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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2:18-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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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
우리는 부활의 증인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조금만 어렵고 고난이 다가오면 부활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죽음보다 더 힘든 삶의 고통을 이기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레나 마리아라는 가스펠 가수입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두 팔이 없고 한 쪽 다리가 짧은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고통을 이기고 가스펠 가수로 세계인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세계 언론은 그녀의 목소리를 “천상의 노래”라고 격찬했습니다. 그녀의 인생을 담은“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는 초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중증 장애인이지만 세계 장애인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 4개의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녀는 자신은 부활의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까지 사흘 동안 무덤에서 기다렸듯이 자신 역시 태어나서 엄마, 아빠를 만나기까지 사흘이 걸렸다고 합니다. 최소한 이십 년 동안은 돌봐야 '겨우 죽지 않고 살 수'있다고 생각한 의사는 부모가 안정될 때까지 신생아실에 둔 채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이 태어날 때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 자신의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우리 레나 요한슨을 책임져 주십시오. 이제 당신의 자녀로 드립니다!" 그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육체에 대해 불평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공연을 했을 때 일본 텔레비전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사회자가 "레나, 당신은 왜 그렇게 밝을 수 있죠?"라고 물었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 삶을 움직이고 계시며, 내가 필요한 것을 채우시며, 또 내 곁에서 나를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시니까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누군가 내게 '주님이 살아 계시고, 부활하셨다는 증거'를 대라고 말한다면 “나는 나의 약한 육신과 날마다 찬송하는 내 입술을 당당하게 보여줄 것입니다.”
이들을 이렇게 살게 한 힘의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부활을 믿는 신앙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진정 예수님께서 역사적으로 부활했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우리도 부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교회에 다니면서도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활은 그저 신화적 사건이고 신앙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요 11:25-26)”예수님은 여러 차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막 8:31)"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 당시 대제사장과 제사장 직을 맡았던 사두개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읽어 보세요.
1. 왜 부활을 믿지 못합니까?(18-23)/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의 부활에 대한 질문
24절을 읽어 보십시오. 예수님은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두개인들에게 부활을 믿지 못하는 두 가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사람은 부활할 수 없다고 믿고 있는 증거로 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성경을 들어 부활이 없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드는 성경이 무엇입니까? 19절을 보세요. 모세의 율법입니다. 모세 오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 오경만 하나님 말씀이라고 믿은 사람들입니다. 역사서나 시가서나 선지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토라에 부활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으니까 부활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으면 끝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과 육체가 함께 소멸된다는 것입니다. 영생, 내세, 천사의 존재, 영을(행23:8) 믿지 않습니다. 최후 심판날 죽은 자들 무덤에서 일어나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죽은자와 하나님과의 관련성 제거(행23:8)시켜 버렸습니다.
그들이 부활이 없다는 증거로 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19절 이하를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수혼법을 들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나오는 계대 결혼(신25:5-10)입니다. 형이 형수에게서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으면 동생이 형 대신 결혼하여 자식을 낳아 주는 수혼제도입니다. 형사취수(창38:8; 룻3:9-4:12) 제도입니다. 이런 제도는 앗시리아, 힛타이트와 가나안 국가에도 있었던 제도입니다. 그들은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이런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방인과 결혼을 방지, 가족 부양, 재산 상속, 가문과 기업 유지 등을 이루기 위해 허용한 제도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크게 나누면 제사법과 시민법과 도덕법이 나옵니다. 제사법은 죄를 속하기 위해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시민법은 그 당시 사회 생활에 필요한 법입니다. 도덕법은 십계명과 같이 시대를 초월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법입니다. 계대 결혼은 당시 시민법에 속합니다. 일곱 형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첫째가 아내를 얻었다가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혼법에 의해 둘째가 아내로 취했는데 둘째도 자식 없이 죽고, 셋째, 넷째, 다섯째, 여섯째, 일곱째까지 다 그렇게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 여자도 죽었다는 것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만약 부활이 있다면 부활할 때 이 여자가 그들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겠냐는 것입니다. 일곱을 다 아내로 삼았는데 일곱 명의 아내로 살겠냐는 말입니다. 부활이 있다면 모세 오경이 잘 못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실제로 부활한다면 부활 때 어떻게 이 말씀이 적용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부활은 허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시켰다는 것과 예수님이 부활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부활은 초대교회의 신앙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와서 기적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인간의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고 무덤에 묻힌 지 사흘만에 부활하고 승천하고 재림하는 것 등을 모두 신화론적 진술이라고 이해해 버리는 것입니다. 자연과학적 세계상과는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역사적 사실은 인정하지 아니하고 그 의미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활을 사건으로 보지 않고 해석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활을 사실로 보지 않고 신앙의 표현, 신앙 고백으로 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창세기 21장 33절에는 하나님을 일컬어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천사가 나타납니다. 그들이 믿고 있는 모세 오경에 영생이라는 말도 나오고 천사라는 말도 나옵니다. 단지 그들이 믿지 않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가 지나버렸습니다. 경험과 인간적인 지식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아이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웃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창 17:17)" 사라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창 18:12)" 비웃었습니다. 어떻게 이일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다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기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결국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신약에서 어떻게 증거하고 있습니까? 로마서 4장 18절 이하를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죽은 것같은 사라의 태를 열어 주셨고 하나님의 때에 그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부활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4장 24절을 보세요. 아브라함을 통하여 바로 부활 신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롬 4:24)”
또 보십시오. 이삭을 제단에 바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합니까? 이삭을 제단에 바치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이 신앙을 신약에서는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11장 18절 이하를 보십시오.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히 11:18)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히 11:19)” 그들은 모세 오경을 아전 인수격으로 해석하여 부활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구약 성경 전체를 모르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얼마나 많이 나타납니까?
모든 것을 잃어 버린 욥을 통하여(욥19:25-26), 시편을 통하여(시73:23-28) 호6:1-2; 13:14, 겔37:11-13, 단12:1-13 등에 부활 신앙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사26:7-21)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 (사 26:19)”
사람들이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은 결국 무지 때문입니다.
레위기 18장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영생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비평의 원리, 유추의 원리, 상관의 원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이 대단하지만 또한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솝 우화에 하루 살이, 메뚜기, 개구리 우화가 있지 않습니까?
두 번째 는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기 때문입니다(24).
그들이 일곱 형제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질문한 것은 부활 때 죽기 이전 상태 그대로 부활한다는 것을 가정하여 던진 질문입니다. 인간적 상상력으로 부활한 자의 상태를 단정하고 그 근거로 부활을 부인하는 어리석은 일을 저지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한 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2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어떻게 부활을 시키신다는 것입니까? 시집도 가지 않고 장가도 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할 때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이 땅의 모습 밖에 모릅니다. 감각의 세계로 영적인 세계를 판단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까지 제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수혼법은 종족 번식을 위해서 세운 것인데 부활 때는 그것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으니까 부활 때는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사와 같기 때문입니다. 죽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내세는 현세와 다른 삶이 존재합니다. 사두개인들은 내세와 현세가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추론을 하는 것입니다. 내세에는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예속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를 부활시키십니다. 영화로운 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상식 수준으로 맞추어 버린 것입니다. 그들이 믿고 있는 모세 오경에도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였습니다. 범죄한 사람들에게 홍수를 내려 심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셨고, 홍해를 갈라 바다에 길을 내셔서 이스라엘 자손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셨습니다.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였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부활을 못시키겠습니까?
죽음과 같은 인생의 상황에 놓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얼마든지 우리 삶을 부활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원일기', '그대 그리고 나'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텔런트 김지영씨가 있습니다. 교회 학교 선생님을 하는데 아이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거 사실이에요? 그걸 어떻게 증명해요?"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 때 그녀는 바로 지금 살아 있는 내가 증거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혈관이 엉겨 붙는, 이름조차도 알 수 없는 아주 희귀한 병을 앓았다고 합니다. 혈관이 한 데 엉켜서 혈액 순환이 제대로 안 되었고, 몸은 늘 퉁퉁 부어 있었답니다. 좋다는 병원은 다 가보았지만 "이대로 두다간 스무 살까지밖에 살지 못할 것 같군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 때 그녀는 '아... 내가 죽다니. 내가 정말 죽는다고? 이건... 이건 말도 안돼...'라고 했다고 합니다. 의사들의 실험 대상이 되어 고통 속에서 살면서 그냥 죽게 해달라고 했답니다. 그 때 아버지가 방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지영아... 지영아... 자니?" 자는 체 했답니다. 아버지가 "하나님 우리 지영이 살려 주세요 지영이 살려 주시면 저 하라는 대로 다 할게요 " 아버지는 교회에 다니지 않을 뿐더러 어머니와 내가 교회를 갈 때마다 노발대발하며 화를 내시던 분이셨는데 딸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아버지의 기도를 들으셨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기적을 베풀어 살아나 텔런트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부활할 때 어떻게 된다는 것입니까? 천사와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부활할 때 정확히 어떤 몸이 될 줄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3:21, “그가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예수님처럼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요일 3:2)”
성도의 영화된 육체가 어떤 것일지 정확히 알기는 어려우나 성경은 부활하신 주님의 육체와 흡사할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부활 이전과 동일성을 유지하여 도마와 제자들이 보아 알 수 있었으나 또 쉽게 알아 볼 수 없는 경우도 있었으며(눅24:16) 활동에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셨습니(요20:19; 행1:9,10) 성도의 육체도 부활 후 이와 같을 것입니다. 그 육체는 다시 사망이나 아픈 것이 있지 않습니다(계21:4)
영혼은 임종시 완전 성화되어 천국에 이르나, 육신은 사망의 권세 아래에 놓여 썩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 재림시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 15:51-53)”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4:16) 성도들의 부활은 썩지 아니할 육체, 곧 성화로운 육체로 부활할 것입니다.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롬 8:20-21)”
2.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부활이 사실이라는 증명(26-27)
2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죽은 자의 하나님으로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첫째는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누가복음으로 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눅20:38).
사두개인들은 살아 있을 때만 하나님이시고 죽어 버리면 하나님의 관계가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만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평안과 위로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죽으면 다 끝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25:5,6을 들어 부활을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똑같은 모세 오경인 출3:1-6을 들어 죽으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은 죽었어도 살아 있는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죽으면 하나님과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땅의 삶은 이 땅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와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팔순의 모세가 양떼를 인도하여 호렙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신비한 광경을 본 것입니다. 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그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르시기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미 아브라함은 400년 전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모세에게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출 3:6)”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죽음으로 하나님과 단절된다면 하나님이 죽은 사람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영혼이 영원히 소멸되었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이는 비록 아브라함이 육신으로는 죽어 무덤에 장사되었지만 그 영혼은 낙원에 살아 있음을 전제로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을(마17:) 통해서도 사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영원히 산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들은 육신적으로 죽었지만 영혼은 천국에 가서 살아 있기 때문에 모세 앞에서 이미 죽은 족장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들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족장들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결론을 끌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사두개인의 죽었다는 말입니다. 죽은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직업적인 종교인에 불과했습니다. 종교 의식을 거행할 뿐 제사를 받으실 하나님께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종교적인 특권을 이용해서 대접받고 잘사는 데만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대제사장 사독(삼하8:17)을 직계 조상으로 생각하며 대제사장직을 계속 세습한 사람들입니다. 사실은 사독의 자손이 아니면서 사독의 자손 행세를 하는 당시 하스모니안 왕조를 지지하는 유대인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종교적이기보다는 정치적 성향이 강하고, 친헬라 정책을 지지하며 현실과 타협하였습니다. 최고 종교 재판소요 의결기관인 산헤드린을 장악했습니다. 인간 중심의 현실주의 자들입니다. 인간의 만사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깊은 내막이 있었습니다. 부활은 사두개인에게 있어서는 정치적인 의미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시 혁명적 가르침이었습니다. 부활을 믿기 때문에 로마에 대항을 하고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저항하고 순교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런 신앙을 가지면 결국 민족적인 혁명이 일어나고 결국 자신들의 지위를 위협되기 때문에 부활을 애써 외면해 버린 것입니다. 이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눈엣가시처럼 여겼습니다. 그들이 지배하는 성전에 와서 돈바꾸어 주는 사람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죽일까를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죽은 사람들입니다. 죽음이란 분리를 말합니다. 세가지의 죽음이 있습니다. 영적인 죽음, 육적 죽음, 영원적 죽입니다. 육적인 죽음은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 우리 영혼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영원적 죽음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바로 사두개인들은 영적으로 죽었고 영원적으로 죽은 인간들입니다. 이런 자들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부활을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진정 고백하는 산자의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40)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가 산자입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산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롬 8:15)”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갈 4:6)”
로마서 8장 14절에 보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5)”
죽은 자는 반응이 없습니다. 사두개인들처럼 세상일에 대해서는 해박하고, 상황에 맞게 판단을 내리고, 이익을 따라 민첩하게 반응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전혀 반응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자는 예배에 감격이 있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체험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충만한 은혜를 체험합니다. 부활의 소망과 믿음의 능력, 사랑의 신비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찬송할 때 마음에 기쁨이 넘칩니다. 말씀을 볼 때 아멘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시행하면 삽니다.
부활을 믿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도 부활할 것입니다.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도전이 다가온다고 해도 부활의 신앙을 분명하게 증거하며 승리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8.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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