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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쁨은 무엇인가? -1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993 추천 수 0 2013.04.10 19:3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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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4:1-9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3.4. 14 주일 설교 원고 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우리의 기쁨은 무엇인가? ⓵
막4:1-9

몇 년 전 <쥬라기 공원>이라는 영화가 세상을 떠들썩했습니다. <쥬라기 공원>은 공상 소설에 기초한 것이지만 그 아이디어는 참 기발하죠. 지금으로부터 1억 5천만여년 전인 쥬라기 때에 공룡의 피를 머금고 죽은 모기의 화석에서 공룡의 DNA를 추출하여, 그것으로 공룡을 만들어 낸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최근에 과학자들은 그런 공상이 실현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혔지만, 그런 공상만으로도 오늘날의 생명공학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미 양이나 개를 복제하여 기르고 있고, 이제 인간을 복제하는 것도 윤리의 문제일 뿐 기술의 문제는 아니라고들 합니다.

이렇게 존재를 복사하고 복재하는 기술은 영장류뿐만 아니라 균과 같은 미생물도 종족 번식의 차원에서 갖추고 있는 창조적인 기능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본능 성 외에 본능 밖의 것까지 ‘복사’하고 ‘복제’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종이의 발견과 인쇄 기술의 발달은 문서의 대량 복사를, 과학과 산업 기술의 발달은 똑같은 제품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전파의 발견과 방송 기술의 발달은 영상이나 음성을 넓은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동시에 보고들을 수 있게 함으로써 유행과 삶의 양식뿐만 아니라 생각과 정서까지도 복제하는 것이 가능하게 하였고요. 컴퓨터의 등장은 또 어떻습니까? 별 수고를 하지 않고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양의 문서나 프로그램을 복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과거에는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 또는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라고들 했지만 이젠 여기에다가 ‘복사하는 존재’라는 명칭을 하나 더 덧붙여야 하겠지요.

그러나 적어도 생명의 복제에서는 사람은 복제의 과정에 끼여들 수는 있지만 복제의 능력은 없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DNA를 옮겨 심거나 결합시키는 정도이지 DNA 자체를 만들어 내거나 복제하지는 못하기 때문이죠. 생명을 복제하는 능력은 인간의 능력을 훨씬 넘어서는, 근원적인 생명의 능력입니다. 테야르 드 샤르뎅(Teilhard de Chardin)은 생명의 가장 기본적 운동을 세포분열과 같은 생명체의 복제 원리에서 찾았습니다. 생명체는 계속 존재하기 위하여 계속해서 닮은꼴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생명의 복제가 일어나는 장소는 어디인가, 세포일까, DNA일까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그 정도를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이 더 발달함에 따라서 그런 것보다 훨씬 더 미세한, 생명 복제의 장소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것을 무한히 쪼개고 들어가다 보면 어떤 공간의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물질과 정신의 구별이 생기기 이전의 어떤 상태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그것은 아직 우리가 모르는 세계이기에 여전히 신비의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우리는 그것을 ‘씨’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씨알도 씨이지만 DNA나 그보다 더 작은 어떤 근원적인 생명체도 역시 씨입니다. 씨는 물질이면서 동시에 운동인, 생명의 본질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DNA를 발견한 사람들이 현미경 앞에서 느낀 환희나, 수 천 년 전에 처음으로 농사의 비결을 배운 사람들이 씨알을 심고 나서 그것에서 싹이 나는 것을 보고 느낀 환희나 질적인 면에서는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있는 한 알의 씨알은 곡식 몇 밀리그램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죠. 화성의 원하는 곳에 정확하게 탐사선을 착륙시키는 오늘의 기술로도 저 들판에 지천으로 널린 풀씨 하나를 만들 수 없습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설명할 때 씨의 비유를 들곤 했습니다(막 4:26-29; 4:30-32,마 13:31-32,눅 13:18-19).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삶과 활동 전체를 그 말 한 마디로 집약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 중요한 것을 설명하는 데 씨를 비유로 든 이유는 무엇일까? 씨알 하나가 갖는 이런 깊은 의미를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석가들은 흔히 이런 경우에서 이 비유는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인 것처럼 취급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목적이라면 비유는 수단이며, 전자가 설교라면 후자는 예화인 셈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비유에서 어떤 특징을 추출해 내고 그것에 따라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비유는 아무런 쓸모가 없으므로 버리게 되죠. 예를 들면, ‘자라나는 씨의 비유’(막 4:26-29)에서 그들은 ‘씨는 성장한다’ 또는 ‘추수 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에 온다’는 특징을 추출해 냅니다. 또 ‘겨자씨의 비유’(막 4:30-32)에서는 ‘지극히 작은 겨자씨와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는 큰 가지 사이의 대조’라는 특징을 추출해 냅니다. 그리고 나서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는 이 역사 속에서 성장해 간다거나,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다가온다거나, 시작은 미미해도 나중에는 대조적인 성공을 거둔다는 등의 의미를 해석해 냅니다. 이런 해석 다음에는 하나님 나라의 의미만 남고 그 비유는 사라져 버리게 되는 거죠. 교훈만 남고 이야기는 사라져 버립니다.

오늘 우리의 관점은 과연 성서를 이렇게, ‘뭔가를 얻으면 그 다음엔 버려야 하는 성경말씀이 있단 말인가?’하는 물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비유 가운데는 ‘하나님의 나라는[천국은] …과 같다’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막 4:30-31). 또 누룩(눅 13:20-21), 상인(마 13:45), 열 처녀(마25:1), 임금(마 22:2), 포도원 주인(20:1),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마 13:24), 어떤 왕(마 18:23)과 같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이러한 낱말들은 각각의 비유의 맨 처음에 나오며 모두 여격(與格)을 취합니다. 주석가들은 이러한 비유를 ‘여격으로 시작하는 비유’라고 하며, 서두의 여격은 예수가 사용한 아람어의 전형적인 비유 양식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격이란, ‘태수 에게’ 할 때 그 ‘에게’와 같은 역할을 하는 품사를 말합니다. 그만큼 주체적이지 않다는 말이고, ‘에게’는 ‘태수’라는 체언이 없으면 소용도 없다는 뭐 그런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예수는, 당시의 전형적인 아람어 비유 양식을 그대로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 양식의 여격 서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즐겨 사용했습니다. 겨자씨의 비유 서두를 여격의 의미를 살려서 번역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에게서와(=겨자씨에게서 일어난 일과) 같다’는 의미가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은 것이 아니라, 겨자씨라는 낱말로 시작하는 이야기 전체에서 나타나는 사정과 같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는 누룩, 상인, 열 처녀, 임금, 포도원 주인 등등과 같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낱말로 시작하는 이야기에서 나타나는 사정과 같다는 것이 됩니다. 이런 형식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겨자씨, 누룩, 상인, 열 처녀 등등에게서 일어난 사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러한 사정을 제대로 알아야 하나님의 나라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예수가 여격형 서두를 즐겨 사용한 것은 그의 비유에 이런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입니다. 그의 비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는 청중들이 그의 이야기에서 교훈만을 취하고 나머지를 버리는 것보다는,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본질을 찾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예수의 비유를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서 읽기보다는, 그 이야기 자체에 깊숙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 이야기의 재미를 알고 그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이야기의 사정에 비추어서 말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까지도 터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러한 사정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막 4:1-9)에서 더욱 잘 나타납니다. 이 비유는 ‘여격으로 시작하는 비유’는 아닙니다. 하지만 여격으로 시작하는 비유에서보다 더 비유 자체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왜냐 하면 이 비유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천국은] 이와 같다’는 말이 아예 나오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주석가들은 이 비유 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설명하는 비유라고 말합니다. 이 비유는 예수가 무리를 가르치는 가운데 나온 것인데(2절) 그 가르침의 핵심이 하나님의 나라이니, 그런 설명은 옳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없이 이 비유만을 말하는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이 비유를 하나님의 나라 비유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볼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이 비유를 제대로 해석하기 위하여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어떤 특징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무릎에서 옛날  이야기를 듣는 어린아이와 같이, 그 비유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재미있게 읽고 그 이야기의 세계에 푹 빠지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3절).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큰 무리(ochlos)’라고 되어 있는데, 그들 가운데는 농사짓는 사람, 소작하는 사람, 남의 밭에서 날품을 파는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농사를 지어 본 사람들이고 씨 뿌리는 일에는 훤한 사람들입니다. 예수가 이렇게 말문을 열었을 때 그들은 즉시 밭에 씨를 뿌리는 일을 머리속에 그렸겠죠? 그들 가운데 누구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씨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고 물었을까요? 이어서, 씨 가운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고, 더러는 돌 짝 밭에 떨어지고, 더러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지고, 더러는 옥토에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들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들의 일터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누구도 ‘말씀을 듣고서 이러 저러한 태도를 취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마 4:14-20)을 떠올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당시에 유행하던 우의적(寓意的=allegorical) 해석의 영향을 받아서 “씨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고 물었고, 그것은 곧 ‘말씀’을 가리킨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길가, 돌짝밭, 가시덤불, 옥토 등에 뿌려진 씨는 이러 저러한 태도로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비유를, 설교를 듣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르치는 교훈적 예화로 바꿔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예수 자신의 것이 아니라 초대 교회의 하나의 해석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는 일을 전혀 모르다 보니 씨 뿌리는 이야기에는 흥미가 없고 오히려 그런 우의적 해석에 끌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의적 해석에 빠질 때 우리는 예수가 그 비유를 말한 뜻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해석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제 우의적 해석이나 하나님의 나라 비유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서 예수의 비유를 본래의 이야기 그대로 읽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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