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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은 덩샤오핑이 되고, 원산은 상하이가 된다
박용채 논설위원
입력 : 2018.06.18 20:30:01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가 북·미 정상회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공동성명 서명직전 “세상은 이제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겁니다”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이었다. 중대 변화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지만 곧 모습이 드러날 터이니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사실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포기와 그에 걸맞은 미국의 경제적 지원을 기대했던 투자자들 시각에서 보면 북·미 공동성명은 흥미로운 결과물은 아니었다. 핵만 포기하면 북한은 부자나라가 될 수 있다고 말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그나마 트럼프가 회담말미에 핵포기 시 북한의 미래 영상을 보여주면서 “북한은 훌륭한 해안선을 갖고 있다. 훌륭한 호텔을 지을 수 있다”고 조언하고, 김 위원장도 이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게 위안거리이다. 이쯤 되면 북한 핵포기와 경제발전은 암묵의 동의어다.
과연 북한은 부자나라가 될 수 있을까. 된다면 언제쯤 가능할까. 북한이 1990년대 중반 이후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얘기이다. 이런 북한에 북·미관계 정상화와 그에 따른 경제지원이 어떻게 작용할지는 명약관화하다. 북한의 개방모델을 놓고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모델이 거론되지만 결국은 국가개입과 당 관리하에서 성장가능한 모델을 선택할 것도 불문가지이다.
따지고 보면 중국과 베트남의 성장과실은 30~40년에 걸친 개혁·개방의 결과물이다.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선언한 뒤 1992년 남순강화를 거치면서 저임금에 매력을 느낀 외자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2001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면서 고도성장이 시작됐다. 1986년 도이모이정책을 시작한 베트남도 1994년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2001년 세계무역기구 가입을 거쳐 한국·일본의 주력제품 생산기지가 옮겨오면서 성장 궤도에 진입했다.
외부와의 단절, 사회주의 잔재가 남은 상황에서 시작한 중국이나 베트남의 개혁작업에 비하면 북한의 여건은 훨씬 유리하다. 김 위원장은 집권 뒤 그간 억눌러왔던 시장을 암묵적으로 허용했다. 시장경제 예비군인 장마당은 이미 400개를 넘어섰다. 4개였던 경제특구도 20개 이상으로 늘었다. 게다가 북한 곁에는 세계 10위권 한국 경제가 존재한다.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쟁쟁한 글로벌 자본들도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비핵화만 이뤄지면 개혁·개방에 가속도가 붙을 것은 명확하다. 김 위원장도 지난 4월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새 노선으로 채택하면서 혈통이 아니라 능력으로 인정받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경제 재건으로 민생이 개선되면 권력기반이 강화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북한의 경제상황은 최빈국 수준이다. 2016년 현재 1인당 소득은 150만원이다. 3500만원인 한국의 25분의 1 규모이다. 교역규모는 9016억달러 대 65억달러, 외국인 직접투자는 108억달러 대 0.9억달러이다. 경제 전체를 보면 한국의 50분의 1 수준이라는 게 정설이다. 북한의 개혁 방향을 놓고 말이 많지만 우선적으로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위해 1차 산업에 힘을 기울일 것이다. 외자가 들어오면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특구 개발에 속도가 날 것이다. 주민들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그런 다음에는 소비혁명이 기다린다. 제대로만 진행되면 10년이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도 공공연하다. 북한의 기회는 한국의 기회이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은 파트너이다. 한국의 자본과 산업화 경험이 북한의 인력, 자원 등과 결합하면 획기적 도약이 일어날 수 있다. 한발 나아가 남북 단일시장이 형성되면 더 큰 것을 누릴 수 있다.
70년간 적대관계였던 북·미 정상이 마주 앉은 것은 역사적 진전임이 분명하다. 과거 핵을 포기하면 대가를 준다는 방식에서 벗어나 적대관계 해소를 먼저 다룬 뒤 미국이 먼저 양보하면서 북한의 호응을 기다리는 방식은 기존 문법과는 다른 역발상이다.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이미 비가역적 변화는 시작된 셈이다. 경제분야라고 역발상을 못할 게 없다. 경제자위론은 핵자위론 못지않다. 경제가 번영하면 상호 공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김 위원장이 덩샤오핑처럼 개혁개방의 전도사가 되고, 원산이 상하이가 되면 자연스레 전쟁은 멀어진다. 등산 애호가인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 뒤 백두산·개마고원 트레킹을 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부동산 사업자인 트럼트는 평양 대동강변에 세워질지 모를 트럼프타워에서 퇴임 뒤 꽃놀이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강릉의 안목해변처럼 원산 해변가의 카페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날이 올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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