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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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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소재열 목사 |
참고 : |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
마가복음의 기록 목적 자체가 1:1절에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같은 복음을 우리들이 어떻게 할 때 우리들에게 구원이 오는가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신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세례 요한이 증거하고 있는 메시아가 어떠한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세례 요한의 증거를 중요하게 취급하는 이유는 그는 구약이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의 출현에 대한 징조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세례 요한의 사역을 우리들에게 보여줌으로서 세례요한 처럼 본받아서 우리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고 본문이 세례 요한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같은 이야기가 정확히 정리되지 아니하면 성경의 기록 의도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우리들은 우리들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주인이 지시한 작업 지시서 대로 종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기록 의도대로만 순종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펴보고자 한 본문 말씀을 통하여 보여주시고자 원하신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을 거부하고 우선 우리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작업지시서를 변경하고 위조하면 안됩니다. 그 행동은 분명히 주인으로부터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심지어 추방당하는 아픔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1. 왜 선지자 이사야 글이 등장합니까?
막1:1절 첫 줄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해 놓고 곧바로 이사야 글을 이야기하면서 세례 요한을 언급합니다. 그러니까 이사야 글과 세례 요한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세례 요한의 자서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세례 요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의 중심이 우리 자신입니까? 예수님이십니까? 우리 자신이 새 역사를 창조하는 주역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들이 주역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주역입니다. 새 역사를 창조하는 원동력입니다. 단지 우리들은 엑스트라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모든 시선을 우리들에게 집중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삿6:21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드온과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제사의 장면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를 반석위에 놓여 있는 제물에 댈때 불이 어디에서 나왔다고 합니까? 지팡이에서 불이 나왔습니까? 반석에서 나왔습니까?
우리들이 생각하기로 지팡이에서 불이 나왔을 것 같은데 오히려 불은 반석에서 나왔습니다. 지팡이가 능력이 있어서 불이 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팡이는 시선을 반석에게로 지시하게 하는 역할입니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고전10:4에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바로 지팡이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같은 일을 위해서 세례 요한이 등장하고 이사야서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증거하고 있는 그 복음의 정당성을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통하여 확고하게 해 줍니다. 세례 요한의 예수 증거가 진리이고 참됨을 어떻게 보장해 줍니까?
그것은 이미 세례 요한의 사역이 구약이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의 출현에 대한 징조였다는 것입니다. 장차 메시아가 나타나게 될 징조로서 세례 요한이 먼저 나타나서 메시아의 길을 평탄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미 700-8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미리 예언해 준 것입니다.
마가는 마가복음을 기록할 때 구약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면서 그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세례요한이 먼저 나타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그리스도였다는 사실입니다. 미리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수님에 관해서 예언해 주고 나서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이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믿으라는 것입니다.
요 13:19에 미리 예고하고 나서 실행하신 이유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이해되십니까? 믿게 하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로마의 박해에 의해서 핍박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들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로마의 황제가 주님이 아니라는 겁니다. 핍박 때문에 로마 황제로 주님을 바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위로해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주님은 누구십니까? 여러분들은 과연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습니까? 단지 성인군자 정도로 오해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그분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들의 죄 때문에 받아야 될 형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랑의 대사였습니다.
2. 세례 요한은 무엇을 증거했습니까?(설교의 내용)
첫째, 죄사함을 받는 회개를 증거했습니다.
4절에 보면 “세례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라고 합니다. 세례 요한이 어디에서 외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광야에서 외쳤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람이 많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없는 광야로 간 것은 광야에서 그의 길을 평탄케 하시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구약 예언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예언대로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을 볼 때 지금 세례 요한이 증거한 메시아가 구약에 예언된 그 메시아임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주된 선포의 내용은 죄사함을 받는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때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는 죄사함을 받게 하는 복음입니다. 우리들에게 세례를 허락하신 이유는 죄사함을 받게 하는 진리를 주시기 위한 연극입니다.
그런데 그 세례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자꾸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느냐고 하면서 서로 분파가 일어납니다. 초대교회 고린도교회가 그랬습니다.
고전1:17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전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자신보다 능력 많으신 분으로 증거했습니다.
막1:7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세례 요한은 자신이 드러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 증거했습니다.
행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셋째,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으로 증거했습니다.
막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는 자였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준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3. 증거의 결과(설교의 반응)
막 1:5에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죄사함을 받는 회개의 세례를 증거하게 되자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요한에게로 왔습니다. 와서 자신들의 죄를 자복했습니다. 또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죄를 회개하고 자백하면 용서를 받습니다. 바로 구원입니다.
4. 증거자 요한의 상황배경 (설교자 요한의 모습)
막 1:6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이 상황 배경은 요한이 얼마나 청빈하게 살았느냐가 아닙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로서 예언이 세례 요한으로 인하여 성취되어 메시아를 증거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말씀에로 초대
우리들에게 말씀으로 알게 하신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그 세례 요한이 증거하고 있는 그 예수님을 나는 믿고 있습니까?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떻게 증거해야 하겠습니까? 복음의 전도자는 어떤 기쁨과 평강과 확신속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고 열심히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의정부평안교회 http://www.uppch.org
오늘 본문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오신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 세례 요한이 증거하고 있는 메시아가 어떠한 분이심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세례 요한의 증거를 중요하게 취급하는 이유는 그는 구약이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의 출현에 대한 징조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세례 요한의 사역을 우리들에게 보여줌으로서 세례요한 처럼 본받아서 우리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고 본문이 세례 요한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같은 이야기가 정확히 정리되지 아니하면 성경의 기록 의도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우리들은 우리들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주인이 지시한 작업 지시서 대로 종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기록 의도대로만 순종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펴보고자 한 본문 말씀을 통하여 보여주시고자 원하신 의도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을 거부하고 우선 우리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마음대로 작업지시서를 변경하고 위조하면 안됩니다. 그 행동은 분명히 주인으로부터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심지어 추방당하는 아픔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1. 왜 선지자 이사야 글이 등장합니까?
막1:1절 첫 줄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해 놓고 곧바로 이사야 글을 이야기하면서 세례 요한을 언급합니다. 그러니까 이사야 글과 세례 요한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든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세례 요한의 자서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세례 요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역사의 중심이 우리 자신입니까? 예수님이십니까? 우리 자신이 새 역사를 창조하는 주역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들이 주역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주역입니다. 새 역사를 창조하는 원동력입니다. 단지 우리들은 엑스트라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모든 시선을 우리들에게 집중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삿6:21에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드온과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제사의 장면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를 반석위에 놓여 있는 제물에 댈때 불이 어디에서 나왔다고 합니까? 지팡이에서 불이 나왔습니까? 반석에서 나왔습니까?
우리들이 생각하기로 지팡이에서 불이 나왔을 것 같은데 오히려 불은 반석에서 나왔습니다. 지팡이가 능력이 있어서 불이 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팡이는 시선을 반석에게로 지시하게 하는 역할입니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고전10:4에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바로 지팡이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같은 일을 위해서 세례 요한이 등장하고 이사야서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증거하고 있는 그 복음의 정당성을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통하여 확고하게 해 줍니다. 세례 요한의 예수 증거가 진리이고 참됨을 어떻게 보장해 줍니까?
그것은 이미 세례 요한의 사역이 구약이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의 출현에 대한 징조였다는 것입니다. 장차 메시아가 나타나게 될 징조로서 세례 요한이 먼저 나타나서 메시아의 길을 평탄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미 700-8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미리 예언해 준 것입니다.
마가는 마가복음을 기록할 때 구약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면서 그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세례요한이 먼저 나타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고 있는 것을 보아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그리스도였다는 사실입니다. 미리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수님에 관해서 예언해 주고 나서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이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믿으라는 것입니다.
요 13:19에 미리 예고하고 나서 실행하신 이유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룰 때에 내가 그인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이해되십니까? 믿게 하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로마의 박해에 의해서 핍박받고 있는 성도들에게 이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들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로마의 황제가 주님이 아니라는 겁니다. 핍박 때문에 로마 황제로 주님을 바꾸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위로해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주님은 누구십니까? 여러분들은 과연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있습니까? 단지 성인군자 정도로 오해하고 있지나 않습니까? 그분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우리들의 죄 때문에 받아야 될 형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랑의 대사였습니다.
2. 세례 요한은 무엇을 증거했습니까?(설교의 내용)
첫째, 죄사함을 받는 회개를 증거했습니다.
4절에 보면 “세례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라고 합니다. 세례 요한이 어디에서 외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광야에서 외쳤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람이 많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없는 광야로 간 것은 광야에서 그의 길을 평탄케 하시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구약 예언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 예언대로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사명을 감당하는 모습을 볼 때 지금 세례 요한이 증거한 메시아가 구약에 예언된 그 메시아임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주된 선포의 내용은 죄사함을 받는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때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는 죄사함을 받게 하는 복음입니다. 우리들에게 세례를 허락하신 이유는 죄사함을 받게 하는 진리를 주시기 위한 연극입니다.
그런데 그 세례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자꾸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느냐고 하면서 서로 분파가 일어납니다. 초대교회 고린도교회가 그랬습니다.
고전1:17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전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자신보다 능력 많으신 분으로 증거했습니다.
막1:7 “그가 전파하여 가로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세례 요한은 자신이 드러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 증거했습니다.
행3: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셋째,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으로 증거했습니다.
막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는 자였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준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3. 증거의 결과(설교의 반응)
막 1:5에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죄사함을 받는 회개의 세례를 증거하게 되자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요한에게로 왔습니다. 와서 자신들의 죄를 자복했습니다. 또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죄를 회개하고 자백하면 용서를 받습니다. 바로 구원입니다.
4. 증거자 요한의 상황배경 (설교자 요한의 모습)
막 1:6 “요한은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이 상황 배경은 요한이 얼마나 청빈하게 살았느냐가 아닙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로서 예언이 세례 요한으로 인하여 성취되어 메시아를 증거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입니다.
말씀에로 초대
우리들에게 말씀으로 알게 하신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그 세례 요한이 증거하고 있는 그 예수님을 나는 믿고 있습니까?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떻게 증거해야 하겠습니까? 복음의 전도자는 어떤 기쁨과 평강과 확신속에서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고 열심히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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