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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으려고 해도 안 믿어질 때

마가복음 조용기 목사............... 조회 수 2614 추천 수 0 2009.12.29 0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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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9:17-24 
설교자 : 조용기 목사 
참고 : 2008. 6. 8. 주일 4부 설교원고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믿으려고 해도 안 믿어질 때」어떻게 하느냐 그말씀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성도들에게 믿음이란 굉장한 수수께끼입니다. 어떤 때는 확실하게 믿어지고 할렐루야. 이제 믿음에 도착했다고 생각하는데 또 다른 때는 의심의 파도에 휩쓸려 심한 마음의 갈등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믿음의 갈등은 모든 사람들이 체험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염려, 근심, 고통이 다가올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님께 기도할 때 응답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응답 안 받은것 같기도 하고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 같기도 하고 안도와 주실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한 가운데 마음에 갈등을 느끼는 것입니다.
제가 서대문에서 목회할 때 금요철야기도 때 모대학교 대학생 한 사람이 안수 기도할 때에 기도를 받았습니다. "예수 이름으로 병 고침을 받으라." "아멘." 그리고 나은 사람 간증하라고 하니까, 일어나서 "나는 위궤양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데 오늘 예배에 와서 기도를 받고 나았습니다." 그러더니만 "아이고 안 믿어지네." 평생에 그 대학생의 부르짖음이 내 마음속에 충격으로 남아 있습니다. 정말 얼마나 솔직합니까? 꼭 낫긴 나아야 되겠는데 나았다고 믿으라니까 안 믿을 도리는 없고 "믿기는 믿습니다" 했는데 의심이 들어와서 안 믿어지니까 "아이고 안 믿어지네" 그게 우리 모든 사람들의 절박한 고백인 것입니다. 믿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믿어지는 것 같기도 하니 "믿습니다. 아이구 안 믿어지네." 그것이 오늘 읽은 성경말씀 가운데 미친 아들을 데리고 온 아버지지의 고백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상에서 아홉 제자들을 데리고 내려오니 큰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거기에 한 아버지가 뛰어 나와서 "주님, 내 아들이 몹시 귀신 들려서 고통을 당합니다. 물에도 쓰러지고 불에도 쓰러지고 죽을 뻔 당한 적이 수없이 있는데 제자들에게 데려와도 고치지 못하더이다. 우리 아들을 고쳐 주옵소서." 주님께서 믿음이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를 돌봐야 되겠느냐"고 탄식하시고 "그 아들을 데리고 오라" 하니 데리고 오니까 귀신이 그 아들을 덮쳐서 넘어져서 거품을 물고 파리해져 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 아들을 바라볼 때 그 아버지가 하는 말이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도와주십시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러니까 "주여 믿나이다. 아이고 안 믿어지네. 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얼마나 솔직한 말입니까? 절박하지요. 아들이 귀신 들려서 파리해져 가는데 낫기는 나아야 되겠는데 주님이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했으니 큰 부담 아닙니까? 믿기는 믿어야 되는데 "주여 내가 믿나이다. 아이구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옵소서." 이러한 절박한 체험을 우리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믿으려고 할 때, 마음에 안 믿어지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본론>
1. 염려 근심이 소용없는 것을 깨달으라
첫째로, 깊이 생각해 봐야 될 것이 있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안 믿어진다고 해서 염려 근심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는데, 문제가 해결 안 되니 염려 근심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마음속에 깊이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걱정한다고 키가 작은 사람이 한자나 더 크게 할 수도 없고 내가 염려 근심 한다고 머리가 검은 머리를 한 터럭도 희게 하거나 흰머리를 검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27절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5장 36절에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 염려 근심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염려 근심하므로 우리 자신이 더 파괴될 따름인 것입니다.
염려 근심이 일어날 상황에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다는 그 자신을 분명히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힘으로도 할 수 없고 능으로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다." 염려한다고 조금도 영향력이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염려하면 병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마음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근심할수록 뼈가 마르니 살이 녹아지지요. 염려 근심은 엄청난 질병과 고통과 연약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다고 한 것입니다.
근심을 하면은 영육 간에 사망이 다가와요. 뼈도 마르고, 살도 녹고, 사망이 다가오는 것이 염려, 근심이기 때문에 이것은 일도 해결되지 아니하고 반대로 사망이 다가오고 뼈가 마르고 살이 녹는 고통이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가 염려 근심은 절대로 하지 말고 이것을 하나님 앞에 내어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우리 인생을 살면서 염려 근심이 안다가 올수는 없지요. 다가오는 것입니다. 염려 근심이 다가올 때 누구에게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짐이니까요. 무거운 짐을 맡겨야 돼요. 내가 요사이 젊은이들 보면 우리 시대와 다릅니다. 우리 시대는 짐이 있으면 마누라에게 다 맡겨 버립니다. 마누라가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남자는 턱 포켓트에 손 넣고 따라 오는데 요사이는 마누라가 전부 짐을 남자에게 맡겨서 남자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양손에 짐을 지고 어깨 걸머지고 오는데, 여자는 양산 쓰고 착착착착.. 따라옵니다. 친정 어머니는 보고 "사위 잘뒀다. 좋다. 내 사위 잘한다." 시어머니는 "저런 저런! 저런! 애써서 공부 시키고 장가 보냈더니 마누라 위해서 저런 노동을 하고 일을 하니 아이고 답답해라. 아이고 답답해라." 그런 시대에 와있는 것입니다. 짐을 내가 다 짊어지면 힘이 들기 때문에 남이 맡겨 줄 수 있으면 남이 맡으면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짐을 누가 져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너희 짐은 내게로 다 가져오너라. 내가 맡아 주마!"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팔자가 늘어졌습니까? 우리의 크고 적은 짐을 맡아 주겠다는 분이 계신데 짐을 다 사양하는데, 예수님은 맡아 줄 터이니 내게 와서 맡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엎드려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주님 맡깁니다. 맡아 주옵소서. 맡아 주옵소서. 내 마음 속에 평안이 올 때까지 자꾸 주님께 맡겨요. 자꾸 맡겨요. 자꾸 맡겨요. 복잡한 말 하지 마십시오. "주여 나는 못 집니다. 맡아 주시옵소서.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맡아 주시옵소서. 나는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맡아 주시옵소서." 그렇게 하면 나중에 마음에 평안이 오고 주님께서 짐을 맡아 주는 것입니다.
일석 이희성 선생의 '딸깍발이 선비의 일생'이라는 책에 그는 90평생의 삶을 기록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 그가 자손들에게 입버릇처럼 강조한 삶의 유산으로 "아무리 해도 소용없는 걱정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걱정도 팔자라고 말하면서 아무리 걱정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근심의 멍에를 걸머지고 사는데 이를 다 벗어 버리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너희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오늘 근심은 그날에 족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염려 근심을 예수께 와서 맡겨야 될 일은 이판저판 사판일 바에야 억지로라도 믿어보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걱정해도 해결이 안 되고 염려해도 해결이 안 되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걸머질 수도 없고 날 대신 걸머질 자도 없으니까 '에라 주님께 맡겨 버리자! 이판저판 사판이다. 살려주면 살고 죽으면 죽으리다.' 완전히 마음에 결단을 내리고 주님께 내어 맡겨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맡기면 돌보아 주겠다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약속을 했지 않습니까? 주님의 약속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마음에 깨달아지지 않습니까? 약속의 말씀 위에 염려 근심을 내어 맡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보세요. 염려와 근심을 간절히 주님께 고하면 마음에 평안이 와서 마음의 생각과 모든 심사를 지켜 주겠다는 것입니다. 평안이 올 때까지 기도해라. 맡아줄 자는 있다. 주님이 반드시 맡아 준다. 진정을 맡기는지 안 맡기는지를 주님 살피는 것이기 때문에 네가 간절히 기도해서 주님께 진정으로 맡기면 주님께서 맡아주고 그 대신 평안으로 우리 마음 속을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존 월턴이라는 사람은 되는대로 인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어느 것 하나 오랫동안 집중하는 법이 없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방랑생활을 하고 거지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히 교회에 나가 설교를 듣다가 큰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6절에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이 말씀 듣고 그는 크게 감동했습니다. '야, 겨자씨 한알만 있으면 뽕나무더러 뽑혀 바다에 던지라고 하는데 내가 나는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고 거지 생활을 할 필요가 없구나.' 그래서 이리저리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겨자씨 한 알을 구했어요. 그것을 갖다가 조그마한 유리병에 넣어서 가슴에 품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아침에도 일어나서 겨자씨를 보고 "이만한 믿음이야 내게 있지 않느냐." 저녁에도 잘 때 그것을 내어 보고서 "야, 겨자씨만한 요 믿음이야 내게 있지 않느냐." 그래서 그는 그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난 다음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한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믿음이 없다 해도 이 겨자씨만한 믿음은 있지 않느냐. 그러니 할수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그리고 사업을 시작한 것이 여러가지 시련과 환난이 다가올 때마다 그 병을 내놓고 들여다 보고 '어, 이만한 믿음이 있으니까 이 환난도 지나간다. 이 문제도 해결된다. 믿습니다.' 그리고 오똑이처럼 일어나곤 했습니다. 나중에 크게 성공해서 큰 부자가 되었어요. 영국 여왕의 작위까지 얻었습니다. 그리고 71세에 은퇴하면서 그가 말하기를 "내가 오늘 이렇게 된 것은 어려울 때마다 겨자씨를 보고 나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문제는 해결되고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난다고 확신해서 모든 난관을 이기고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주님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런데 여러분 "아이구 나는 믿음이 없습니다." 겨자씨를 보세요. 겨자씨.. 얼마나 작습니까? 나도 겨자씨 때문에 큰 위로를 받은 것은 서대문에 있을 때 중동에서 온 친구 한 사람이 겨자씨를 좀 갖다 주어서 너무나 겨자씨가 적기 때문에 내가 성도들에게 보여 주려고 새벽기도회 나가서 성경책 위에 펼쳐 놓고 지나오면서 보라고 했는데 쭉 성도들이 줄을 서서 성경에 펼쳐 놓은 겨자씨를 보는데 할머니 한분이 가까이 와서 "목사님, 안 보이는데요?" 가까이 와서 보라니까 "그래도 안 보이는데요?" 하니까 입바람에 다 날라가 버렸어요. 얼마나 마음에 화가 나든지 왜 겨자씨 구경을 시켜 줬는데 너무 가까이 와서 말을 해서 바람에 다 날아가게 하느냐. 뒤에 사람들도 불평을 하는데 그때 성령이 내게 깨닫게 한 것입니다. '봐라! 할머니 입 바람에도 날아가는 겨자씨가 얼마나 적으냐? 그만한 믿음만 있으면 오케이다. 무슨 태산만한 믿음을 원하지 말아라. 겨자씨 만한 믿음이야 네가 갖고 있지 않느냐. 있는 것을 없다고 말하기 때문에 문제지. 있는 것을 있다고 말하면 너는 믿음이 있는 사람이다.'
로마서 12장 3절에, 따라 말씀하세요.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믿음을 분량대로 나누어 주셨으니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12:3)
그러므로 여러분은 믿음이 있는데 자꾸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문제라구요. 큰 믿음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언제 큰 믿음을 가지라고 한 것입니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겨자씨는 다 가지고 있는 그만한 믿음인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내가 있다고 확신하고 일어나면 믿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께 짐을 맡기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일을 해낼 수가 있습니다. 왜, 믿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너는 믿고 있으면서 그대로 될 것인데 왜 환난을 당하면 믿음을 포기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옆에 있는 분들에게 당신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씀하십시오. 그러니 우리를 너무 값싸게 취급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값싼 존재가 아니에요. 믿음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태산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하신대로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마음에 배수진을 쳐라
둘째로, 여러분에 마음에 배수진을 쳐야 되는 것입니다.
믿을 때 자꾸 뒤를 돌아보면 안돼요. 강을 건넜으면 다리를 불태워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여러분 행보를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믿었으면 끝까지 믿고 나가야 돼요. 믿다가 안 되면 36계를 낼 수 있다. 믿다가 안 되면 도망치자.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너 엉터리 믿음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예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믿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각오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3장 16절로 18절에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다 청년들인데 바벨론에 가서 포로가 되어서 특별 교육을 받고 바벨론도의 지사들이 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수르광야에 자기 신상을 금으로 만들어 놓고 모든 문무백관으로 하여금 다와서 제막식에 와서 절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유대인이라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큰 환난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고발을 당해서 느부갓네살 앞에 잡혀 와서 그는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왕이 "너 우상에 절하지 아니하면 불, 풀무불 가운데 던져서 태워 죽이겠다." "왕이여,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아무리 우리를 불, 풀무불 가운데 던져도 건겨내시거니와 그렇게 안 해줄지라도 우리는 절하지 않겠다." 아예 배수진을 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건져 주실 줄 우리는 믿습니다. 안 건져 주셔도 우리는 우상에 절하지 않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다." 그러니까 느부갓네살이 화가나서 풀무불 가운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던져 넣었을때 제 네 번째 사람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서 불의 세력을 멸하고 그들을 건져주신 것입니다. 이와같은 믿음이 있으면 오늘날도 하나님이 현장에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믿다가 안 되면 뒤로 도망치고 물러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는 것입니다. 아에 물러갈 것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기 때문에 "어? 너 물러갈 것을 알고 나를 시험하는구나. 그러면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않으니까 너에게 역사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크거나 적으나 내가 한번 기도하면 죽더라도 믿겠습니다." 그와 같은 각오로 나가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에스더의 신앙고백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파사왕국에 있는 유대인들이 멸망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하만이라는 국무총리가 유대인을 멸살하려고 할 때 유대인은 살아갈 길이 없습니다. 국무총리가 유대인을 멸망하기로 결정을 하고 왕의 허가를 받았으니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런데 마침 그때 왕비가 에스더인데 에스더는 자기 신분을 감췄지만 유대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민족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할 뿐 아니라 왕에게 가서 호소하라고 그 오라버니가 그에게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습관으로써는 왕이 부르지 않는데 왕궁에 들어가면 참수형에 처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왕의 아내더라도 왕이 불러야지, 부르지 않는데 왕의 집무실에 들어가면 참수를 당합니다. 에스더가 그 오라버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사흘 동안 금식하고 기도하고 들어가겠습니다. 왕이 나를 용납하지 아니하고 죽이면 죽으리다. 왕의 허락없이 나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들어가겠다." 그런 각오를 하고 뒤로 물러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가니까 왕이 앉아있는 보좌를 향해서 저 입구에 들어가서 에스더가 아주 화산한 웃음으로 웃으면서 왕에게 서니까 왕이 간장이 녹도록 사랑스럽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홀을 싹 내밀었습니다. 왕이 잡고 있는 그 지팡이가 홀인데 홀을 내밀면 그 홀을 만지면 사형을 면하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가서 홀 지팡이를 잡았습니다. 왕이 "에스더여 왜 왔는고? 네가 원하면 나라 반이라도 주겠노라." 이러니 해결 다 됐지요. 그러니 에스더가 왕에게 사정을 말해 가지고서 유대민족이 다 구출을 받은 적이 있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다는 각오로써 나갔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지 "나는 죽을까 겁이 나서 못하겠습니다." 했으면 그런 역사는 일어나지 아니한 것입니다. 사도바울 선생이 복음을 증거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온 소아시아를 복음화 했는데 어떤 답을 했냐면 망하면 망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0절로 21절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이라"
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다. 나는 일신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증거 한다. 살면 예수 전도하고 죽으면 천당 가니까 더 이익이다. 살면 전도요, 죽으면 천국이라는 우리 최자실 목사님의 슬로건처럼 그와 같은 각오로써 바울선생이 나갔기 때문에 천하가 그 앞에 뒤집혀진 것입니다. 자기 일신을 다 생각하고 자기 생명의 안위를 생각하고 형편이 좋으면 나가고 형편이 나쁘면 뒤로 물러가겠다는 그러한 약삭빠른 생각으로 나아갔더라면 세계는 복음화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살면 전도요, 죽으면 천국이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기를 원한다. 그와 같은 각오로 나가는 앞에 마귀가 한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믿을 때 이와 같이 배수진을 치고 믿어야지 그렇지 않고 약삭빠르게 좋을 때는 뛰어 나가고 어려우면 뒤로 물러가서 도망치겠다. 그러한 생각을 하고서, 기도하고, 믿으니까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라
셋째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말씀에 집중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머리가 산만하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집중을 해야 돼요. 우리가 할 수만 있으면 부정적인 것은 보지 말고, 공포를 보지 말고, 집중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낙하산을 타는 훈련을 시킬 때 교관이 언제나 군인들 보고 말합니다. "밑을 내다보지 마라. 어지러워서 못 뛰어 내린다. 먼 산을 바라보아라. 비행기 안에서 먼 산을 바라보고 뛰어 내리면 되지 밑을 내려다보면 불안하고 공포에서 무릎이 떨려서 못 뛰어내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불안하고 공포가 오는 것을 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작년까지도 스키를 탔는데 가장 높은 언덕에서 스키를 탔습니다. 스키를 탈 때 한 가지 조심해야 될 것은 밑을 바라보면 안돼요. 아주 밑을 바라보면 어지러워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그러나 자기 발밑만 바라봐야 돼요. 자기 발밑만 바라보면 자기 발밑하고 거리가 가깝지 않습니까? 발밑만 바라보고 미끄러져 내려갈 때 '주여, 살려 주소서. 주여 살려 주소서. 주여 살려 주소서.' 그리고 내려가면 끝까지 내려가요. 그러나 타고 내려가다가 저 밑에 바라보면 '아이고 죽었다. 저 계곡을 어떻게 내려가느냐.' 그러면 다리가 떨려서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좌우를 살피고 환경을 살피고 두려움을 바라보고 마음에 떨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집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말씀에 집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5절에도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위로 걷다가 왜 빠졌습니까? 그들이 밤바다를 건너가는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서 아주 고통을 당하고 바다를 건너가는데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왔습니다. 캄캄한 밤에 바람은 불고 파도는 치는데 허연 물체가 떴다 내렸다 하면서 다가오니까 유령이 나타났다고 말한 것입니다. 뱃사람들은 파도치는 바다에 유령을 보면 배가 가라앉는다는 징크스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배가 가라앉는 줄 알고 제자들이 다 아비규환이 되어 고함을 쳤을 때, 예수님이 "내니 두려워 말라." 그러니까 베드로가 "주님이시면 나로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나는 베드로를 존경합니다. 나 같으면 말 못해요. 그 캄캄한 밤에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부는데 주님이 아니고 진짜 유령이었다면 물에 빠져서 죽었지 별 도리 있나. 그런데도 베드로는 용감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모험이기 때문에 용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용기를 가지고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누르고 환경을 이길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물위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물이 얼음같이 단단해졌어요. 베드로가 저벅저벅 물위로 걸어갑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말씀을 기억하고 집중하여 갈 때는 물위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바람이 확 불면서 물보라가 얼굴을 치는 바람에 파도를 바라보고 캄캄한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공포심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데 간데 없고,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고 '사람이 어떻게 물위로 걷느냐. 이것 내가 잘못했구나. 이제 죽었다.' 공포가 들어오자마자 물에 빠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에 빠지면서 "주여, 내가 죽나이다. 나를 도와주소서." 예수님이 와서 베드로를 붙잡아서 일으키시면서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하고 건져주신 것입니다. 의심을 하면 물에 빠집니다. 의심을 안하려니까 주님을 집중적으로 바라보고 말씀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사는 동안에 의심할 수 있는 환경이 언제나 다가오는 것입니다. 바람과 파도가 끊임없이 다가와요. 수없이 바람이 불어오고 파도가 쳐오고 '너는 이제 죽었다. 너는 망했다. 너는 할 수 없다.' 이러한 암시가 마음속에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그런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하면 의심이 들어오고 불안과 공포가 들어오면 낭패를 당하는 것입니다.
내 두려워하는 것이 내게 미쳤고 내 무서워하는 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하고 욥은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면 그 대상이 여러분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두려우면 형벌이 따른다고 한 것입니다. 두려워하면 그 대가로써 형벌이 따라와서 두려워하는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가난을 두려워하면 가난이 다가오고, 병을 두려워하면 병이 들어가고, 원수를 두려워하면 원수에게 지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가면 모든 것을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은 항상 우리 주위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바람과 파도처럼 여러분에게 마귀는 와서 속삭이고, 협박 공갈을 하고 환경을 바라보게 해서 마음에 공포심이 일어나고 이성을 잃어버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벌벌 떨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수작인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께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려움은 떠나가고 여러분께서 믿음의 능력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집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민수기 23장 19절에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사람은 거짓말쟁이요, 하도 거짓말을 많이 하고 말이 틀리기 때문에 하나님도 거짓말쟁이인줄 우리가 오해하는 것입니다. 사실 말이지 우리가 어린 아이 때부터 지금까지 거짓말을 몇 만 번 듣고 몇 만 번 행했었습니다. 사람은 거의 다 거짓말쟁이고 또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도 '아이고 거짓말 하는 거지. 하나님이 참말을 안 하는 것이지.' 또 마귀가 와서 '하나님 거짓말이다. 믿지 말라.' 그렇게 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신지라 거짓이 없으시고 인자가 아니신지라 식언치 아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참인 것입니다. 진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에 집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입니다. 말씀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묵상하고 말씀 위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잠언 4장 23절에 보면 언제나 말씀을 생각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어떻게 지키는 것입니까? 말씀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떠나면 여러분 마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마음속에 꿈을 꾸십시오.
빌립보서 2장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소원은 꿈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집을 소원하면 집을 꿈꾸게 되고 바다에 가기를 원하면 소원하면 바다를 마음에 꿈꾸게 되고 자동차를 사기를 원하면 자동차를 꿈꾸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항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꿈꾸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 주시고 도와주시고 은혜주신 것을 마음속에 꿈꾸는 것이 정말 하나님 말씀을 굳게 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3장 20절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구하기나 생각하는 것보다 넘치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꿈을 꾸고 있으면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에 릴리언 딕슨이라는 여인이 그의 남편과 함께 대만에 선교를 결정하고 미국을 떠났습니다. 이들 부부는 대만에서 대만 정부의 사회사업 관리인과 선교에 대해 의논했습니다. 그러자 담당자는 이들의 이야기를 미쳐 듣기도 전에 과거 선교 단체들이 모두 실패를 했다고 예를 들면서 "무조건 대만에서는 안 됩니다. 대만에서는 기독교 복음을 증거 해도 안 받아 줍니다. 실패합니다. 미국으로 돌아가십시오. 당신들이 여기서 기독교를 전한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대만 사람들은 우리 종교가 따로 있기 때문에 여기에 선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불가능하니 돌아가십시오." 그러자 릴리언 딕슨 부인은 벌떡 일어나서 창가로 나가서 바다를 향하여 손가락을 가리켰습니다. "저기 바다가 보이지요? 대만 사람들을 도와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마치 저 바닷물을 한 양동이씩 퍼내는 것처럼 어렵긴 해도 불가능 하지는 않습니다. 바닷물을 퍼내는 심정으로 우리는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남편이 곁에 있다가 하는 말이 "여보, 일어나서 빨리 복음 전하러 갑시다. 의논할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믿음과 꿈을 가졌습니다. 아무리 안 된다 해도 대만에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서 대만에서 50년 넘게 선교사역을 했는데 학교와 병원 교회 등을 5천개나 짓게 된 것입니다. 안 된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믿고 꿈을 꾼 결과로 꿈꾼 대로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고 꿈을 꾸면 그 꿈꾼 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꿈을 못 꿉니다. 환경을 바라보면 두려움이 들어와서 모든 꿈을 포기하게 되지요. 아무 문에 증거 안보이고 아무 귀에 들리는 것 없고 내 앞길 칠흙같이 어두워도 믿고 꿈을 꾸십시오. 꿈이 여러분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잡고 꿈꾸고 나아갈 때 이처럼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 28절에서 이방인이 믿음에 대해서 예수님은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집중하고 생각하고 꿈꾸며 믿고 선포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한번 믿었으면 믿음을 굳게 잡고 흔들리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9:23)
할 수 있다 없다 말하지 말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 안 믿으니까 안 되지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전에도 말한 것처럼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은 있습니다. 나도 빠른 시일 내에 겨자씨 하나를 조그마한 유리병에 담아서 포켓트에 넣고 다닐 작정입니다. 내가 50년 동안 목회했지만 지금도 마귀가 와서 안 된다. 네 믿음이 약하다. 정말 네가 믿느냐? 의심이 생길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 겨자씨만한 믿음은 있거든 그리고 겨자씨 보고 나는 요만한 믿음은 있다. 요만한 믿음만 있으면 충분하다. 더 큰 믿음은 필요 없다. 그렇게 하고 나가기 위해서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필요하면 겨자씨 하나를 구해가지고서 병에 담고 다니십시오. 그것을 보고 믿음을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도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가 집회를 하는데 어떤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장차 올 미래에 대하여 많은 설교를 했는데, 그렇다면 목사님, 목사님의 장래를 압니까?" 그래서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 장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릅니다." "그런데 어떻게 세계가 역사가 어떻게 될지 장래 일을 그렇게 담대하게 말합니까?" "나는 내 장래 일은 몰라도 장래를 붙잡고 있는 그 분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장래를 좌우하시는데 하나님이 내 아버지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걱정하지 않고 맡겨 놓습니다." 여러분 우리 장래일은 하나님 손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기고 믿기만 하십시오. 믿기만 하십시오. 믿고 꿈을 꾸십시오. 장래는 하나님이 보장해 주시는 것입니다. 미래가 여러분의 힘으로 붙잡아 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붙잡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믿고 마음속에 생각하고 꿈꾸고 한 것을 입으로 늘 긍정적으로 말하십시오. 부정적으로 말하면 나라가 망하고 개인도 망합니다. 우리 한국사회는 너무나 부정적인 말을 좋아합니다. 긍정적인 말은 안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을 틀어 보십시오. 거의 말하는 것은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일상생활에도 언제나 개인, 가정, 생활, 자녀, 사업이나 이웃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적질 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든지 긍정적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 축복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말을 소리 내어 수 백 번, 수 천 번 고백하십시오.
여호수아 1장 8절에 보면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어떻게 하면 내 삶이 형통하고 평탄해 지겠습니까? 형통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 누가 있어요?평탄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 누가 있어요? 형통과 평탄은 믿고 꿈꾸고 말하는데 따라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고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꿈으로 바라보고 입술로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 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못한다고 말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나는 된다.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일은 이루어진다. 승리한다. 성공한다.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말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국 속담에도 "울어보고 웃어보니 웃는 것이 낫다"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말해서 좋은 것이 뭐가 있습니까? 마귀에게 선수를 주어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도록 만드는 길밖에 없지 않습니까? 긍정적인 말을 하면은 하나님의 성령이 그를 통해서 오셔서 어둠에서 빛을, 죽음에서 생명을, 무질서에서 질서를, 절망에서 소망을 주는 역사를 베풀어 주자는 것입니까? 할 수 있습니다.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기적이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됩니다. 환경이 아무리 어둡고 스산스러워도 그것은 환경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환경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환경이 우리를 도와줘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줘서 사는 것입니다. 환경의 손을 잡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을 잡고 사는 것입니다. 환경은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지만 바람을 맞받고도 파도 위를 걸어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꿈꾸고 하나님의 말씀을 입술로 고백하고 나가면 여러분 생활 속에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염려 근심, 불안 공포가 태풍처럼 불어 닥칠 때, 우리의 마음은 바다 물결처럼 흉용하고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립니다. 그때 우리를 구원해 주실 하나님을 찾고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믿음만이 파멸에서 건져주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만이 여러분의 미래를 열어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다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것이면 뽕나무도 뽑혀서 바다로 가고 태산도 물러가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패배자가 아닙니다. 물러갈 자가 아닙니다. 승리자요, 영광을 쟁취할 하나님의 용사들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겨자씨 만한 믿음은 다윗이 손에 든 물맷돌인 것입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키가 장대하고 철갑옷을 입고 놋경갑을 하고 창이 베틀채만큼 커도 다윗의 물맷돌 하나에 거꾸러진 것입니다. 환경이 아무리 으시시하고 무서워도 물맷돌만한 겨자씨 믿음 앞에 거꾸러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하세요. 믿으면 됩니다. 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습니다.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여, 염려 근심, 불안 공포가 쉬지 않고 우리에게 출렁거리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를 대비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염려 근심, 불안 공포의 파도를 물리치고 바람을 물리치고 그 위를 발고서 건너가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시옵시고 빠져서 허덕이는 우리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 사랑의 아들 나라로 옮겨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구원받았습니다. 성령님 모시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믿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꿈꿉니다. 긍정적으로 말합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 안에 역사하여 주시고 기적을 일으켜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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