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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1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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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완상 형제 |
참고 : | 새길교회 |
성서본문: 신앙고백은 개인 실존의 고백이면서 동시에 역사적 고백이요 공동체적 고백입니다. 지난 2천년 가까이 기독교는 이와 같은 신앙고백의 긴 역사를 지니면서 자라왔습니다. 이러한 공도체적 신앙고백 없는 신앙이란 혼 없는 육체와 같습니다. 우리는 신앙고백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개인의 신앙을 거듭 다지고 공동체적 유대를 강화하게 됩니다.
신앙고백은 교회의 기초가 되고 또 교회의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신앙고백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의 힘을 지니면서도 그 고백과 결단이 구체적 역사 현실 속에서 잉태되고 표현되기 때문에 상황적 절박성도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신앙고백은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사도신경도 오랫동안 비판의 표적이 되어 왔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기독교의 독특한 신앙이 사도신경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고백은 놀라운 효력을 지니고 있는 힘입니다. 개인의 삶을 독수리 올라가듯 향상시키는 힘이요 공동체의 삶을 보다 아름답게 가꾸게 하는 힘이요 새 역사를 창조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의 독특한 점은 바로 우리 교회만의 독특한 신앙고백과 결단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의 뜻을 깊이 되새겨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도신경과 같이 우리 교회 신앙고백도 삼위일체(三位一體)의 각 위(位)에 대한 신앙고백과 각 위(位)에 대한 현대적 해석과 함께 공동체의 적극적 응답, 즉 고백에 따른 결단과 대응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성부신앙고백(聖父信仰告白)을 살펴봅니다. 여기서 우리 공동체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할 뿐 아니라 변혁(變革)의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창조는 1회적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까지 계속 이어지는 놀라운 사건이요 과정입니다. 창조가 계속될 때 그것은 변혁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변혁을 통한 창조와 재창조는 원래의 그 아름다웠던 창조질서를 원형(原形)으로 하여 잘못된 역사 현실을 고쳐나가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와 변혁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당신의 그 역사(役事)에 동참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성부(聖父)의 초청에 "예" 하고 적극 대답하면서 새날, 새 역사를 선포(宣布)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고백은 새날 선포 공동체로 우리가 나아가야 함을 뜻합니다.
둘째 성자신앙고백(聖子信仰告白)은 예수 그리스도를 해방자로 그리고 새사람으로 세워주시는 분으로 부각시킵니다. 개인의 탐욕, 오만, 독선의 죄(罪)와 온갖 구조의 악(부당한 불평등, 차별, 억압, 착취 등)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시면서 새 인간으로 세워주시는 분이 다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임을 고백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취임사에서나 세례요한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에서도 확인됩니다. 깨어진 자, 무너진 자, 절망한 자, 외로운 자, 괴로운 자, 실패한 자 등을 온전하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다시 일어서도록 해주는 고마우신 분이 바로 우리 성자(聖子)이십니다. 이와 같은 성자고백(聖子告白)은 반드시 저희 공동체로 하여금 온갖 악의 세력, 내 속에 있거나 내 밖에 있거나 간에 엄연히 존재하는 악의 세력을 거부하도록 요청합니다. 특히 인간의 존엄을 훼손시키는 죄악의 세력을 거부하고 이것을 극복하겠다는 우리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결국 성자신앙고백도 우리로 하여금 새사랑 공동체가 되도록 초청하고 있습니다.
셋째, 성령신앙고백(聖靈信仰告白)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용기와 절망의 심연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게 하는 힘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절망의 씨앗을 뿌려주는 온갖 역경과 장벽들을 무너뜨리는 힘이 바로 성령의 힘입니다. 성(性), 계급, 인종, 이념, 체제, 지리 등의 장벽을 뛰어넘고 그것들을 와해시키는 놀라운 힘입니다.
이와 같은 성령은 내일의 기쁨을 오늘 여기서 미리 맛보게 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희망과 믿음이 합쳐지면 이와 같은 영생의 기쁨을 가불해 올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령신앙고백은 희망선포공동체를 알리는 신호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신앙고백(敎會信仰告白)입니다. 교회 없이 신앙은 자라지 못합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은총을 체험하는 주체입니다. 고난과 부활을 모두 체험합니다. 고난 없는 부활은 환상이요, 부활 없는 고난은 자학일 뿐인데, 교회는 고난 속에서 부활승리를 체험하는 승리공동체입니다. 그러면서 안으로는 사랑으로 서로 사귑니다. 사랑은 서로 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밖으로는 불의(不義)의 악한 세력으로 고난받는 사람들에게 이웃노릇 하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결단을 내리는 공동체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과 결단 속에서만 우리는 삼위(三位)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온전하게 하나로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와 같은 신앙고백이 잉태되었던 시기와 장소는 그 암울했던 1980년대 중반기였습니다. 마가복음 1장 14-15절의 예수 복음 상황을 연상해 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공식으로 공표 되었던 것은 1987년 3월 첫 주일이었습니다.
우리의 고백은 새날 선포, 새인간 선포, 새희망 선포를 고백하고 실천하는 소중한 공동체 고백임을 잊지 말고 항상 이것을 거울삼아 우리 개인과 신앙공동체를 향상시켜 나갑시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 앞서 우리를 이 방향으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신앙고백은 교회의 기초가 되고 또 교회의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신앙고백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의 힘을 지니면서도 그 고백과 결단이 구체적 역사 현실 속에서 잉태되고 표현되기 때문에 상황적 절박성도 보여줍니다. 그러기에 신앙고백은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사도신경도 오랫동안 비판의 표적이 되어 왔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기독교의 독특한 신앙이 사도신경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고백은 놀라운 효력을 지니고 있는 힘입니다. 개인의 삶을 독수리 올라가듯 향상시키는 힘이요 공동체의 삶을 보다 아름답게 가꾸게 하는 힘이요 새 역사를 창조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의 독특한 점은 바로 우리 교회만의 독특한 신앙고백과 결단을 갖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의 뜻을 깊이 되새겨야 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도신경과 같이 우리 교회 신앙고백도 삼위일체(三位一體)의 각 위(位)에 대한 신앙고백과 각 위(位)에 대한 현대적 해석과 함께 공동체의 적극적 응답, 즉 고백에 따른 결단과 대응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성부신앙고백(聖父信仰告白)을 살펴봅니다. 여기서 우리 공동체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할 뿐 아니라 변혁(變革)의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창조는 1회적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까지 계속 이어지는 놀라운 사건이요 과정입니다. 창조가 계속될 때 그것은 변혁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변혁을 통한 창조와 재창조는 원래의 그 아름다웠던 창조질서를 원형(原形)으로 하여 잘못된 역사 현실을 고쳐나가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와 변혁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당신의 그 역사(役事)에 동참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성부(聖父)의 초청에 "예" 하고 적극 대답하면서 새날, 새 역사를 선포(宣布)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고백은 새날 선포 공동체로 우리가 나아가야 함을 뜻합니다.
둘째 성자신앙고백(聖子信仰告白)은 예수 그리스도를 해방자로 그리고 새사람으로 세워주시는 분으로 부각시킵니다. 개인의 탐욕, 오만, 독선의 죄(罪)와 온갖 구조의 악(부당한 불평등, 차별, 억압, 착취 등)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시면서 새 인간으로 세워주시는 분이 다름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임을 고백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취임사에서나 세례요한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에서도 확인됩니다. 깨어진 자, 무너진 자, 절망한 자, 외로운 자, 괴로운 자, 실패한 자 등을 온전하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다시 일어서도록 해주는 고마우신 분이 바로 우리 성자(聖子)이십니다. 이와 같은 성자고백(聖子告白)은 반드시 저희 공동체로 하여금 온갖 악의 세력, 내 속에 있거나 내 밖에 있거나 간에 엄연히 존재하는 악의 세력을 거부하도록 요청합니다. 특히 인간의 존엄을 훼손시키는 죄악의 세력을 거부하고 이것을 극복하겠다는 우리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결국 성자신앙고백도 우리로 하여금 새사랑 공동체가 되도록 초청하고 있습니다.
셋째, 성령신앙고백(聖靈信仰告白)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용기와 절망의 심연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게 하는 힘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절망의 씨앗을 뿌려주는 온갖 역경과 장벽들을 무너뜨리는 힘이 바로 성령의 힘입니다. 성(性), 계급, 인종, 이념, 체제, 지리 등의 장벽을 뛰어넘고 그것들을 와해시키는 놀라운 힘입니다.
이와 같은 성령은 내일의 기쁨을 오늘 여기서 미리 맛보게 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희망과 믿음이 합쳐지면 이와 같은 영생의 기쁨을 가불해 올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령신앙고백은 희망선포공동체를 알리는 신호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신앙고백(敎會信仰告白)입니다. 교회 없이 신앙은 자라지 못합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은총을 체험하는 주체입니다. 고난과 부활을 모두 체험합니다. 고난 없는 부활은 환상이요, 부활 없는 고난은 자학일 뿐인데, 교회는 고난 속에서 부활승리를 체험하는 승리공동체입니다. 그러면서 안으로는 사랑으로 서로 사귑니다. 사랑은 서로 비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밖으로는 불의(不義)의 악한 세력으로 고난받는 사람들에게 이웃노릇 하는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결단을 내리는 공동체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과 결단 속에서만 우리는 삼위(三位)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온전하게 하나로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와 같은 신앙고백이 잉태되었던 시기와 장소는 그 암울했던 1980년대 중반기였습니다. 마가복음 1장 14-15절의 예수 복음 상황을 연상해 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공식으로 공표 되었던 것은 1987년 3월 첫 주일이었습니다.
우리의 고백은 새날 선포, 새인간 선포, 새희망 선포를 고백하고 실천하는 소중한 공동체 고백임을 잊지 말고 항상 이것을 거울삼아 우리 개인과 신앙공동체를 향상시켜 나갑시다.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 앞서 우리를 이 방향으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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