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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주인이신 예수님

마가복음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413 추천 수 0 2010.08.21 21: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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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2:23-28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성남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옛날 어릴 때 보면 어머니가 닭장에 닭 한 마리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도둑 같으면 닭을 다 잡아갔을 턴데 닭 한 마리만 잡아간 것입니다. 동네 청년들이 저녁에 모여 놀다가 닭서리를 한 것입니다. 겨울철 농사가 없을 때 저녁에 모여 놀다가 닭을 잡아다 그 날 잡아먹은 것입니다. 여름철이면 가난한 아이들이 수박을 먹고 싶은데 돈이 없습니다. 저녁에 동네 정각에 모여 놀다가 몰래 남의 수박 밭에 들어가 수박을 따다 먹었습니다. 수박 서리를 한 것입니다. 아마 이런 경험들이 있는 성도님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대부분 이런 문제로 고소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중에 알아도 웃으면서 지나갔습니다.
어릴 때 남의 집 밀이나 보리 이삭을 잘라 친구들과 함께 모닥불을 피워 놓고 구워 비비 먹은 경험이 있는 분 계실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죄일까요 죄가 아닐까요? 당시는 먹을 것이 없고 가난하던 때라 양심적으로 잘못된 줄 알았지만 대부분 주인들이 아이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묵인해 주었습니다. 보리 잘라먹었다고 고소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성경에 그와 유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밀이 익어 추수철이 된 어느 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전하며 많은 병자를 고치는데 따라다녔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밀밭 사이를 통과하였습니다. 이 때 제자들은 시장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잘 가실 수 있도록 이삭으로 가려진 길을 열면서 이삭을 자르게 되었습니다. 단순하게 길을 열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하여 먹기 위해서였습니다(마12:1). 예수님을 따르면서 식사할 겨를 도 없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삭을 비벼서 먹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남의 곡식에 피해를 준 것입니다. 절도입니다.

어떤 일이든 홀로 하는 것같지만 항상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상해에 갔는데 어떤 장로님과 매사 의견 충돌이 생겨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선교일로 갔다가 그 지방 고위 관리를 만났는데 그 사람들은 관례상 러브샷을 한다고 합니다. 같이 러부샷을 하자고 하여 손을 꼬고 시늉만 하였는데 그 때 핸드폰으로 찍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터넷에 올려 버렸습니다. 중국 선교하러 가서 술을 마셨다고 하니 그것을 본 교인들이 앞 뒤 정황을 물어 보지도 않고 교회에서 난리가 난 것입니다. 항상 조심을 해야 합니다. 사탄는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고 다닙니다. 공동체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순식간에 넘어뜨리려고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려보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있던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스토킹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늘 감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정적을 넘어뜨리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단칼에 베어버릴 건수가 생긴 것입니다. 안식일을 법하도록 방조한 죄입니다. 안식일을 범하면 사형까지 시킬 수 있는 중대한 죄입니다. 유대인들은 거룩한 땅, 거룩한 시간, 거룩한 행위가 있다고 믿었는데 거룩한 시간은 안식일이라 생각하고 안식일에 대한 집착이 아주 강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미쉬나에 39개 조항의 금지 사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미쉬나, shabbat 7:2). 그리고 매 조항 마다 6개의 세목을 두었습니다. 근거는 모세 율법에 근거를 두었습니다. “너는 엿새 동안 일하고 제 칠 일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출 34:21)”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더욱 잘 지키기 위해 세부적으로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를 만들어 지키게 하였습니다.
바느질, 두개의 고리를 만드는 일, 두 개의 실을 엮는 일, 두 글자를 쓰는 일, 두 글자를 쓰기 위해 두 글자를 지우는 일, 불을 끄는 일, 불을 켜는 일 등을 금했습니다. 안식일에는 500m 이상 움직여서는 안되었고 닫힌 항아리를 열어서는 안되었습니다. 아이를 안아 주거나 업어 주어서도 안됩니다. 손수건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손수건 한쪽이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에 기워져 있으면 괜찮았는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손수건이 아니라 옷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바느질을 하다가 어쩌다 실수해서 바늘을 옷에 꽂아 놓은 대로 입고 나가면 바늘을 운반한 죄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추수에 대하여 농작물을 거두어들이는 일, 곡식단 묶는 일, 타작, 곡식 등을 까부는 일, 곡식이나 거두어들인 것들 가운데서 좋은 것과 버릴 것을 고르는 일, 곡식 등을 가는 일, 체질 등을 금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삭을 자른 행위는 추수하지 말라는 미쉬나의 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손을 비비서 그 껍질을 불어낸 것은 곡식을 탈곡하지 말라는 미쉬나의 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안식일 날 추수를 하고 타작을 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행위가 율법과 히브리인의 구전 유전을 모은 미쉬나에서 금지하고 잇는 안식일 규례를 깨뜨리는 노동 행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와 질문했습니다. 몰라서 물어 보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정죄하고 예수님의 행위를 비난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안식일 법을 어긴 죄로 제거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게임 이론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게임으로 보는 것입니다.
게임 상황에는 세 가지 구성요소 게임의 참가자들(players), 참가자들의 전략(strategy), 게임이 끝나면 참가자들이 획득하는 보상 또는 이득(payoff) 등입니다. 게임을 이기 위해서 쓰는 극단적인 방법은 게임 상대자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요즈음 대선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상대를 선거판에게 제거시키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두 번째 방법은 게임 법칙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꾸는 것입니다. 경선 방법을 놓고 신경전을 버립니다. 다 자기에게 유익한 법칙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세 번째는 따르는 사람에게 기대를 0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 사람 따라 보았자 아무 이득도 없다고 포기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도 이 방법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당시 인기있는 종교지도자들을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권위를 인정했고 인기 만큼 그에 비례해서 명예와 부도 누렸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목수의 아들 젊은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의 종교 소비자를 다 빼앗아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받아야 명예, 그들이 누려야 할 인기를 다 빼앗아 가고 있는 데 그들은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건수만 찾고 있었는데 잘 걸린 것입니다. 요즈음 같으면 국가 보안법으로 묵으려고 했는데 잘 걸린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찾아가 “보시오. 저희가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라고 질문합니다.
제자들이 안식일 규정을 범하는 것을 내버려 둔 것에 대하여 예수님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게임의 법칙을 어겼으니 퇴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으므로 불법적으로 제거할 수 없으니까 합법적인 방법을 찾는데 게임의 법칙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안식일 법칙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기득권을 위협하니까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 법을 들이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율법이라는 것이 진정 율법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무기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시장할 때 밀이삭을 따 비벼 먹은 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구약 시대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웃집 포도원에 들어가 배고픔을 덜기 위해 포도를 따먹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사람들이 손으로 타인의 곡식을 잘라 비벼 먹는 것을 허용하였습니다. 물론 낫으로 잘라가는 것은 도둑으로 취급하여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가하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 말 것이요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낫을 대지 말지니라 (신 23:24-25)”
사실 자신들도 안식일에 소나 나귀를 마구에서 풀어내어 물을 먹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나 마구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눅 13:15)”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자신들도 잘 지키지 못하면서 한 부분을 들어 부각시킴으로 상대의 약점을 잡아 매도하고 넘어뜨리기 위해 율법을 이용하였습니다. 요즈음 정치인이나 정치 지향적인 언론들이 써먹는 방법입니다.

똑같은 사건이지만 상대에 따라 해석을 달리하여 소문을 퍼뜨리고 그 소문이 퍼지면 그 사람의 명예와 인기에 치명적인 상처를 줍니다. 대중의 마음을 빼앗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단장취의, 매카시즘, 포퓰리즘이라고 말합니다. 조금 의미는 다르지만 상대의 제거하기 위한 수법은 똑같은 것입니다. 문장이나 시의 한 부분만을 떼어내 이를 전체적 맥락과 관계없이 입맛에 맞게 자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자기 주장이나 생각을 합리화하는 것을 단장취의(斷章取義)라고 합니다. 미국 위스콘신주(州) 출신의 공화당 상원의원 J.R.매카시사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1950년 2월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폭탄선언을 함으로 많은 정치인들을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로 물러가게 했는데 이런 것을 매카시즘이라고 합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해 온정적으로 여러 가지 정책을 내 놓지만 단지 그것은 허구에 불과하고 민중의 지지를 빙자하여 선동하는 것입니다. 대중영합주의, 인기 영합주의입니다. 말만 개혁이지 실제는 없는 정치적 편의주의와 기회주의가 바로 포퓰리즘의 본질입니다.
이런 자들은 일어난 사건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확대해석, 축소해석, 왜곡해석하는 것입니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마녀 사냥식 해석을 하여 타인을 곤경에 빠뜨리고 타인의 불행이 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지 선점을 위한 파워게임에서 정치인들이 잘 써먹는 방법입니다. 이것을 바리새인들이 써먹고 있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 우리 예수님은 그들의 정체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속 마음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근본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부드러운 속살 넘어에 숨겨진 사악한 본성을 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25절 이하를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의 예를 들어 말씀을 합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도망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악신이 든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여 다윗을 제거하기 위해 그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죽이려하였습니다. 이 때 다윗은 도망을 갔는데 당시 제사장 아히멜렉 집에 도망을 갔습니다. 여기 나오는 아비아달은 아히멜렉 아들입니다. 다윗 때 제사장을 지낸 분입니다. 오랫동안 굶주려 제사장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제사장 집에는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먹을 것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떡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여 열두 덩어리의 떡을 향과 함께 두 줄로 진설하여 하나님께 제사드렸는데 다음 안식일이 오면 묵을 떡을 치우고 새 떡을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묵은 떡은 아무라도 먹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만 먹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다윗에게 주면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 떡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레 24:9)”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이기 때문에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다윗을 도와 주었다가는 자신의 생명도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간첩을 숨겨주면 국가 보완법으로 감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최고 권력자가 죽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위험을 무릎쓰고 제사장이 굶주린 다윗과 다윗 신하에게 율법을 어기고 그것을 주었습니다. 생명을 중히 여겼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사울입니다. 다윗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종 다윗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떡을 준 것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들어 율법을 잘 알고 있는 너희들이 이것을 읽어 보지 못했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들의 행위를 정죄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입니다. 율법이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냐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냐 자신의 거룩성을 드러내가 위한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보다 제도를 중시했습니다. 본질보다 형식을 중시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보다 인간의 권위를 중시했습니다.

안식일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요즈음 말하면 정치의 본질이 무엇이고 종교의 본질이 무엇이고 교육의 본질, 경제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주어졌습니다.
창2:1-3절을 보십시오. 세가지 정신이 나옵니다. 모든 창조를 다 마치시고 복을 주신 날이고 거룩한 날이고 안식한 날입니다. 창조 역사가 완성된 날로 복을 주신 날입니다. 저주하는 날이 아닙니다. 거룩한 날입니다. 구별된 날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날입니다. 지친 영혼이 참된 쉼을 얻는 날입니다. 인생은 노동에 의해 지탱되는 것이 하나님께 의존할 때 참된 복과 거룩이 있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본질을 말씀합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주객을 전도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 보다 먼저 사람을 창조하시고 안식일은 사람에게 복이 되도록 하기 위해 제정셨습니다. 안식일 규례를 제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율법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이루는데 있습니다. 율법을 통해 사람을 죽이려고 하나님 율법을 제정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 사람을 살리려고 제정하신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 사람을 올무에 가두어 놓기 위해 제정하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께 나와 율법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용서와 자유를 누리게 하기 위해 제정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을 통해 어떤 복을 주시는가 이사야서 58:13-14절을 보십시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첫째로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로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리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로 네 조상의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빈손으로 고향을 떠났다 엄청난 거부가 된 것처럼 물질의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17:24-26 이사야56:4-7에서 말씀한 것처럼 인생을 살리고 복주고 안식을 주시기 위해 안식일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안식일 정신은 주일로 이러지고 있습니다. 주일은 남을 정죄하기 위한 날이 아닙니다. 주일의 율법으로 무기 삼아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는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복을 받고 하나님 안에서 거룩해지고 하나님 안에서 참 안식을 누리는 날입니다. 안식일 복은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안식일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를 보십시오. 28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의 주신이 예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의 주인은 하나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들이 알고 있는 그 하나님이 바로 나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메시야가 안식일의 주인이고 그 안식일의 궁극적 목적을 성취하실 분이라는 것입니다. 더 넓게 말하면 시간의 주인이 예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시간의 창조자라는 말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바로 예수님이 시간의 창조자 그 하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의 제정자가 바로 예수님이시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안식일을 파괴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 자신이라고 말씀합니다. 안식일에 대한 판단자는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선수인지 감독인지 분별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왜 주셨습니까?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율법의 하나님의 구원의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율법을 어기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하나님 나라의 구현과 그 백성의 안식을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율법의 핵심은 규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통치과 그 통치로 이루어질 안식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는 모세에게 주어질 때는 구속을 기념하여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신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 5:15)”
안식일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성된 것입니다(안식일과 주인의 연속성). 안식일은 언약의 표징입니다(출31:12-17). 하나님의 백성의 구별된 표시입니다. 언약 백성의 표시입니다. 예수님은 이 안식일의 목적을 십자가에서 성취하였습니다. 모든 죄로부터 참 안식을 십자가를 통해 주셨습니다. 죽음의 공포로부터 안식을 주셨습니다. 죄의 노예로부터 안식을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을 통해 안식일의 목적을 성취하였습니다.
골로새서 2:16-17절을 보시시오. 안식일은 그림자였고 몸은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골 2:16-17)“
이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이제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에 모여 참 안식을 누렸습니다.
행20:7에 보면 안식 후 첫날에 모였습니다. 떡을 떼었습니다. 바로 떡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하는 예식이었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고전 10:16)”
고전 16:2절에 보면 매주일 첫날에 모였습니다. 히4:10에 보면 이미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영적 안식에 들어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히 4:10)”
그래서 시간의 주인이시고 안식일을 주인이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제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며 복된 주일 예배에 온전한 마음으로 거룩하게 참여하여야 합니다. 부활후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오셔서 함께 식사를 나눈 날도 주일입니다. 승천하신 후 성령님이 강림하시고 오순절 교회가 탄생한 것도 주일입니다. 구약의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그 지으심을 마치신 날로 정한 것이요 신약의 주일은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생명과 구원을 가져다 주신 부활을 기념하여 지치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주일의 그림자이고 주일은 안식일의 실체입니다. 안식일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손아귀에서 구원한 날을 기념한다면 주일을 택한 백성을 구원한 날을 기념합니다. 안식일이 세상을 창조하신 날을 기념한다면 주일을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이루어진 새창조의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백성으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복받은 시간 거룩하게 구별된 시간입니다.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기억하고 일하지 말고 온가족이 하나님께 나와 감사의 예배 은혜의 예배 축제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7.1.7

출처/ 열린교회 http://yeoli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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