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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9:1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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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수 목사 |
참고 : |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
의심 섞인 희미한 믿음도 믿음은 믿음입니다
본문/ 막9:14-29, 마17:14-20, 롬1:17
1. 들어가는 이야기
바울 사도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고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믿음에 이르게 하는 그 처음 믿음은 처음부터 완벽한 믿음인가? 오늘 본문의 사건이 그 처음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 본문의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예수께서 세 제자와 함께 변화산에 오르신 후 나머지 제자들이 산밑에 있는데, 한 아버지가 벙어리 귀신들린 그 아들을 데리고 찾아와 고쳐주기를 원하였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려고 힘썼지마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 하였습니다. 그 아이의 아비는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쩔쩔매는 것을 보고 잔득 기대하고 왔던 믿음에 상처를 입고 의심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 그 때,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그 아버지는 제자들의 선생이신 예수시라는 말을 듣고 선생이라니까 제자들보다야 낫겠지 하는 마음이었으나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 아버지의 말인즉 “주의 제자들은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마17:16),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막9:22)“ 라고 하였습니다. 의심 섞인 말투가 분명합니다.
의심이 섞인 그 아비의 말에 예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는 저 유명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의 아비는 예수의 권위 있는 그 말씀에 화들짝 놀라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9:24)” 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주님 죄송합니다. 제가 주님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잠시 의심이 들었나이다. 주여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기시고 나의 믿음을 회복시켜 달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는 그 정경을 보시고 그 아비의 믿음을 회복시켜주시고, 그 아이에게 들어간 귀신을 쫓아내고 그 아이를 온전케 하여주셨습니다.
그 아버지와 아들이 돌아 간 후 제자들이 “주님 어찌하여 우리는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라고 여쭈었습니다. 이 질문의 답변으로 마가복음에는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고 하였고, 마태복음에는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라고 대답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3. 본문의 사건이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 의심 섞인 믿음도 믿음입니다.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도 좋습니다. 아무리 희미한 믿음이라도 좋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아이의 아비는 의심 섞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할 수 있으면 한 번 해 보시지요” 하는 투의 반신반의의 믿음이었습니다. 희미한 믿음이요, 의심 섞인 믿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믿음입니다.
본문에 보면 우리 주님은 그 아비의 그런 희미한 믿음, 의심 섞인 믿음도 믿음으로 인정하시고 그 믿음을 근거로 더욱 큰 믿음으로 성장시켜주시고 변화시켜 주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겨자씨 만한 믿음이 어떻게 산을 옮길 수 있는가?
바울 사도가 말씀하신 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고 하셨을 때 그 처음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에 이르게 하는 그 처음 믿음이 처음부터 완전하고 태산같은 그런 믿음이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에 이르게 하는 그 처음 믿음>은 약한 믿음, 반신반의하는 희미한 믿음, 의심 섞인 그런 믿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이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은혜로 점점 자라나 태산같은 믿음이 되어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자 씨 만한 믿음으로 그 무슨 변변한 일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왜 예수는 한 겨자 씨 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신 것인가? 그 뜻은 그 겨자 씨 만한 믿음이 점점 자라서 태산을 이루어 그런 위대한 일도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희미한 믿음이나마 없다면 애당초 아무런 일도 일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겨자씨라고 하신 말씀 속에는 이미 겨자씨가 비록 작다해도 큰 나무로 성장한다는 겨자씨의 비유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믿음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믿음의 결과에 대하여 베드로 사도는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9)”고 명쾌하게 정의하셨습니다. 그 아이의 아비는 희미한 믿음, 의심 섞인 믿음, 겨자 씨 만한 믿음이었으나 우리 주님께서 그 믿음을 태산같은 믿음으로 변화시켜 주시어 육신의 구원과 영혼의 구원을 받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4. 마치는 이야기
희미한 믿음도 좋습니다. 의심 섞인 믿음도 좋습니다. 겨자 씨 만한 믿음도 좋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그런 믿음을 태산 같은 믿음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 주신다는 우리 주님의 약속이 바로 복음입니다.
주간<말씀의 샘물>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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