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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새 술을 담아 익혀 마셔라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86 추천 수 0 2022.03.12 12: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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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2:18-22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20.1.2 주일 성암감리교회 http://sungamch.net 

제목새 술을 담아 익혀 마셔라.

2020-01-02

막2:18-22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이유는 단순히 기분을 새롭게 하거나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한 탐미적(耽美的)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과학적 · 실용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이 말씀을 근거로, 평소 포도주를 즐겼던 예수(누가복음 5:33)가 포도주 제조법에도 정통했었다(요한복음 2:7)고 추리하기도 하지만,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라는 지혜는 아마도 그 당시에는 평범한 상식에 속하는 일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새 술은 새 부대에’ 라는 말에서 술과 부대를 거꾸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듯합니다. 이제 새해가 되었으니 우리도 새로운 마음을 갖자, 새로운 환경이 열렸으니 우리도 새로워지자.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자’는 말이 아니고 ‘새 부대에는 새 술을 담자’는 말이 되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이 둘은 전혀 다른 말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새 술을 만들었으면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의 생각은 그것이 아니라 ‘새 부대(새해)가 생겼으니 어디 새 술이 없는가 찾아보자’는 말이 되는 셈입니다. 하드웨어가 새로 생겼으니 차제에 소프트웨어도 한번 새로 바꿔보자 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가, 환경보다는 내용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새 부대(2020)보다 새 술(나의 변화)이 더 절실하다는 말입니다.

 

2020년은 우리에게 새로운 가죽 부대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새 가죽 부대에 담을 새 술(나)이 있는가가 자못 의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새 술(나)은 과연 무엇일까요? 어차피 새 시대가 되었으니 우리도 한번 ‘마음이라도 새로워져 보자’ 하는 식의, 수동적이고 습관적인 또 한 번의 다짐 같은 거라면 새로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2020년이 우리에게 저절로 새로움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먼저 우리의 가치관이 새 술처럼 혁신되지 않으면 안 되겠죠. 그리고 우리의 인격이 새롭게 발효되어야 합니다. 그 새로운 인격과 새로운 가치관을 2020년에 담아내지 못한다면, 새해도 그냥 묶은 해(묶은 술)가 되는 것입니다.

 

새해는 우리가 그것을 새롭게 살아내기 전에는 아직 새해가 아닙니다. 내 인격이 새로워지기 전에는, 나는 아직도 옛 시대 안에 멍하니 앉아 있을 뿐입니다. 내 가치관이 새로워지기 전에는, 나는 아직도 옛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내 정신이 옛것 그대로라면, 새 가죽 부대로 다가온 2020년은 의미가 없습니다. 가죽 부대가 새롭다고 해서 새 술을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새 포도즙이 거기 담겨야만 비로소 새 술이 발효되기 시작하는 법입니다. 햇 포도 열매의 싱그러움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제 막 발효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 새로 짜낸 포도같이 신선하고 새로운 정신만이, 겨울 냉랭한 공기처럼 새로운 인격만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얼마 전에 인천의 한 마트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34세의 아버지가 12살의 아들을 데리고 마트에서 물건을 훔친 사건입니다. 우유 2팩, 사과 6개, 그리고 몇 개의 마실 것 등은 현금으로 1만 원 안팎이었답니다. 경찰이 출동했고, 벌벌 떨며 젊은 아버지는 말했다죠. ‘배가 고파서 훔쳤다’고 말입니다. 당뇨와 갑상선 질환이 심해 직장을 잃고 홀어머니, 7살 12살 아들과 임대 아파트에서 사는데, 모두 두 끼를 굶었다고 했답니다. 여기까지는 그저 ‘일반 사건’입니다. 아니 사건의 1단계입니다. 여기까지는 그저 절도범, 도둑놈 사건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이 사건은 이 1단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마트 주인은 처벌은커녕 앞으로 이들에게 쌀과 생필품을 공급하겠다고 했고, 경찰은 이들을 잡아 가두기는커녕 국밥을 사주고 훈방시켰으며, 아버지에게는 일자리를 찾아주고 아들에게는 무료급식을 하게 조처합니다. 그뿐만이 아니죠? 길을 가던 제3자, 아무 상관도 없는 이가 나타나 흰 봉투를 내밀고 사라집니다. 그러자 그 도둑질에 동참했던 어린 아들이 봉투를 들고 급하게 쫓아나갔지만, 그 제3자는 손사래를 치며 없어지죠. 이제 사건은 제 2단계로 넘어 갔죠? 앞의 사건은 그저 절도사건이고, 제2단계는 잘도 사건의 승화 즉, ‘진짜 사건’으로의 진화입니다. 하나의 사건이 다른 차원의 사건, 질과 양태가 다른 사건으로 질적 진화가 일어난 사건입니다.

 

윤용대 장로가 제게 책 하나를 사서 주셨습니다. 좀 두꺼운 그리고 어려울 거 같은 알랭 바디우의 [존재와 사건]이라는 책입니다. 물론 장로님이 고른 건 아니고 제게 책 사주시기를 청하셔서 제가 책의 제목을 말씀드리고 구해온 것입니다.

 

바디우라는 철학자는 ‘사건’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사건이란 ‘잠재적인 것, 아직 실현되지 않았던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해되시죠? 그런데 그 사건은 ‘반복되던 것의 결별이며 존재의 강밀도를 실제로 변화 시키는 것’이라고 하면 약간 어려워집니다. 쉽게 말해보자면, 사건은 뻔한 일상을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나를 이런저런 모양으로, 내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앞의 사건을 예로 들자면, 가난한 아버지와 아들의 절도사건은 뻔한 일상, 도둑질하면 신고하고 잡아가고 그런 사회적인 규범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그런 뻔한 반복을 끊었죠? 거기서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마트 주인, 경찰관, 지나가던 나그네의 마음, 그리고 그걸 듣고 보는 우리의 마음과 행동에 큰 영향을 끼쳤죠? 이게 바디유가 말하는 ‘반복되던 것의 결별이며 존재의 강밀도를 실제로 변화 시키는 것’이라는 말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사회든 개인이든 어떤 규범이나 법이든 사건이 일어나야 변화가 시작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 불공정과 불공평이 반복되는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습니다. 일반 시민들에게 있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법칙은 객관적 사실이자 관행입니다. 라면 10개 훔치고 징역 3년 6개월을 사는가 하면, 70억 원을 횡령. 배임한 부자는 징역 3년을 선고받습니다. 거리 노숙자가 남의 주민등록증을 주워 전철에 무임승차 했다고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습니다. 그 돈이 없어서 그 노숙자는 징역을 살았습니다. 전철료는 1850원, 동대문에서 서울역까지 였습니다.

 

우리 사회는 정직이나 사랑이 ‘사건’이 되는 희안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인천 마트 사건은 아주 의미 있는 사건이라고 보여집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사악한 관습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놀라운 일이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한 개인에게서만이 아니라 각기 다른 계층 즉, 마트 주인, 경찰관, 나그네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는 접입니다. 이런 ‘사건’은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끼칩니다. 어느 유명한 목사의 감동적인 설교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존재의 강밀도를 실제로 변화시키는 것’이라던 정의가 바로 이것입니다. 인천 이마트 사건은 우리 사회를 사는 존재들의 강밀도를 변화 시키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사건’은 주체를 변화시키며,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진리를 구현합니다. ‘도둑놈은 감옥에 가야한다’는 게 묶은 사회적인 진리였다면, 그걸 새로운 진리 즉 ‘도둑질을 이해하는 차원과, 그 결과로 인한 사랑의 연대’라는 전혀 새로운 사회적인 진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디유는 이걸 ‘진리 절차’라고 했습니다. 시건은 진리가 되는 절차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곧 ‘사건’에서 시작되는 거죠.

 

자꾸 바디유 이야기를 해서 미안한데요, 그는 진리 절차(진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사회적으로 크게 네 가지가 작동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예술, 사랑, 과학, 그리고 정치입니다. 물론 이걸 그대로 믿으라는 건 아닙니다. 바디유는 이것들이 모두 진리가 되는 절차가 되지는 않고, 그중 가장 완벽하게 진리가 되는 절차가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게 뭘까요? 예술이 곧 진리는 되지 않고, 철학도 그렇고, 정치는 물론 그렇지만 단 하나, 사랑만은 가장 중요한 진리 절차의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앞의 인천 마트 사건을 보더라도 그 사건이 일으키는 과정 속에서 ‘사랑이 진리가 되는구나’하는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랑이라는 이름의 모든 행위가 다 진리를 만들어 내는 ‘사건’이 되는 건 아닙니다. 사랑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첫째는 ‘위기(위험)나 손실을 스스로 감수하는 사랑’이고, 둘째는 ‘위기 관리 차원의 사랑’입니다. 전자의 사랑은 설명 없이 다 이해가 될 터이고, 후자만을 말해보면 ‘자신의 위기나 손해를 거부하기 위해 하는’ 비즈니스입니다. 러브일지는 모르지만 ‘사건’은 아닙니다. 결국은 자기의 감정적, 경제적, 상황적 손해보지 않으려는, 유무익의 이익을 위해 하는 비즈니스로서의 러브는 사건으로서의 사랑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랑에서는 진리 절차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우리에게 보여준 그 십자가 사랑, 부모가 자녀들에게 일으키는 그런 사랑은 모두 어마어마한 진리를 일으키는 사건이고, 진리의 절차입니다. 그것은 위험이나 자기의 손실을(감정이나 물질적이나 상황의)고려하지 않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인천 마트에서 일어난 ‘사건’으로서의 사랑의 주인공들을 보세요. 저들이 위기까지는 아닐지라도 손실을 감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감정적인 손실 따위는 물론이려니와 자기 주머니를 털어 국밥을 사주고, 신분을 밝히지 않고 현금을 건네주고, 처벌은 고사하고 생필품을 계속 대주겠다는 마트 주인과 같은 ‘사건’의 주체들은 새로운 진리를 만드는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이미 그 진리 절차에 돌입한 주체들입니다. 거의 예수가 2천 년 전에 하셨던 그 진리 절차들을 실현하는, 누가 뭐래도 사랑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불공정.불평등이 지배하고, 자본주의가 아직 세계의 진리 인양 설파되어 사랑도 러브와 비즈니스가 되는, 예술이나 과학. 정치가 진리 절차에서 탈락한 2020년의 시대에, 우리가 담을 새 술은 하나입니다. 새 부대가 장만 되었으니 이제 우리가 새 술을 담고자 할 때 그것이 바로 진리 절차를 만드는 ‘사랑의 사건’입니다. 어떤 사건이냐? 정치, 과학, 예술이 아니라 바로 ‘사랑의 사건’, 자신의 러브나 비즈니스가 아닌 ‘위험이나 자기의 손실을(감정이나 물질적이나 상황의)고려하지 않는 사랑의 사건’말입니다.

 

새해가 되느냐, 새사람이 되느냐, 새로운 사회가 되느냐, 시대에 적합한 진리가 현재 사회에 형성되느냐 즉, 새 포도주가 되느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건’을 일으키라는 것입니다. 그 사건으로 너를 채우라는 것입니다. 그냥 사건이 아니라 진리 절차를 갖는 ‘사랑의 사건’, 자신의 손해나 위기나 붕괴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의 사건’을 짓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비로소 만들어내는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삶의 내용을 갖으라는 것입니다. 오래된 술이 맛있다고 퍼먹고 사는 묶은 인간이 되지 말라는 게, 예수님이 오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너희도 너희의 부대, 2020년 대한민국이라는 부대에 담을 새 술을 지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술을 익혀 마실 것을 권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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