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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을 올립니다. 소생은 시문을 지어, 남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고 세상에 전해지기도 바라지 않으며, 소생 혼자 즐길 뿐입니다. 시문 한
구절을 억지로 귀인에게 빼앗겨서, 그것이 다른 이에게 읽히게 된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얼굴이 붉어져 땀이 솟는 것을 그치지 못합니다. 그간
지은 여러 시들은 지금 모두 한바탕 불길에 태워버려, 한 편의 종이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소생이 귀인에게 대해서는 고마운 마음을 깊게 가지고
있지만, 소생의 시문을 남에게 보이기 원치 않는 것은 곧 평소의 저의 뜻이므로, 비록 기쁨을 얻는다 하더라도 소생의 뜻에 다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해량하소서. ― <답상서答上書>
이 편지는 역관 이언진(李彦, 1740~1766)이
서얼시인 성대중(成大中)에게서 받은 자신의 시문을 보고 싶다고 한 편지에 대한 답장입니다. 이언진은 평소 자신의 시문이 남에게 인정받거나 심지어
읽히는 것조차 원하지 않는다는 말로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이언진은 자신이 쓴 글을 ‘유희고(游戱稿)’라고 부르곤 했는데 이는 누구에게 보이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기기 위한 것임을 뜻합니다.
어쩌면 이언진은 역관 신분으로 제대로 인정받지도 못할 것이 뻔한데 이리저리
자신의 시문이 옮겨 다니며 평가 받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언진의 스승 이용휴(李用休)는 “이언진은 종이에 붓을 대기만
하면 세상에 전할 만한 훌륭한 작품을 지었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았으니, 자신을 알아줄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남에게
이기려 들지 않았으니 자신을 이길 상대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라면서 제자를 걸출한 존재로 볼 정도였습니다. 남의 글을 표절해서라도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하는 이들이 많은 요즘에 생각해보면 이언진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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