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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시대의 광야교회 -프랑스 애국교회를 배운다.

칼럼수필 Navi Choi............... 조회 수 54 추천 수 0 2022.07.14 07: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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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시대의 광야교회
프랑스 애국교회를 배운다
기독교인들 가운데에는 로마서 13장을 부동의 명령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다. 이 성경은 권력자들과 권력에 우호적인 교회에 의하여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어 국가권력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요구하여 왔다. 나치 치하의 독일교회와 일제강점기의 교회가 이를 부추겼고 지금도 하나님의 질서의 방편인 국가권력에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선배들은 정치권력과의 투쟁에 앞장섰던 역사도 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그렇고 프랑스의 위그노들이 그랬다. 청교도와 위그노들은 성경을 왜곡한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오늘 종교개혁자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우리로서는 큰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대하여 순종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일반은총으로 세운 질서인 국가 권력에 대하여서도 하나님께 하듯 순종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일까? 국가 권력의 불의한 요구에 저항하면 안 되는 것일까? 만일 저항할 수 있다면 무저항 비폭력을 수단으로 해야 할까? 아니면 힘을 사용하여 저항해도 될까?
로마서 13장의 해석사는 간단치가 않다. 많은 논란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이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국가권력에 대한 절대충성의 증거인양 인용하는 것은 용감 무지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하여 자끄 엘룰은 『도시의 의미』(한국로고스연구원, 1992) 서문에서 “계시의 어떤 한 단어를 마치 나비를 벽에다 고정”시키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기독교가 당대의 권력과 일체화할수록 기독교는 부패하고 교회의 본질은 훼손될 수 밖에 없다. 로마서 13장의 해석사와 관련해서는 『유럽 정신사에서의 로마서 13장 국가와 종교』(미야타 미쓰오, 삼인, 2004) 읽기를 권한다.
18세기 프랑스는 위그노들에게 광야시대였다. 1685년 루이 14세가 자기 할아버지 앙리 4세의 낭트칙령(1598년)을 취소한 후 루이 16세가 관용론을 선포하는 1787년까지 프랑스의 위그노들은 ‘광야교회’를 통해 삶과 신앙을 지탱했다. 이 시대의 위그노들은 파도에 흔들리는 문장을 교회의 기호로 삼아 자신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표현하였는데 문장에는 “주님,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Sauve nous seigneur nous perissons)는 문구가 있어 그들의 안타까운 형편을 짐작케 한다. 광야시대의 위그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었다. 로마가톨릭으로 개종하거나 스위스나 네덜란드 등 외국으로 도피하거나 결사 항쟁하는 일이 그들의 선택이었다. 가만히 있다가는 처형당하거나 갤리선과 감옥으로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 남동부의 세벤느 지역은 산악지역으로 가난한 농부들이 계단식 밭을 경작하거나 양잠, 목양을 하는 지방이었다. 16세기 이후 이 지방은 칼뱅의 영향을 받아 위그노의 거점이 되었다. 이 지역은 광야시대를 맞으며 강력한 저항이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카미자르의 전투’다. 카미자르들은 악명 높은 종교재판관 샤일라수도원장 프랑스아를 1702년 7월에 살해하는 등 2천 여 명의 카미자르들은 자신들보다 10배나 되는 왕의 군대와 27개월에 걸쳐 대치하였다. 카미자르의 지도자로 피에르 세귀에, 기드 라포르트, 장 카발리에, 롤랑(피에르 라포르트) 등이 있다. 이들은 국외의 칼뱅파와 접촉하며 신앙의 결을 유지하였다.
1704년 10월 이후 카미자르의 저항은 점차 희미해졌지만 그 불씨가 완전히 사그라진 것은 아니다. 산발적인 저항이 이어지다가 1715년에 앙투안 쿠르에 의하여 재기되었다. 위그노 설교자들이 죽거나 추방당하는 현실에서 누군가 나서지 않으면 위그노 신앙이 소멸될 것을 염려한 앙투안은 자신이 그 일에 나설 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1715년 8월 21일 몽테즈(les montèzes)에서 첫 번째 광야집회를 소집하였다. 스무 살의 청년 앙투안은 개혁교회가 과거의 게릴라식 폭력적 저항운동이 아니라 영적인 저항을 해야 한다고 의식한 것이다. 그는 이런 교회를 ‘십자가 아래의 교회’라고 부르며 예배와 교육을 위한 모임의 정례화와 불건전한 신앙에 오염된 이들에 대한 배려, 교회 회의(Consistory)를 통한 치리 회복, 목회자 훈련 등을 실천하였다. 앙투안은 안수 받은 목사가 되기 위하여 신실한 피에르 코르테즈를 취리히에 보내 신학수업을 받아 안수를 받고 돌아오게 하여 1718년 11월에 그로부터 안수를 받아 광야교회 목사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광야교회 지도자들은 붙잡혀 처형당했고 앙투안의 현상금이 높아갔다.
결국 앙투안은 1729년에 스위스 로잔으로 피신하여 프랑스신학교를 세우고 1760년 죽을 때까지 박해받는 교회를 위하여 400여명의 목회자를 배출하였다. 그 가운데 106명을 프랑스로 파송하였다. 프랑스의 청년 위그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어 신학교육을 받았고 프랑스로 돌아온 목회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이것이 광야교회의 지도자이고, 애국하는 지도자의 모습이다.
하늘교회 주보 하늘지기 2017년 제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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