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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0: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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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2007-07-15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이혼한 그대에게
하나님 앞에 다시 세우는 가정 7 2007. 7. 15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막10:6-9)
I. 본문해설
이 본문은 또한 이혼에 대한 하나님의 분명한 생각을 보여줍니다. 혼인의 원리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 결합은 삼중의 결합이니 육체적 결합과 영혼적 결합, 정신적 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한 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합은 남녀가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이루어지는 연합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결혼은 반드시 그리스도 안에서 접붙여진 남녀가 함께 결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만약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아니할 때에도 그들 사이에 여전히 결합이 존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께 접붙여져 있고 한 사람은 여전히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그들의 결혼을 통해 이루어지는 두 사람 사이의 영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이 명백한 가르침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 경우에 두 사람 사이에 완전한 영혼의 결합은 아니라 할지라도 유사한 결합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자신의 서신서 중에서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고전7:12,13)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은 단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결합을 토대로 정신과 마음이 하나 되고 육체가 함께 한 장소를 공유하고 또한 결합함으로써 부부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사랑의 열매로서 자녀들을 생산하고 그 자녀들이 창조의 목적과 덕스러운 삶이 무엇인지를 아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래에서 하나님의 부성(父性)과 모성(母性)을 함께 배워가며 참 사람으로 살게 하시는 것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II. 이혼,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한번 맺은 결혼 생활을 끝까지 이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현실적인 많은 이유들로 그들은 혼인에서 맺은 언약을 파기하고 가정을 깨뜨리게 됩니다.
이혼이란 법적으로 부부가 혼인관계를 청산하고 서로를 향한 의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일을 통해 가정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결혼은 자라온 삶의 배경과 생각이 다른 두 사람이 영혼의 결합을 토대로 인격적인 연합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결혼하기 전 사랑을 낭만이라고 한다면 결혼한 후의 사랑은 생활입니다. 전자를 마치 낙조(落照)가 지는 바닷가에서 두 사람이 함께 마주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한다면 후자는 작은 배를 타고 황혼이 지는 바다를 노저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결혼생활의 지속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깨어짐이 필요하고 상대를 용납하며 자기를 꺾는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는 바와 같이 오늘날은 대부분의 많은 가정에서 한두 명의 자녀를 낳아 기르고 이들은 자기를 꺾고 희생하는 훈련이 없는 가운데 성장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만나 함께 살아가는 것이기에 가정 안에 크고 작은 갈등에 부딪혔을 때 서로에게 양보하거나 자기를 꺾지 못하고 결국 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에 비록 가정에서는 그런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할지라도 두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과 믿음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꺾임과 깨어짐을 경험하며 살아온 은혜의 세계가 있다면 그러한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과 은혜는 자신에게 일어난 삶의 현실적인 상황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하여 날마다 부부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들과 가정 주위의 여러 요인들에 의하여 발생하는 어려움들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해석하고 극복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날 같은 시대의 결혼생활은 최소한 세 가지가 없이는 지속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첫째로는 인간의 도리를 아는 좋은 부모의 가르침과 모본(模本)입니다. 둘째로는 그것이 어렵다면 좋은 목회자의 가르침과 모본입니다. 셋째로는 끊임없이 부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특히 진리의 말씀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고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지식의 토대 위에 끊임없이 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참된 결혼 생활은 단지 형식을 이어가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참으로 부부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날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그 가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을 위하여 그 가정은 형식과 내용이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부합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자녀들이 신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이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처한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궁극적으로는 그들 안에 가정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끊임없이 부어지는 하늘의 자원이 없다면 누구도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 그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부부가 하나님을 붙들고 그분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는 사랑을 경험하며 살아간다면 그 사랑의 힘으로 서로를 긍휼히 여기게 될 것이고 어려움을 이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부부가 이혼을 결심하게 될 때에는 이렇게 서로를 향한 사랑이 충분히 고갈된 이후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주고받는 사랑은 서로의 아름다움 때문에 사랑하게 되는 목적적 사랑(目的愛)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랑은 언제나 서로에게 실망하고 또 실망하게 하기가 십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혼한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향한 사랑의 질서 안에서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이 충분히 행복해지는 믿음의 가정을 하나님께서는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하나님 없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 앞을 떠난 어둠 속에서의 행복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서로에게 실망하게도 하시고 결혼하기 전 현혹되었던 상대방 안에 있는 아름다움의 상실의 고통을 경험하게도 하십니다. 섭리 속에서 하나님이 이러한 과정을 허락하시는 것은 단지 서로에게 실망하고 낙심함으로써 사랑을 저버리게 하심이 아니요 오히려 부부의 사랑을 서로의 아름다움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사랑 안에 있게 되도록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당신 자신이 그 온 가정의 중심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한 부부가 이혼을 결심하게 될 때에는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부부사이의 관계의 깨어짐과 자녀들과의 관계의 파괴는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의 깨뜨려짐의 반영(反映)인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갖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언제나 남편을 향한 사랑이나 아내를 향한 사랑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 바깥에 존재하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질서에서 이탈한 독자적인 사랑의 관계는 언제나 하나님을 등진 욕망에서 비롯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좋은 바를 따라, 자신의 눈에 아름답게 비치는 바에 따라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욕정에 굴복하는 삶이며 거기에는 하나님 면전에서 사는 기쁨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즐거움과 행복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모든 사랑하는 것들은 그 하나님을 향한 질서 안에 있는 사랑이어야 하고 그 하나님을 사랑함 안에서 모든 것들을 윤택하게 가꿀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늘 다스리십니다. 은혜를 주시고 능력을 주심으로 그들을 통치하시지만, 그들의 순종을 통해 당신의 은혜로써 그 다스리심을 구체화합니다. 그러나 모든 신자들이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임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결행(決行)합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것은 매우 커다란 죄이며 그 이후에 도래하게 될 결과들은 고통스러운 결혼생활을 청산하기 전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한 결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하는 것은 대부분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가치보다 자신의 행복을 더 높이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거스르는 인간의 강력한 의지는 이러한 데서 나타납니다. 자기 자신의 몸으로 낳은 자녀들의 행복을 애타하는 것이 부모의 일반적인 마음이지만 어느 한계에 이르게 될 때에 자신의 고통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힘든 이혼을 아주 쉽게 결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처럼 이혼은 하나님의 교회를 찢는 것이고 또 부부의 결합을 갈라놓는 것이며 자녀들의 행복과 평안을 깨뜨리고 그들의 마음속에 회복되기 어려운 고통과 상처를 주어 일평생 그 멍에를 지고 살아가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행한 자신도 끊임없이 용서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짐이 되어 일평생 짊어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깨뜨리고 이혼한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줄 수 있겠습니까?
III. 이혼의 십자가를 지고
그러면 이미 이혼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잘못한 것입니다. 물론 인간적으로 볼 때 여러분들은 견딜 수 있을 만치 견디며 고통을 받은 끝에 피할 수 없이 그 길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고 이것은 여러분들이 배우자를 사랑함으로써 한 가정을 이룰 때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렇게 가정이 깨어지고 이혼한 상태에서 홀로 살아왔습니다. 현실적인 고통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여러분의 마음에는 더 큰 십자가가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나마 결혼생활을 유지할 때에는 대두되지 않았던 현실적인 문제들이 떠오르게 되었으니 곧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들의 신앙을 추스르는 문제와 그리고 이상하게 깨어져버린 자녀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들의 앞날, 현실적인 여러분들의 경제생활 같은 것들입니다. 이것 또한 만만치 않은 십자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이러한 이혼 후의 십자가도 하나님의 은혜와 특별한 사랑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십자가이니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어디로 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좇아 순종하고 사는 동안에는 기뻐하시고 온화하신 하나님을 뵈옵지만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멀리 떠나 스스로 행했을 때에는 가슴아파하시고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뵈옵게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시인은 말합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 내가 새벽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시139:7, 9-10)
어차피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부어주시는 은혜가 아니면 이혼한 후에도 살아갈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그분께로 오는 사랑과 은혜 없이는 살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그가 만약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리에 머물면서 그 은혜를 구한다면 그 응답과 회복은 빠르려니와 그 자리를 이탈하여 이러한 것들을 구한다면 많은 기도는 허공중에 흩어질 것이고 주님이 베풀어주시는 많은 은혜들은 욕망 안에서 소멸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미 이혼한 여러분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하고 싶습니다.
A. 하나님 앞에서
첫째로 하나님 앞에서 이혼을 결행한 것에 대해서 깊이 회개하여야 합니다. 자신이 한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를 깨닫고 이혼의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참회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 없이는 아무 것도 회복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혼의 결행과 함께 여러분 자신은 물론 배우자와 자녀들, 그리고 다른 가족들과 관련된 모든 삶의 질서가 바뀌어버렸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새로운 인도하심과 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여러분, 그리고 가정을 깨뜨리고 삶의 질서를 바꾸어놓은 여러분들에게 이러한 은혜가 다시 부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기적적인 역사가 필요합니다.
회개는 하나님과의 막힌 관계를 여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진실한 참회와 회개의 정신으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줄을 깨닫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죄의 확신을 주시고 다시 은혜를 회복시켜 살게 하시기까지 이 일에 전념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않고서 새로운 삶을 꿈꾸는 것은 두 번째 이혼을 위해 준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부를 맺어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라 할지라도 그 맺어주신 것을 신실하게 이어가는 것은 인간의 의지적인 노력과 인격과 성품, 그리고 마음의 자질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의지를 초월하여 역사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섭리는 종종 인간의 의지를 초월하여 역사하기도 합니다. 가정 안에서 자기를 끊임없이 꺾고 상대방을 세워주며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하나님 앞에 두고 살아가며 배우자의 존재의 가치 또한 그것에 합치시키는 이러한 노력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성화의 은혜는 인간의 의지를 초월하여 역사하지 않습니다.
결혼하는 사람 자신이 바뀌지 않았는데 새로운 삶이 그에게 어떤 인생을 보장하겠습니까? 신앙의 위대함은 단지 믿는 것의 위대함에만 달려있지 않고 오히려 참회의 위대함에 달려 있습니다. 비록 그 길이 최선의 길은 아니었고 하나님이 응답해주신 길도 아니었으나 진실한 참회로 돌이키는 과정을 통해 결혼생활을 그렇게 슬프게 끝낼 수밖에 없었던 마음과 영혼의 경향성은 바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여러분들에게 또 다른 길을 보이실 것입니다.
B. 교회 앞에서
둘째로 교회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크게 돌이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혼하는 것을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생각합니다. 신자라 할지라도 이러한 이혼이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엡5:31-33) 보십시오. 부부는 부부로서 그 영혼이 결합하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여진 영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연합을 토대로 부부의 결합을 이루게 되었으니 그 부부의 영적인 결합이 깨어지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고통을 교회에 안겨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영적인 차원에서만 발견될 뿐만 아니라 육신의 차원 속에서도 발생합니다. 한 교회에서 한 목자에게 주례를 받아 결혼하고 이혼한 부부가 여전히 한 교회에서 변함없이 한 지체로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지 묻고 싶습니다. 보십시오. 이미 눈에 보이는 교회는 가정이 찢어짐으로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들을 통해 자라나는 세대에게 비춰지는 가정의 올바른 도리의 왜곡은 또 얼마나 큰 것입니까? 그렇게 깨어지는 가정을 수없이 보며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의 마음속에 형성되는 왜곡된 가정의 상(像)에 대해서는 또 누가 책임을 지겠습니까?
성도들에 의해 사랑받고 보호받고 섬겨져야 할 몸임에도 불구하고 이혼은 영적인 그리스도의 몸을 심각하게 상처 입히고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앞에서 자신의 잘못을 깊이 돌아보고 뉘우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며 남은 생애가 더 이상 그리스도의 몸을 아프게 하지 않고 그것을 싸매고 고치고 보양(保養)하는데 이바지하도록 자신을 성찰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이전에 일어났던 가슴 아픈 일들을 통하여 이후의 삶은 오히려 교회와 바른 관계를 가지고 더욱 온전한 삶을 살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야 합니다.
C. 깨어진 가정 앞에서
셋째로 깨어진 가정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언젠가 저의 책을 읽은 독자 중 한 사람이 이혼한 지체로서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이 책을 이혼하기 전에 읽었더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가정을 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후에 이혼한 것을 후회하는 지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이것은 단지 이혼한 후의 삶이 주는 고달픔 때문만은 아닙니다. 은혜가 고갈된 상태에서 그 일을 결심하고 행하였는데 은혜가 회복 되고나니까 자신의 아픔보다는 깨어지는 자신의 가정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는지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은혜가 지금도 많은 남성과 여성의 마음을 움직여 가정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혼한 형제자매들에게 저는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합니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다시 그 가정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더 이상 하나님 밖에서의 인간적인 결혼에 대한 행복의 기대를 버리고 오히려 가슴깊이 사랑을 가지고 비천한 병자들의 마을로 들어가시던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 실패한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십시오.
그것이 허락만 된다면 돌아가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에서도 이렇게 돌아가 하나님 없는 방황 속에서 깨어졌던 가정들이 십자가 사랑 안에서 회복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부부의 사랑이 아무리 오롯한 것이라 할지라도 긴 안목에서 보면 모두가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각기 아픔을 갖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 불행한 길을 선택하지만 노년이 되고나면 정욕도 지나가고 세상도 지나갑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녀를 희생시키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며 가정을 깨뜨린 사람들이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가장 어려운 길처럼 보여도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쉬운 길입니다. 배우자의 마음이 식어 결합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인내와 사랑을 가지고 용서를 빌며 다시 한 번 가정을 세우도록 간청하십시오. 거기서 비참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한없이 진토에 떨어지기까지 낮아지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사람이 되십시오. 힘들고 어려운 길, 돌아가는 길처럼 보여도 그것이 그래도 지름길로 가는 것입니다.
D. 깨어진 자신을 향하여
넷째로 결혼생활에서 상처를 입고 파경이라는 이름으로 깨어진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는 특별한 섭리가 있으셔서 가정이 깨뜨려진 여러분들을 충분한 회복과 새로운 인도 가운데서 두 번째 인생을 출발하게 하실 지도 모릅니다. 그럴 가능성까지 전적으로 부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피할 수 없이 이혼하였다면 두 번, 세 번 다시 결혼함으로 자신을 더럽히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세속적인 행동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혼의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 앞에서 이제는 하나님께만 자신을 바친 순전한 신부로 혹은 순전한 동정(童貞)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교훈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는 임박한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섬김을 위해 이렇게 충고하였습니다.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고전7:25,26,40)
그러므로 가정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변하지 않는 신앙을 붙들고 일생동안 주님을 섬기며 사십시오. 세상에서의 남편은 나를 버리고 실망시켰으나 세상 아내는 나를 배신하고 가정을 떠났으나 하늘 남편이시고 우리의 사랑이신 그리스도는 우리를 실망시키지도 떠나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오직 그 분 한분만을 평생 마음에 모시며 하나님의 나라의 한 모퉁이를 섬기며 하늘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렇게 된다면 최소한, 자녀들과의 관계는 유지될 것입니다. 지금은 그 아이들에게 여러분들의 파경이 소화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세월이 지나고 이 세상의 고통과 인생의 끝없는 시련을 알게 된다면 부모인 여러분들의 연약함도 이해할 것이고 그러한 시련의 고통을 십자가삼아 사랑의 하나님께 달음질쳤던 여러분들의 신앙을 더더욱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여 그 자녀들을 더 사랑하고 비록 깨어진 가정이지만 참다운 신앙의 도(道) 가르치기를 포기하지 말고 그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눈물의 자식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IV. 결론과 적용
짧은 인생이지만 우리에게는 인생의 길이에 어울리지 않는 수많은 시련들이 있습니다. 항상 순풍에 돛단 것처럼 항해하는 것도 아니고 끝없이 잔디가 펼쳐진 아름다운 벌판을 걷는 것도 아닌, 끊임없이 자기 밖의 세계의 환경과 싸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거스르려는 자기 안의 본성과 다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한 순간이라도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 자주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잃어버리고 자신만의 힘으로도 넉넉히 살 수 있을 것처럼 자만에 빠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끊임없는 시련 속에서라도 우리를 낮추시고 당신에게 돌이키심으로 더 많은 죄벌(罪罰)의 길을 가지 않도록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여러분들이 비록 이혼했다 할지라도 그 실패 때문에 어찌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겠으며 여러분들의 그 잘못이 아무리 크다 한들 여러분들을 사랑하사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어찌 없이할 수 있겠습니까? 이혼의 십자가는 벗어버릴 수 없지만 그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십니다.
아무도 없이 어둠 속에서 헤매던 그 수많은 날들, 은혜의 말씀의 빛을 받고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는 과거 때문에 아파했던 여러분들의 눈물도 하나님이 보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들을 가정을 깨뜨린 자라고 비난하고 양심은 끊임없이 여러분에게 송사를 제기할지라도 주님은 진실한 마음으로 당신을 찾는 모든 사람 곁에 가까이 계십니다.
창녀요, 기생이었던 그 여자도 주님을 만나고 그렇게 참회하자 주님을 향한 사랑이 생겨나게 되었고 예수님께서는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바로 이 미천한 여자가 행한 그 일이 기념되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더 깊은 영혼의 침체에 빠지지 않는 지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뉘우칠지언정 돌이킬 수 없는 과거로 인하여 슬픔에 잠기지 마십시오. 오히려 주님 한분과 결혼하고 그분을 전심으로 사랑하십시오. 거룩한 처녀성, 혹은 동정성(童貞性)을 일평생 간직하고 주님 한 분만을 의지하며 살아가십시오. 그래서 예전에 남편 때문에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지난날들을 접고 또한 아내 때문에 우리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던 그 힘겨운 날들을 접고 주님 한 분만을 마음껏 섬기며 살아가십시오. 주님이 여러분들 옆에 항상 계실 것이며 저도 여러분 옆에 있을 것입니다.
::: 나눔의 시간
1. 지난 주간의 말씀“이혼을 생각하십니까”(막10:6-9)을 듣고 실천했던 삶이나 한 주간 받은 은혜를 말해 봅시다.
2. 이혼을 할 수밖에 없는 당사자들의 입장에 대해서 나누어 봅시다.
3. 이혼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시급한 일은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4. 이혼한 사람이 교회 앞에서 자신이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말해 봅시다.
5. 이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해봅시다. 그리고 그 이후의 최선의 삶에 대해 오늘 설교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2007-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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