 앞에서 벽에다 금을 그었습니다. 그리고서는 금을 건드리지 말고 금을 길게 만들어보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금을 길게 만들되 금을 건드리지 말라니? 제자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도대체 선생님이 요구하는 게 무엇일 지 짐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한 제자가 손을 들고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이 그어놓은 금 아래에 선생님이 그어놓은 금보다 짧은 금을 긋고는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선생님은 빙긋이 웃었지요.
선생님이 그어놓은 금을 건드리지 않았지만 선생님이 그은 금보다 짧은 금을 그으니 선생님이 그은 금은 제자가 그은 금에 비해 길어졌습니다. 선생님이 그어놓은 금을 건드리지 않고 그 금을 길게 만드는 길은 바로 짧은 금을 긋는 것이었습니다.
'노자'에 보면 '기자불립, 과자불행'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까치발을 하고서는 오래 서있지 못하고, 가랑이를 한껏 벌려서는 제 길을 걷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발뒤꿈치를 들고 서면 남보다 돋보이지만 오래 서 있을 수가 없고, 가랑이를 한껏 벌려 걸으면 얼마동안은 남보다 앞서겠지만 결국은 지쳐서 오래 걷지를 못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무엇으로 어떻게 주님의 이름을 높일 수가 있을까요? 우리같이 부족하고 약한 사람들이 거룩하신 주님의 이름을 어떻게 높일 수가 있겠습니까?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우리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함으로 낮아지는 만큼 주님은 높아지십니다. 낮아진 우리를 통해 사람들은 주님의 높으심을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남보다 앞서겠다고, 또한 높아지겠다고 가랑이를 한껏 벌려 걷고 까치발을 하고 사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남보다 앞서려고 하는 모습은 시대적인 흐름이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 낮아지는 일입니다. 스승의 금 아래 짧은 금을 그었던 제자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낮아져 주님을 높이는 삶이 이 시대에 더욱 아쉽게 여겨집니다 (200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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