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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가?
호세아 11:12~12:14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고 살며, 종일 열풍을 따라서 달리고, 거짓말만 하고 폭력만을 일삼는다. 앗시리아와 동맹을 맺고 이집트에는 기름을 조공으로 바친다.”(12:1) “에브라임은, 거짓 저울을 손에 든 장사꾼이 되어서, 사람 속이기를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에브라임은 자랑한다. '아, 내가 정말 부자가 되었구나. 이제는 한 밑천 톡톡히 잡았다. 모두 내가 피땀을 흘려서 모은 재산이니, 누가 나더러 부정으로 재산을 모았다고 말하겠는가?”(12:7~8)
이스라엘은 거짓말로 자기 잇속을 챙기고, 남을 속여 권좌를 차지하며, 폭력을 휘둘러 자리를 보전합니다. 생존을 위해 강자에게 아첨하고 스스로 비굴해집니다. 그러면서도 득의 한양 거들먹거립니다. 그가 이룬 성공은 패배자들의 피눈물이고, 그가 모은 재물은 약자의 서러움입니다. 그런데도 양심의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도리어 당당하게 생각하고 자랑스러워합니다. 부끄러움을 느끼며 머리를 조아려야 할 때 도리어 머리를 곧추세웁니다.
이스라엘은 헛된 것을 의지하였습니다. 기회주의적 처신을 일삼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처럼 하면서도 뒤로는 아시리아와 이집트에 내통하고 있었습니다. 거짓과 포악으로 권력을 유지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속이는 자였습니다. 형을 속이고 하나님과 맞섰던 야곱처럼 이스라엘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너무 쉽게 신의를 배반하였습니다. 사랑과 정의는 자취를 감추고 공동체의 조화는 사라졌습니다. 오직 물욕만 가득했습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주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그릇된 이스라엘을 돌이키려고 하였지만 그들은 형식화된 제의로 하나님을 기만하였습니다. 본질이 사라진 예배는 생명력을 상실하기 마련입니다. 그 에브라임의 못된 속성이 그대로 내 안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작은 성공에 우쭐거리고, 작은 실패에는 한숨을 짓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사랑과 정의를 지키며, 너희 하나님에게만 희망을 두고 살아라.”(12:6)
주님께서 야곱을 만나주신 베델이 송아지를 숭배하는 벧아웬이 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의 신실하심을 믿습니다.
2024, 12. 1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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