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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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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석열이 헌정질서를 유린하며 임명한 계엄사령관 박안수는 교회 안수 집사라고 한다.
하지만 군의 생리를 조금 아는 나로서는, 그가 개신교 안수집사라는 사실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군은 계급이 높으면 자동으로 기독전우회 회장도 맡고, 장로나 안수집사도 되는 특수 집단이다.
2. 오늘 (전) 계엄사령관 박안수 육참총장이 국회 국방위에 출석하여 의원들에게 여러 추궁을 당하는 장면을 많은 국민이 보았다.
그 자리에서 박안수는 오로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나는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다'는 답으로 일관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많은 국민이 '저게 4성 장군의 품격이고 기백인가?'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저 정도의 배짱을 갖고 과연 전시에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도 가졌을 것이다.
3. 오늘 박안수 씨가 보여준 '저 자세'는 많은 이로 하여금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한나 아렌트는 말하길, 히틀러의 나치즘에 동조하여 수많은 인명을 학살한 당사자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들로 위에서 시키는 명령에 충실했다고 적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유명한 기독교 사상가인 C.S. 루이스도 한 적이 있다.
그는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서 '사탄의 왕국은 관료사회 같다'고 표현했다.
말하자면, 악은 '아무 생각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충실히 이행하는 공무원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현실화되고, 무섭게 확장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전국에 생중계된 방송을 통해, 그 전형적인 인물을 보았다.
4. 하지만 정말 (전) 계엄사령관 박안수 씨가 본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군인으로서 상관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을 것이었을까?
나는 최소 두 가지 의문이 든다.
첫째, 박안수는 자기 입으로, 윤석열이 계엄선포를 할 때 비로소 계엄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박안수는 그 야심한 시간에 논산 계룡대의 육참총장 집무실이 아닌 서울 용산에 대기 중이었는지를 해명해야 할 것이다.
둘째, 박안수는 자기 입으로, 대통령의 계엄 선포 내용에 동의했기에 계엄사령관 직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단순히 위에서 명령이 하달되었으므로 본인은 그 명령을 받들었다고 말하기 이전에, 본인이 윤석열의 시국관과 동일한 관점을 갖고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즉, 박안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라, 계엄사령관 직을 수용할 때 이미 본인의 상당한 자유의지가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그저 '모른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라고 발뺌할 일이 아니다.
5. 그렇지만 나는 박안수 씨의 고백에 어느 정도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그는 실제로 상당 부분, 구체적인 내용을 모른 상태에서 마치 얼굴 마담 같이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으로 그가 안쓰러운 이유다.
내가 볼 때,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국방부장관과 군의 정보 기능을 장악한 인물이 설계-주도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악이 시키는 대로 그저 아무 생각없이 따랐다고 해서, 그 죄가 사라지거나 면책받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자기 행동에 대해 궁극적으로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공직자들이 '영혼'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이유다.
김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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