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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 042】혼자있는 시간
책방에 전화가 한 대 있습니다. 인터넷 연결 때문에 신청한 전화인데, 받는용도일 뿐 제가 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한달에 한두통이 고작입니다. 그런데 전화기 성능이 아주 안좋습니다. 누군가 썼던 전화기인데 아마도 직직거리는 잡음 때문에 쓰기를 포기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고장인 줄 알고 고장신고를 했더니 서비스맨이 와서 수화기를 빨래 짜듯 몇 번 비트니 통화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전화기를 사용할 때는 마치 수화기에서 소리를 짜내는 것처럼 몇번 비튼 다음 사용합니다.^^
그 전화가 한번도 안울리는 날은 저는 정말이지 가족들 외에는 하루종일 말 한마디 안하고 삽니다. 아이들 아침에 학교에 가고 아내마저 학교에 가는 날은 하루종일 만나는 사람도 없어 이세상에 나 혼자 사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적적하다거나 쓸쓸하다거나 우울하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마음이 넉넉하고 자유롭고 천연덕스러워집니다. 그래서 주변을 한번 더 눈여겨보게 되고, 그동안에 숨죽이고 있던 사물들이 와글와글 살아나 내게 말을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새소리, 바람소리, 낙엽 지는 소리, 두더지 땅파는 소리, 먼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소리가 아련히 들려오고, 까치가 홍시먹는 소리, 갈대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 토끼가 뛰어가는 소리, 골짜기에 물이 흘러가는 소리, 참새 소리......
비로소 대화 상대가 생긴 저는 눈에 생기가 돌며 말이 통하는 이들과 소리의 파장이 아니라 마음의 파장으로 전달되는 대화를 재미있게 시작합니다. 2003.11.13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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