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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라

마가복음 복음............... 조회 수 2900 추천 수 0 2010.11.19 08: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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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2:28-33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하나님을 사랑하라

 본문 : 마가복음 12: 28 - 33

 

영국의 한 시골 노인이 난생 처음 런던 관광을 왔습니다. 그는 그림에 조예가 있어서 유명한 화실에 들러 이 그림 저 그림을 구경하다가 신앙이 독실한 대 화백이 필생의 걸작으로 그린 예수님의 상을 보고 그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경건되고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한참 그림을 쳐다보다가 노인의 두 눈에서 두 줄기의 눈물이 흐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못하고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오 ! 주여,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관람객 중의 한 부인이 그 노인에게 가서 손목을 꽉 잡으며 "나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또 한 학생이 이 장면을 보고 "할아버지, 저도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 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의 이름 아래서 그들은 서로 통했고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삽시간에 칠팔 명의 사람들이 그 앞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주님을 향하는 뜨거운 사랑이 예수를 믿는 순간부터 항상 있어야 됩니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그 하나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는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인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본래 이 말씀은 구약 신명기 6장 4-9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옛날 히브리 사람들은 이것을 쉐마 라고 해서 아침과 저녁으로 외우는 유명한 구절 가운데 첫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이 계명을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말씀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령, 우리가 십계명을 봅니다마는 십계명 중에 첫째 계명부터 넷째 계명까지의 내용이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말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모든 계명의 기초가 된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 계명은 모든 계명을 포함하는 계명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계명 하나만 잘 지키면 자연히 다른 모든 계명도 잘 지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습니까? 소극적으로 말해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사랑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우상을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연히 하나님의 날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서 힘 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 1서 4장 20-2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아까운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시간 바치는 것이 아깝습니까? 재능을 바치는 것이 아깝습니까? 돈을 바치는 것이 아깝습니까? 진정으로 사랑하는 분에게는 아까운 것이 없습니다. 참으로 사랑하는 분을 위해서 하는 것은 힘든 것이 없습니다. 짐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 1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하였습니다. 가정에서 남편을 섬기는 아내가 법에 의해서 섬기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사랑에 의해서 섬기는 것입니까? 사랑 없이 섬기라면 무거운 고역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하기 때문에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도 그렇습니다. 사랑으로 지키면 무거운 짐이 아니라 행복한 생활이 됩니다. 그래서 로마서 13장 10절에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 1서 4장 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합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모든 계명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계명이요 모든 계명의 총괄이요 제일 먼저 순종해야 할 계명입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여기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또한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존경만 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감사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이나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을 다 하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다 하면서도 자기를 사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왜 이렇게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하실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우리만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의 다른 면은 질투입니다. 사랑하면 질투합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는 그의 남편이 곁눈질을 하고 다른 여자에게 마음이 가 있는 것을 느끼면서도 나는 그저 당신만 사랑해요. 다른 사람을 사랑하던 말던 상관할 것 없어요 라고 말합니까? 아닙니다. 질투의 감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남편이 이 여자 저 여자와 놀아나도 아무 런 감정이 없다면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가 이 남자 저 남자와 눈이 맞아 돌아다니는데도 나는 오직 당신밖에 없어 하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족해 라고 말합니까? 아니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내가 그를 사랑하면 그는 나만을 사랑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만을 사랑하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만한 사랑을 요구하십니까? 오늘 주신 말씀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 여기 마음이란 무슨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겉모양으로만 하지말고 중심으로 사랑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내려오는 말에 비둘기는 나뭇가지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콩 밭에 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이 사람인데 먼저 하나님을 마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내 몸은 어디 있든지 그 마음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이에게는 그 마음이 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립니다. 그런데 몸은 예배당에 나와 앉아 있지만 마음은 친구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가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몸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골프장에 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께 향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목숨을 다하고 했습니다. 어떤 때는 혼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생명 전체, 우리의 영혼 전체를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뜻을 다해서 했는데, 뜻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지식, 지혜를 다해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육체의 능력이든지, 심령의 능력이든지 내게 무슨 힘이 있으면 그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심령 전체를 드려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영과 육 전체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부분적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말고, 머리로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말고, 혹은 감정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말고, 혹은 감정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말고, 외부 생활로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말고, 우리의 지·정·의 인격의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와 같은 사랑을 요구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제일 먼저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정성을 드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할 때 그리스도가 그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극진히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아내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또 우리가 부모님을 극진히 위해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다 자녀를 사랑합니다. 자녀를 위해서는 아까운 것이 없어 합니다. 그러나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다 우리의 생명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여기 생명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한 말 씀은 내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이 계명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요한 1서 2장 15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다 고 하였습니다. 여기 아버지의 사랑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대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쫓아온 것이 아니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극진히 사랑하려고 힘쓰는 사람은 세상을 사랑하지 아니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동안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한 공간에 두 가지가 같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행음하는 여인 같은 너희들아, 세상을 사랑함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고 경고했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를 힘씁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4장 23 절에도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했습니다. 요한 1서 5장 3절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사랑에는 반드시 수고가 따릅니다. 수고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데 거기에 수고가 따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겁게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가 남편을 위하여 일하는 수고가 있는데 그것이 부담이 되고 무거워서 빨리 벗어버리고 싶습니까? 남편의 속옷을 빠는 아내가 언제까지 이 고생을 해야 하나? 하면서 불평을 하고 있습니까?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자녀를 위해 수고하면서 짜증내는 것을 보았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그 말씀 따라 살기 위해서 힘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배당에 나오면서 시간 낭비라고 짜증내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십일조를 드리면서 아까워하지 아니합니다.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하나님 섬기는 일이 무겁습니까? 짜증이 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아서 그럽니다. 끌려가는 소처럼 마지못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교회 나와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봉사하는 것이 너무 기쁘고 즐거우며 기다려지고 말씀을 사모하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양이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앙망합니다.

감옥에 갇힌 죄수가 석방의 날을 기다리듯이 사병이 제대하기를 고대하듯이 굶주린 사람이 먹기를 기다리듯이 구차한 살림이 풍요하게 되기를 바라듯이 파수꾼이 새벽 날새기를 고대하듯이 어린아이가 그 어머니의 젖을 사모함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를 갈급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잠시도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이는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음부에 가서 숨을지라도 하나님의 눈이 거기 계십니다.

시편 42편 1절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합니다. 시편 84편 2절에 보면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궁정을 사모해서 육체와 정신이 쇠약해질 정도로 생각하고 앙망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눈을 감으나 뜨나 언제나 사랑하는 분을 사모하는 것이 인간의 정입니다.

자나깨나 하나님을 잊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입니다. 아직도 그와 같은 사랑을 하지 못하시는 분은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지 못하면 우리 심령에 만족이 없습니다. 남편을 뜨겁게 사랑하는 아내라야 행복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가정은 이루어졌어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성도가 행복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성도라는 이름은 있어도 불행합니다. 걱정과 근심뿐입니다.

넷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성막을 지으려고 할 때 모든 백성에게 선포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성막을 지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성막을 짓지 위해서는 실도 필요하고 나무도 있어야 하고 금·은·동·보석도 필요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것 가운데 서 하나님 앞에 바치기 원하는 사람은 자원해서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그 때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는지 아십니까? 모세가 하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자원해서 실이고 천이고 나무·보석·금·은·동·철할 것 없이 가져오는데 너무 많아서 그 다음 엔 모세가 이제는 더 가져오지 마세요. 넉넉하니 그만두시오 라고 선포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한 것입니다. 전에 에스라 때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백성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와서 성전을 지을 때 많은 사람이 자원해서 나아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했습니다. 즐겁게 봉사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고 시간을 내서 즐겁게 봉사하시는 것을 보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서 주님께 붓고 머리털을 풀어 주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왜 그런 일을 했습니까? 주님을 사랑한 때문입니다.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내 시간, 내 재주, 내 물질, 내 모든 것을 주님께 즐거운 마음으로 드립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이 없을 때 할 수가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으신 것처럼 오늘 우리 하나 하나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여러분,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베드로처럼 주님, 그렇습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참으로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사람들은 대개 어려운 일을 끝내면 자신의 안일과 휴식을 먼저 찾습니다. 예를 들면 학생들이 어려운 시험(학기말 고사, 수능)을 끝내면 그 다음에 무엇을 하려 합니까?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고통이 지난 후 제일 먼저 무엇을 생각한지 아십니까?

사무엘하7: 1- 9절을 보면 다윗은 사울왕의 시기로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고난을 겪은 후 비로서 왕으로 평안히 살게 되었을 때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기를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 하면서 안타까워하며 하나님의 성전 지을 것을 말하자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다윗을 축복하시고 ‘네가 가는 모든 곳마다 함께하시고, 다윗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언약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을 보십시오. 언약대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고 나오지 않습니까? 다윗 이름 이외에 아브라함의 이름이 나오는 것도 아브라함이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심을 보시고, 창세기 12:2절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하신 약속하신 말씀 대로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8:17)

다섯째, 하나님을 사랑하면 기쁨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는 남이 웃는 줄도 모르고 자기 남편 자랑하기에 침이 마릅니다. 사랑하는 분의 모든 것이 좋아만 보이고, 훌륭해 보이고, 자랑스러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랑 예수님께 대해서도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선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전도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으면서도, 매를 맞으면서도, 심문을 받으면서도, 순교까지 하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지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해서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이 되었을 때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기쁘게 지키는 크리마스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5장 5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우리 위해 세상에 오시고, 우리 위해 일하시고, 우리 위해 죽으시므로 죄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그가 우리를 사랑해서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고, 그가 우리를 사랑해서 새 나라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영원히 사랑할 만합니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의 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다가는 결국 눈물로 끝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요사이 눈으로 보지 않습니까? 세상 권력 사랑하고 세상 재력 사랑하다가 그 마지막이 어떻게 됩니까?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세상의 영광을 우리가 사랑합니까? 그 영광도 지나갑니다. 세상의 물질을 사랑합니까? 그 물질도 다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돌고 도 는 것은 돈입니다. 세상의 사람을 사랑합니까? 그 사람도 지나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영원히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영원히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야 세상의 것도 바로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친구도 바로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물질도 바로 대할 수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다른 여러 가지 일을 잘 하면서도 하나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친구 사이에도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을 뵙는 이 신앙생활에서 처음 사랑을 버리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니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 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시고 우리 평생에 하나님을 더욱 더 사랑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만이 아는 큰 행복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랑해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행복이므로 제가 말로 다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사랑해 보십시오.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이 가지는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전도를 너무 잘하는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평소에도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 받고 전도를 잘하는지 항상 "주님 없이 살 수 없어요" 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주님 없이 살 수 없어요"라는 별명까지 생겼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여대생이 목사님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오늘 굉장히 새롭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목사님은 "그 주님 없이 살 수 없다는 얘기 말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에요, 목사님. 그보다 더 위대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나 없이 사실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5)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이전보다 더욱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므로 행복을 소유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족해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고백합니다. 주여 ! 이 시간부터 하나님을 전보다 더욱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누구보다도 깊이 뜨겁게 사랑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깨끗이 살며, 세상을 이기며 참되게, 기쁘게, 만족스럽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예화: 하나님을 사랑하라

 

로렌스 형제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종교적 삶의 유일한 동기는 ‘하나님 사랑’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려고 했습니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내가 길을 잃어버리든 찾든 나는 계속 순전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위하여 움직일 것입니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하겠습니다.”

로렌스 형제는 도전에 직면할 때마다 “주님, 주님이 돕지 않으시면 저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실패했을 때는 그것을 단순히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주님이 저를 떠나 계시면 저는 결코 해낼 수 없습니다. 저를 넘어지지 않게 해 주실 분은 주님, 주님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 실패를 잊었다.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삶은 단순했다. 이런 삶을 살려 했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자신을 지도하고 충고해 줄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 사람은 오직 그의 고백을 들어 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때문에 낙담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고백했고, 그 이후에는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는 일상의 삶으로 돌아왔다.

그는 또한 하나님은 가장 큰 죄인에게 가장 놀라운 은총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픈 상처와 가장 큰 기쁨도 자신이 영적으로 경험한 것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 날마다 예수님 마음 가까이 / 버나드 뱅글리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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