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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시선 - 예수는 호주제를 폐지하였다

마가복음 최만자............... 조회 수 2092 추천 수 0 2003.11.28 13: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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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0:29-30 
설교자 : 최만자 자매 
참고 : 새길교회 
호주제 폐지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겁습니다. 호주제란 법적으로 보면 "민법상 '가'(家)를 구성함에 있어 호주 중심으로 가족이 이루어지게 한 제도로 민법 제4편(친족편)을 통칭하며 그 절차법으로는 호적법이 있습니다. '호주'를 사전 풀이에서 보면 '호주는 한 집안의 어른으로 호주권을 가지고 가족을 거느리고 부양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호주제가 실제로는 여성존재 자체를 열등하게 취급하고 이 법으로 인하여 억울하고 상처 입으며 사는 여성들이 많아서 이 제도는 잘못된 것이라는 비판이 계속 지적되어 왔으며, 여성단체들은 그 폐지를 위한 민법 개정운동을 벌여 온지 오래되었습니다. 현 정부는 그 공약에서 호주제 폐지를 내세웠고 실제로 지난 주 국무회의에서 심의를 거치고 국회에 상정하여 통과시키게 될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무회의에서 그 심의가 미루어지고 말아 여성단체들과 그 법안 개정을 고대하는 이들의 실망이 매우 컸습니다. 심의가 미루어진 이유는 국무총리가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이 상실된다'라고 하면서 이 법안에 대한 논의를 더 해야 한다고 반대하였고(한겨레2003.10.14일자 게재되었는데, 이 설교를 한 이틀 후 국무총리는 자신이 호주제 폐지를 반대한 것이 아니고 가족개념에 대한 논의를 더 해야한다는 입장에서 심의를 미룬 것 뿐 이라는 해명기사를 역시 한겨레신문에 게재하였음을 밝힙니다), 부총리는 민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가족 범위가 없어져 상속법 등 40여 개 관련 법률이 개정되어야 한다는 현실적 어려움을 내세워 반대하였고(그러나 상속법은 실제로 별 상관이 없다고 함), 여성장관 보건복지부 장관도 비슷한 이유로 반대했으며 대부분의 국무위원들이 같은 뜻을 보였다고 합니다. 호주제 폐지를 '가족상실'이란 개념으로 보는 시각은 전통적인 가부장제 가족관계 만을 '정상가족'으로 규정하는 보수적 시각을 드러낸 것이며 국무위원들 의식수준이 그 정도임을 드러내었다고 하겠습니다.  

  현행 호주제의 모순과 그로 인한 여성차별과 억압의 사례들을 많이 들으셨을 줄 압니다. 앞에서 제가 호주에 대한 사전 풀이를 말씀드렸는데 '한 집안의 어른'이 호주권을 가지고 가족을 거느리고 부양의무를 갖는 자 라고 하였는데 이는 현행 호주제에 의한 호주의 실체와는 매우 거리가 먼 다른 모습임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일을 말씀드려 봅니다. 저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하고 살아왔는데 제 어머니가 93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사망신고를 하러 동사무소에 갔더니 어머니의 호주가 누구냐고 물었는데 제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호적등본을 떼어 찾아보았더니 어머니의 호주는 아버지 돌아가신 후 처음에는 저의 맨 큰집 사촌 큰 오빠였고 그 오빠가 사망한 후에는 그 아들 곧 제 조카이고 어머니의 손자가 호주였고 그 조카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서 결국 어머니의 호주는 본적도 없는 증손주가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자랄 때 학교 문서 등에 호주 란을 쓸 때는 항상 저의 큰집 오빠의 '종매'라고 썼습니다. 그 말의 어감도 싫었지만 왜 어머니가 나의 호주가 아닌가를 늘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결혼하고 나니 남편의 '처'로 쓰게 되어 현대판 삼종지도를 겪는 느낌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주제와 아무 상관없이 저의 어머니가 딸집에서 잘 살다 가시지 않았느냐고 호주제는 실생활과는 별 상관도 없으니 무시해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남자 승계자가 있는 한에는 그 남자가 어린아이라 해도 상관없이 여자는 호주가 될 수 없다는 호주제는 지독한 남성 우월주의이며 동시에 여성의 존재 자체를 열등한 것으로 규정하는 인간학적 의식이 철저하게 내면화 되어있는 제도라는 것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보통 그것이 실생활과 무관하다 하지만 그것은 호주제로 인하여 비참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상황에 대해서는 전혀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 남성 우선적 호주승계 순위와 호적 편제, 부계혈통으로만 이어지는 성씨제도 등은 여성들을 차별하고 부당한 위치로 몰아넣는 악법입니다. 물론 현행 호주제가 여성을 포함하고 있긴 합니다. 호주가 사망하면 아들, 손자, 미혼 딸, 배우자, 어머니 순서로 승계 하도록 되어 있어서 여성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성차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나 남자 승계자가 있는 한에는 결코 여성이 호주가 될 수 없게 하고 있으므로 실제로는 여성을 차별하면서 성차별이 아닌 듯 위장된 것입니다. 예를 들면, 19세 된 딸 하나를 둔 60세 여성이 그 남편이 사망하였는데, 자신의 동의도 없이 남편이 혼외로 얻은 세 살 된 아들을 입적시켜 놓아 결국 그 세살 아들이 호주승계를 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 여성은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호주제의 병폐는 남아선호 사상을 부추깁니다. 소위 '대'를 이을 아들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년에 3만 명에 달하는 여아가 낙태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성비 불균형이 '98년 기준으로 100:110.2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호주제로 인한 억압사례들이 매우 많지만 한 가지만 더 들어 보겠습니다. 오래 전에 TV에서 방영되었던 내용인데, 이혼을 한 남자와 이혼을 한 여자가 각각 아이 둘씩을 데리고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상처를 위로하고 새로운 애정을 키우며 좋은 가족으로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들은 함께 해외여행을 가기로 하고 여권을 발급 받기 위해 수속을 시작하였습니다. 남자와 그 아이들의 경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자 쪽은 아이들 아버지의 허락이 있어야만 여권 발급이 가능하였고 그 과정에서 그 여자는 또 한번 많은 상처를 입게 되었으며 아이들 또한 고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여행을 포기하였습니다. 아이들이 크면서 엄마와 함께 살면서도 관계는 동거인이며, 새 아버지의 아이들과 친 자매형제처럼 잘 살고 있는데도 성이 달라서 학교에서 친구들의 이상한 시선을 느껴야 하고 보이지 않는 차별을 감수해야만 하는 고통을 겪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호적은 철저히 호주제에 근거하여 개인의 모든 신분변동사항(출생, 혼인, 사망, 입양 등)을 시간별로 기록한 공문서입니다. 호적에 그 상호관계를 기재하여 가족 내의 관계를 확인하게 되는데 호주제는 주종관계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문제는 호주와 그의 처, 그리고 호주와 같은 성씨의 자녀들이 있는 호적이 정상가족이라는 고정관념이 여기에 지배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우리는 매우 다양한 가족형태로 재편되어지고 있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한 부모 가정, 미혼모 가정, 독신 가정, 동성 가정, 재혼 가정 등 등 현대사회의 가족형태는 날로 날로 다양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현행 호주제는 결코 그 다양한 가족형태를 전혀 반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통적 가족 형태 이외의 가족은 비정상 가정이라고 규정하게 만드는 부정적 영향력을 무의식 깊이 행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국무위원들의 생각도 바로 그 전통적 가족형태만 정상이라 생각하는 한 단면을 보여준 것입니다.

  현행 호주제가 여성의 인권을 무시하고 많은 여성들과 새로운 가족형태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억압적 굴레를 씌우는 것을 보면서 예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성서를 조명해 보았습니다. 사실 교회처럼 전통적 가족형태를 정상으로 보고, 옛 잘 믿고 혼인을 지속하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이며 그리스도인의 덕을 함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도 없을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소위 그 정상적 가족에 속한 사람들이 큰소리치고 기를 펴고 교회활동을 주름잡는 경우들이 흔하며 그저 내 가족이 그런 문제에 당면하지 않은 것을 감사하는 식의 기도를 하는 사람들조차 있을 것입니다. 사회가 편견을 갖고 보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그들의 억눌린 짐을 교회에 내려놓도록 돕는 곳이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편견을 더 깊이 가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회는 정말 전통적 가족관, 가족윤리를 대폭 수정해야만 할 때입니다.

  저는 오늘 예수는 호주제를 폐지하였다고 감히 성서의 말씀을 단언해 봅니다. 예수는 정말 기존한 제도의 모순을 폐지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그 탄생에서부터 유대의 전통적 남성혈통의 계열을 벗어났습니다. 마태와 누가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에는 전통적 족보관, 남성중심주의를 넘어서는 많은 이야기들을 찾을 수 있지만 우선 한가지 마태복음에 나오는 그 족보에서 예수는 '요셉에게서 예수가 났다'가 아니고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났다'로 기록되어 그 계보를 남성으로부터 여성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예수에게서 유대의 부계혈통 전통은 급격히 상대화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인간 출생에서 특히 예수 출생에서 부계혈통의 중요성이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새롭게 하는 한 새로운 인간상의 출현에 그 의미를 두면서 예수의 출생사건을 통해 전통적 부계혈통 계승을 상대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자신은 철저하게 가부장적 질서의 가족을 거부하고 하나님 나라의 새공동체로서의 가족을 추구합니다. 예수는 모든 기존한 법, 제도, 관습 등으로 인하여 고통 당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보면서 그 모순을 넘어서는 새로운 질서의 공동체를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는 특히 위계적 지배관계를 배격합니다. 전적으로 평등한 상호관계를 수립하는 새로운 질서를 추구합니다. 마태 23:8-12 오늘의 본문을 보면 '선생, 아버지, 지도자' 등의 호칭을 부르지 말고 듣지도 말아라고 합니다. 그리고 11절에서는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예수는 '선생, 아버지, 지도자'되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이라고 함으로서 세상의 인간간의 관계를 모두 상대화시켜 평등한 관계로 설정합니다.

  예수의 시선은 언제나 세상 질서로 인하여 특히 가부장적 위계질서 때문에 큰 고통을 당하는 상처입고 아픈 약자들, 여성들, 소외된 자들의 아픔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를 결코 이데올로기적 혁명으로 이루려하지 않았습니다. 약자들의 고통을 풀어주는 현실적 문제 극복에서 출발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극한 인간사랑의 시선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비롯합니다.

  한 사회를 지탱해 주는 법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원리를 구현할 때 그런 법을 정의라 부릅니다. 예수는 그러한 정의의 구현을 위해 당시의 기득권의 권력과 횡포에 맞섰고 그 질서들에 도전하였으며, 그 질서로 인하여 고통 당하는 이들의 아픔에 그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것입니다. 시선을 집중시킨다는 것은 모든 관심을 쏟고 모순을 발견하고 극복을 위해 투쟁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당시의 사회 관습을 무시하고 많은 여성들의 삶을 새롭게 한 사건들을 성서로부터 읽을 수 있습니다. 혈루병 들어 피 흘리면서 자신의 옷을 만진 여인을 유대의 금기를 깨고 병이 낫게 해준 일,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놓고 오히려 남성들을 비난하고 그 여인을 자유롭게 해 준 일, 멸시와 차별의 대상인 사마리아 여인과 우물가에서 예배에 관한 신학적 토론을 자유롭게 하신 일, 등이 굽은 여인을 허리 펴고 살게 고치신 일 등등.

  호주제와 관련하여 보면 예수는 당시의 혈연적 가족형태를 거부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혈연적 가족형태를 거부한 대표적인 성서본문은 마가복음 3:31-35에 나오는데 자신이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들의 방문 전달에 대하여 '누가 내 어머니요, 형제요 자매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내 어머니요, 형제요, 자매이다'라고 못을 박습니다. 이 구절을 예수의 새 가족법, 우주적 가족 규범이라고 표현합니다만, 예수는 새로운 가족공동체를 제시하고 기존한 혈연적 가족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또 마태복음 10:34에는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오신 예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가족 간의 불화를 주려고 왔다고 말합니다. 이 본문은 그 당시 사회의 질서에서 보면 예수가 말하는 가족은 정말 비정상 가족입니다. 그 가운데에도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맞선다고 하는데 당시의 관습에서 며느리는 시어머니와 불화하면 시댁에서 완전히 생존 할 위치를 잃는 위험한 상황에 빠지는 상태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맞서고 모든 가족관계가 갈등, 대립하는 관계가 된다고 합니다. 이는 기존의 가족 공동체에 주는 엄청난 반란이었습니다.

  예수의 호주제 폐지는 오늘 본문 마가복음 10:29-30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복음을 위해 박해를 받아 잃게 되는 목록들로 집, 형제, 자매, 어머니, 아버지, 자녀, 논, 밭 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서 이로 인하여 받게되는 보상은 집, 형제, 자매, 어머니, 자녀, 논, 밭들을 백 배나 받는다고 하면서 오직 '아버지'만 언급하지 않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성서 기자가 실수로 빠트렸다고 하지만 문제의 완벽함으로 보아 결코 실수 한 것은 아닙니다. 마태 23:8-12에 '아무도 아버지를 부르지 말라'고 한 구절과 연결 해 보면 예수는 새로운 공동체에서 가부장적 아버지의 지배질서는 제거하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새 공동체에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버지 일 뿐입니다. 생물학적 의미의 아버지가 구원을 못 받는다는 것이 아니고 세속적 상징적 의미에서 새로운 질서를 향하는데 가부장적 아버지는 더 이상 그 질서로는 안 된다는 의미를 상징한다고 하겠습니다. 아버지가 함축하고 있는 가부장적 지배관념을 버리지 못하는 한 예수의 새로운 공동체 곧 평등한 공동체의 일원이 될 자격이 없겠다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신학자 로핑크는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라는 책에서 위의 본문들을 해석하면서 그 단락의 제목을 '아버지들의 끝'이라고 붙이고 있습니다. 아버지들의 끝은 모든 인간관계가 평등관계로 재편되고 지금까지 가부장적 지배질서에서 고통 당하는 자들의 자유와 해방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정말 그 당시에 따가운 시선을 받는 '비정상' 가족을 하나님 나라의 정상 가족으로 인정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그들이 새로운 공동체 가족의 중심이 된 것입니다.

  구약의 십계명을 비롯하여 약자 보호법 등 성서의 법 정신은 철저히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는데 근거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시선은 바로 현재의 불평등한 제도와 조건 속에 신음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향하여 있고 그들을 새로운 삶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불평등한 제도에 도전하였습니다. 예수의 시선은 지금도 해 아래 압박 있는 곳 어디든 향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호주제 폐지 운동에 전혀 침묵하고 있는 교회를 뛰쳐나가서 지금 호주제 폐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여성단체들 무리 속에 함께 하고 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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