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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4: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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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동원 목사 |
참고 : | 지구촌교회 |
2002-05-29
유명한 팝 아티스트인 엘튼 존이 부른 노래 가운데 "바람속의 촛불"(Candle in the Wind)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는 이 노래를 우리시대에 살았던 여성가운데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살았던 두명의 여성의 죽음을 추도하기 위해 바쳤습니다. 한 여인은 영화배우 마릴린 몬로였고, 또 한 여인은 촬스 황태자비였던 프린세스 다이애나였습니다. 1973년 처음 이 노래가 탄생했을 때 두 번째 단락의 가사는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내 보기에 당신은 바람속의 촛불처럼 살았어요. 비가 내려도 누구에게 갈 수 없었던 당신. 그때 내가 당신을 알았더라면. 하지만 난 어린애였죠. 이제 당신이 전설이 되기전 당신의 촛불은 벌써 타버린 것을." 그는 이 노래로 불행한 인기여우 마릴린 몬로의 죽음을 애도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1997년 9월 다이애나비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장례식에서 다시 이 노래를 조금만 개작하여 이렇게 리바이벌 시켰던 것입니다."내 보기에 당신은 바람속의 촛불처럼 살았어요. 비가 내려도 석양과 함께 사라지지 않는 당신은 지금. 여기 영국의 푸른 언덕길마다 당신의 발자국은 남아. 하지만 이제 당신이 전설이 되기 전 당신의 촛불은 벌써 타버린 것을." 엘튼의 이 노래가 사상최대의 앨범기록을 세우고 이 두 여인을 향한 추모의 발걸음이 아직도 그치지 않고 이 두 여인의 사진이 세계도처에서 계속 재생되는 것을 보면 우리는 가히 이 두 여인의 인기를 실감할 만 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이 두 여인보다 더 유명한 여인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 여인은 마릴린 몬로나 다이애나가 등장하기 훨씬 오래전부터 유명했습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 몬로나 다이애나의 전설이 사라진 먼 훗날에도 여전히 그 인기를 유지할 것입니다. 이 여인은 성경에 기록된 인물입니다. 이 여인의 인기는 예수님에 의해 예언된바 있습니다.--"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9절) 그렇습니다. 소위 설교자들이 이 땅에 존재하는 한, 그리고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이 여인의 존재와 헌신은 계속 기억될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여인은 주님이 인정하시고 기억해 주시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이 여인은 무엇을 했기에 이렇게 기억될 것입니까? 신기한 것은 이 여인이 한일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단지 이 여인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소중한 옥합을 깨뜨려 그 속에 있던 향유를 죽음을 앞두고 계셨던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는 것입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요한복음12장의 기사에 의하면 이 여인의 이름은 마리아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왜 마리아는 이날 옥합을 깨뜨렸을까요?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의 심정--이것이 궁금합니다.
1.'주향한 사랑의 마음'이었습니다.
본문3절에 보면 사건의 발단을 소개하면서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때에--"라고 기록합니다. 저는 이 식사가 평범한 초대식사가 아닌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한 보은의 잔치성격이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요한복음12장과 비교하면 이것이 더 분명해 집니다. 요한복음 12장 1-2절에 보면"유월전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쌔--" 마리아의 가족 중에 그 오빠인 나사로는 가장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그가 죽었습니다. 얼마나 절망이었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다시 살았습니다. 이것은 또 얼마나 감격이었을까요? 그래서 잔치가 열린 것입니다. 마가복음 본문에 문둥이로 소개된 시몬은 아마 문둥이였다가 주님의 기적의 터치로 치유를 경험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그의 제안으로 잔치장소를 그의 집안으로 정했을 것입니다. 가난했던 나사로 집안보다 시몬의 집이 훨씬 더 공간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집이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그런데 이 잔치석상에서 갑자기 마리아가 옥합을 들고 나오더니 그 옥합을 깨고 그 속에 있던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붓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아니, 저 비싼 향유를 저렇게 허비해도 되는가?"였습니다.(4절) 그러나 이 여인은 말없이 예수님의 몸에서 발까지 흘러내리는 향유로 이제는 예수님의 발을 씻기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주님을 향한 이 여인의 사랑이었다고 믿습니다.
사랑하는 이에게는 낭비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돈을 써보신 경험이 있으신지요? 아까우셨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아직 진정한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사랑에는 낭비의 본능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시간을 낭비합니다. 생각을 낭비합니다. 물질을 낭비합니다. 아니, 우리의 존재 그자체를 낭비합니다. 낭비할 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외에는 아무것도 생각치 않습니다. 지금 마리아의 심정이 이런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누가 무엇이라해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낭비라해도, 제 정신이 아니라해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내 영혼을 살리신 주님, 내 오라비의 생명을 되돌려 주신 주님-이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이 사랑이 옥합을 깨뜨리게 한 것입니다. 교회사가인 라투렛은 교회역사를 연구하면서 중요한 결론을 얻었습니다. "교회를 지켜온 사람들--그들은 신학자가 아니다. 정치가도 아니다. 부유한 사업가도 아니다. 심지어 목회자도 아니다. 이름없이 인정없이 주의 제단에 사랑을 바친 수없이 많은 성도들 바로 그들이 에클레시아의 주인들이었다." 다른말로 표현하면 마리아같은 성도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지켜온 주역들입니다. 옥합을 깨뜨리는 마음-그것은 주 향한 일편단심의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를 지키는 사람들도 이런 마리아의 영성을 지닌 성도들입니다.
2.'전부를 드리는 마음'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주님께 향유를 부어드리는 방법에는 세가지 유형이 있을수 있었습니다. 첫째는, 옥합을 열어 향유를 조금 붓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헌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팔레스틴에서는 중요한 손님의 내방시 향유가 준비된 집에서는 손님의 머리에 향유를 몇방울씩 떨어트리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으로 훌륭한 최소한의 예의였던 것입니다. 둘째는, 옥합을 열어 향유를 전부 주님께 부어 드리는 방법입니다. 이 정도면 최고의 헌신으로 평가 받을만 합니다. 그리고 옥합은 다시 사용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마리아는 이 정도의 헌신으로도 만족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취한 셋째 방법은,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전부 주님께 부어 드린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이 옥합이나 향유는 주님이외의 다른 대상을 향해서는 결코 다시 사용되지 아니할 것을 고백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마리아의 주께 드려진 헌신이 전부를 드리는 헌신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최소한의 헌신이나, 최고의 헌신이 아닌, 전부의 헌신을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이런 마음의 헌신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었다"고.
마리아가 실제로 드린 향유의 경제적 평가는 300데나리온에 달했다고 본문은 기록합니다.(5절) 이 본문이 기록되고 있던 예수님이 지상생활을 하던 당시 팔레스틴에서 평범한 한 노동자가 열심히 일하면 하루에 받는 보편적 품삯이 한 데나리온 이었습니다. 그렇다면 300데나리온은 300날의 품삯에 해당합니다. 중요한 원리는 주님 앞에서 전부를 드리는 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전적 헌신을 드린 일입니다. 밴스 해브너(Vance Havner)라는 설교가가 '전적인 헌신'에 대하여 설교했을 때 한 지적으로 보이는 여인이 집회후 "목사님, 왜 가능하지도 않은 전적인 헌신을 설교하시나요? 그냥 80-90%만 헌신하라고 설교하시는 것이 현실적인 도전이 아닐까요?"하더랍니다. 이때 밴스 해브너는 이런 반문을 했다고 합니다. "부인, 당신은 당신의 남편이 당신에게80-90%만 헌신하고 나머지 10%는 다른 대상에 헌신해도 만족하시겠습니까?" 그는 이어서 다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헌신이 전적인 헌신이 아니라면 그것은 헌신이 아닙니다." 마리아의 옥합을 깨는 마음-그것은 전부를 드리는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3.'기회를 붙잡는 마음'이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의 문맥이 마리아의 헌신을 소개하며 주목하는 것중의 하나는 그녀의 헌신의 때입니다. 본문 바로 다음구절인 10절을 보십시오. 이 사건직후에 가롯유다의 예수님을 팔기위한 음모가 시작됩니다. 때는 바야흐로 예수님의 지상생애의 마지막이 가까운 시기였던 것입니다. 본문 1절은 정황적으로 당시에 예수님의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예수님을 둘러싸고 매우 긴박하게 불리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었고 따라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러다 예수님이 체포당하시고 돌아가시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 집니다. 마리아는 여성 특유의 직관으로 만일 이런 상황에서 돌아가시면 예수님 장례도 치르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을 것입니다. 아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것저것 따질 겨를이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자기집으로 달려가 아마 자기의 미래를 위해 예비한 소중한 자산이었던 인도산 고급향유가 들어있는이 옥합을 가지고 와 이를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 드린 것입니다. 이때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의 마음-그것은 기회를 붙잡는 마음이었다고 할만 합니다.
자,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나요? 8절에 보면 "저가 내 장사를 미리 준비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리아의 헌신을 비난하며 그것으로 차라리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에게 7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결코 가난한 사람을 돕는일을 과소평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희가 나를 위해 다르게 너희의 사랑을 표현할 필요가 있는 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와의 작별의 시간에 중요한 일은 의미있는 작별을 하는 일입니다. 그 시간에 꼭 우리가 마지막으로 도울 사람을 찾아보자고 할 필요는 없는 일입니다. 헌신에도 헌금에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잃어버리면 나는 이 소중한 헌신의 역사에 예외자로 남을 뿐 인 것입니다. 비전센타가 오픈되어 수많은 영혼들이 주의 은혜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소중한 역사에는 나의 헌신, 나의 눈물, 나의 기도가 있었다고 오고오는 세월동안 간증할수 있다면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본문 7절 개역 한글 번역에서는 주님이 이 여인에 대하여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더 좋은 번역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모두 이 아름다운 역사에 한 교우도 빠짐없이 동참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우리교회 모든 성도들이 기회가 주어져 있을 때에 그 기회를 잃지 말고 주님을 섬기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회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유머입니다만 옛날 희랍의 시랴큐스 거리에는 기회의 소중함을 가르치기 위한 조각상이 도심 복판 광장에 세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동상인데 날개를 달고 있었는데 날개가 발에 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의 앞머리는 무성하고 뒷머리는 대머리였다고 합니다. 조각상아래엔 이런 글귀가 쓰여져 있었다고 합니다. 누가 그대를 만들었는가?-리시퍼스. 그대의 이름은-기회. 왜 그대는 날개를 발에 달고 있는가? 좀더 빨리 빨리 다니기 위하여. 그대의 앞머리는 왜 그렇게 무성한가?--내가 올 때 사람들이 쉽게 붙잡도록. 그대의 뒷머리는 왜 대머리인가?--내가 지나가면 다시 붙잡을수 없기 때문에. 기회란 정말 그런 것입니다.
크리스쳔 유머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성도가 기도할 때마다 이런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하나님, 제가 조금만 더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정말 헌금을 드릴 수 있을 터인데 제게는 그 여유가 없어요." 같은 성도가 또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가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시간을 드려 주님과 몸된 교회를 섬길 터인데 제겐 시간의 여유가 없어요" 똑같은 성도가 또 이런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하나님, 저에게 조금만 더 재능의 여유가 있었더라면 저도 남들처럼 저의 재능으로 주님을 한번 멋지게 섬기고 싶은데 제게는 그런 재능이 없잖아요" 그래서 주님은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어느 날 그에게 조금 더 의 재물과 조금 더 의 시간과 조금 더 의 재능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무리 기다리셔도 그가 드리는 모습이 없자 하나님은 한날에 그에게 주셨던 조금 더 의 재물과 조금 더 의 시간과 조금 더 의 재능을 도로 거두어 가셨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한번만 다시 옛날처럼 그 조금 더 의 재물과 조금 더 의 시간과 조금 더 의 재능을 돌려주시면 제가 기꺼이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때 주님이 무엇이라고 하셨을까요?--"타임 이웃!"하셨답니다. 기회는 지나간 것입니다.
주님주신 기회에 주님주신 선물로 다시 주님을 섬기는 아름다운 역사에 우리 모두 참여하여 주님이 기억하시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출처] 막 14장 1-10
옥합을 깨뜨리는 마음-이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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