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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0: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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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인자가 오심은 2005-03-27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 10:45)
Ⅰ. 본문의 배경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이 본문의 배경.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죽으심의 의미를 알려주려 하였지만, 제자들의 관심은 예수님께서 이 땅의 왕으로 오셨을 때 자신들이 받게 될 지위에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을 안타깝게 여기시어 이 말씀을 그들에게 주셨다 그러나 이 말씀의 참된 의미가 제자들에게 깨달아진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였다.
II.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이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난 사건. 많은 사람들이 부활사건을 통해 제자들이 메시아 사상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함.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메시아상과 실제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유대인들은 육적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지도자를 기대했으나, 실제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 이스라엘의 메시아였던 것. 더구나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사상은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받아들이게 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III. 부활 사건과 깨달음
부활 사건의 경험이 제자들에게 가져다 준 깨달음은 예수님의 죽음의 의미와 그 분이 그렇게 죽으실 수밖에 없으셨던 이유였다. 이것은 두 가지로 요약되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심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들려올라간 구약의 인물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하나님께 특별히 사랑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던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로 들려올라간 대상은 이처럼 하나님께 옳다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따라서 제자들은 부활하시어 하늘로 들려 올라간 예수님을 보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하나님께 인정받는 옳은 분이라고 인정하게 되자, 그 분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해보게 되었고, 이에 비로소 전심으로 그 분의 모든 가르침에 대해 옳다 인정하게 되었다.
2.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심
성경적으로 볼 때 죽음은 죄의 대가이며 형벌.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은 나무에 매달려 죽는 것으로 구약에 따르면 나무에 매달려 죽는 것은 하나님께 끔찍한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는 뜻임. 여기서 제자들은 의문에 봉착하게 된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은 옳은 분이었다는 사실과 그러한 옳은 분이 나무에 매달려 죽으셨다는 것이 도무지 조화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모두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본문 속에서 발견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상전처럼 대접을 받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어 수많은 사람을 섬기기 위해 오셨다. 본문의 “대속물”이라는 단어는 희랍어로 뤼트론( )이라는 단어로 이것은 “(포로를)풀어주다”라는 희랍어 뤼오( )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즉 우리를 풀어주기 위한 속전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버린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제자들은 놀라운 감격에 휩싸였을 것이다. 하나님께 사랑받고 인정받는 아들이었던 그 분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분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쓸모없는 인간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십자가에서 형벌 받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IV. 결론
우리가 처음 십자가 앞에서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회심하였을 때를 생각해 보라.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예수님을 보면서 그것이 우리의 죄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지 않았는가? 흠 없는 아들은 죽이시고 죄 많은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한없이 감격하지 않았는가? ‘쓰레기 같은 나를 위해 보석 같은 당신의 아들을 깨뜨리시다니...’ 하며 흐느끼지 않았는가?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발견되는 가장 무서운 현상은 가난이나 시련이 아니다. 그것은 구속의 감격을 잊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구원에 대해 감격하지 않고, 그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악한 태도인지 생각해보라. 구원은 결코 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흠 없는 당신의 아들을 대속물로 주고, 죄 많은 우리를 사신 일이 어떻게 일상적인 일일 수 있는가? 우리는 쓰레기와 같은 존재였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사신 바 된 존재들이기에 한없이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이 있다면 이 사랑에 감격하며 사는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 주님만 사랑하며 주님만 따라가는 사람들이 됩시다. 2005-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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