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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8:27-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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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승호목사 |
참고 : |
제목: 진정한 삶(막8:27-38)
중국 명월구 에는 감사라는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왜정시대 일제에 독립운동 하다가 잡혔는데 유치장에 들어가서 밥을 먹다가 기뻐서 갑자기 일어나 춤을 추었습니다. 그 소문을 서장이 듣고 장로를 불러 물었습니다 영감이 유치장에서 춤을 추었다지? 예 그렇소 뭐가 그리 좋아 춤을 추었소? 감사 장로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육십 평생에 이런 맛은 처음이요 이 좋은 경험을 얻으니 감사하오 성경에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서 찬송할 때 옥문이 열렸소 나도 이 옥문이 열리라고 춤을 추었소“ 서장이 그것을 듣고 너무 어이가 없어 ”이 영감 내보내라 정신병자로구나“ 했습니다 이렇게 감사장로는 춤 한번 추고 석방되었습니다.
우리는 장로님처럼 역경 속에서도 기뻐하라는 삶을 사는 진정한 삶을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본문은 베드로가 고백하기를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지만 실상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을 받으신다 하니까 베드로가 에수님을 붙들고 향변하는 사태가 일어남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면서 젠장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다하니까? 주님! 그건 아니되옵니다. 그럴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붙들고 따지는 광경입니다.
성내 다락방에서 유월절 만찬을 베푸시는 중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할 때에 베드로가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고백할 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자 베드로가 힘있게 ㅜ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고백하지만 진정 에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게 되니까? 제자들은 모두 도망해 버리고 베드로는 멀찍이 예수님을 쫓 으다 세 번 부인함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주님을 위한 진정한 삶이 아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진정 고백하지만 삶속에서는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합니다. 그러기에 교회에서는 천사지만 밖에 나가면 불신자들보다 못할 때가 한두번이 아닌가요? 에디오피아는 예수님 오실 때부터 복음이 들어간 나라입니다.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빌립을 만나 세례 받은 사실이 행8장에 나옵니다.
행8:26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황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29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30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냐 31대답하되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하고 빌립을 청하여 수레에 올라같이 앉으라 하니라
여기 내시는 예수님을 영접하여 세례를 받습니다.
그러나 에디오피아는 예수님 당시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그들은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세상에 나가 간음하고 도둑질 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안에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들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었어도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충성하지 못하고 있다면 고백 따로 삶 따로입니다.
주님은 말씀합니다.
고전4:1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 할 것은 충성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직분은 받았으면서도 나태 하는 일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지 못하는 자세입니다.
바로 이러한 삶이 예수님을 따라 사는 진정한 삶이 아닙니다.
그럼 왜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날까요?
성령충만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고백은 하였지만 삶이 다른 사실은 성령충만함을 받지 못하였기에 고백은 하지만 삶이 달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달라 졌던 사건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그들이 성령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마가다락방에서 성령이 충만하므로 방언이 터지는 역사가 임하였으며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할 때 오순절날 말씀을 선포하자 삼천명이나 회개하는 구원 받는 역사가 일어났으며 믿는 사람이 모든 물건을 통용하고 사랑이 넘쳤으며 앉은 뱅이가 일어나고 병든자가 고침받는 역사가 일어났고 제자들은 순교하기 까지 복음을 전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성령 충만하니까
복음을 전하다 감옥에 갇혔지만 옥중에서 찬송하고 기도할 때 옥문이 열리고 옥토가 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진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충만함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본문 上34”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말씀합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성령충만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있는데 어떻게 성령께서 지배할 수 있겠습니까?
자아 고집 생각 지식 경험 이런 것들을 부인하지 않고는 성령충만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고백은 하지만, 성령께서 인도하심 따라 고백은 하지만 막상 생각해 보니까? 현실에 맡지 않고 손해입니다. 하나님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주의 날도 돈 벌 시간에 봉사해야하고 돈 벌 시간에 충성해야 하니 맡지 않습니다.
쉴 시간에 충성 봉사해야 하고 기도해야 하니 생각에 맡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적인 생각이 죽지 않고는 성령 충만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더하는 역사가 일어남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마6: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우리가 성령 충만하려면 먼저 자기 생각 경험 고집 자아 모두가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릴 때 성령 충만을 받게 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직 자아를 부인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려면
2)십자가를 지어야 합니다.
본문 34下”자기를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를지지 않고는 성령충만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로마 시대 때 흉악법에게 사형을 언도 했던 도구입니다
이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죄와 함께 죽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죄가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사함 받고 십자가와 함께 죽어야 만이 성령충만함을 받게 됩니다.
내가 죄가 있고 살아 있는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구약에 죄사를 지낼 때 짐승을 죽였습니다 죽지 않고는 제사를 드릴수 없습니다. 우리가 제사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죽어야 됩니다.
물고기가 반찬이 될려면 죽어야 합니다.
살아있으면 반찬이 될 수가 없습니다. 팔딱 팔딱 뛴다면 어떻게 끓여서 반찬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죽을 때만이 즉 십자가를 지고 죽을 때만이 성령 충만 역사가 일어납니다.
갈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십자가를 짊머질 때 성령 충만하게 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진정한 삶을 삽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충만 합시다
성령이 충만하려면
1)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2)십자가를 짊머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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