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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배타적 권위

마가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22 추천 수 0 2024.09.09 20:4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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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21-28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108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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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보기 : https://youtu.be/jnyxk3FeEQk 
성경본문 : 마가복음 1:21-28 
예수의 배타적 권위
막1:21-28, 주현절 후 4주, 2024년 1월 28일
 
가버나움 회당에서
 
예수님은 공생애 초창기에 주로 갈릴리 호수 북쪽 어촌인 가버나움에서 활동하셨습니다. 오늘 설교 본문인 막 1:21-28절에 나오는 이야기도 그 활동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이 되어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은 회당에 정기적으로 모여서 성경을 읽고 그 성경에 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남자 성인이라면 그 성경 본문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권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본문 21절에 따르면 예수께서 회당에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설교하신 겁니다. 그걸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22절에 나옵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사람들이 예수님의 교훈에 놀랐다고 합니다. 우리말 성경에 교훈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διδαχ?(디다케)입니다. 영어 teaching에 해당합니다. 회중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란 이유는 그 가르침이 서기관과 달리 권위가 있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배타적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가르치는 자격증으로만 말하면 서기관들의 권위가 더 높았습니다. 그들은 유대교 신학 전문가들이고, 예수님은 평범한 목수입니다. 오늘날 신학대학교 교수와 평신도 노동자가 성경을 읽고 가르친다고 하면 누구에게 권위가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본문은 예수님의 손을 들어줍니다. 그 사실을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23절부터 아주 특별한 사건을 보도합니다.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더러운 귀신이라는 표현이 26절과 27절에도 반복해서 나옵니다. 더러운 귀신의 그리스어는 πνε?μα ?κ?θαρτον(프뉴마 아카다르톤)입니다. KJV 성경은 이를 unclean spirit이라고 번역했습니다. devil(마귀), satan(사탄), ghost(유령)라고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루터 성경은 unsauberer Geist(운자우버러 가이스트)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를 우리말로 정확하게 번역하면 ‘깨끗하지 못한 영(정신)’입니다. 23절을 제가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깨끗하지 못한 영에 사로잡힌 한 사람이 회당에서 고함을 치고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굴까요? 성경 본문은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깨끗하지 못한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니까 정신 병원에서 임상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의 생각과 행동을 제어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노 조절 장애를 앓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고 합니다. 그런 증상을 보통 ‘뚜껑 열린다.’라고 표현합니다. 병적으로 자학하는 사람도 많고요. 뻔뻔한 거짓말과 모함도 비슷한 현상이 아닐까요? 고대인들은 정신병 현상을 모두 악하고 더러운 영에 지배받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경계선도 그렇게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개인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도 깨끗하지 못한 영에 사로잡힙니다. 사회 전체가 정신병을 앓는 겁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서 최고를 기록 중입니다. 일본보다 두 배 이상입니다. 청소년 자살률도 높고, 노인 빈곤율과 노인 자살률이 특히 높습니다. 우리나라 국방력은 세계 5위입니다. 국방비를 30%만 줄여서 사회 복지비로 돌리면 이런 문제가 크게 좋아질 겁니다. 다 알지만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값이 내려가고 있다고 하나, 수도권에서 잘나간다는 아파트값을 보면 미쳤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이런 문제를 유엔을 비롯한 국제 사회가 풀지 못합니다. 눈치 보느라 안 하는 거겠지요. 기후위기라는 말을 오래전부터 하면서도 무한 성장을 향한 열망은 전혀 줄지 않습니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 보면 깨끗하지 못한 영에 사로잡혔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회당에서 소리 지르는 이 사람을 다시 봅시다. 역설적으로 어쩌면 회당에 모인 사람 중에서 이 사람만 정신이 온전할지도 모릅니다. 그는 세상 돌아가는 것을 견뎌내기 힘들었습니다. 유대는 오랫동안 로마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종교 권력자들의 손에 쥐락펴락합니다. 유대교 신학자들인 서기관들의 설교는 사람의 비위만 맞춥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무기로 어른행세를 합니다. 민중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은 어디서도 듣기 힘듭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럭저럭 잘 지냅니다. 이런 상황을 그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회당에 나와서 사람들에게 고함을 지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정신 차려야 한다고 말입니다. 사실은 예수께서도 귀신들렸다는 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막 3:21-22절에 따르면 예수의 친족들은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붙들려고 몰려나왔고,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예수가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에게 사로잡혔다고 비난했습니다. 도대체 누가 미친 사람이고, 누가 정신 차린 사람일까요?
 
경련
 
회당에서 소리를 지르는 이 사람이 어떤 이유로 깨끗하지 못한 영에 사로잡혔다는 말을 듣게 되었는지를 우리는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앞에서 짚었듯이 자기 정신을 차리고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망가졌을 수도 있고, 그 사람의 멘탈에 실제로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지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본문 24절에서 예수께 몇 마디 말을 겁니다.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왜 우리를 없애시려 합니까. 당신이야말로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는 사실을 나는 압니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이 사람, 그야말로 미친 이 사람의 입을 통해서 예수님의 정체성이 선포된 것입니다. 마치 니체가 『즐거운 학문』에서 미친 사람의 입을 통해서 ‘신은 죽었다. 당신들이 신을 죽였다.’라고 외친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하나님은 살아있을까요, 혹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행태가 하나님을 부정하는 건 아닐까요?
 
이 사람의 말에 예수께서는 일언반구 대답하지 않으시고 꾸짖으시면서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뒤로 어떤 현상이 벌어졌는지를 26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이 사람에게 나타난 경련과 큰소리는 치유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경련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경련도 있습니다. 세계관이 무너질 때 우리는 영혼의 경련을 경험합니다.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충격을 받으니까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뀔 때 인류는 경련 발작을 일으켰습니다. 사춘기 소년·소녀들은 모두 그 시기에 경련을 일으키는 듯한 경험을 합니다. 종교 경험도 사실은 경련을 수반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자기가 생각했던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신앙의 근본이 흔들리는 충격을 받습니다. 그런 충격이 두렵기에 사람들은 신앙의 근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단순히 교회 생활에만 적응해서 삽니다.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게 평온하니까요. 예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직업과 재산과 가족을 떠날 정도로 예수님에게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실은 우리의 인생 자체가 충격과 경련 가운데 놓여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큰 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분들은 다 압니다.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걸까요? 45억 년이라는 지구 역사에서 인간이 없었던 시기가 훨씬 많고, 앞으로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지구에는 각종 생명체가 살아남을 것입니다. 우주 전체에서 인간의 삶을 생각하면 너무 미미해서 현기증이 납니다. 우리가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도 충격이라면 충격입니다. 얼마 전 제 아내 생일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을 처음 교회에서 만났을 때 당신은 대학교 1학년 열아홉 살이었는데, 지금 벌써 예순여섯 살이 되었다.’라고 말입니다. 열아홉 살과 예순여섯 살 사이를 생각하면 충격과 경련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상성 가운데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태평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겉으로 태평스러운지 모르나 우리 영혼이 여전히 온전한 치유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던 이 사람에게서 벌어진 현상을 본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그들의 반응을 27절이 이렇게 전합니다.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권위 있는 새 교훈’이라는 표현은 이미 앞에서 예수께서 설교한 다음에 회중들이 보인 반응입니다. 그 대목에서는 설교를 듣고 놀라서 그런 말을 했고, 이번에는 정신병자가 치료되는 현상을 보고 놀라서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본문은 정신병 치료까지 디다케(teaching)에서 발생한 것으로 본 것이겠지요. 예수님의 새로운 가르침을 깨닫고 받아들이면 사람의 영혼이 힐링 된다고 말입니다. 과연 그런가요? 예수님의 가르침이 참된 힐링의 근원이며, 서기관 같은 사람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배타적 권위라는 말이 옳은가요? 그런 경험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귀신들의 순종
 
27b절에 아주 독특한 표현이 나옵니다. ‘더러운 귀신들도 순종한다.’라고 말입니다. ‘더러운 귀신’이라는 단어는 ‘unclean spirit’이라고 이미 앞에서 짚었습니다. 깨끗하지 못한 영(정신)도 예수께 순종한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 권위가 압도적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깨끗하지 못한 영은 우리 안에 깊숙이, 웬만해서는 눈치채기 힘들 정도의 심연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우리를 걱정, 분노, 미움, 혐오 등등에 떨어지게 하고, 자기 연민과 자기 사랑에 빠지게 하고, 교만하게 만듭니다. 세상은 이런 삶의 방식을 크게 문제로 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걸 부추깁니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주변을 제압하는 걸 높이 평가합니다. 서로 몰려다니면서 어떤 대상을 혐오하고 조롱합니다. 우리나라 정치 영역에는 이런 조롱이 만연해 있습니다. 정치 발전을 위해서라도 정당한 비판은 필요하나 조롱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일이 되니까요.
 
앞에서 열거한 걱정, 분노, 혐오, 조롱 등등은 우리가 마음먹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자기 성찰을 통해서 잠깐은 그런 현상이 줄어들지만, 어느 순간에 다시 나타납니다.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거룩한 영(holy spirit)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깨끗하지 못한 영은 거룩한 영으로만 대체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 내면에 사랑의 영이 없으면 혐오의 영은 물러가지 않습니다. 진리의 영이 없으면 거짓의 영은 물러가지 않습니다. 혐오와 조롱과 거짓은 매우 매력적인 현상으로 우리 삶에 나타나거든요. 예수께서는 이 사실을 정확하게 가르치셨습니다. 단순히 말로 가르치신 게 아니라 자신의 운명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서 기자는 귀신도 그에게 순종한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가르침은 예수님만이 아니라 세례 요한에게도 있었고, 구약의 많은 선지자에게 있었다고 말할 분들도 계실 겁니다. 물론 그들도 아주 뛰어난 선생들이고 랍비이고 선지자들입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과 그 진리를 선포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에게서 듣고 배운 것을 전했으나 예수님은 직접 본 것을 가르치셨으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은 서기관들과 다르게 권위가 있었습니다. 비유적으로, 몽골 유목민들과 함께 지내다 온 사람과 그들의 이야기를 책이나 유튜브로만 접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말만 잘하면 가보지 않은 사람도 몽골 유목민과 관계된 정보를 멋지게 전할 수는 있으나 직접 가본 사람 수준에는 결코 이를 수 없습니다. 망고 맛에 대한 설명만 말로 들은 사람은 망고를 직접 먹어본 사람의 경험에 이를 수 없는 거와 같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본 것을 가르치신 분이었기에 제자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요 14:9)라는 말씀이 바로 이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아버지 하나님의 본질은 생명입니다. 사랑이기도 하고 해방이기도 하며 궁극적인 안식이기도 합니다. 그걸 통틀어서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제자들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을 얻었기에, 즉 구원을 얻었기에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을 얻는다는 게 실제로 무슨 말인지 손에 잡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땅에서 사는 동안 화려하게 살고 인기도 끌고 존경받는 인생이 된다는 건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삶만을 원한다면 굳이 그리스도인이 될 필요는 없고 예수님을 믿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삶은 세상이 온갖 방식으로 제공합니다. 자본주의가 이런 점에서 오히려 더 능력적입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세련된 인생에 관한 가르침은 교회가 아니라 유튜브가 제공하는 시대입니다. 성경과 그리스도교는 출발 자체가 다릅니다.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창조주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교의 모든 가르침은 이 사실을 전제합니다. 우리는 생명을 선물로 받은 겁니다. 따라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하나 되는 데서만 우리의 생명은 충만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교리의 초보라 할 이런 말이 현대인의 귀에, 우리 자녀들의 귀에 들릴까요? 저는 이 문제를 인간의 죄와 연관하여 신학적으로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생명과 그 풍요로움이 세상에서 배운 방식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만 간단하게 짚겠습니다. 사람들은 늙고 병들고 죽는 걸 가장 두려워합니다. 그걸 피하려고 노심초사합니다. 당연합니다. 저는 지금 저의 칠십 대가 생명 충만의 절정기라고 생각합니다. 구십 대가 되어도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나이가 들면 잃는 것이 있겠으나 얻는 것이 여전히 많습니다. 우리 인생의 매 순간에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보물찾기’ 하듯이 살피고 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매 순간을 아찔할 정도로 풍요롭게 경험할 것입니다.
 
그 엄청난 사실을 자신의 말과 행위와 운명 안에서 증명하신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생명 구원에서 그의 권위는 그 어떤 사람이나 사상과 비교 불가이고, 배타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저에게 그리스도이시고, 역설적이게도 오늘 미친 사람의 입을 통해서 선포된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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