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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없는 성공은 없습니다

마가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507 추천 수 0 2010.06.12 17: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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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16-20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분당샛별교회 

마가복음 1장 16-20절

<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

 

옛날에 서울의 한 교회에서 30년 동안 교회의 종을 치던 어떤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30대에 아이들과 교회에 오면서 그 집사님의 종 치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분이 60대에 손자들과 교회를 오면서도 그 집사님의 종 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30년 동안 변함없이 종을 치는 그분의 이야기는 오늘날 거의 전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사람됨을 보려면 "보잘것없는 일도 꾸준히 하는가?"를 보면 됩니다. 보잘것없는 일이지만 내가 맡겨진 일이라면 꾸준히 감당하는 것이 바로 사람됨이고,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면 기쁘게 동참하는 것이 사람됨입니다. 하나님은 성실하신 하나님이기에 우리도 성실하면 우리에게 하늘 냄새가 날 것입니다.

30년 동안 그 집사님은 교회 종치는 일만 했지만 그분에게서는 하늘 냄새가 났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보잘것없는 분으로 보았지만 담임목사님은 그분을 성자로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어떻게 보셨을까요? 어느 위대한 목사보다 위대하게 보셨을 것입니다.

자유당 정권 말기의 어느 날, 그분이 돌아가셔서 교회에서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높은 분들이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보고 교인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 그 보잘것없는 집사님의 아들이 그 당시 장관의 자리에 있었던 것입니다. 살다보면 좋은 뜻을 세우고도 얼마 되지 않아 금방 그 뜻을 접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떤 분은 처음의 뜻을 굳게 유지해서 결국 알찬 삶의 열매를 거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을 축복하실까요?

하나님은 조그만 일에도 성실한 자에게 반드시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이제 지난주에 우리 교회에 새로 5개 지역이 편성되었습니다.

지역장님, 구역장님! 그리고 여러 기관장들과 성가대원들! 여러분들의 노고를 다 압니다. 혹시 남들이 나의 고충을 몰라주는 것 같아도 내게 맡겨진 자리를 꾸준히 지켜주십시오. 자기 자리를 꾸준히 지켜준다는 것이 원래 쉽지 않은 일이고, 때로는 권태도 생기고, 때로는 어려움도 있고, 때로는 나를 더 필요로 하는 곳으로 빨리 가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옛말이 있듯이, 자기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고 조금 시류에 느린 것 같은 사람이 세상의 희망이고 교회의 희망이 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십시오! 얼마나 우리의 상식에 맞지 않고 시류에 느린 조치입니까? 그러나 그 십자가를 통해서 인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진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 자리에서 성실한 사람을 반드시 더 축복된 자리로 부르실 것입니다.

< 하나님을 외모를 보고 부르지 않습니다 >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께서 4명의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바닷가에서 낚시하며 때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던지고 있었고,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나태한 사람들을 부르지 않고 성실한 사람을 부르십니다. 이 진리는 결코 예외가 없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되기를 원하면 우리 자신을 준비시키고, 우리가 있는 곳에서 더욱 성실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현재 주어진 내 일에 충실한 사람을 반드시 불러 사용하십니다. 그것을 알고 제가 신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좌우명처럼 여기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주신 것에 충실하면 내일은 더 많은 것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의 충실함은 내일의 축복으로 귀결됩니다. 우리가 지금 조그만 일에 충실하지 않으면 큰 일에서도 결코 충실하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위대한 종들은 모두 조그만 일에 열심히 일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안전한 착륙을 약속하셨지, 날지 않는 삶의 축복을 약속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현재의 위치와 신분이 무엇인지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대단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을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부름 받은 4명 모두 갈릴리 어촌에 살던 보잘것없는 어부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살던 수많은 지식인들, 높은 사람들을 놔두고 주님은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질 있는 사람을 부르지 않고, 부르셔서 자질 있는 사람으로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재 모습이 어떠하든지 우리의 시선은 미래에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나 현재의 신분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진짜 관심을 두고 보시는 분야는 우리의 가능성과 우리의 내일입니다. 그 가능성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우리 한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는 평범한 존재들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는 비범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정말 비범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 대단한 분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복음 전파의 귀한 사명을 맡겨주시고 불러주셨습니다. 우리는 남이나 우리 자신이 우리는 보는 눈으로 우리를 보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를 보는 눈으로 우리를 보면서 우리의 무한한 가능성을 자신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저를 고등학교 때 알았다면 목사가 될 사람으로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처럼 경건하게 살 가능성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저를 목사로 부르셨습니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모두도 하나님께서 사명 주셔서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평범한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비범한 어떤 존재라고 말씀하십니다.

 

< 주님을 어떻게 따라가야 할까요? >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여기에 계신 분 중 의미 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고, 가치 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 주님께서 부르셨고, 지금도 부르시고 계시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기를 기대하십니다. 그 부르심을 응답하고 주님을 따를 때 우리에게는 큰 축복의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따를 때 어떻게 따라야 할까요? 본문을 통해 3가지만 생각해보겠습니다.

1. 비전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면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비전이 무엇입니까? 믿음 안에서 희망을 가지고 큰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사람이 비전을 발견하면 비천한 사람들도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비전이 없는 끝'을 보지만 믿는 사람들은 '끝없는 비전'을 봅니다.

비전은 전염이 됩니다. 비전은 심한 풍파 속에서도 우리를 낙심하지 않게 만듭니다. 비전은 우리에게 선한 일을 하게 하고, 생명력을 주고, 모든 것을 변화시킵니다. 최근 미국 한 잡지에 '유진 랜드'라는 자수성가한 한 백만장자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그가 할렘가에 있는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학생들로 가득한 한 학교를 방문했을 때

그는 6학년 학생 중에 극소수만이 중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얘들아! 만약 너희들이 끝까지 학교에 남아 졸업하면 내가 대학교육을 시켜주겠다."
그 말에 아이들은 처음으로 삶에서 비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 학생이 말했습니다.
"저는 제 일생에 처음으로 앞날에 대한 어떤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 앞에서 나를 위해 기다리는 어떤 것을 기대하니까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결국 그 학교 6학년 학생 중에 90%의 학생이 중학교에 진학했다고 합니다. 비전은 전염됩니다. 비전은 삶에 생동감을 줍니다. 결국 비전은 모든 것을 바꿉니다.

그처럼 비전은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비전과 욕심을 혼동하면 안될 것입니다. 마음속에 욕심이 있는 한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나의 마음속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한번 진단해보십시오. 지금 하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인지, 욕심 때문인지 살펴야 합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고 하면서 내 욕심을 아름답게 채우려는 것은 아닌지, 그 문제에 대해서 보다 정직해야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자녀 교육 환경 문제를 내세워 외국으로 이민을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항상 냉정한 현실의 바탕 위에 비전을 세워야지 그렇지 않으면 인생이 후퇴합니다. 사실 자녀 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는 교육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의 마음의 문제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4년밖에 살지 않았지만 아주 현실적인 말씀을 드리면 이렇습니다. 즉 "한국에서 새는 바가지는 미국에 가서도 샌다"는 말씀입니다. 한국에서 자녀 교육을 못 시키는 분이 미국에서 교육을 잘 시키는 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녀 교육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교육부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아니고 부모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바뀌지 않으면 환경이 바뀌어도 전혀 소용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녀는 부모 마음속에 있는 사랑으로 변형된 욕심을 읽을 줄 압니다. 아무리 부모님이 교회를 다녀도 그 마음속의 욕심을 알기에 자녀가 비뚤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욕심이 없는 참된 비전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참된 비전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크신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2. 순종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본문의 네 명은 주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고 말씀하시자 즉시 순종하고 따랐습니다. 순종은 축복된 존재가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조건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선택받았다는 사실'보다 '순종하는 마음'이 더 위대한 축복의 통로입니다. 기독교의 선택은 사명을 맡기기 위한 선택이지 그 사람만 축복하기 위한 선택이 아닙니다. 그것을 오해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선택받은 것으로 인해서 더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축복은 선택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선택받고 불순종하는 사람보다 선택과 상관없이 순종하는 사람을 더 기뻐하십니다.

하루는 밀림에 있는 뱀의 꼬리가 머리에게 그 동안 항상 가졌던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항상 머리가 자기 가고 싶은 대로 가니까 이제는 자기 가고 싶은 대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처럼 꼬리가 불평하니까 하루는 머리가 "네 가고 싶은 대로 가보라!"고 양보했습니다. 꼬리는 신이 나서 열심히 가다가 가시덤불로 들어가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꼬리는 반드시 머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꼬리가 머리를 앞서면 불행하게 됩니다. 인간이 아무리 똑똑해도 하나님 말씀에 앞서려고 하면 반드시 피투성이가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영광을 보기 원하면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가끔 가정에서의 속상한 일을 생각하면 남편에게 마음을 주기가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하나님께서는 남편에게 마음을 온전히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문제가 해결되게 하시고 더욱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할 때에도 오늘 본문의 제자들처럼 즉각 순종해야 진짜 순종입니다. 토론 후에 순종하는 것은 순종이 아니고, 변명하고 순종하는 것도 순종이 아닙니다. 그리고 한참 지체하다가 순종하는 것은 사실상 그것은 불순종에 더 가깝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일에 실패한다면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대개 내 약점 때문에 실패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를 실패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약점보다는 우리의 불순종 때문입니다. 혹시 삶이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면 더 헌신을 다짐하고 더 순종을 다짐해보십시오. 순종은 축복을 줍니다. 그러나 사실상 순종하는 마음을 가진 것 자체가 큰 축복입니다.

3. 자기의 것을 희생하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의 부름에 베드로와 안드레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

야고보와 요한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그들은 자기의 소중한 것들과 인간관계를 희생하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희생이 무엇입니까? 더 소중한 분을 위해서 나의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다 이런 '포기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행 4:32),

그런 삶이 능력 있는 삶이고,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소유의 기쁨으로 사는 사람이 나눔의 기쁨으로 사는 사람이 되었으니 기적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 하면 치유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야 진짜 능력인 줄 압니다. 그러나 오늘날 진짜 기적은 돈과 소유가 우상이 된 이 시대에서 진실로 기쁜 마음으로

"이것 중 어느 하나도 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 뜻대로 사용하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사실상 신앙생활에서 호주머니를 비우는 능력이 없으면 바른 신앙을 가지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돈 얘기가 참 많습니다. 성경 전체에 기도에 관한 말씀이 500구절 있고, 믿음에 관한 말씀도 약 500구절 나오고, 사랑에 관한 말씀이 약 700구절 나오는데 돈과 소유에 관련된 말씀은 2000구절 넘게 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의 6분의 1이 돈과 소유에 관련된 말씀이고, 예수님이 하신 가장 위대한 산상설교의 3분의 1이 돈과 소유에 관련된 말씀이며,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 38개 중에서 돈과 소유에 관한 비유가 17개나 있음을 생각할 때 주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려면 돈 씀씀이에서 희생이 있어야 함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십일조는 내가 돈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하나의 좋은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십일조도 중요하지만 나머지 십의 구를 가지로 어떻게 쓰느냐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 돈을 가지고 내가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서 나의 가치관과 삶의 질이 나타나게 됩니다. 돈을 의지하면 쌓아놓는 것을 좋아할 것이고, 쾌락을 좋아하면 쾌락에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선한 일, 좋은 일,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쓸 것입니다. 우리가 희생하는 마음으로 믿음을 가지고 내 호주머니를 털고 내 손을 펼 때

하나님은 그때 우리의 믿음의 진정성을 보시고 더 크신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17세기에 할레라는 곳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는 아우구스트 프랑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고아들 먹일 돈이 없어 고민하는데 한 거지 과부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돈 좀 달라고 하는데 마음은 아팠지만 말했습니다. "미안하지만 도와줄 여유가 없어요."

그러자 그 과부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습니다. 모든 희망을 다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너무 가슴아파서 프랑크는 골방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곧 신비한 평화가 그의 마음속에 임했습니다. 한끼 정도는 굶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골방에서 나가서 그에게 남은 마지막 금화 하나를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프랑크는 아이들에게 한끼만 금식하자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굶지 않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날, 그는 한 부자로부터 금화 12개와 스웨덴의 친구로부터 금화 2개를 받았고

곧 이어 그의 필요를 들은 근처의 한 영주로부터 금화 500개를 기부 받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프랑크의 눈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의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희생 제물을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이 세상에 희생이 없는 성공이란 없습니다. 희생이 없었는데 성공했다면 그것은 우리 앞에 있던 누군가가 희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희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해도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 대신 우리가 사랑하는 우리 뒤를 따르는 누군가가 우리 때문에 성공할 것입니다.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은 우리 교회가 빨리 크게 성장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면 함께 희생하십시오. 모든 위대한 성취는 누군가 희생을 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의 희생이 없으면 성공도 없고, 우리의 희생이 크면 하나님의 축복도 커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희생할 때 나도 모르고 내 주변 사람도 몰라야 진정한 희생이 됩니다.
"내가 이만큼 희생했어!"라는 생각이 들면 그 희생이 공로의식으로 발전하기 때문입니다.
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럼 모리아 산으로 갈 때 산 아래에서 두 사환을 기다리게 하고 이삭만 데리고 산 정상으로 올라갔습니까?(창 22:5) 만약 두 사환을 데리고 올라가면 그 사환들이 아브라함의 희생을 막으려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죽이려는 장면을 목격하면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나의 희생을 내 친구나 내 교우나 내 가족들에게 알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심지어는 나 자신도 내가 희생했다는 사실을 철저히 잊어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희생은 오히려 공로의식으로 발전해서 나의 앞길을 망치게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 조용히 우리의 것을 희생하면 하나님은 그 희생을 기억해주십니다.

여러분! 주님을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삶이 이전보다 불편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삶은 가장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성공시키고 우리에게 최선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힘들어도 오직 주님만 끝까지 따름으로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 이한규 목사(분당 샛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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