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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막8: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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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
광야 7,8월호를 보면 고희를 맞이한 가수 현미 권사님의 간증이 실려 있습니다. 어릴 때 김일성에게 어린이 대표로 꽃다발 주었답니다. 6.25가 터지면서 대구로 피신하여 미신에 의존하는 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1979년 연예인 교회 동료들이 전도를 하였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답니다. 단골로 다니던 금도사에게 물어 보았더니 “예수 믿으면 벼락 맞아 죽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에 가서 동생의 전도로 교회에 처음 나갔는데 성가대에서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라는 찬양을 불렀는데 그 찬양을 듣고 그때부터 눈물이 나오는데 예배시간 내내 엉엉 소리내며 울었답니다. 예수님 체험을 한 것입니다. 성령님 체험을 한 것입니다. 한국에 돌아와 집안 곳곳에 붙여 놓은 부적을 다 떼었답니다. 이불, 베개, 지갑, 방 모두 17개가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 목에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노래를 너무 많이 불러 성대에 무리가 생겼고 그 결과 성대 양쪽으로 혹이 8개나 생겼다고 합니다. 주치의는 혹을 떼면 목소리가 변해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을 것이라고 사형선고를 내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술을 미루고 찬양을 부르기 위해 미국으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각 나라 대사들 앞에서 찬양을 부르다가 한 달 반 만에 귀국하였는데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병원에 검사를 받아 보니 혹 8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통한 능력체험을 한 것입니다. 이 후부터 무조건 “예” “아멘” 신앙을 가졌다고 합니다. 확실한 신앙 체험을 하면 그만큼 삶이 달라집니다. 목사님이 말씀하면 무조건 “예”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며 무조건 “예”라는 신앙을 가졌답니다. 전도하기 위해 열심을 다하고 있다고 합니다. 20년 동안 언니를 전도를 했는데 그 언니가 예수 믿고 지금은 지하철에서 전도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가 생깁니다. 예수님이 단지 4대 성인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체험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해주신 구세주라는 것을 체험하면 인생의 폭이 달라집니다. 보이지 않는 천국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절망하는 자가 소망을 갖습니다. 세상 쾌락이 헛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합니다. 의미없는 인생을 사는 자들이 인생의 목표가 분명해집니다. 욕심에 따라 사는 자들이 성령에 이끌리어 살게 됩니다.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살던 마음이 좁은 자들이 마음이 넓어져 세계를 품습니다. 기쁨이 없는 자들이 기쁨을 갖게 됩니다. 남을 비판하고 시기하던 자들이 사랑하고 용서하게 됩니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이 새로운 소망을 갖게 됩니다. 없는 자들이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으로 큰 기적을 일으키는 자들이 됩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저와 우리 성도님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1.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1-3)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이야기입니다. 이방 땅 데가볼리에서 예수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쳐 주니까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직접 체험하기 보다는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입니다.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신 이적과 갈릴리 호수 주변에서 행하신 이적으로 예수님께 큰 관심을 가지고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선 호기심으로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질병을 고침받기 위해 온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직접 체험하기 위해 온 사람들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약 4천명이었다고 했습니다(9). 마태복음 15장 38절에는 더 자세히 여자와 아이를 제외한 남자만 4천명이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만 명은 넘었을 것입니다. 3일 동안을 집에 가지 않고 예수님 곁에 있는 것을 보면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질병을 고침받고 말씀을 들으면 참으로 이제까지 체험받지 못한 신비한 체험을 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했을 것입니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와 먹으면서 인생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예수님께 집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3일이 지나자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저희를 굶겨 집으로 돌려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는 백성을 보면서 불쌍히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5천명을 먹이 때도 그 근본 동기가 긍휼이었습니다(막6:34). 우리를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우리의 궁핍과 필요를 감찰하시고 개개인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이십니다. 긍휼은 죄를 용서해 주는 것과 조롱당하는 자와 궁핍한 자를 동정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는 남을 불쌍히 여겨서 돕는 것입니다. 성경적 의미는 흘러 넘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시는 하나님께서 한없이 약하고 악한 사람들을 대할 때 보여 주시는 태도를 말합니다. 불쌍히 여긴다는 말로도 번역이 되고, 민망히 여긴다는 말로도 번역이 됩니다. 예수님의 그 긍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보는 마음은 바로 긍휼의 마음입니다. 만약 우리를 괘씸한 마음으로 보신다면 우리 인생은 망합니다.
마태복음 9장 36절을 보면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보실 때 그가 잘 살든지 못 살든지, 그가 귀족이든지 천민이든지 상관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고통 중에 있는 자를 긍휼이 여겼습니다.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병든 자, 장애인, 세상에서 버림받고 천대받는 죄인들, 귀신 들린 자, 이런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나환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이 손을 내밀어 문둥이 몸에 대시면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이 시간 말씀을 들으면서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님,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오늘 무슨 문제를 가지고 교회에 왔습니까?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처럼 긍휼히 여김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긍휼이 필요한 사람이고 주님 앞에 나오면 모두 긍휼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국민일보에 연재되는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란에 다양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자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경험했는가를 소개하는 난입니다. 6월 28일에는 고려오페라단 김수길 단장의 간증이 나와 있었습니다. 긍휼히 여겨주시는 예수님을 체험하신 분입니다.
어머니를 따라 초등학교 2학년 때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가 중고등부 학생회장뿐 아니라 고3 때 성가대 지휘를 맡았고 서울음대 기독학생회장직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 그런 하나님을 내가 정말 만난 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고 있었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대학 졸업 후 독일 하이델베르크 만하임 음악대학원으로 유학, 뼈를 깎는 고학으로 4년 만에 졸업한 뒤 귀국, 교수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미주 공연과 남북 공동 제작 공연을 기획하고 있던 2004년 9월 21일, 대장암 말기라는 진단은 한 마디로 청천병력이었답니다. 3~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고 수술대에 누웠을 때는 이미 암세포가 간과 복막으로 전이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수술 후 항암치료를 6회나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절실히 필요한 때인 것입니다. 어차피 죽는다면 병원에서 비참하게 죽기는 정말 싫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단했다고 합니다. 그는 간절하고 진솔하게 하나님께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30년 넘게 교육자로 살았으니 교단에서, 예술가답게 무대에서, 간증 찬양을 하다가 교회 강단에서 쓰러지게 하옵소서." 말씀을 읽던 중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는 말씀이 위로가 됐고 생명줄이 되었다고 합니다. 영이 살면 육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이 왔다고 합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다면 그분께서 주장하실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대의학의 위력을 저버리고 병원문을 나섰다고 합니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검사는 물론 한 번도 병원을 찾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주위 의사들까지 의학적으로는 도저히 이해도 설명도 할 수 없는 기적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강렬했던 무대 조명과 황홀했던 박수 갈채를 뒤로하고 이제는 주님의 나귀가 되어 간증하며 기뻐하며 좋은 신앙이 되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암은 더 이상 내게 장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일 뿐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문제를 다 알고 계십니다. “나는 긍휼히 필요한 사람입니다. 주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우리 주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던 우리 주님 앞에 나아가면 우리 주님을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실 것입니다.
2. 우리를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4-8).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대답하였습니다. 전에 이미 유대인들 장정 5천명을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먹이시는 예수님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반문합니다. “이 광야에서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불리 할 수 있으리이까?”라고 질문합니다. 불신앙적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이곳은 광야라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제안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무기력했으며 부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많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갖가지 이적을 보면서도 무엇을 이룰만한 조건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신앙 생활하면서도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고 기업을 이룰만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고, 교회를 세울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도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봉사할 힘이 없다고 합니다. 자녀를 가르칠 돈이 없다고 합니다. 이런 제자들의 신앙적 태도를 볼 때면 이해가 잘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5병 2어의 기적을 경험한 지가 얼마되지 않고 바로 전에도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쳐 주었는데 불신앙적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은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결정된 인간의 태도를 고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바로를 보십시오. 그렇게도 기적을 보여주었는데도 변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강퍅합니다. 시기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사울을 보십시오. 그렇게 많은 기회를 주었는데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그 많은 기적을 보여주었는데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모세를 원망하고 좌절합니다. 심리학자들으니 이것을 프레임으로 설명을 합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늘 부정적인 프레임을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을 한다는 것입니다. 서울대 최인철 심리학 교수가 “프레임”라는 책을 썼습니다. 사람마다 프레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다.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세상을 관조하는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어른이 되어도 인생의 깊이를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관대해지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것은 보는 방식이 조금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접근 프레임을 가진 사람이 있고 회피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모세는 12명의 정탐꾼 예를 듭니다. 10명은 회피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2명은 접근 프레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회피 프레임을 가진 사람은 늘 안주한다고 합니다. 자신을 보호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시도하여 성취감을 맛보기보다 일을 도모하다 망신당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서 자신을 보호하려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접근 프레임을 가진 사람은 성취하는 사람이고 보상에 주목한다고 합니다. 접근 프레임을 가진 사람에 의해 세상은 발전되고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비행기가 발명되고 우주선도 탄생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행복하기 원하면 자기 중심 프레임에서 벗어나라고 합니다. 행복과 성공은 접근 프레임을 가진 사람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긍정의 언어로 말하라고 합니다. 프레임을 바꾸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 언어를 바꾸는 것이라고 합니다. 긍정적인 언어로 바꾸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나아가 성경적인 프레임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적 사고의 틀로 사고의 기본틀을 짜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 이성 우선이 아니라 신앙 우선, 현세가 아니라 내세 중심의 프레임을 가지는 것입니다.
지금 만여명의 사람들이 굶주린 절박한 상황에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제자들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희망적입니다. 5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느냐?” 지금 있는 것을 물어 보십니다. 최선을 다해 찾아냅니다. 만 명에 비하면 보리떡 일곱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조족지혈에 불과합니다. 이성적이고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사람들이 보면 배꼽 잡고 웃을 숫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합니까? 굶주린 무리들에게 직접 명하여 땅에 앉게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받았지만 이들은 오병 이어의 기적을 체험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원망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작은 것을 가지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주어 굶주린 백성 앞에 놓게 하였습니다. 작은 생선 두어마리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나 거두었습니다. 작은 것으로 풍성함을 누리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주실 뿐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작은 것으로 풍성하게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체험하여야 합니다. 보리떡 7곱개가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그 사람이 자기 것 빼앗겼다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빼앗긴 것아 아닙니다. 심은 것입니다. 씨앗이 된 것입니다.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필요한 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눅6:38). 예수님은 만유의 주로서(대상29:11) 지극히 충만하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요1:16) 성도의 필요를 먼저 아시는 분이십니다(마6:32). 우리는 환난과 궁핍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의뢰하여 해결책을 찾으려 해야 합니다. 스스로 고민하고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근시안적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작은 것으로도 우리를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국민일보에 연재되는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란에 다양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자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경험했는가를 소개하는 난입니다. 서울대 법대와 대학원을 나온 조배숙 국회의원은 예수님을 1979년 2월에 영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사법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방황하고 있었답니다. 그 때 친구의 전도를 받았답니다. 그녀는 건강이 몹시 좋지 않았는데 예수님을 영접한 뒤 건강도 되찾고 삶도 변화됐다고 간증 듣고 사법시험 준비로 지쳐 있던 그 때 초월적인 존재에 자신을 맡기고 싶었답니다. 다는 때 같으면 법학도답게 논리적으로 신앙을 부정했을 텐데 친구의 권위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교회가는 시간이 낭비고 신앙 생활이 소비하고 생각했을 텐데 매주일 아침 7시 예배를 드리고 도서관으로 향했답니다. 난생 처음 복음서를 읽었고 구약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송이꿀처럼 말씀이 달았답니다. 성경 읽는 것이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찾아 왔다고 합니다.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았다고 합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겼답니다. 특히 사고가 180도 긍정적으로 변한 것이 놀라웠다고 합니다. '왜 진작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가. 대학교 1~2학년 때부터 하나님을 믿었다면 내 인생이 엄청나게 변화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풍성히 채워주시는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때가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 기간이었답니다. 고시를 앞에 놓고 신비한 꿈을 꾸었답니다. 꿈에 법관이 나타나 자신에게 법복을 건네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법복에는 '검사 조배숙'이라고 쓰여 있었고 조금 지나니 '판사 조배숙'이라고 씌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그것을 성령님이 주신 꿈으로 생각하며 내게 사법시험 합격을 허락하셨다는 하나님의 응답으로 받아들였답니다. 꿈처럼 1년 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검사로 임명됐고 4년 후 판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근무하던 곳마다 신우회를 조직하고 성경공부를 했고 점점 신앙도 자라 교회에서 집사에 이어 권사라는 직분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새벽기도에 나가 기도를 하면서 세심한 부분까지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심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풍성히 채워 주시는 하나님께서 16대에 이어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바쁜 일과 중에서도 하루에 1시간 이상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분은 말하기를 만약 그때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면 오늘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3. 연약한 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9-10).
우리 같으면 이 정도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조처를 취하겠습니까? 자신의 자존심을 조금만 상하게 해도 원수를 만들어 버리는 세상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들어 주지 않으면 원수로 삼고 상대를 죽이려는 세상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돕고 가르쳐서 앞으로 주님의 대리적 사역을 위해 특별히 세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불신앙적인 것입니다.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늘 땅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늘 인간의 일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신 것을 보지 않고 늘 없는 것만 보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예수님의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당시 불치병인 문둥병자를 고쳐 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혈루증 앓은 여인, 중풍병자, 귀먹은 사람을 고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바다를 잔잔케 하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남자만 5천 명을 먹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2년을 넘게 예수님을 쫓아다니면 말씀을 배우고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신앙의 진전이 없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어쩌면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답답해하시지 않고 기적의 현장에 동참을 시킵니다. 굶주린 백성에게 나누어주게 합니다. 사람들을 다 보내고 제자들을 어떻게 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다 지방으로 갑니다. 함께 항해하는 모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함께 하며 훈련시키시는 예수님의 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지만 부활하신 후 다시 찾아가 회복시키시고 세우시는 모습을 봅니다. 이런 체험을 하게 되면 우리는 예수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괘씸히 여기신다면 우리 인생은 끝이 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어떤 처지에서도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와 함께 하며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언제 어느 때나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체험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 체험으로 힘있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연약한 신앙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대한 제지 대표이사인 양승학 장로님의 간증을 잃어 보았습니다.
북한에서 태어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며 아버지가 세운 대한 제지를 하나님의 기업의 모델로 삼겠다는 꿈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공산당에게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난 체험을 한 아버지는 믿음으로 회사를 경영했다고 합니다. 1959년 서울 광장동에 대한제지 공장을 설립하고 공장이 가동되자마자 산업전도회를 만드시고 휴게실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8년 후 신앙 생활을 잘하게 하기 위해 교회 건축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반대했다고 합니다. 자신도 반대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교회는 좀 이따가 건축해도 됩니다. 일단 회사부터 살리고 추진합시다. 그리고 교회 지을 돈은 어디서 나옵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돈은 구하면 되지. 회사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교회 세우는 게 먼저야. 여러 말 말고 내가 하자는 대로 해!" 회사 재정은 극도로 어려운 데다 뇌졸중 증세로 건강이 크게 나빠져 있던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더 이상 교회 건축을 반대하지 않고 가족과 회사 직원들이 기쁨으로 도왔다고 합니다. 그때 장로님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일을 재단하지 말자는 각오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회사의 재정상태는 점점 나빠져 갔다고 합니다. 은행의 부채상환 압박이 갈수록 심해지자 정신적 압박감도 커져 갔다고 합니다. 그에 따라 아버지의 건강도 갈수록 악화돼 한쪽 팔다리가 거의 마비상태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하나님께 더욱 강하게 매달리셨다고 합니다. 불편한 몸으로 새벽 기도에 갔다고 합니다. 교회 건축을 기점으로 심기일전해 회사를 성장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합니다. 이 때 주권자로 인정했던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커져갔다고 합니다. 설사 하나님이 전지전능할지라도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우리 가족이 얼마나 지극히 하나님과 교회를 섬겼는데'라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몸의 반쪽이 마비된 상태서도 매일 새벽기도를 빠뜨리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게 가벼워서는 안된다"면서 기도를 멈추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당신의 믿음과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을 거예요"라면서 아버지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기도할 수 밖에 없어 온 가족과 직원들이 합심하여 기도했다고 합니다. 6년 만에 드디어 법정관리가 해제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 장로님은 기도의 능력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회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섰을 때 어머니가 당부하셨답니다. "얘야, 모든 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덕분이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항상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결정을 하거나 실행할 때는 하나님께 도우심을 청하며 기도를 앞세워야 한다."
언제부턴가 장로님의 마음속에는 광현교회를 본래 주인인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생겼답니다. 1988년 비로소 모든 비용을 대어 교회를 새로 지었다고 합니다. 교회는 크게 부흥했고 대지 400평, 연건평 1200평 8층 규모의 교육관을 건립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사는 IMF 사태로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은행의 압박과 외국계 기업의 인수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경영권을 내 주어야 할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그 때 매일 매시간 욥기를 묵상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회생할 가능성이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럴 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여, 주여…." 이 때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네가 해라!" 그전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다른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면 자신과는 무관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 성경을 꺼내 욥기를 펼쳐 읽었다고 합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욥 42:2)라는 말씀이 들어 왔다고 합니다. 힘을 얻어 전직원을 모아 놓고 "오늘부터 새로운 각오로 일합시다. 내가 계속 회사를 운영하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회사를 살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일만 하면 됩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은행에서도 대한제지를 정리대상 1호로 꼽았지만 자신 만만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실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합니다. 직원들에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여러분도 회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당부하고 거처를 공장으로 옮기고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고 합니다.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맨 먼저 은행에서 부채 상환을 유예해주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직원들의 태도가 변하여 활기차게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불과 2년만에 회사는 완전히 정상 궤도에 올라섰다고 합니다. 사옥을 짓는 계획도 순풍에 돛을 단 듯이 착착 진행되었고 회사는 어디에 내놔도 우량 기업으로 평가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섯 자녀와 손자 손녀들이 모두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합니다. 대한제지의 산업전도회에서 8명의 목회자가 배출했다고 합니다. 대한제지를 기반으로 국내에 3개의 교회가 세워졌고 세계에 수십 명의 선교사가 파송되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집 적산가옥을 개조하여 대원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월남한 대학생들에게 머무르도록 하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학비도 보조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10여명의 장성과 많은 고위 공무원, 교수들이 배출됐다고 합니다.
예수님 체험이 중요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1-3)
우리를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4-8).
연약한 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9-10).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7.7.15
1.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1-3)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이야기입니다. 이방 땅 데가볼리에서 예수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쳐 주니까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직접 체험하기 보다는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입니다.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신 이적과 갈릴리 호수 주변에서 행하신 이적으로 예수님께 큰 관심을 가지고 모여들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선 호기심으로 온 사람도 있을 것이고, 질병을 고침받기 위해 온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직접 체험하기 위해 온 사람들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약 4천명이었다고 했습니다(9). 마태복음 15장 38절에는 더 자세히 여자와 아이를 제외한 남자만 4천명이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만 명은 넘었을 것입니다. 3일 동안을 집에 가지 않고 예수님 곁에 있는 것을 보면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질병을 고침받고 말씀을 들으면 참으로 이제까지 체험받지 못한 신비한 체험을 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했을 것입니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와 먹으면서 인생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예수님께 집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3일이 지나자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저희를 굶겨 집으로 돌려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는 백성을 보면서 불쌍히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5천명을 먹이 때도 그 근본 동기가 긍휼이었습니다(막6:34). 우리를 보시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우리의 궁핍과 필요를 감찰하시고 개개인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이십니다. 긍휼은 죄를 용서해 주는 것과 조롱당하는 자와 궁핍한 자를 동정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는 남을 불쌍히 여겨서 돕는 것입니다. 성경적 의미는 흘러 넘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하시는 하나님께서 한없이 약하고 악한 사람들을 대할 때 보여 주시는 태도를 말합니다. 불쌍히 여긴다는 말로도 번역이 되고, 민망히 여긴다는 말로도 번역이 됩니다. 예수님의 그 긍휼로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보는 마음은 바로 긍휼의 마음입니다. 만약 우리를 괘씸한 마음으로 보신다면 우리 인생은 망합니다.
마태복음 9장 36절을 보면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보실 때 그가 잘 살든지 못 살든지, 그가 귀족이든지 천민이든지 상관하지 않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고통 중에 있는 자를 긍휼이 여겼습니다.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병든 자, 장애인, 세상에서 버림받고 천대받는 죄인들, 귀신 들린 자, 이런 사람들을 주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나환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이 손을 내밀어 문둥이 몸에 대시면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이 시간 말씀을 들으면서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님,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오늘 무슨 문제를 가지고 교회에 왔습니까? 긍휼히 여기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처럼 긍휼히 여김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긍휼이 필요한 사람이고 주님 앞에 나오면 모두 긍휼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국민일보에 연재되는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란에 다양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자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경험했는가를 소개하는 난입니다. 6월 28일에는 고려오페라단 김수길 단장의 간증이 나와 있었습니다. 긍휼히 여겨주시는 예수님을 체험하신 분입니다.
어머니를 따라 초등학교 2학년 때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가 중고등부 학생회장뿐 아니라 고3 때 성가대 지휘를 맡았고 서울음대 기독학생회장직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또 그런 하나님을 내가 정말 만난 적이 있었는지는 모르고 있었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대학 졸업 후 독일 하이델베르크 만하임 음악대학원으로 유학, 뼈를 깎는 고학으로 4년 만에 졸업한 뒤 귀국, 교수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미주 공연과 남북 공동 제작 공연을 기획하고 있던 2004년 9월 21일, 대장암 말기라는 진단은 한 마디로 청천병력이었답니다. 3~6개월의 시한부 선고를 받고 수술대에 누웠을 때는 이미 암세포가 간과 복막으로 전이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수술 후 항암치료를 6회나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절실히 필요한 때인 것입니다. 어차피 죽는다면 병원에서 비참하게 죽기는 정말 싫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단했다고 합니다. 그는 간절하고 진솔하게 하나님께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30년 넘게 교육자로 살았으니 교단에서, 예술가답게 무대에서, 간증 찬양을 하다가 교회 강단에서 쓰러지게 하옵소서." 말씀을 읽던 중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는 말씀이 위로가 됐고 생명줄이 되었다고 합니다. 영이 살면 육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이 왔다고 합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다면 그분께서 주장하실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대의학의 위력을 저버리고 병원문을 나섰다고 합니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검사는 물론 한 번도 병원을 찾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주위 의사들까지 의학적으로는 도저히 이해도 설명도 할 수 없는 기적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강렬했던 무대 조명과 황홀했던 박수 갈채를 뒤로하고 이제는 주님의 나귀가 되어 간증하며 기뻐하며 좋은 신앙이 되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암은 더 이상 내게 장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쓰시는 도구일 뿐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문제를 다 알고 계십니다. “나는 긍휼히 필요한 사람입니다. 주님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우리 주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던 우리 주님 앞에 나아가면 우리 주님을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실 것입니다.
2. 우리를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4-8).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대답하였습니다. 전에 이미 유대인들 장정 5천명을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먹이시는 예수님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반문합니다. “이 광야에서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불리 할 수 있으리이까?”라고 질문합니다. 불신앙적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이곳은 광야라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제안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무기력했으며 부정적인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많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공급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갖가지 이적을 보면서도 무엇을 이룰만한 조건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신앙 생활하면서도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고 기업을 이룰만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고, 교회를 세울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도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봉사할 힘이 없다고 합니다. 자녀를 가르칠 돈이 없다고 합니다. 이런 제자들의 신앙적 태도를 볼 때면 이해가 잘 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5병 2어의 기적을 경험한 지가 얼마되지 않고 바로 전에도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쳐 주었는데 불신앙적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은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결정된 인간의 태도를 고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바로를 보십시오. 그렇게도 기적을 보여주었는데도 변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강퍅합니다. 시기의 종이 되어 살아가는 사울을 보십시오. 그렇게 많은 기회를 주었는데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그 많은 기적을 보여주었는데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모세를 원망하고 좌절합니다. 심리학자들으니 이것을 프레임으로 설명을 합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도 늘 부정적인 프레임을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을 한다는 것입니다. 서울대 최인철 심리학 교수가 “프레임”라는 책을 썼습니다. 사람마다 프레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프레임은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다.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세상을 관조하는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어른이 되어도 인생의 깊이를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관대해지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것은 보는 방식이 조금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접근 프레임을 가진 사람이 있고 회피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모세는 12명의 정탐꾼 예를 듭니다. 10명은 회피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2명은 접근 프레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회피 프레임을 가진 사람은 늘 안주한다고 합니다. 자신을 보호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시도하여 성취감을 맛보기보다 일을 도모하다 망신당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서 자신을 보호하려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접근 프레임을 가진 사람은 성취하는 사람이고 보상에 주목한다고 합니다. 접근 프레임을 가진 사람에 의해 세상은 발전되고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비행기가 발명되고 우주선도 탄생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행복하기 원하면 자기 중심 프레임에서 벗어나라고 합니다. 행복과 성공은 접근 프레임을 가진 사람의 몫이라는 것입니다. 긍정의 언어로 말하라고 합니다. 프레임을 바꾸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 언어를 바꾸는 것이라고 합니다. 긍정적인 언어로 바꾸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나아가 성경적인 프레임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적 사고의 틀로 사고의 기본틀을 짜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 이성 우선이 아니라 신앙 우선, 현세가 아니라 내세 중심의 프레임을 가지는 것입니다.
지금 만여명의 사람들이 굶주린 절박한 상황에 있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제자들과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희망적입니다. 5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느냐?” 지금 있는 것을 물어 보십니다. 최선을 다해 찾아냅니다. 만 명에 비하면 보리떡 일곱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조족지혈에 불과합니다. 이성적이고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사람들이 보면 배꼽 잡고 웃을 숫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합니까? 굶주린 무리들에게 직접 명하여 땅에 앉게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받았지만 이들은 오병 이어의 기적을 체험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리고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원망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작은 것을 가지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주어 굶주린 백성 앞에 놓게 하였습니다. 작은 생선 두어마리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8절을 보십시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나 거두었습니다. 작은 것으로 풍성함을 누리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해 주실 뿐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작은 것으로 풍성하게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체험하여야 합니다. 보리떡 7곱개가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그 사람이 자기 것 빼앗겼다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빼앗긴 것아 아닙니다. 심은 것입니다. 씨앗이 된 것입니다. 나도 살고 다른 사람도 살리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필요한 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눅6:38). 예수님은 만유의 주로서(대상29:11) 지극히 충만하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요1:16) 성도의 필요를 먼저 아시는 분이십니다(마6:32). 우리는 환난과 궁핍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의뢰하여 해결책을 찾으려 해야 합니다. 스스로 고민하고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근시안적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작은 것으로도 우리를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국민일보에 연재되는 나는 왜 크리스천인가? 란에 다양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자신이 어떻게 예수님을 경험했는가를 소개하는 난입니다. 서울대 법대와 대학원을 나온 조배숙 국회의원은 예수님을 1979년 2월에 영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사법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방황하고 있었답니다. 그 때 친구의 전도를 받았답니다. 그녀는 건강이 몹시 좋지 않았는데 예수님을 영접한 뒤 건강도 되찾고 삶도 변화됐다고 간증 듣고 사법시험 준비로 지쳐 있던 그 때 초월적인 존재에 자신을 맡기고 싶었답니다. 다는 때 같으면 법학도답게 논리적으로 신앙을 부정했을 텐데 친구의 권위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교회가는 시간이 낭비고 신앙 생활이 소비하고 생각했을 텐데 매주일 아침 7시 예배를 드리고 도서관으로 향했답니다. 난생 처음 복음서를 읽었고 구약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는데 송이꿀처럼 말씀이 달았답니다. 성경 읽는 것이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찾아 왔다고 합니다. 마치 무엇에 홀린 것 같았다고 합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겼답니다. 특히 사고가 180도 긍정적으로 변한 것이 놀라웠다고 합니다. '왜 진작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가. 대학교 1~2학년 때부터 하나님을 믿었다면 내 인생이 엄청나게 변화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풍성히 채워주시는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때가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 기간이었답니다. 고시를 앞에 놓고 신비한 꿈을 꾸었답니다. 꿈에 법관이 나타나 자신에게 법복을 건네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법복에는 '검사 조배숙'이라고 쓰여 있었고 조금 지나니 '판사 조배숙'이라고 씌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그것을 성령님이 주신 꿈으로 생각하며 내게 사법시험 합격을 허락하셨다는 하나님의 응답으로 받아들였답니다. 꿈처럼 1년 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검사로 임명됐고 4년 후 판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근무하던 곳마다 신우회를 조직하고 성경공부를 했고 점점 신앙도 자라 교회에서 집사에 이어 권사라는 직분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새벽기도에 나가 기도를 하면서 세심한 부분까지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심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풍성히 채워 주시는 하나님께서 16대에 이어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바쁜 일과 중에서도 하루에 1시간 이상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분은 말하기를 만약 그때 내가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면 오늘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3. 연약한 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9-10).
우리 같으면 이 정도의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조처를 취하겠습니까? 자신의 자존심을 조금만 상하게 해도 원수를 만들어 버리는 세상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들어 주지 않으면 원수로 삼고 상대를 죽이려는 세상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돕고 가르쳐서 앞으로 주님의 대리적 사역을 위해 특별히 세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불신앙적인 것입니다. 하늘을 바라보지 않고 늘 땅만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늘 인간의 일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신 것을 보지 않고 늘 없는 것만 보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예수님의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당시 불치병인 문둥병자를 고쳐 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혈루증 앓은 여인, 중풍병자, 귀먹은 사람을 고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바다를 잔잔케 하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남자만 5천 명을 먹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2년을 넘게 예수님을 쫓아다니면 말씀을 배우고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신앙의 진전이 없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어쩌면 배신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앙을 책망하지 않습니다. 답답해하시지 않고 기적의 현장에 동참을 시킵니다. 굶주린 백성에게 나누어주게 합니다. 사람들을 다 보내고 제자들을 어떻게 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다 지방으로 갑니다. 함께 항해하는 모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함께 하며 훈련시키시는 예수님의 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지만 부활하신 후 다시 찾아가 회복시키시고 세우시는 모습을 봅니다. 이런 체험을 하게 되면 우리는 예수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괘씸히 여기신다면 우리 인생은 끝이 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어떤 처지에서도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와 함께 하며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언제 어느 때나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체험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 체험으로 힘있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연약한 신앙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대한 제지 대표이사인 양승학 장로님의 간증을 잃어 보았습니다.
북한에서 태어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며 아버지가 세운 대한 제지를 하나님의 기업의 모델로 삼겠다는 꿈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공산당에게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난 체험을 한 아버지는 믿음으로 회사를 경영했다고 합니다. 1959년 서울 광장동에 대한제지 공장을 설립하고 공장이 가동되자마자 산업전도회를 만드시고 휴게실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8년 후 신앙 생활을 잘하게 하기 위해 교회 건축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반대했다고 합니다. 자신도 반대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교회는 좀 이따가 건축해도 됩니다. 일단 회사부터 살리고 추진합시다. 그리고 교회 지을 돈은 어디서 나옵니까?" 그러나 아버지는 "돈은 구하면 되지. 회사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교회 세우는 게 먼저야. 여러 말 말고 내가 하자는 대로 해!" 회사 재정은 극도로 어려운 데다 뇌졸중 증세로 건강이 크게 나빠져 있던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더 이상 교회 건축을 반대하지 않고 가족과 회사 직원들이 기쁨으로 도왔다고 합니다. 그때 장로님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일을 재단하지 말자는 각오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회사의 재정상태는 점점 나빠져 갔다고 합니다. 은행의 부채상환 압박이 갈수록 심해지자 정신적 압박감도 커져 갔다고 합니다. 그에 따라 아버지의 건강도 갈수록 악화돼 한쪽 팔다리가 거의 마비상태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하나님께 더욱 강하게 매달리셨다고 합니다. 불편한 몸으로 새벽 기도에 갔다고 합니다. 교회 건축을 기점으로 심기일전해 회사를 성장시키려고 노력했지만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고 합니다. 이 때 주권자로 인정했던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커져갔다고 합니다. 설사 하나님이 전지전능할지라도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우리 가족이 얼마나 지극히 하나님과 교회를 섬겼는데'라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날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몸의 반쪽이 마비된 상태서도 매일 새벽기도를 빠뜨리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게 가벼워서는 안된다"면서 기도를 멈추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당신의 믿음과 기도가 결코 헛되지 않을 거예요"라면서 아버지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기도할 수 밖에 없어 온 가족과 직원들이 합심하여 기도했다고 합니다. 6년 만에 드디어 법정관리가 해제되었다고 합니다. 그 때 장로님은 기도의 능력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회사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섰을 때 어머니가 당부하셨답니다. "얘야, 모든 게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덕분이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항상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결정을 하거나 실행할 때는 하나님께 도우심을 청하며 기도를 앞세워야 한다."
언제부턴가 장로님의 마음속에는 광현교회를 본래 주인인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생겼답니다. 1988년 비로소 모든 비용을 대어 교회를 새로 지었다고 합니다. 교회는 크게 부흥했고 대지 400평, 연건평 1200평 8층 규모의 교육관을 건립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회사는 IMF 사태로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은행의 압박과 외국계 기업의 인수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경영권을 내 주어야 할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그 때 매일 매시간 욥기를 묵상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회생할 가능성이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럴 때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여, 주여…." 이 때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네가 해라!" 그전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다른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면 자신과는 무관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 성경을 꺼내 욥기를 펼쳐 읽었다고 합니다.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욥 42:2)라는 말씀이 들어 왔다고 합니다. 힘을 얻어 전직원을 모아 놓고 "오늘부터 새로운 각오로 일합시다. 내가 계속 회사를 운영하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회사를 살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열심히 일만 하면 됩니다."라고 말했답니다. 은행에서도 대한제지를 정리대상 1호로 꼽았지만 자신 만만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실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합니다. 직원들에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여러분도 회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당부하고 거처를 공장으로 옮기고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고 합니다.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맨 먼저 은행에서 부채 상환을 유예해주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직원들의 태도가 변하여 활기차게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불과 2년만에 회사는 완전히 정상 궤도에 올라섰다고 합니다. 사옥을 짓는 계획도 순풍에 돛을 단 듯이 착착 진행되었고 회사는 어디에 내놔도 우량 기업으로 평가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섯 자녀와 손자 손녀들이 모두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합니다. 대한제지의 산업전도회에서 8명의 목회자가 배출했다고 합니다. 대한제지를 기반으로 국내에 3개의 교회가 세워졌고 세계에 수십 명의 선교사가 파송되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집 적산가옥을 개조하여 대원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월남한 대학생들에게 머무르도록 하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학비도 보조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10여명의 장성과 많은 고위 공무원, 교수들이 배출됐다고 합니다.
예수님 체험이 중요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1-3)
우리를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4-8).
연약한 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9-10).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7.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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