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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는 아이 ‘목동(牧童)’ 한시(漢詩), 서정적 목가적 풍경을 묘사하다>

 

고영화(高永和)

 

 소치는 아이 ‘목동(牧童)’의 한시(漢詩)는 대부분 목가적(牧歌的)이다. 전원시(田園詩)이다 보니, 전원의 한가(閑暇)로운 목자나 농부의 생활을 주제로 한 서정적(抒情的)이자, 소박(素朴)한 시가(詩歌)로 이루어져 있다. 목동(牧童)의 시(詩)에는 ‘소를 방목(放牧)하고 도롱이 비옷(?衣)을 입고, 소등에 타고(騎牛) 갈피리(蘆管)를 부르면서 석양 속에서 돌아온다(夕歸).’는 구성요소(構成要素)를 대부분 갖추고 있다.

 

 그런고로 목동(牧童)들이 부르는 노래이던, 시인이 부르던 노래이던, 전원에서 한가하게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낭만적인 풍경을 그렸다. 권면(勸勉)하고 힘쓰되 속세(俗世)의 명리(名利)는 아랑곳할 바가 아님을 노래한 것이다.

 내용을 보면, 대체로 목동이 소를 치는 모습을 관찰자 입장에서, 또는 목가적인 관점에서 묘사해 놓았다. 해질녁 석양 속에서 소등을 타고 돌아오는 목동의 모습에다, 자욱한 안개와 희미한 이슬비 내리는 혼미한 시골 풍경에, 어디서 들려오는 소박한 목동의 피리 소리는 애처롭다 못해 애틋하다.

 

○ 우리나라는 옛날 농업 중심 사회였던 봉건 전통 시대는 물론, 근대까지 농사짓는 시골에는 집집마다 소를 키웠다. 소만큼 노동력과 경제력을 동시에 보유한 재산은 없었기에 더욱 소중한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한시(漢詩)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치는 아이 ‘목동(牧童)’이 어쩐지 친근하게 느껴진다. 이런 까닭에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서 집집마다 아이들이 목동(牧童)이 되어, 산과 들로 소를 끌고 나가 풀을 먹이고 또 소죽을 끓여 먹였다. 근대 1960~70년대에는 보통 마을의 목동들이 학교에 갔다 오자마자, 한 팀이 되어 함께 소를 몰고 뒷산에 올라가서 일제히 소를 방목했다. 기억건대, 새벽에 해 뜨기 전에 소를 몰고 가서 한번 먹이고 와서,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갔다가 오후에 또 나가서 소를 먹였으니, 늦봄에서 초가을까지는 하루에 2차례 목동이 되었던 것 같다. 

 

○ 나는 유년기에 소먹이던 일이 가장 큰 추억으로 남아있다. 오후에 주로 소를 먹이려 산으로 다녔는데 한여름엔 가끔씩 집집마다 보리쌀을 한 되씩 거두어서, 먹거리도 사고 만화책도 빌려서 올라갔던 것 같다. 해가 지기 전까지 아이들은 산에서 만화책도 읽고 놀이도 하고 동네 형들이 이끄는 데로 가서 이것저것 배우기도 하고, 때론 나무집을 지어 아지트를 만들기도 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서쪽 산 위의 해가 한뼘 정도 남았을 때 소꾼 대장의 호출 소리에 모두가 집합해서, 소가 자주 가는 몇 군데를 지정해서 팀을 나누어 소를 찾기 시작했다. 한 팀이 찾으면 곧바로 연락해서 함께 모여 각자 자기집 소를 끌고 집으로 귀가를 했다. 그때 쯤이면 해가 막 서산에 지고 있을 때였다. 간혹 자기 집 소를 못 찾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에는 따로 남아서 소를 찾아야만 했다.

 

 내가 기억하건대, 열두어 살 때쯤이었던 것 같다. 어스름 달빛에 홀로 잃어버린 소를 찾아 거제시 일운면 누우래재 능선을 따라 흐르는 달빛 속에서 걸었다. 근심 걱정에 글썽이던 눈물에 비치는 달빛은 밝고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서러운 가슴에 환히 비추던 달빛은 괜시리 밉상으로 보였다. 소는 그 큰 눈방울 땜에 맞바람을 맞으며 스스로 나아가질 않는다. 그리고 지나가며 싸놓은 소똥을 일일이 만져보며 질감과 온도를 느껴야 하고, 휘어진 가지와 소발자국에 패인 흔적으로 지나간 시간을 유추하기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소들이 가장 잘 가는 장소가 있으니, 항상 먼저 거기부터 찾아가 봐야 한다. 거기에도 없다면 난감하기 그지없다. 그날 바람의 방향과 소의 흔적들을 종합해서 방향을 잡아 찾아가야 했다. 언젠가 늦도록 못 찾고 투덜투덜 돌아오는 산등성에서 쳐다 본 머리 위에, 흠뻑 뿌려놓은 하늘의 별가루가 우찌 그리도 밝았던지, 지금도 그때 그 은하수가 생각날 정도다.

 

 난 목동으로서 살았던 약 8년 동안, 두어 번 소를 찾지 못해 어둑할 때까지 산에서 헤맸던 것 같다. 그때마다 동네 어른 몇 분이 햇불을 들고 찾아와 집으로 돌아갔는데, 우리 집 소는 언제나 지가 알아서 먼저 돌아와 마굿간에 쉬고 있었다. 결국 그놈이 나보다 먼저 제집을 찾아간 줄도 모르고.ㅠ 순간 화가 치밀어 그놈의 빰을 때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때론 풀이 가득한 들판에서 소를 먹일 때가 있었다. 이때는 방목을 할 수도 없고 눈길을 함부로 돌릴 수도 없다. 한눈을 팔라치면 농작물을 순식간에 먹어버려,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우리 소가 이웃집 배추와 나락을 먹어서 이웃 어른에게 크게 혼이 났던 적도 있었다. 근데 우습게도, 유년시절 은하수와 달 사이로 흐르던 연붉은 구름은 나를 놀리듯 빠른 걸음을 재촉했지만, 요즈음의 구름은 ‘무엇에 집착하지 말고 세속적인 일에서 벗어나라’고 이끈다.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소(牛)는 인간과 자연의 경계에서 가장 인간화된 짐승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과 소의 임신 주기가 똑같다. 게다가 소도 구슬 같은 눈물을 흘릴 줄도 안다. 새끼소가 팔려 갈 때나 자신이 팔려 갈 때엔, 눈물을 흘리며 크게 울부짖는다. 그때마다 나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큰 아픔을 남겼다. 그런데 새끼소가 팔려 갔을 때는 그날 하루만 그렇지 그 다음 날부터는 언제 그랬나 하듯 또 우직하게 노동력을 제공했다.

 

 우리나라는 기록상, 신라 지증왕 3년에 우경(牛耕)을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우경법을 국가 차원에서 장려를 시작] 물론 기록상이지만, 소는 농사를 지었던 수천년 전 청동기 때부터 가축으로써 키우기 시작했을 것이다. 고조선의 유적에 가축의 뼈들 사이에 소의 뼈가 빈번히 출토되는 것이 그 증거이다. 덧붙여, 조선시대에 소를 기를 땐 계절에 따라 봄에는 짚과 밀기울, 콩깍지, 겨, 콩 등을 날것으로 먹였고 따뜻한 계절엔 산과 들에 놓아 먹였다. 한겨울엔 목화씨와 닥나무잎을 섞어 소죽을 쑤어 먹였으며 잔등에 소삼정이라는 덕석을 씌워 추위를 관리했다.

 

 언젠가 TV에서, 한우가 유명한 강원도 횡성군에 소를 키우는 분이 인터뷰를 하는데, “여기는 소가 사람보다 더 많은 동네”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어찌되었건 소는 정말로 유익한 동물이다. 노동력과 재산 가치 뿐만 아니라, 소똥과 소의 부산물은 거름으로 농사를 짓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한다. 게다가 조선시대에는 ‘소 키우는 집에는 곰보(천연두)가 없다.’는 말이 있기도 했다.

 

○ 그런데 무엇보다 집안에 키우는 소는 가족과 같았다. 시골에서 성장하는 모든 아이들에게 행복한 추억과 애틋한 그리움을 제공한 믿음직한 성장 반려 동물이었다.

 또한 왕조시대 전원에서 생활하는 선비들에게 소는 전원의 상징이자, 목가적 이상향의 중심에 있었던 상징물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그리는 그림과 문학 작품에 소는 유유자적한 귀거래(歸去來)의 표상이 되었다. 그런고로 소치는 아이 ‘목동(牧童)’은 속세의 명리(名利)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소박하고 한가하며 서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먼저 조선중기 한문학의 대가였던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의 사언(四言) 악부체(樂府體) <목동도(牧童圖)>를 소개하겠다. “높은 숲 무성한 풀에 너의 소를 네가 먹이나니, 바람 부니 젓대 한 소리에 산은 높고 물은 흐르도다.(長林?草 爾牧爾牛 一聲風笛 山高水流)” 마치 한 폭의 전원(田園) 풍경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인지 여타 한시(漢詩) <목동(牧童)>에서 '화중유시(畵中有詩) 시중유화(詩中有畵)', ‘그림 속에 시가 있고, 시속에 그림이 있다’는 당(唐) 시인 왕유(王維)의 말이 생각난다.

 

● 다음 ‘麻’ 운의 오언절구 <소 치는 아이(牧童)>는 조선후기 유학자 한수재(寒水齋) 권상하(權尙夏 1641~1721)의 작품이다. 그는 송준길과 송시열의 수제자로 이이(李珥) · 송시열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정통 계승자였다.

 산기슭 좁은 산길로 해질녘 석양 속에 소치는 아이가 머리에 꽃을 꽂고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길 아래 작은 소나무 숲 밑에 옹기종기 두세 집이 보인다. 이 시를 읽다 보면, 전원의 목동이 집으로 돌아가는 한 폭의 동양화가 떠오른다. 

 

1) 소 치는 아이[牧童] / 권상하(權尙夏 1641~1721)

 

細細山腰路 가느다란 산허리 오솔길 위에

牧童頭揷花 목동이 머리에다 꽃을 꽂았네.

夕陽吹笛去 석양에 젓대 불고 걸어가는데

松下兩三家 소나무 밑 옹기종기 두세 집일레라.

 

● 다음 ‘微’ 운의 칠언절구(七言絶句) <안개비 속의 목동(煙雨中牧童)> 2수(首)는 경남 함양 출신 조선중기 학자 첨모당(瞻慕堂) 임운(林芸 1517~1572)의 작품이다. ‘微’,‘衣’, ‘歸’ 압운자를 첫수와 둘째 수에 그대로 사용해 리듬감과 박자감, 운율을 극대화했다.

 첫수에선, 교외 먼 들판에 안개비와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갓을 쓴 목동이 옷을 반쯤 걸치고 소와 함께 걸어온다. 날은 저물어 가고 안개가 가득한데도 무성한 풀밭에 미련이 남아 집으로 돌아가길 잊었는가 보다며 읊고 있다. 둘째 수에선, 옅은 안개 속에 이슬비가 내리는데 황혼빛이 희미해지니 목동이 비옷을 걸치고 소를 타고 돌아오고 있다. 여태껏 허리춤의 피리를 꺼내보지도 못하고 다만 엇길로 빠지려는 송아지만 부를 뿐이다.

 

2) 안개비 속의 목동[煙雨中牧童] / 임운(林芸 1517~1572)

 

長郊煙雨灑?微 먼 들에 낀 안개비가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듯한데

?笠牽牛半溫衣 갈대 갓을 쓴 견우(牽牛, 목동)가 따뜻한 옷을 반쯤 걸쳤네.

堪笑霧深天欲暝 우습구나, 안개 짙어지니 하늘이 저물려고 하는데

尙憐濃草却忘歸 아직도 짙은 풀빛에 미련이 남아 돌아가길 잊었구나.

細雨疏煙暝色微 성긴 안개 속에 이슬비가 내리고 황혼빛이 희미한데

牧童牛(?)背掛?衣 목동이 도롱이 옷을 걸치고 소등을 타고 오네.

晩來未試腰間笛 해가 저물도록 허리춤의 피리를 아직 불어보질 못했는데

要?隣兒喚犢歸 요컨대 이웃집 아이가 쫓아가 돌아가는 송아지를 부르네.

[주] 견우(牽牛) : 칠석날과 관련된, 전설 속의 하늘나라 목동(牧童)의 이름

 

● 다음 ‘寒’ 운의 오언절구 <목동(牧童)>은 조선중기 학자 태촌(泰村) 고상안(高尙顔 1553~1623)의 작품이다. 그는 본관은 개성(開城)으로, 임진왜란 때 향리인 상주 함창에서 의병 대장으로 추대되어 큰 공을 세웠고, 「농가월령가」의 작자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천지가 아무리 넓다손 이 아름다운 전원까지 감추기가 어려울 것이다. 소등을 타고 피리를 불며 돌아오는 목동의 유유자적을 어찌 사랑하지 않으랴.

 

3) 목동[牧童] / 고상안(高尙顔 1553~1623) 

 

天地雖云廣 하늘과 땅이 비록 넓다고는 하나

尙憂藏處難 이곳을 다 감추기란 어려워라.

何如牛背上 어찌하여 소의 등 위에서

閒適此心寬 한적(閒寂)하니 이 마음도 너그러워라.

 

● 다음 ‘微’ 운의 칠언절구 <목동(牧童)>은 조선시대 문신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 1587~1667)의 작품이다. 시냇가엔 목동의 피리 소리가 온종일 울부짖는다. 날이 저물면 목동은 언덕을 넘어 마을로 돌아간다. 짧은 비옷을 입고 소등을 타고서 내려오는데 산비(山雨)에 삼베옷이 젖는 줄도 모른다.

 

4) 목동[牧童] / 김응조(金應祖 1587~1667)

 

笛聲終日咽河湄 온종일 피리 소리가 시냇가를 울부짖더니

行?前村暝色歸 어둑한 귀갓길을 따라 앞마을로 쫓아가네.

牛背短蓑身半露 몸이 반쯤 드러난 짧은 도롱이를 입고 소등에 타고서

不知山雨濕麻衣 산비(山雨)에 삼베옷이 젖는 줄도 모르네.

 

● 다음 ‘支’ 운의 오언절구 <목동(牧童)>은 조선후기 문신 약산(藥山) 오광운(吳光運 1689~1745)의 작품이다. 저 멀리 교외에 안개가 자욱한 어느 여름날이다. 어린 목동이 구부정한 소등을 타고 앉아 있다. 저물녘 석양 속에 젓대 소리 애잔하다.

 

5) 목동(牧童) / 오광운(吳光運 1689~1745)

 

漠漠烟郊望 막막한 교외를 바라보니 안개가 자욱한데

亭亭牛背兒 한 아이가 구부정한 소 등에 앉아 있구나.

夕陽無限色 저물녘 석양은 무한히 빛을 발하니

留與笛聲? 피리 소리도 이와 함께 머물러 있네.

 

● 다음 ‘元’ 운의 오언절구 <목동(牧童)>은 조선중기 문신 죽창(竹窓) 강주(姜? 1567~1650)의 작품이다. 꽃 지고 짙푸른 녹음이 우거진 초여름 저물녘이다. 어둑한 마을에 밥 짓는 연기가 가득하다. 소의 등 위로 밝은 달이 떠 있고 시내 건너편에서 한 곡조 피리 소리가 들려온다. 그림 같은 전원의 풍경을 묘사한 전형적인 시중유화(詩中有畵)다.

 

6) 목동(牧童) / 강주(姜? 1567~1650)

 

山木蒼蒼野逕昏 짙푸른 산속 나무와 좁은 들길이 어둑한데

細烟和暝落花村 가느다란 연기가 날 저문 꽃 떨어진 마을을 감싸고

牛背月明堪?處 소의 등 위로 달이 밝으니 정말로 그림 같은 곳인지라,

一聲蘆管隔溪聞 한 곡조 갈대 피리 소리가 시내 건너편까지 들려오네.

 

● 다음 ‘支’ 운의 오언절구 <목동(牧童)>은 조선시대 김화 현감을 역임한 문신, 학자 죽창(竹窓) 구용(具容 1569~1601)의 작품이다. 그는 시재가 뛰어나, 당시 시문으로 명성이 높았던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 1556~1615)는 그의 시에 대해 “봄바람에 움직이는 버들가지의 풍광과 같이 아름답고, 물 위에 피어나는 연꽃이 달그림자를 받음과 같이 청수하다”고 평하였다.

 이 짧은 절구의 내용에다, 시골 아이 목동이 꽃을 머리에 꽂고 강 건너 젓대 한 곡조 부른다. 아침마다 시냇가 풀을 먹이는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언젠가는 서로 이별이 있을 거라는 말로써 마무리했다.

 

7) 목동(牧童) / 구용(具容 1569~1601) 

 

隔水相呼一笛吹 강물 건너에서 젓대 한 곡조 서로 부는데 

村童滿首揷花枝 시골 아이가 머리에 꽃가지를 가득 꽂았네.

朝朝飯犢溪邊草 매일 아침 송아지의 식사는 시냇가의 풀이지만

不識人間有別離 인간 세상엔 이별이 있는 줄 알지 못하네.

 

● 다음 ‘微’와 ‘文’ 운의 고시(古詩) <목동사(牧童詞)>는 조선중기 한문학의 대가였던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의 작품이다. 신흠은 정사년(1617년) 정월 6일 춘천(春川)으로 정배(定配)되어 1621년까지 귀양살이를 했다. 아마도 이 글은 북한강이 멀리 보이는 소양강변 배소에서 지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글처럼 한문 문체 사(詞)는 운문(韻文)의 한 형식(形式)으로, 민간 가곡(歌曲)에서 발달하여 당나라 이후 오대(五代)를 거쳐 송나라에서 크게 성행하였다. 시형(詩形)에 장단구(長短句)가 섞여 장단구(長短句)라고도 하며, 시여(詩餘)ㆍ의성(倚聲)ㆍ전사(塡詞)라고도 한다.

 내용을 보면, 목동이 아침과 저녁마다 소를 치며 집으로 돌아온다. 이에 송아지는 날로 건장해지고 어미 소는 날로 살이 찐다. 목동의 피리 소리를 듣고 문득 옛날 쇠뿔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는 영척(戚)의 고사를 떠올리며 끝맺었다.

 

목동사(牧童詞) / 신흠(申欽 1566~1628) 

 

朝向坡上去 아침엔 언덕 위를 향해 가고

暮向坡下歸 저물녘엔 언덕 밑을 향해 돌아온다

我犢日以健 나의 송아지 날로 건장해지고

我牛日以肥 나의 소는 날로 살이 찌나니

牛肥犢健又何事 소 살찌고 송아지 건장하면 그만이라

閑吹蘆管聲裂雲 한가히 부는 갈대 피리(蘆管) 소리 구름을 가르네.

牧童牧童爾眞牧 목동아, 목동아, 네가 진정 목인(牧人)이로다

秦奚齊戚空紛紛 백리해(奚)와 영척(戚)은 공연히 분분했을 뿐이다.

 

[주1] 노관(蘆管) : 갈피리. 갈대의 줄기나 잎을 말아서 만든 피리.

[주2] 목인(牧人) : 목부(牧夫). 목장(牧場)에서 소, 말, 양 따위의 가축을 돌보며 키우는 사람.

[주3] 백리해(奚)와 영척(戚) : 백리해는 춘추 시대 우(虞)나라 사람으로 우 나라가 망하게 되자, 망명하여 초(楚) 나라에 억류되어 있을 때 진 목공(秦穆公)이 그가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오고양피(五?羊皮)를 그의 몸값으로 주고 그를 신하로 삼아 국정(國政)을 맡겼던 인물인데, 여기서 말하는 것은 곧 만장(萬章)이 맹자(孟子)에게 “혹자의 말에 의하면, 백리해가 진(秦) 나라 목축업자(牧畜業者)에게 오양(五羊)의 가죽을 받기로 고용(雇傭)이 되어 소를 먹여주고 오양의 가죽을 받아서 이것을 진 목공에게 바치고 쓰이기를 요구했다고 하니, 그 말이 사실입니까?” 하고 물은 데서 온 말이다. 그러나 맹자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였다. 영척은 춘추시대 위(衛) 나라 사람으로 집이 가난하여 남에게 품팔이를 해서 먹고 살다가, 제(齊) 나라에 가서는 남의 소를 기르면서, 환공(桓公)이 자신을 등용해주기를 바라는 뜻으로 쇠뿔을 두드리며 노래를 하자, 환공이 그 노래를 듣고 끝내 그를 등용했다고 한다. 

 

● 다음 ‘陌’,‘藥’,‘沃’,‘屋’,‘錫’ 자(字)를 통운한 칠언고시(七言古詩) <목동의 노래(牧童歌)>는 조선 선조 때 완주 출신 문신 표옹(瓢翁) 송영구(宋英? 1556~1620)의 작품이다. 이 글도 앞서 소개한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1628)의 고시(古詩) <목동사(牧童詞)>와 같은 장단구(長短句) 또는 사(詞) 형식이다. 한문 문체 사(詞)는 운문(韻文)의 한 형식(形式)으로, 민간 가곡(歌曲)에서 발달하여 당나라 이후 오대(五代)를 거쳐 송나라에서 크게 성행하여 송사(宋詞)라고도 한다. 특히 송나라의 사악이라 하여 송사악(宋詞樂)이라 일컫는다. 각 싯구의 길이가 불규칙하기 때문에 장단구(長短句)라고도 하며, 시여(詩餘)ㆍ의성(倚聲)ㆍ전사(塡詞)라고도 한다.

 이 작품은 2단 쌍조(雙調), 전후단(前後段), 또는 미전사(尾前詞)와 미후사(尾後詞)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의 구조는 쌍조(雙調) 총130자로, 전후단(前後段)이 각각 10구와 12구씩, 62자와 68자로 되어 있다.

 내용을 보면, 전단(前段)에선, 목동이 아침저녁으로 강가나 산골짜기에서 소를 친다. 어미 소와 송아지를 방목하는데 연한 갈대 순과 푸른 사초(莎草)를 즐겨 먹는다. 목동은 짧은 베옷을 입었고 머리털은 흐트러져 볼품이 없다. 후단(後段)에선 목동들이 다들 옛날 영척(寧戚)처럼 쇠뿔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러도 듣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비록 굶는 사람 없이 넉넉해도 남의 경작지에 소를 칠 수는 없다. 너나 나나 농사를 짓기 위해 모두 소를 친다. 사람들 모두 해가 저물면 숲속 어둑한 길로 함께 돌아와 도롱이도 벗지 않고 누워서 밝은 달을 구경한다.

 

9) 목동의 노래[牧童歌] / 송영구(宋英?)

 

牧童驅牛去 목동이 소를 몰고 가는데 

牧之惟朝夕 아침저녁으로 소를 치는구나.

朝牧下江口 아침에는 강 어귀에서 소를 먹이고 

夕牧在邨谷 저녁에는 마을 골짜기에서 소를 친다. 

大牛小犢相後先 어미 소와 작은 송아지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는데

騎者驅者任所適 말을 탄 자나 소를 모는 자나 저 가는 대로 맡겨 두네.

溪邊水?蘆筍軟 시냇가엔 연한 갈대 순이 물에 젖어있고

岸上雨洗莎艸綠 언덕 위엔 푸른 사초(莎草)가 비에 씻겨있네. 

短布之衣不?脛 짧은 베옷이 정강이를 가리지 못하고

??之髮?覆額 흐트러진 머리털이 겨우 이마를 가린다.

/去來朋相呼 오고 가며 벗을 서로를 부르고자

得意橫吹? 우쭐대며 젓대(橫吹) 피리를 불고나.

欲唱叩角歌 소뿔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자 하는데

無人聽此曲 이 곡조를 듣는 사람이 없다네.

閑地有餘食 한가한 땅에 남은 음식이 있어도

他田不可牧 남의 경작지엔 소를 칠 수가 없다네.

吾牧十其? 나는 그 무리 소 열 마리를 치는데

爾牧?且角 너는 색깔이 붉고 또 뿔이 반듯한 소를 치는구나.

吾牛汝牛?不? 나의 소와 너의 소가 강하거나 강하지 않거나

看取明秊大農作 내년에는 큰 농사를 짓게 될 것임을 알겠네.

林深路黑相與歸 깊은 숲속 어둑한 길을 서로 함께 돌아오더니

不脫?衣臥明月 도롱이 옷도 벗지 않고 누워서 밝은 달을 구경하네.

 

[주1] 삼사(??) : 머리털이 흐트러진 모양. 인신하여, 초목의 가지와 잎이 어지러이 흐트러진 모양의 비유.

[주2] 횡취(橫吹) : 젓대. 입에 가로 대고 부는 피리를 두루 이르는 말. 예전에, 서역에서 중국으로 전래된 피리의 하나를 이르던 말

[주3] 고각가(叩角歌) : 소의 뿔을 두드리며 부르는 노래. 춘추시대 위나라의 영척(寧戚)이 제나라 한공에게 벼슬을 구하기 위해 제환공 수레 밑에서 소뿔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주4] 임심노흑(林深路黑) : 숲이 우거져 햇볕이 들지 않아 길이 어둑어둑함.

 

● 다음 ‘養’ 운의 오언절구 <목동(牧童)>은 조선시대 문신 행명(?溟) 윤순지(尹順之 1591~1666)의 작품이다. 전형적인 목가적인 풍경을 묘사한 절구(絶句)다. 목동이 화초(花草)를 손으로 따고 있고 때마침 석양이 시내에 드리운다. 목동이 손뼉을 치며 크게 목동가(牧童歌)를 부르니 시내 모래톱에서 쉬고 있던 갈매기가 쌍쌍히 놀라 날아간다는 내용이다.

 

10) 목동[牧童] / 윤순지(尹順之 1591~1666)

 

牧童摘花草 목동이 화초(花草)를 따고 있는데

落日淸溪上 석양이 맑은 시내 위를 드리웠다. 

撫掌一高歌 손뼉을 치며 한바탕 크게 노래하니

沙鷗飛兩兩 모래톱의 갈매기가 쌍쌍이 날아가네.

 

● 다음 ‘遇’ 운의 고시(古詩) <목동의 노래(牧童歌)>는 조선후기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학암(鶴巖) 조문명(趙文命 1680~1732)의 작품이다. 이 글은 소 떼를 가축하는 목동을 노래한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소떼를 방목하니 발굽과 소뿔이 번잡하다. 길들여진 가축이라 약속이나 한 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때론 소들을 이끌기 위해 채찍을 휘두르기도 하는데 그때에는 수많은 말들이 머리를 숙이고 다투듯 한 길로만 달려간다고 읊었다.

 

11) 목동의 노래[牧童歌] / 조문명(趙文命 1680~1732)

 

牧童晨出牧 목동은 새벽부터 방목하러 나서는데

蹄角紛無數 발굽과 뿔(蹄角)이 무수히 번잡하네.

馴物如馴人 길들여진 미물을 마치 사람이 길들인 듯하고

約束無羈? 말을 속박하지 않는다는 약속이나 한 듯하네.

時揮短鞭聲劃然 때론 획연하게 들리도록 짧은 채찍을 휘두르면

萬馬低頭爭一路 수많은 말들이 머리를 숙이고 다투듯 한 길로만 달리네.

 

[주1] 제각형(蹄角瑩) : 진(晉) 나라 왕군부(王君夫)는 사랑하는 소가 한 마리 있었는데, 발굽과 뿔을 늘 반들반들하게 하였다 한다.

[주2] 획연(劃然) : 명확(明確)하게 구별된 모양. 차이가 아주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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