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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개비 귀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무더운 한여름 논밭이나 들판, 숲길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아주 파랗고 작은 꽃이 있다. 닭의장풀이다. 세상에 모든 존재들이 귀하다고 하지만 이렇게 흔해 빠지면 사람들은 귀하게 여기지 않게 된다. 귀한 것은 어쩐지 적어야 하고 그래야 소유한 사람 역시 귀해진다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더 손에 넣으려고 안간힘을 쓰게 되며 그러다 지구상에서 사라진 동식물종의 개수가 어디 한두 개이던가? 그런 점에서 닭의장풀, 다른 말로 달개비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오늘날 사람들이 귀하게 여겨 자기 혼자 차지하려고 가두거나 유익하게 여겨 마구 캐가지 않아서 말이다.
우리는 그동안 집 주변에 너무나 흔하게 자라고 있어서 잡초라 불리는 풀들이 알고 보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소개해왔다. 오늘의 주인공 닭의장풀 역시 아주 귀하고 유익한 식물이다. 꽃과 함께 연한 잎, 줄기를 같이 따서 씹어보면 처음엔 무미하지만 오래 씹으면 약하게 단맛이 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성질은 차서 열을 식히고 독을 풀어주며, 소변이 잘 나오게 하고 부기를 가라앉히는데 사용한다. 또한 풍열로 인한 감기를 치료하고, 열병으로 열이 나는 데, 인후가 붓고 아픈 데, 각종 종기·부종·소변이 뜨겁고 잘 안 나오며 아픈 것을 다스리는데 쓴다. 민간에서는 생잎의 즙을 화상에 사용하기도 하며, 당뇨병에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한방에서는 닭의장풀을 뜯어 깨끗이 씻고 썰어서 햇볕에 말린 것을 압척초라 부르며 약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감기 환자에게 압척초를 달여서 복용하였더니 130건 중에서 109건에서 유효한 결과를 보였고 감기의 예방에도 좋은 효과가 있다는 임상보고가 있다. 또한 다래끼 치료를 위해 신선한 닭의장풀의 줄기 1개를 손으로 집어 들고 45° 각도로 알코올램프 위에서 상부를 태우면 아랫부분에서 물방울 모양의 액체가 나오는데 이를 눈의 결막과 다래끼 부근에 떨어뜨리고 눈꺼풀 위에 바르면 치유 효과가 큰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한 닭의장풀과 질경이를 함께 짓찧어서 낸 즙에 꿀을 소량 넣어 공복에 복용하면 소변 불통을 치료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치료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중국에서 닭의장풀을 압척초라는 말 외에도 계설초(鷄舌草), 벽죽자(碧竹子), 죽엽초(竹葉草) 등으로 부르는 것으로 보아 꽃이나 잎의 생김새를 닭이나 대나무를 떠올리는 것이 우리와 똑같다. 특히 당나라 시인 두보는 닭의장풀을 ‘꽃이 피는 대나무’라고 하여 수반에 놓고 키웠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꽃의 특성 때문인지 Dayflower라고 부르며 ‘짧았던 즐거움’이라는 꽃말을 붙여주었다. 우리말로 한다면 ‘하루꽃’이라 할 텐데 하루살이만큼이나 가여운 생각이 들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 하루를 보람 있게 보내려면 얼마나 최선을 다해야 하는가 일러주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120121-1.jpg 얼마 전 계곡에 놀러 갔다가 닭의장풀꽃과 달맞이꽃을 따서 오미자청에 무쳐서 샐러드로 먹었다. 입은 물론 눈과 코까지 즐거운 시간이었다. 닭의장풀은 독성이 없어서 파란 꽃잎을 샐러드에 곁들여 먹거나 맑은 술에 띄워 풍류까지 마실 수가 있다.
싱싱한 생잎을 고추장이나 된장에 찍어 먹으면 맛과 향취에 거부감이 없으므로 누구나 생식으로 즐길 만하다. 다만 잎이 작아서 생식이 불편하므로 잎이 넓은 상추에 올려놓고 밥과 양념을 얹어 먹는 것도 방법이겠다. 녹즙을 내어 마실 수도 있고 많이 먹어도 해로움이 없으며 맛이 순하고 봄부터 가을까지 계속 식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워낙 번식력이 왕성하여 어디서든지 채취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잎과 줄기를 가볍게 데치든지 소금에 살짝 절여서 갖은 양념으로 무쳐 먹으면 손쉬운 반찬이 된다. 조금 더 수고를 하면 닭고기나 조개와 함께 끓여도 맛이 좋고 볶거나 튀김으로 해도 좋다. 전혀 질기지 않고 연하여 잘 먹힌다.
이렇게 여러 조리법으로 즐기다보면 질병의 치료와 예방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듯 귀하지 않아서 오늘까지 귀하게 보고 즐길 수 있게 된 닭의장풀을 오늘은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들여다보자.
한국농정신문
김원일 연구원 (약선 식생활 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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