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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늪 헤쳐 나오기

마가복음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362 추천 수 0 2010.08.21 21:4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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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5:25-34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성남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이번 한 주간은 예수님이 우리 인류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돌아 가신 날을 기념하는 고난 주간입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군병들의 책찍을 맞으시면서 십자가에 처절히 돌아가셨습니다. 골고다 언덕에서 험한 십자가를 지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히셨습니다.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옆구리는 창으로 찍히셨습니다. 반역자로 처형이 되었습니다.
지나가는 행인들은 머리를 흔들며 멸시와 조롱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것으로 생각하고 호산나를 외치며 요란을 떨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로마의 힘 앞에 무참하게 쓰러져 가자 "성전을 헐고 사흘만에 짓는다고 하던데 왜 그런 능력으로 죽어, 어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다 헛소리였거먼" 이런 식으로 조롱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은 예수님을 신성 모독죄로 처형합니다. "남은 잘 구원한더니 너나 구원해봐, 이스라엘 왕이라매 이스라엘 왕이면 내려와 봐, 그러면 믿어줄게"라고 조롱합니다. 로마 권력의 시녀인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을 모질게 고문하며 그 고문을 즐깁니다. 옆에서 사형을 같이 집행당하는 한 강도 마져도 예수님을 욕하며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눅 23:39)"고 조롱합니다. 왜 예수님은 이런 수치와 고난, 고통을 당하셨겠습니까?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이사야를 통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고통과 지옥의 형벌을 당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수치가 아니라 우리의 자랑이며 십자가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우리의 능력입니다. 성경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을 주는 능력입니다. 절망에서 소망을 주는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참된 평화를 주시는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질병과 슬픔을 해결해 주시는 능력입니다. 누구든지 진정 십자가를 만나면 삶의 질이 변화됩니다. 우리의 질병과 슬픔을 대신 지시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 3:3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오늘날도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학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증거를 보여 주어야만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숭이가 인간이 되었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우주가 어느날 폭발에 의해 발생되었다는 빅뱅설의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믿고 있습니다. 과학에서도 증명할 수 없으니까 이것을 "학설, 이론"이라는 말을 붙여 줍니다. "진화론, 빅뱅설" 그럴 듯하지만 증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실험으로 증명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법칙이라고 합니다. "만유 인력의 법칙, 질량불변의 법칙, 부력의 법칙, 죽음의 법칙" 등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물건은 중력의 법칙에 의해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인도 이런 법칙을 다 믿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진화론이 마치 과학적인 것이고 창조론은 믿으면 무식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약 200만종의 생물이 어떻게 진화되었겠습니까? 진화되었다면 연결고리가 되는 화석들이 발견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조새 하나가 발견되었다고 해서 파충류에서 조류로 진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중간 단계가 무수히 발견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진화의 증거가 아니라 창조의 증거로 어느 시대엔가 하나님이 창조했으나 멸종된 시조새가 있었을 따름입니다.
오히려 창조론이 훨씬 합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습니다. 세상이 얼마나 질서있고 아름답습니까? 위대한 지혜를 가지신 분이 창조했다는 증거입니다. 이 빌딩이 우연히 생겼다고 해 보십시오. 정신 나갔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주가 우연히 생겼다고 말하면 과학적입니까? 사람에게 설계도가 있습니다. DNA 구조입니다. 몰스 부호나 디지털 부호로 모든 것을 설계하지요. 인간이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전에 아데닌(A),구아닌(G), 시토신(C) 및 티민(T)를 통해 A-T와 C-G가 어떻게 결합되느냐에 따라 인간의 꼬와 입과 눈이 달라집니다. 유신론으로 살 것인가 무신론으로 살 것인가 양자 택일의 문제이지 과학적이다 비과학적이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사실 이순신 장군의 부하들이 만든 것입니다. 역사적 기록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그것 지금 증명할 수 있는 것 아닙니다. 우리는 시간의 제한을 뛰어 넘어 4차원에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기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보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를 거듭나게 하여 영적 지혜를 주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밀을 알게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이 때 니고데모가 물어 봅니다. 어떻게 거듭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요 3:4)" 이 때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라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난자도 하나의 생명체입니다. 정자가 수정되지 않으면 그것으로 생은 끝마치고 죽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정자를 만나면 새로운 생명체로 새로운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영혼이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새로운 세상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제 십자가가 수치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능력이요 우리의 영광입니다. 어떤 경우가 우리에게 닥쳐온다 하여도 십자가로 우리는 일어 설 수 있습니다. 어떤 고난의 늪에 빠져도 우리는 십자가로 헤쳐 나올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을 통해 고난의 늪에서 헤쳐나온 한 여인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Ⅰ. 고난의 늪에 빠진 인생
12년 동안 혈루증 걸린 여인이 있었습니다. 아마 부유한 집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병원에 찾아가는 것 자체가 경제력이 있어야 하는데 많은 의원을 찾아다녔다고 하니 부자였던 것 같습니다. 시집 갈 때는 푸른 꿈을 가지고 갔을 것입니다. 어쩌면 아들도 낳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혈루증에 걸렸습니다. 하혈하는 병입니다. 잘 살다가 갑자기 걸렸습니다. 당시 문둥병과 혈루증은 불치의 병으로 부정하다고 생각하여 가정에서도 마을에서도 쫓겨나게 되어 있었습니다.(레 15:25-28) 성전에 나가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12년 동안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해본 것을 보면 아마 동네 사람들에게는 숨기고 병을 치료했을 것입니다. 발각되면 자식을 두고 떠나야 합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떠나야 합니다. 정들었던 집을 떠나야 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래도 살기 위해 의사에게 희망을 걸고 수많은 의원을 찾아갔습니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26절을 보십시오. 찾아 간만큼 많은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있는 재산 다 허비해 버렸습니다.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병만 깊어졌습니다. 점점 죽음의 순간이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날마다 당하는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있는 것 다 잃었습니다. 사랑도, 재산도, 건강도, 집도, 가족도 다 잃어 버렸습니다. 깊은 늪에 빠져 버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깊은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있겠습니까?

Ⅱ. 깊은 늪에서 헤쳐 나오는 방법
1. 깊은 늪에서 헤쳐 나오려면 그 늪에서 건져 주실 분,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깊은 늪에 빠지면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혼자의 힘으로 빠져 나오려고 허우적 거리면 더욱 깊은 물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을 밖에서 건져내 줄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한계 상황을 만나게 합니다. 인식의 한계를 만나게 합니다. 능력의 한계를 만나게 합니다. 질병 앞에 서게 합니다. 죽음 앞에 서게 합니다. 무서운 고통 앞에 서게 합니다. 이 때 교만하지 말고 이 세상의 모든 능력과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 앞에 손들고 나와야 합니다. 이 여인의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고난은 예수님의 소리를 듣으라는 확성기일 때가 많습니다. 손들고 나오라는 주님의 은총의 기회입니다. 질병으로 고난의 늪에 빠졌습니까? 경제적인 고난의 늪에 빠졌습니까? 죽음의 공포, 고칠 수 없는 슬픔으로 고난의 늪에 빠졌습니까? 이 여인처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깊은 늪에 빠져들어 갑니다. 만약 이 여인이 이 병이 걸리지 않았으면 예수님을 만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하여도 성한 몸이었다면 예수님을 만나러 갔겠습니까? 우리 삶에 절망적인 상황이 올 때 그것으로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우리 인생에 근본적인 해답을 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 주님 앞에 진정으로 나아가면 주님께서 우리를 늪에서 벗어나게 할 것입니다. 저는 때때로 깊은 늪에 빠진 성도님들의 문제를 가지고 간절히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언젠가는 공장을 하는데 땅 값이 없어 고통받는 가정이 있어 마지막까지 고통받는 가정을 보았습니다. 고난의 늪에 빠져 있는 가정 해결해 달라고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전화해 보니 아무런 해결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마음에 감동을 줍니다. 이상한 감동입니다. “너가 해결해 주라는 것입니다.” 제가 무슨 돈이 있습니까? “아니야, 네가 해결해 주어야 해.” “그 거금이 제게 어디 있습니까?” 친구에게 전화를 하니 그 친구가 돈을 입금해 주어 그 성도님이 잔금을 다 해결하고 부지를 사 공장을 짓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깊은 늪에 빠진 자식의 문제입니까? 남편, 아내, 교회, 이 민족의 문제입니까? 내 눈에 그것이 보이며 그것 외면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 문제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길 원하십니다.
과기처 장관을 지내었고 현재 대학 총장으로 있는 세계적 핵물리학자인 정근모 박사(장로)의 간증을 읽어보았습니다. 아버지가 교장 선생님이었는데 학교에서 한 학생이 유리를 닦다 추락하여 죽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죄책감 때문에 결국 뇌일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도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유학을 가 학위를 받고 1967년 뉴욕 공과 대학의 부교수로 임명되었고 서른 둘에 한국 과학원의 부원장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간염으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답니다. 열 살 된 아들에게서 '만성 신장염' 증세 나타났습니다. 한번에 4시간이 소요되는 투석치료를 하였답니다.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질병의 늪에 빠져 버린 것입니다. 그는 과학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병을 났기 위해 교회에 찾아갔습니다. '구원'이니 '은혜'니 하는 말보다는 병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급했답니다. 아들은 학교 생활은 이미 포기한 상태였답니다. 이화 여대를 다닐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왔으나 지극히 형식적인 신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던 아내가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참신자”가 되자고 말했답니다. 아들은 부부의 걱정에는 아랑곳없이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답니다. 교회에서 4일간의 부흥회가 열렸답니다. 집회를 앞두고 준비 기도를 열심히 했답니다. "이번 부흥회에서는 성령체험을 하게 해주소서. 뜨겁게 회개하며 깨지는 역사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니고데모처럼 중생(born again)하는 크리스천이 되고 싶습니다." 목사님이 에베소 2장 1-8절 말씀을 봉독한 뒤 설교를 시작했습니다."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말씀을 듣는 중에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밤 예배시간이었습니다. 설교를 듣는 중에 다시 눈물샘이 터졌나왔습니다. 그때에 나는 너무나도 크고 분명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아들아, 너는 네 아들에 대해 감사해 본 적이 있느냐?" 그건 뚜렷한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교만함과 불만에 가득찼던 생활을 회개했답니다. 죄악들을 고백할 때마다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답니다. 대성통곡을 하였답니다. 체면이나 지위도 아랑곳없이 엉엉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와 두 딸이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아들도 고개를 떨구며 울었습니다. 아들은 생명을 연장받고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답니다. 일의 우선 순위가 바뀌었답니다. 첫째가 하나님 일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세상일이 바쁘고 중요하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야 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앞장서서 살기로 했답니다.
어떤 늪에 빠져 있습니까? 우리 주님이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주님 손을 잡으십시오.

2. 깊은 늪에서 헤쳐 나오려면 예수님을 만나는 데 방해하는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1)먼저 뛰어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자신의 마음의 장애물입니다.
마음이 변해야 인생은 변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은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면 그 사람은 그 정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스마르크와 친구가 사냥을 갔는데 친구가 늪에 빠졌답니다. 그 때 친구가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쳤답니다. 비스마르크는 일언 반구 하지 않고 갈려고 하니까 친구가 계속 살려 달라고 했답니다. 그 때 비스마르크는 그에게 총을 겨누었답니다. “늪에 빠져 고통당하면서 죽는 것보다 네 총을 맞아 죽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친구는 살려고 발버둥을 쳤답니다. 그 때 비스마르크는 그를 늪에서 꺼내 주며 “나의 총은 너의 생각을 겨냥한 거야”라고 말했답니다. 사람의 생각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 여인이 모든 것 다 잃었고 12년 동안 그 많은 의원을 만났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자포자기 했다면 결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여인을 혈루증으로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았지만 아직 들을 귀가 있었습니다. 아직 걸어 갈 수 있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아직 말할 수 있는 입이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집은 어쩔 수 없이 망한다. 우리 남편은 절망적이다. 우리 아들은 변할 수 없다. 우리 나라는 절망적인 나라다. 우리 교회는 부흥하지 못한다....“ 나는 못해도 우리 주님께서 나를 사용하면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능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풍성한 결실을 맺는데 장애되는 마음 세가지를 소개합니다.(마13장) 1) 길가(4, 19)같은 마음입니다. 마음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복음을 받아 들이기를 거부한 자를 말합니다. 교만한 마음입니다. 반응이 없는 마음입니다.
2) 돌밭(5,20,21)같은 마음입니다. 말씀을 피상적으로 이해합니다. 속이 깨어지지 않습니다. 감정에 지배받는 신앙입니다. 충동적인 마음(Impulsive heart)입니다. 3) 가시 떨기(7,22)같은 마음입니다. 필요 없는 것들이 꽉차있는 마음입니다. 세상의 염려, 재리의 유혹, 일락으로 가득찬 마음입니다.

2)관습이라는 환경의 장애물을 극복해야 합니다.
당시 관습은 혈루증 앓는 여인이 돌아 다닐 수도 없고 사람을 만날 수도 없습니다. 어찌 보면 요즈음 말로 하면 매너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얼굴 들고 예수님께 나아갈 형편이 못됩니다. 그러나 관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체면이 문제가 아닙니다.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불교 집안이기 때문에, 전통적인 유교 집안이기 때문에, 이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이정도의 인격자인데...”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녀는 사회 통념상 여자로서 뿐 아니라 부정한 자로서 공중(公衆) 앞에 나설 수 없는(접촉 불가) 입장이었으나 그러한 사회, 종교적 장애를 극복하고 담대히 예수께 접근했던 것입니다(레 15:19-27).

3)사람이라는 경쟁자의 장애물을 극복해야 합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경쟁자들이 있습니다. 아무다 다 질병에서 고침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물론 주님께서 하시려고 계획을 세우면 돌들로도 소리지르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렇게 사역하시지 않습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이 여인이 자신은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리고 아무 것도 없다고 머뭇거렸다면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아직 걸어 갈 수 있는 다리가 있었습니다. 아직 말할 수 있는 입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다. 나에게 주신 것을 가지고 열정을 내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열정, 모세의 열정, 다윗의 열정, 야곱의 열정, 요셉의 열정이 필요합니다. 불타오르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방해한다고 해도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끼어 들어가 옷에 손을 댑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길은 죽음을 각오한 길이었습니다.
무리 가운데 썩여 뒤로 가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을 한 것입니다. 당시 문둥병 환자와 혈루증 환자는 격리 수용되었고 성에서 쫓겨났습니다. 정상인에게 손을 댈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돌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접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고난의 늪에서 벗어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인생의 비시와 에디가 나꾸어져 버립니다. 우리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 받을 수 있는 예수님을 만나는 데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종류는 다르지만 예수님을 믿고 행복한 삶을 살려고 하는데 장애물이란 있는 것입니다. 그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3. 깊은 늪에서 헤쳐 나오려면 믿음의 생명줄을 잡고 나와야 합니다.
대부분 어떤 일이 잘 못될 때는 방법이 잘못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서울을 가려고 하는데 경부선을 타고 부산쪽으로 나가면 안됩니다. 이 여인은 잃은 건강을 찾기 위하여 의원을 찾았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병은 의사가 낳을 수 있는 병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불치의 병이었습니다. 그것은 상식이고 임상 결과였습니다. 그런데 의사를 찾아가면 낳을 것이라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아니면 저 사람을 통해 낳을 수 있겠지? 이 약이 아니면 저 약으로 낳을 수 있겠지?” 그러다 보니 결과는 무엇입니까? 괴로움은 더욱더 심해지고 있던 돈 다 허비해 버렸습니다. 효험은 없고 병을 더 깊어졌습니다. 잘못된 방법의 결과입니다. 이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사용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1)듣고 믿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27).
2)예수님을 만지기만 하여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28). 절대적인 믿음을 가진 것입니다. 내가 그 옷에만 손을 대어도 낳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함일러라"(엘레겐)는 미완료 시제로서 그녀가 마음속으로 그 같은 사실을 되뇌이고 또 되뇌였음을 보여 주는 말입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34절 보십시오. 이 여인의 믿음입니다. 믿음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고난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예수님께 나가면 우리 예수님은 어떻게 대해 주십니까? 사람들은 혈루증 환자라고 불결하게 취급하고 짐으로 취급합니다. 가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그녀를 딸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딸이 된다는 것 얼마나 고귀한 일입니까?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분의 딸이 되면 재산을 잃은 것, 건강을 잃은 것, 명예를 잃은 것, 직장을 잃은 것 무엇이 대수가 되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인데 얼마나 필요한 때 필요한 것으로 주시겠습니까? 영원한 천국이 우리의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혼의 구원을 받습니다. 질병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뿐입니까? 살롬, 인생의 평안을 선물로 받습니다. 영혼의 구원, 생활의 구원, 육체의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 여인의 삶은 완전히 치료되었습니다. ①예수의 소문을 듣고 믿음을 가졌습니다.(29) ②예수를 따랐습니다(27). ③믿음에 따라 행함으로 치료받았습니다.(27) ④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병 나은 것을 고백(33)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①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34)선포를 들었습니다. ②평안히 가라(34) "평화의 상태를 지니고 가라"고 말씀합니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평화의 은총을 선사하신 것입니다. ③병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34) ④건강해져라(34)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우리의 삶에 이런 환희가 있습니다. 죄인 취급받던 여인이 예수님으로부터 딸 취급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우리 주님 앞에 설 때가 옵니다. 누가복음에 나타난 부자를 보십시오. 불꽃가운데 고통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잃으면 영원을 잃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사람들은 비록 이 땅에서 고통의 늪에 갇히기도 하지만 주님 앞에 서는 날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 7:17)"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 21:4)"라고 말씀합니다. 고난 주간입니다. 깊은 늪에 빠져 있습니까?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우리 주님이 우리가 고난의 늪 속에 빠져 죽어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어떤 늪에 빠져있습니까? 그 늪이 경제의 늪입니까? 교만의 늪입니까? 중독의 늪입니까? 섭섭의 늪입니까? 명예의 늪입니까? 속임의 늪입니까? 권력의 늪입니까? 악한 습관의 늪입니까? 게으름의 늪입니까? 핑계의 늪입니까? 회의의 늪입니까? 증오의 늪입니까? 질병의 늪입니까? 의심의 늪입니까? 고통의 늪입니까? 절망의 늪입니까? 이별의 늪입니까? 걱정의 늪입니까? 실패의 늪입니까? 질투의 늪입니까? 욕심의 늪입니까? 오늘 이 시간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막 5:34)"라는 말씀이 여러분과 저의 생에 있기를 바랍니다.

2007년 4월 1일/열린교회/김필곤 목사

출처/ 열린교회 http://yeoli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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