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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냐, 하나님 나라냐

마가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2213 추천 수 0 2012.11.04 23: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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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0:23-31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2012.10.14주일 http://dabia.net/xe/615860 

jys.jpg 정용섭 목사

 

돈이냐, 하나님 나라냐

마가복음 10:23-31, 창조절 일곱째 주일, 2012년 10월14일

 

23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마가복음 10:25절에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지만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씀이 나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낙타가 바늘귀로 나간다는 말은 일종의 문학적 과장법입니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이처럼 힘들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부자는 어느 정도의 돈이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백억 원 정도의 재산이 있으면 부자일까요? 그 사회에서 1%의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10%에 해당될까요? 부는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단칸방에서 월 50만원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자기 소유의 30평 아파트에서 월 5백만 원으로 사는 사람이 부자로 보일 겁니다. 누가 부자인지를 수치로 딱 끊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너는 부자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어, 이렇게 말씀하셨을 리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왜 오해하기 쉬운 낙타와 부자에 대한 말씀을 하신 걸까요?

 

실망한 부자

 

이 말씀은 앞에서 벌어졌던 어떤 사건과 연결된 이야기입니다. 막 10:17절 이하에 어떤 부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한 사람이 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사람은 삶을 나름으로 진실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영생, 즉 참된 생명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그런 문제를 갈급하게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대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무언가 착하고 좋은 일을 더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예수님께 질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계명에 나오는 몇 가지 계명을 지켰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내용은 주로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감이 넘쳐서, 어릴 때부터 잘 지켰다고 대답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모태 신앙으로 평생 교회에 잘 나가고 바르게 살려고 최선을 다 했다는 뜻입니다. 칭찬받을만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유를 다 처분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서 ‘나를 따르라.’는 겁니다(막 10:21).

 

예수님의 이 말씀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누가 봐도 가혹한 요구입니다. 지금까지 계명을 잘 지키면서 성실하게 살았으니까 앞으로도 흔들리지 말고 계속 그렇게 살라고, 그러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 나올 법했습니다. 그런데 소유를 다 팔아버리라는 겁니다. 이런 명령을 그대로 따르기는 어렵습니다. 소유, 재물, 부는 우리가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는 물적 근거들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당장 죽지는 않는다고 해도 삶이 힘들어집니다. 물론 지난 기독교 역사와 인류 역사에 소유를 포기한 사람들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무역상을 하던 가문의 장남이었습니다. 큰 유산을 포기하고 탁발승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수도원은 사유재산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수도승이 되려면 모든 소유를 포기해야 합니다. 로마가톨릭 사제들은 순명, 동정과 함께 청빈을 서약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쿰란 공동체는 철저하게 무소유를 실천했습니다. 몇 년 전에 세상을 뜬 법정 스님은 젊은 시절에 쓴 <무소유>라는 에세이로 일약 대한민국의 명사가 되셨습니다. 그런 분들의 마지막 개인 소유는 평생 입고 다니던 승복과 밥을 먹던 그릇 정도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소유를 포기해야만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초기 기독교에도 제법 부자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회 공동체의 재정적인 책임을 졌습니다. 그런 분들이 없었다면 바울도 선교활동을 하기 어려웠을지 모릅니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따르라는 말씀을 청빈과 무소유가 절대적인 것이라거나, 모든 재산을 통틀어서 구제를 해야만 영생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영생과 구원은 우리의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은총이지 우리의 윤리적 행동에 대한 하나님의 보답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3) 극한적인 자기희생과 포기도 사랑이 없으면 무의미하다는 겁니다. 여기서 사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에게 일어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구제와 헌신은 인간 삶에서 아주 중요한 가치가 있지만 그것 자체가 구원에 이르는 길은 아닙니다. 또한 실제로 구원받을 수 있을 정도로 구제와 헌신의 삶을 사는 사람은 드믑니다. 예수님은 왜 이 사람에게 소유를 포기하라고, 시험 들릴만한 말씀을 하신 걸까요? 예수님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물질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혀 몰랐기 때문일까요? 청빈주의자이신가요? 금욕주의자신가요? 예수님이 민중들을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교주이신가요?

 

문제는 맘모니즘, 즉 배금주의입니다. 돈을 절대적인 능력으로 여기는 삶의 태도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런 배금주의는 하나님 나라와 병행될 수 없습니다. 돈을 신처럼 섬기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다른 맥락인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눅 16:13)고 아주 단정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이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겁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말씀 앞에서 내면적인 갈등을 겪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돈을 신처럼 떠받드는 이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신앙적인 차원에서 그것을 거부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양자택일을 요청합니다. 돈이냐, 하나님이냐, 하고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조금씩 다른 태도로 이 요구를 받아들입니다. 계속해서 갈등을 겪으면 자학적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본의 노예처럼 사는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돈의 지배력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를 쓰면서 투쟁합니다. 대다수의 건전한 기독교인들은 이런 입장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돈을 하나님의 축복과 일치시킵니다. 하나님을 잘 믿어서 부자가 되었다는 식입니다. 부자가 되지 못한 건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망발을 하는 교회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달러 지폐에 “in God We trust.”라는 문장을 써넣은 미국이 잘사는 이유는 청교도 신앙으로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고, 동남아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는 불교를 믿기 때문이라는 설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이나 일반 신자들이 상식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것을 주장하는 이유는 사람이 물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런 현상은 고대 유대인의 역사에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들은 바알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가나안의 바알신앙은 맘모니즘입니다. 아주 매력적인 이념입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바알 숭배의 유혹을 끊임없이 받았습니다. 그런 유혹에 취약했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예루살렘 성전 안에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런 맘모니즘과 싸웠습니다. 가나안 원주민들과는 아무런 관계를 맺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 민중들은 풍요의 신이라 할 가나안의 바알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마치 21세기 지구촌 전체가 신자유주의에 빠져 있는 것과 비슷합니다.

 

오늘 본문의 설명에 따르면 예수님 앞에 왔던 이 사람은 재물이 많아서 결국 예수님의 요구를 듣고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면서 돌아갔다고 합니다. 앞에서 잠간 언급했듯이 이 사람은 부도덕하지 않았습니다. 양심이 무딘 사람도 아닙니다. 종교성이 없는 사람도 물론 아닙니다. 성실하고 모범적이고 자기를 성찰할 줄 알고, 영생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재물의 지배, 또는 재물의 매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교하는 저를 향해서 ‘당신은 어떤데?’ 하고 묻고 싶으신가요? 저도 여러분과 다를 게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소유를 포기하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명령 앞에서 슬픈 기색으로 실망하여 돌아가는 저 부자와 다를 게 없습니다.

 

제자들의 위기

 

부자가 돌아간 뒤에 예수님은 낙타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아,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했습니다. 그들이 충격을 받은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자신들에게도 해당된다는 걸 눈치 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표면적으로는 모든 걸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지만 속으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실망한 부자와 별로 차이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제자들을 대표로 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막 10:28) 칭찬을 듣고 싶었을까요? 아니면 자신들의 내면에서 울리는 불안한 양심의 소리를 감추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에 대한 실망, 배신의 가능성은 늘 열려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유다는 배신을 일삼는 파렴치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예수 공동체의 재정을 책임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예수님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은 삼십이라는 돈 몇 푼이 아니라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에선가 그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에게 실망했습니다. 사실은 가룟 유다만이 아니라 수제자로 일컬어지는 시몬 베드로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도 본문의 부자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초기 기독교에 많았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예수님께 실망하고 슬픈 기색으로 떠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이야기는 부자 그 한 사람이 아니라 제자 공동체 전체에 이런 배신, 배교의 가능성이 놓였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베드로가 아무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외쳐도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보십시오. 그 내용이 29절과 30절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집, 형제, 자매, 부모, 땅을 버린 사람에게는 두 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첫째, 현세에서 그 모든 것의 백배를 받을 것입니다. 이것을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여기서 백배는 공동체와의 관계를 가리킵니다. 제자들은 개인 소유가 없어져도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백배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내세에서는 영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영생은 참된 생명입니다. 본문의 부자가 관심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그 영생은 이 세상에서 백배의 보상을 받는 방식으로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천배의 보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묵시문학적 용어인 다가올 ‘에온’, 즉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세계에서 주어집니다. 제자들은 바로 그런 생명을 기다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참된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설교 제목인 ‘돈이냐, 하나님이냐’ 하는 질문 자체에 너무 마음을 두지 마십시오. 거기서는 여러분이 절망할 겁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에 관심을 두십시오. 현세에서 백배를 받고, 내세에서 영생을 받는다는 그 말씀의 깊이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말씀의 영적 깊이가 열린다면 실제 삶에서 돈을 어떻게 쓰면서 살아야할지를, 즉 하나님과 재물을 겸해서 섬길 수 없는 강력한 도전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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