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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2:1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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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라고 말했듯이 인간은 정치적이며 그 밑바닥에는 권력에 대한 의지가 있습니다. 니체는 "이 의지가 존재의 가장 심오한 본질이며 삶의 근본 충동이라"고 하였습니다.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는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부자든 가난뱅이든, 상류층이든 하류층이든 모든 인간의 삶의 모든 단계, 즉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인간의 본성은 바로 우월함에 대한 열망이다."라고 했습니다. 시대를 초월하여 권력을 차지하고 하는 사람의 욕구는 대단합니다.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어 가질 수 없다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도 마찬가지입니다. 헤롯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와 자식까지도 죽였습니다. 당시 로마의 총독은 빌라도였습니다. 로마의 4대 총독입니다. 그는 천성적으로 고집불통이고 잔인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도 대중인 유대인의 의견을 무시하지는 못했습니다. 여론을 무시하고 정치할 수는 없었습니다. 어느 날 빌라도는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이사의 화상이 들어 있는 군기를 밤에 몰래 예루살렘에 들여왔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제 2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강력하게 항의하였습니다. 여론이 자신에게 좋지 않게 돌아가니까 빌라도는 어쩔 수 없이 자존심을 접고 그 요구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이 당시 시대를 지배하는 정신은 유대교였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여론 주도층이었습니다. 그들의 여론에 따라 정책과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입니다.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유대교 내에 분파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분파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입니다. 예루살렘 공회의 회원을 구성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말하면 국회의원들입니다. 사두개파는 제사장 사독의 후예로서 보수적 현실주의적인 상류 계급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모세 오경만 중시했고 죽은 자의 부활, 영혼과 천사들의 존재를 믿지 않았습니다.
바리새파는 중산층 계열에 속한 사람들로 율법 연구와 그 엄격한 준수를 목표로 하였습니다. 이들은 대다수인 유다인들과 소수인 자신들을 구별하여, 율법을 엄수하지 못하는 자들을 멸시하고 적대시하였습니다. 이들은 영혼이 불멸과 죽은 자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그 외에 에세네파와 헤롯당, 열심당 등이 있었습니다. 에세네파는 가장 정통적 유대주의를 표방하면서 세속주의를 배격하고, 광야에서 공동체적 삶을 살았던 집단입니다. 세속을 떠나 광야에 쿰란 공동체를 만들어 엄격한 규율과 금욕주의를 표방하였습니다. 유명한 사해사본이 바로 이들의 작품입니다. 대사제직에 대단히 적대적이었고 반(反)로마적이었습니다.
헤롯당은 유다의 민족주의를 반대하는 자들로 친 로마주의 자들입니다. 헤롯의 왕가를 지지하는 유대인의 한 당파입니다. 유대인의 메시야 운동 반대하고 헤롯을 대왕으로 부르고 터툴리안과 제롬에 의하면 이들은 헤롯을 약속된 메시야로 생각하고 그래서 헤롯이 화려한 성전을 재건하였다고 보았다고 합니다.
혈맹당은 헤롯당과 반대로 로마를 반대하여 로마의 앞잡이들을 칼로 죽이며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 가장 적대적인 사람들은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파 사람들입니다.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던 사람들인데 어느 날 여론의 지지가 예수님께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종교 기득권을 침범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누리고 있었던 종교적 인기를 예수님이 빼앗아 가고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신들이 누리고 있었던 종교적 기득권을 침범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예수님을 감시하고 올무를 잡아 제거하려고 하였습니다. 결정적인 단서를 잡는 것입니다. 그러나 번번히 예수님에게 망신만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권세 앞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 와 자신들이 허용한 돈 바꾸어 주는 자들과 제물 파는 자들을 다 쫓아 내버렸습니다. 그들은 성전체제를 권력의 근간으로 삼는 자들입니다. 제사장, 장로, 서기관들의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당장 잡아 처형하고 싶었지만 백성들이 예수님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1. 적들의 올무
그래서 그들은 결정적으로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 당시 정치적 힘이 있는 헤롯당과 손을 잡았습니다. 평상시에는 이들은 협력하는 사람이 아니라 적대적인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께만 충성하겠다는 사람들이고 헤롯 당원들은 로마 황제에게 충성하겠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연합한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악한 일을 위해 의기를 투합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13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과 헤롯당 사람을 예수님께 일부러 보냅니다. 철저한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이들이 사람을 보낸 이유가 무엇입니까? “책 잡으려고”입니다. 사냥꾼이 사냥감을 잡기 위해 집요하게 추적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입니다. 결정적인 올무를 잡아 총독의 사법권에 넘겨주려는 것입니다.
이들은 늘 예수님에 대하여 정치적 접근을 하는 것입니다.
함정에 빠뜨리려고 사람을 대하면 안 됩니다. 상대가 비난받고 잘못되면 자신에게 유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치적 접근 방법입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희망이 없는 자에게 복음을 전하며 위로하고 병을 고쳐주시는 예수님을 도와주지는 못하고 상대의 잘못이 자신의 지지층을 더 확보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존경을 표시합니다. 가슴에는 비수를 감추고 입술로는 거짓으로 존경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교묘하게 위장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참되자고 말합니다. 진실성을 인정합니다. 숨겨진 바가 전혀 없이 정직하며 순수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상대가 누구이든 지위나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예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 사실을 화려한 미사 여구로 수식하여 자신들의 음모를 숨기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가장 열렬한 지지자인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계심을 풀게 만들고 자신들의 올무에 말려들도록 유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 넣으려고 사전에 준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진정성과 진실성에 기대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 합니다. 그들은 말만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는 정작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이용의 도구로 사용할 뿐입니다. 목적달성을 위해 인간이 얼마나 사악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줍니다.
결국 그들이 사용하는 올무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이미 안식일 논쟁 정결 논쟁 등과 같은 종교적 문제로 올무를 잡지 못했습니다. 대중들과 예수님을 그 문제로 분리시키지 못했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으로는 예수님을 올무에 넘어뜨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가장 민감한 정치적 문제를 올무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4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세금 문제입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당시 아주 민감한 문제입니다. 신학과 정치의 쟁점이 되는 문제입니다. 정치적 문제를 들어 예수님을 모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합법적으로 확실하게 제거할 명문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이는 유월절 때입니다. 로마인들이 예이 주시하고 있는 때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세금을 내는 것이 옳다고 하면 민족주의자로 자처하던 바리새인이 나서서 예수님은 매국노로 정죄할 것입니다.
만약 반대하면 친로마주의자들로 자처하는 헤롯당원들이 반역자로 정죄할 것입니다.
일반백성들 가운데는 세금납부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사람들 많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열심당원들이 주도하여 세금납부반대운동이 끊임없이 있어 왔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속으로는 부정하면서도 힘에 눌려 세금납부를 신학적으로 정당화시킨 사람들입니다. 헤롯당은 세금납부에 동의한 사람들입니다.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제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쓰는 수법이 말꼬리 잡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허물을 덮고 당대의 약점을 들러내려는 사람들이 쓰는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선제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약점을 끄집어 내어 비수를 꽂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을 물어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확실하게 올무를 걸기 위해 어떻게 합니까? 15절을 보십시오.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물어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한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2. 예수님의 대응
이 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무슨 말을 하든 매국노가 되든 반역자가 되든 한 가지 것에 걸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의도를 정확히 파악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외식함을 아셨습니다.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은 그들의 위선의 껍질을 벗겨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칭찬의 말을 하는 의도를 아신 것입니다. 그들이 질문하는 의도를 아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시험인가 축복인가 정확히 분별합니다.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바리새인들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하면 예수님을 지지하는 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록 선동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헤롯 당은 가이사에게 세금 내는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실 경우 총독을 선동하여 그리스도와 대적하도록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지금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찾거나 삶의 진정한 원리와 실제적인 대처 방법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여 올무에 넘어뜨리기 위한 것인 것을 분명하게 아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모르고 그 올무에 넘어가 주기를 바랬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시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고 단호하게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의무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그리스도가 어떻게 말하느냐 하는 것을 알려고 할 뿐인 것입니다. 어느 쪽 답을 택하든 간에 그를 올무에 잡아 빌라도 법정에 넘기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그들에게 요구하십니까?
허위의식을 드러냅니다.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의식적 정결에 관한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자들입니다. 죄인 취급하는 사람들에게는 음식, 음료를 구입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죄인들의 집에서 식사도 같이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샴마이 속한 자들은 가이사에게 세금 내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 중에는 로마 황제가 그려진 데나리온 돈을 만지지도 않고 쳐다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져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 그들이 그렇게 증오하며 보지도 만지지도 않으려고 하는 데나리온을 주머니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실제 사용하면서도 자신들은 철저히 거룩한 체 하는 것입니다. 당시 통용되는 화폐는 크게 세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유대인들 사회에 널리 퍼져있었던 돈이 있었는데 그것이 "렙돈"입니다. 둘째는 안디옥이나 두로와 같은 지중해 연안 북부지역에 사용되던 "드라크마"라는 화폐입니다. 셋째는 로마 정부에서 제조해서 사용하던 "데나리온"이라는 화폐입니다. 그런데 이 화폐 중에 바리새인들이 그렇게도 증오하는 데나리온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험하는 자들이 가이사를 그들의 왕으로, 그들 스스로를 가이사의 시민으로 인정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외식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외식을 폭로하기 위해, 그들의 양심에 자극을 주기 위해 데나리온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저희의 악함을 아셨습니다(마22:18) 그들의 간계를 아셨습니다(눅20:23) 그리고 그들의 간사하고 비겁한 허위 의식을 폭로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묘하게 꾸미려 해도 주님 앞에서는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그들이 사용하는 돈이 로마의 화폐라는 것을 인정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질문합니다. 무슨 질문을 하십니까?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당시 황제는 디베료였습니다. 이 돈에는 승리와 신적 권위의 상징인 월계관을 쓴 디베료 황제의 흉상이 세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신성한 아구스도의 아들 디베리우스 가이사 아구스도”라는 황제를 찬양하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 뒷면에는 “최고의 사제”라는 말과 함께 황태후 리비아의 화상과 더불어 그 왼쪽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나뭇가지가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황제 숭배 사상을 조장하는 것입니다. 이 화폐가 통용되는 곳은 어디든지 그곳 주민은 그 왕을 자기들의 군주로 인정한다는 것의 증거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 화폐를 소유하는 것 자체로 이미 황제를 인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 스스로 고백합니다. “가이사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7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이 말씀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제국주의자인 로마황제에게 세금 드리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어떤 악한 정권에든지 복종하고 의무를 다할 것을 가르치셨다는 해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정교 분리를 말씀해 주시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을 통하여 교회와 국가에 대한 문제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교회와 국가간의 관계는 네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가 국가를 지배하는 형태입니다. 둘째는 국가가 교회를 지배하는 형태입니다. 셋째는 교회와 국가가 서로 배치되고 서로 충돌하며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파괴하는 형태입니다. 넷째는 교회와 국가가 서로 분리되어 있어 각기 다른 중심을 두고 존재하며 상호 협력과 견제하는 형태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무력과 폭력에 의한 군국 총독 정치는 유대 민족의 애국운동, 독립운동, 메시아 운동으로 저항을 받았지만 로마의 철퇴 앞에 무기력했습니다. 예수님은 애국 운동이나 독립 운동 유대인이 바라는 메시아 운동을 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사탄이 시험할 때 예수님에게 온 천하를 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물질적 왕국이 예수님이 목표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외쳤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국가 권력을 부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국가 권력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빌라도에게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다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로마의 국가 권력도 하나님께 나온 것입니다.
당시 세금에 대하여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은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로마에 세금 내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신분을 보장받고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헤롯당은 의도는 이 세금문제를 통하여 예수님이 세금을 내지 말라고 말하면 예수님을 반역자로 몰아 처형하려는 의도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로마에 대항하는 반역자로 예수님을 밀고 하여 로마 권력의 환심을 사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세금을 내라고 하면 헤롯당은 큰 명분을 얻게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지지하며 따르고 있는데 “보라 너희들이 지지하는 선생님이 세금을 내라고 했다. 그러니 너희도 내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세금에 대한 확실한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세금을 내라고 하면 예수님을 매국노로 매도하여 자신들로부터 떠난 민심을 자신들에게 돌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대다수 세금을 내는 것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의 지지는 받을 수 있으나 로마인들에게 반역죄로 처형되기 때문에 자신들로부터 백성의 지지를 빼앗아간 사람을 제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에 어떻게 말해도 그들은 종교적 지지를 다시 받을 수 있는 것이 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계산법을 다 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먼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돈을 내 놓게 하고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가이사의 것이면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했던 것입니다. 원래부터 소유가 가이사의 것이면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냐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함으로 바리새인도 헤롯당도 올무를 잡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헤롯당이나 바리새인이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 지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표면적 의미로는 세 바치는데 있어서 당시 하나님께 성전 세로 내는 하나님의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성전에 바치는 것은 가이사 황제의 화상을 그린 돈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세겔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는 로마의 황제상이 그려진 데나리온이 아니라 세겔로 바치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말라기 3:8절에 “하나님의 것”을 십일조와 헌물이라고 말씀하였기 때문에 그 말씀에 근거하여 성전에 드리는 십일조와 헌물로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더 신학적 의미로는 황제의 흉상이 박힌 데나리온은 "황제의 것"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은(창세 1,27)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습니다. 황제에게는 그가 주조한 은화만을 돌려주면 되지만 하나님께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막 12:30)”라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경우 일지라도 그들은 예수님의 대답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매우 놀라고 그들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로마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은 크게 세 종류가 있었습니다. 토지세와 소득세 그리고 인두세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헤롯당이 문제 삼은 세금은 인두세입니다. 인두세라는 것은 14세 이상이 되면 모든 사람이 내는 세금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주민세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이 인두세는 반드시 로마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데나리온으로 바치게 하였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만인의 통치자인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 세금을 내는 자는 그 돈에 그려진 로마 황제에게 속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로마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십계명의 제 1계명, 즉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돈에 황제상을 세기는 것은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제 2계명에 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왕이라 하고 세금을 바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믿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신앙적 지도자라는 사람이 바리새인들이 그 문제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합리화시켜 주고 있었습니다. 헤롯당은 이미 그런 신앙 양심적 고민은 벗어난 사람들로 로마에게 세금 내는 것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도가 국가에 대하여 취하여야 할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이중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미 국가의 국민입니다. 국가 기능는 악을 억제하고, 질서 유지하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일반은총 영역 가운데 속하였습니다. 정당한 국가의 권세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롬13:1-7) 그렇다고 국가가 하나님의 것을 찬탈해서는 안됩니다.(벧전2:12-14; 계 13장) 주어진 한계 내에서 질서와 정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국민으로서 신앙인은 정당하게 하나님이 권위를 부여해 주신 지도자를 존경하고(벧전2:13,14 딛3:1), 순종(롬13:1,2 딤전2:1,2)해야 하며, 섬겨야(딤전2:1-3)합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8.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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