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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과부의 헌금

마가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4100 추천 수 0 2012.12.06 12:4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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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2:38-44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2012.11.11주일설교 http://dabia.net/xe/622893 

jys.jpg 정용섭 목사

가난한 과부의 헌금

마가복음 12:38-44, 창조절 열한번째 주일, 2012년 11월11일

 

 

서기관 이야기

오늘 설교 본문인 막 12:38-44절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겹쳐서 나옵니다. 하나는 38-40절에 나오는 서기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병행구인 마 23:1절 이하에 따르면 서기관만이 아니라 바리새인들도 이 이야기에 포함됩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입니다. 이들은 실제로 모두가 존경해마지 않는 율법 학자들입니다. 고대 유대 사회에서 이들은 최고 지식인들을 대표했습니다. 어느 사회이거나 최고 지식 엘리트층은 존경받습니다. 마음으로만 존경받는 게 아니라 금전적으로도 충분한 예우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모임에서든지 사람들이 잘 보이는 앞자리에 앉습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니 그들은 자신들이 늘 그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대접을 받지 못하면 섭섭해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삼가라’고 하셨습니다. 가까이 하지 말고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태도를 더 직설적으로 비판하십니다. 40절 말씀을 직접 읽겠습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과부의 집과 재산을 빼앗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비겁하고 악랄한 행위입니다. 고대 유대 사회에서 과부는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율법도 그것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율법학자들이 율법을 부정하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노골적으로 과부의 재산을 빼앗은 것은 아닙니다. 율법을 범하지 않으면서도 재산을 강탈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아무리 법이 철저하게 운용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법을 교묘하게 피해갈 수 있습니다. 법을 아는 사람은 법을 이용해서 더 큰 악을 행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과부가 송사에 걸렸을 경우에 많은 돈을 받고 변호해주는 일들이 그런 겁니다. 요즘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서기관들은 과부의 가산을 강탈하면서도 길게 기도합니다. 기도를 길게 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기도의 길이는 개인이 결정할 문제입니다. 문제는 사람에게 경건한 것처럼 보이려고, 그리고 자신의 악을 숨기려고 위선적으로 길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실제 삶에서는 과부를 보호하지 못하면서, 더 나가서 당시 사회적으로 약자인 과부들의 재산을 수탈하면서 경건한 종교 행위 안으로 자신을 숨깁니다. 이런 행위를 특별하게 파렴치한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지난 역사에서 교회는 과부가 강탈당하는 현장을 지켜보면서도 외면하거나 동조한 적이 많습니다.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말한 마르크스의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죽어서 천당을 가기만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테니까 지금 당하는 고통을 참으라는 주장이 곧 영혼을 잠들게 하는 아편과 같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훨씬 무거운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종교적 위선에 숨어서 과부를, 즉 스스로 생존의 능력이 없는 이들의 억울한 상황을 모른 척하거나 착취하는 이들에게 임할 심판을 가리킵니다. 서기관 자신들은 예수님의 이런 말씀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몰랐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적으로도 완벽합니다. 모든 게 잘 되고 있습니다. 그냥 이 상태로 계속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니(요삼 1:2) 더 바랄 게 없습니다. 만약 지금 당장 누리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삶을 평가한다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무의미합니다. 그러나 임박한 하나님 나라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준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준엄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의 영혼은 살아있는 것이고, 흘려듣는 사람의 영혼은 죽었든지 잠들어 있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신가요?

 

가난한 과부 이야기

서기관을 조심하라는 이야기에서 과부는 서기관의 위선에 대한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막 12:41-44절인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가난한 과부가 중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의 헌금함 앞에서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부자들은 보란 듯이 고액의 헌금을 했습니다. 그들은 바로 앞에 나온 서기관이나 바리새인과 마찬가지로 지도층 인사들입니다. 반면에 어떤 한 가난한 과부는 푼돈을 헌금했습니다. 당시에 제사장들은 헌금함 앞에서 헌금하는 사람들의 헌금 액수를 확인했습니다. 부자들은 체면 때문에라도 헌금을 많이 했습니다. 그게 사람들의 일반적인 심리현상입니다. 요즘도 어떤 교회에서는 헌금자 명단을 주보에 기록합니다. 옛날에는 심지어 액수까지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헌금 공개는 헌금의 투명성이라는 점에서는 나름으로 근거가 없지 않지만, 그것보다는 헌금 참여율을 높이는 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부자들은 헌금을 하면서도 인정을 받았지만, 가난한 과부는 헌금을 드리면서도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두 종류의 헌금에 대해서 평가하셨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부자들의 헌금보다 더 크다고 말입니다. 예상외의 평가였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부자들은 넉넉한 중에서 일부를 헌금했지만 가난한 과부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헌금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이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도 가난한 과부처럼 자기의 소유를 몽땅 헌금하자는 것일까요? 그래서 예수님에게 칭찬을 받자는 것일까요? 모든 소유를 바치면 복을 받는다는 말씀일까요? 아니면 아무도 모르게 헌금하는 게 좋다는 의미일까요?

 

헌금 문제는 신앙생활에서 좀 까다롭고 예민합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상당히 왜곡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헌금을 율법적인 차원으로 받아들입니다. 십일조 헌금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면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고 협박하기도 합니다. 코미디 같은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도적질을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헌금을 주술적인 차원으로 받아들입니다. 십일조 헌금을 하면 창고가 차고 넘치게 축복을 받는다는 겁니다. 면죄부를 구입하면 연옥의 조상이 천국으로 간다고 주장한 종교개혁 시대의 로마가톨릭의 가르침과 비슷합니다. 하나님과의 거룩한 관계를 가리키고 있는 헌금을 천박하게 여기는 생각들입니다. 헌금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망하지도 않고, 헌금을 한다고 해서 복을 받는 것도 아니니까 그것에 관해서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거꾸로 또 어떤 이들은 헌금을 냉소적으로 생각합니다. 교회에 헌금을 할 바에야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고 말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 공동체의 운영과 복음 사역에 헌금으로 동참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형용모순입니다. 한국교회 개혁은 헌금 개혁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율법이나 사술이 아니라 복음의 차원에서 헌금에 참여하는 제도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오늘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한 이야기는 헌금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헌금도 물론 신앙 전반에 연결된 것이기 때문에 완전히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핵심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서기관들의 위선과 과부의 진정성에 있었습니다. 서기관들, 부자들, 바리새인들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사회 엘리트 집단입니다. 그들은 사회 주도층입니다. 교육도 많이 받았고 경제적 여유도 있습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야만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되는 건 분명합니다. 오늘의 목사들도 일반적으로는 그런 부류에 속합니다. 그들이 모두 비인격적이거나 파렴치한 사람들은 결코 아닙니다. 문제는 그들이 늘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에만 몰두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과도해서 결국 과부의 재산을 강탈하는데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게 당시만이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것은 여러분도 동의하실 겁니다. 우리가 주변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의식하면서 사는지 돌아보십시오. 존경받으려고 무진장하게 애를 씁니다. 대한민국의 과도한 교육열도 결국은 자신과 자녀들이 존경받는 사람이 되려는 것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데서 나옵니다. 본문에서 부자들이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헌금을 많이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삶에 아주 익숙해져 있습니다. 사회가 그런 삶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과부를 보십시오. 본문에서 이 여자는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헌금함에 넣었다고 합니다. 성경 난외주에 나왔듯이 이것은 로마 동전의 명칭입니다. 우리 돈으로 오백 원짜리 동전 두 개에 해당됩니다. 이런 푼돈을 헌금하는 일은 아주 드물었습니다. 차라리 헌금을 하지 않으면 않았지 이렇게 작은 헌금을 할 수는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비둘기 한 쌍을 살 정도의 돈을 헌금했습니다. 이 여자가 바친 액수의 스무 배 정도는 됩니다. 이 작은 돈이 이 과부의 생활비 전부였습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왜 자기의 생활비 전부를 헌금함에 넣었을까요? 그렇게 헌금하고 굶어죽을 작정을 한 것일까요? 절망한 것일까요? 인생을 포기한 것일까요?

 

가난한 과부의 영적 관심

가난한 과부의 헌금은 자신의 영혼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긴다는 고백이자 결단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생명을 인식한 것입니다. 그녀에게 하나님 이외의 대상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평가는 관심 밖이었습니다. 그래서 푼돈으로 헌금하는 것도 창피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미래마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소유를, 생활비 전부를 헌금함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임박한 하나님 나라를 직면한 사람의 영적 태도입니다. 이런 사람은 한 가지 사실인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삽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늘 이런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1) 산상수훈에 나오는 팔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로 시작합니다. 누가복음은 ‘심령’이라는 단어를 빼고 직접 가난한 자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가난한 사람이나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는 이유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이 세상의 권력이나 명예로부터 기대할 것이 없어서 하나님 나라를 대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는 사람에게 그 나라는 주어집니다. 지금 여기서 행복한 조건이 너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가 오기를 별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2) 예수님은 일상에 대한 걱정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일상의 염려는 이방인들의 태도이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제자들의 태도입니다(마 6:31-33).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만 하면 나머지 일상은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신다는 겁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무조건 교회에 나와야 한다거나 기도만 해도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모든 삶의 무게를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이나 일상에 대해서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은 모두 오늘 설교 본문에 나오는 가난한 과부의 영적 태도에 해당됩니다.

 

말이 그렇지 실제로는 그렇게 살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떻게 하나님께만 영적 관심을 두고 사느냐, 그건 수도승들이나 전업 목사들에게만 해당되는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지금 겉으로 드러난 종교적 태도나 경건의식을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일상에 속한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자체를 무시하는 것도 아닙니다. 공부도 해야 하고, 돈벌이도 해야 하고, 때로는 정치도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의에 근거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문제를 더 이상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서기관과 가난한 과부의 삶을 비교하는 것으로 정리하겠습니다. 누가 행복한지를 보십시오. 누구에게 참된 안식이 있는지를 보십시오.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아는 분들은 알 것입니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많은 수고가 필요합니다. 돈이 많으면 그것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걱정해야 합니다. 저는 수년 전에 기독교계에서 베스트셀러 글쟁이가 되었습니다. 어디서 소개받을 때마다 그게 따라다닙니다. 피곤한 일입니다. 그것으로 저의 영적 안식은 불가능합니다. 가난한 과부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사람들의 눈과 자기 업적의 부담감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아무에게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인생은 무기력하고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기독교 신앙의 세계를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오늘 본문의 가난한 과부야말로 하나님 안에서 참된 자유를 얻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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