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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사람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888 추천 수 0 2012.01.08 23: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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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4:3-9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그때 그 사람/ 희년을 맞는 성암교회를 위해
막 14:3-9

2009.2.8


지난주일 말씀은 <그릇>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질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그릇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이었지요. 회심한 이후의 바울이나 베드로, 마더 데레사 같은 이들은 질그릇 같은 존재 속에 예수를 담았기 때문에 빛난 사람들이라는 것을 우리가 모두 동의 한 바입니다. 그게 가능한 일인지를 묻는 예증으로 뉴욕 맨하탄의 지성인 제이콥스의 ‘미친 척 하고 성경말씀대로 살아본 1년’을 소개했지요. 700개가 넘는 실천 항목 중에서 제이콥스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이 ‘희년의 실천’이었습니다.

‘희년’이란 구약성서를 통해 이미 여러분이 아시는 것입니다. 엿새 일하신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쉬셨듯이, 이것을 7년 마다 적용하여 ‘안식년’을 지켰습니다. 이때에는 농사를 짓지 말고 땅도 쉬어야 했고, 이웃이 진 빚을 청산해 주어야 했습니다. 특히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난 그 다음해인 50년이 되는 해를 ‘희년禧年’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말로 하자면 ‘기쁨의 해’입니다. 희년에는 그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방을 선포해야 합니다. 저마다 제 소유지를 찾아 자기 지파로 돌아가야 합니다. 농사를 지어서는 물론 안 됩니다. 무엇을 사고 팔 때 이웃을 억울하게 해서도 안 되었습니다. 세나 이자도 금지 되었습니다. 빚도 조건 없이 탕감해 주었습니다. 식객과 종으로 타향에 팔려나간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제이콥스는 희년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서 ‘대 희년 유에스에이 네트워크’라는 단체에 들어가 일했습니다. 그리고 아미쉬(이 공동체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드린바 있으므로 생략함)신앙공동체를 찾아갑니다. 간접적인 희년 체험을 한 후 제이콥스는 말합니다.

“‘희년’을 실천해 보아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들을 살아있게 꿰매게 된다.”  
금년은 우리교회가 창립 된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교회로서는 금년이 ‘희년’이 되는 셈입니다. 제이콥스의 고백대로라면 50년 동안 살아온 개별적인 신앙을 하나로 엮어 보아야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들을 ‘통째로 실천 증명해 보여야’하는 해이기도 합니다. 창립 50주년의 의미를 신앙적으로 부여하자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성암교회 희년의 해’에 어떻게 우리의 50년을 갈무리해서 [성암]이라는 공동체성을 갖을까요?      

하나님이 기억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실 만한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실 만한 교회가 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시는 분일까요?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이 고통당할 때 부르짖는 소리와 형편을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이스라엘을 구해주십니다(출 2:24). 하나님은“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그 첫 세대와 맺은 언약을 기억”하십니다(레 26:42, 45).  

하나님은 또한 자신이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계시해 주시면서,“이것이 바로 너희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다”고 하셨지요(출 3:15). 전도서 기자는, 인간이 하는 모든 일들이 부질없는 일들이라고 말한 다음에, 이렇게 말합니다.

“젊을 때에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그릇이 부서지고, 샘에서 물 뜨는 물동이가 깨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육체가 원래 왔던 흙으로 돌아가고, 숨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전 12:1-7).

그러면 크리스천은 누구입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베푸시면서,“너희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하셨습니다(눅 22:19). 이것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성만찬 제정사에서도 나옵니다.“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고전 11:24-25). <개역>에서는“기념하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기념이라고 하면 기념비나 기념품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어떤 것을 기억나게 하는 물건입니다. 그러나 고전 11장 본문에서 사용된 anamesis라는 단어는 기념보다는 기억에 더 가깝습니다.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과거 일을 오늘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삶을 지금 내가 기억하면서 그 삶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교우들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기억 때문에 예수 제자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후서 기자는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가 머지않았음을 알고서, 자기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신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기억하게 하려고 베드로후서를 쓴다고 했습니다.(벧후 1:15). 그는 예언서의 말씀과, 주님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주신 계명들을 신자들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려고 합니다(벧후 3:2). 유다서 기자도 자신이 유다서를 쓰는 목적은 출애굽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을 기억하게 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유 1:15-17).

본문 말씀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막 14:9).

그 여인은, 노동자 열 달 품삯에 해당하는 비싼 향유 한 옥합을 가져와서,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 여인이 왜 그렇게 했는지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장례를 예비하여 그 여인이 그렇게 했다고 설명했는데(9절),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설명이 그 여인을 방어해 주려고 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본래 그 여자의 뜻은 다른 데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여자는 본문에서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마리아로 되어 있습니다(요 12:3). 누가복음에서는 조금 다른 배경이긴 하지만 옥합을 가져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바른 여인을 동네에서 알려진 죄 많은 여인―아마도 창녀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눅 7:37-38). 이런 구절들을 근거로 하여 이 여인을 일곱 귀신이 나간 막달라 마리아로 보기도 합니다(찬송가 346장,“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받아서”).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또 그가 죄인이든 아니든 간에, 그 여인은 예수를 너무나 존경한 나머지 그를 위하여 뭔가 멋진 일을 해 드리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께서 곧 고난당하실 것을 알고서, 아직 살아 계실 때에 그에게 최고의 존경을 표하고 싶어서, 향유를 예수께 부은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화를 낸 것으로 봐서, 그런 행동은 상식적인 것이나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그것은 어떤‘이벤트’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몇 백만 원이 나가는 값비싼 향유를 한 번에 써버리는, 주위 사람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함으로써, 예수를 가장 영화롭게 하고 가장 극적으로 높일 뿐 아니라, 자기 자신이 예수를 오래도록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그 여자가 공연한 낭비를 했다고 화를 낸 것은, 그 여자의 그런 뜻을 알지 못해서입니다. 예수는 그 여자의 그런 마음을 알기에, 그 여자를 괴롭히지 말라고 하고, “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고 칭찬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가장 큰 축복의 말씀을 해주십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그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그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녀의 행복은 이것입니다. 예수가 그녀를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자가 기억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유명한 여자도 아니고, 오히려 죄인일 수 있고, 쓸데없는 낭비를 하고 있는 여자가, 복음과 함께 기억이 되리라는 것은 매우 파격적인 선언입니다. 예수께서 주신 가장 큰 축복의 말씀은 그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이 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기억하지 못하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가장 무서운 벌이 뭔지 아세요? 잊혀 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어느 거리에서도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욥 18:17, 24:20; 신 7:24, 29:20, 32:26).

“의인은 칭찬을 받으며 기억되지만, 악인은 그 이름마저 기억에서 사라진다”(잠 10:7).

“주께서 그들을 벌하시어 멸망시키시고, 그들을 모두 기억에서 사라지게 하셨으니, 죽은 그들은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사망한 그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사 26:14).

마지막 구절에서 죽은 사람들의 부활은 그들을 기억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께 옥합을 깨뜨린 그 아름다운 일은, 오늘날 그 여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서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그 여인이 기억되는 곳에서는, 오늘 우리들의 이름도 기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자신이 기억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에게서 잊혀지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만찬을 행할 때마다“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기억할 때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도 기억하여라, 그 여인을 기억할 때마다, 너희들도 아름다운 기억의 주인공이 되어라, 그래서 너희의 무의식과 유전자 속에 내가 기록되고 내가 주는 행복이 새겨지게 하여라.”

이런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여러분 모두가, 매일 매일의 삶에서 주님을 기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기억할 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늘 하나님의 기억 속에 남는 일들을 해야 합니다. 창립 50주년이 되는 금년에 우리 모두 함께 해보자는 것입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우리가 쥐고 있는 ‘성암 50년 희년’봉투입니다. 지난 연말에 당회를 할 때에 10년 동안 건축 부채를 갚지 못하고 원금에 해당하는 이자만 물었습니다. 이게 우리 교회공동체의 활동을 발목잡고 있어서 금년에는 자유로워지자고 우리가 결의를 했지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나님께 묻고 물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기도하셨지요. 그러던 중에 하나님이 제게 실천 가능한 지혜를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도 제이콥스처럼은 못하지만 ‘미친척하고 희년’의 정신 하나를 실행해 보자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속의 여인처럼 자기 존재를 하늘에 각인할 만한 그런 결단의 행위를 한 번 해 봅시다. 그게 지금까지 내가 믿어온 믿음의 실체일 수 있습니다. 건축헌금을 약속한 이들도 금년에 사생결단하고 해결하고 넘어가야 하고요.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50년을 위한 디딤돌을 놓는 마음으로 헌금하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암 50년에 아름다운 과거와, 성암 100년의 빛난 미래를 만들면서 우리 스스로가 또는 하나님 앞에서, 후손들에게 길이 기억될만한 믿음 하나씩을 세워 보자는 것입니다. 내일 모레 죽어도 자랑스러운 기억, 내가 내 입으로 지껄이는 자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억하고 세상이 기억하고, 후손들이 기억하는 기억하나씩을 만들어 보자는 겁니다. 하찮은 여인도 그렇게 했다는 것인데, 교회를 다니지 않던 제이콥스도 했다는 일인데, 우리라고 왜 못하겠습니까?

여기까지 예수를 믿고 살아 왔으니 우리도 크게 한 번 예수를 놀래 켜 드립시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부단히 반복하는 삶을 살아서, 그것이 우리의 무의식과 몸에 새겨지게 하십시다. 그리하여, 성암교회가 장차 100년을 향해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 가는 그때 그 장로, 그때 그 목사, 그때 그 교우로 자랑스럽게 기억되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우리의 이름도 함께 기억되는 축복을 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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