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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되는 부활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514 추천 수 0 2014.07.08 15: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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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6:5-7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4.4.28 주일예배 http://sungamch.net 춘천성암교회 

거듭되는 [부활]
막16:5-7

아직도 울컥울컥 터져 오르는 눈물을 열 번은 삼켜야 하루가 저문다. 그런데 팽목항의 어미 애비들은 어쩔까? 이 아픈 현실의 주범은 ‘예수를 잘 못 믿고 있는 우리’다. 그런 양심 고백의 심정으로 이 원고를 썼다.  


기존의 교회에서는 부활절이 끝나면 일절 ‘부활’에 대한 이야기는 멈춰집니다. 그러다가 간간히 교우들이 사망하기라도 하면 장례를 치룰 때 잠시 ‘부활’을 들췄다간 그대로 또 묻어두죠. 그런 채로 1년을 지내다가 다음해 부활절이 가까이 오면 다시 들춰내서 ‘부활’을 말합니다. 그리고 또 덮어두고.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사건 하나가 이렇게 절기용이거나 아니며 장례용, 혹은 ‘내세의 지식’이라는 항목에 묶여 버린 것입니다.

몇 차례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나눴음에도 저는 여전히 못다 한 이야기가 있어서 오늘도 부활에 대한 말씀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부활의 목격자가 누군지 눈여겨보십시오. 그들은 평소 재판 때에는 ‘증인’으로도 효력이 없는 여자들입니다. 재판의 증인으로도 쓸모없는 여자들이 예수부활의 증언자들이라는 겁니다. 그 위대한 부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가 ‘여인들’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반대로 예수 탄생의 목격자가 당시에 가장 천대받던, 그래서 증인으로서의 가치가 없었던 ‘목동’이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그 탄생과 부활이 실로 인간세계에 일으킨 파장이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목동’과 ‘여인’을 증언자로 해서 이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이렇게 증인의 가치도 없는 여인들이 예수의 부활을 목격하는 장면 또한 허접합니다. 뭘 똑똑하게 본 게 아니라 고작 ‘빈 무덤’을 보았다는 겁니다. 되살아 나셨음 직한 생생한 목격담도 없고, 의학적인 설명은 더더욱 없습니다. 성서의 기록자는 왜 이런 중요한 사항에 관심을 집중하고 추적하여 정리하지 않은 채 ‘허접한 목격과 증언 그리고 증언자’를 성서에 그대로 방치해 둔 것일까요? 그것은 당시의 사람들이나 기록자는 ‘부활’이라는 사건 자체에 매달려 있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들은 예수 부활을 ‘유일하게 발생한 일회적인 사건’으로 사고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그때 그 사건으로 끝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본문이 담고 있는 핵심은 무엇입니까? 증인이라고는 증인이 될 수 없는 여자들이었고, 또 그녀들이 목격 했다는 것이라고는 ‘빈 무덤’ 이라는 거였으니 유일무이한 사건으로서의 ‘부할’을 신뢰하도록 세상을 설득하기엔 빈약하기 그지없지 않습니까? 성서본문은 ‘부활사건’그 자체는 이렇게 가볍게 해놓고서는 그 다음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 다음이 뭡니까? 빈 무덤에서 흰옷 입은 한 청년을 만났는데 그 청년이 뭔 마을 했다는 겁니다. 이게 ‘예수 부활’의 핵심이 된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말하는 부활의 핵심은 그 진위여부가 아니라 빈 무덤에서 나타난 청년이 증인들에게 했다는 [말]입니다. 그게 뭐죠?

“그분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다.”

우리의 기대대로라면 흰옷 입은 청년은 “예수님의 부활은 진짜다.”이렇게 말한 다음에 그걸 증명하는 여러 증빙 자료들을 들이대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도 다짜고짜 아무설명도 없이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다.”이것만 말했다는 겁니다. 이게 당시대 부활의 중요사항이었던 겁니다. 걱정입니다. 부활에 대한 그동안의 고정된 여러분의 믿음과 사고를 다시 한 번 교정을 하셔야 하니 말입니다. 성서 기록자는 예수의 부활을 그때 거기서 일회적으로 ‘끝난 사건’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에게 예수 부활은 ‘다시 갈릴리에서 시작되는 사건’일 뿐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로 가셨단 이야기, 가신다는 이야기는 이번만이 아닙니다. 세례요한이 체포되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때도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의 나라 사건을 요한을 뒤이어서 계속했습니다. 베뢰아에서 멈추어버린 그 사건을 계속 일으키고 다녔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세례 요한대신 세례요한의 일을 하고 있었던 예수를 보고 뭐라고 했습니까? ‘요한이 살아났다. 요한이 부활했다’고 했습니다.(막6:14-)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은 처형당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사건은 거기서 종결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처형당한 예수는 장소를 갈릴리 옮겨서 예루살렘에서 행했던 일들을 계속해나갈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멈춰진 예수의 언동들이 갈릴리에서 계속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향이 있고, 가족이 있고, 그를 따르는 민중들이 있는 갈릴리에서 예수님의 사건은 계속 될 것입니다. 예수가 일으켰던 사건이 예루살렘에서 멈춰지고 갈릴리에서 계속 될 것이라는 게 마가복음의 증언입니다. 이것이 마가가 전하는 예수의 부활입니다. 그리고 당시대 사람들이 믿는 ‘부활’이었습니다. 생물학적인 사건으로서의 ‘부활’보다는 현실적인 삶의 내용으로서의 ‘부활’로 이해를 하고 있었다는 방증입니다. 이래서 당시대 사람들에게, 갈릴리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미래적인 희망이 아니라 ‘현실적인 사건의 연속’이었습니다. 관념이나 신념의 부활이 아니라 생생하게 이어지는 삶 속에서의 사건이었습니다. 이게 예수의 ‘부활’이었습니다.

그러면 이토록 생생하게 삶의 현장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했던 예수 부활이 어쩌다가 ‘부활신화’가 되었을까요? 그리고 그 부활신앙은 이 땅의 사람들의 삶을 북돋워주고 희망을 보태주기는커녕 왜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 게 된 걸까요? 그리고 이 시대에 와서 ‘부활절 행사’는 지금 당장 고통당하며 살고 있는 대중들을 외면하는 것일까요?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유대교와 기독교를 분리하는 가장 중요한 기점은 ‘예수 부활’입니다. 예수 부활신앙 때문에 기독교는 유대교로부터 독자적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예수의 부활이 역사 속에서 단 한 번 밖에 일어나지 않는 ‘유일무이한 사건’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유일무이한 사건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인간들로서는 불가한’사건이라는 이해도 전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이외는 누구도 ‘부활’을 일으킬 수도, 일으켜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절 신조가 기나긴 역사를 갖는 동안 그리스도교 전통의 핵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이해는 믿는 이들의 무의식 속에 진리처럼 뿌리를 내렸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위에서 말한 부활절 신학, 하나님만이 부활을 일으키는 것이고, 이것은 그때 한 번 유일무이하게 발생한 사건이라는 신학을 신앙의 본질처럼 믿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이런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세계와 세계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되는 경향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예수의 부활은 그때 거기서 한 번 만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그런 삶의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역사적인 문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더욱 세계의 사건에 개입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주장 때문에 역사의 현안을 담아내려는 일체의 인간적인 의지를 말살시켜버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외의 신앙인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안창호나 본 회퍼 같은 분들입니다. 그러나 정통 기독교는 대체로 자기 시대의 역사적인 문제로부터 벗어나서 내세론적인 신앙관을 형성해 왔습니다. 이게 모두 어긋난 ‘예수부활’신앙 때문입니다.

이러다 보니 ‘부활신앙’은 예전 속에서만 등장을 합니다. 거룩한 예복을 입고, 거룩한 말과 동작으로 ‘부활’을 선포 할 때만 주인공 예수가 깜짝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 예전속의 예수는 예루살렘이나 갈릴리의 삶의 현장에서처럼 파급력이 없고 영향력이 없습니다. 그저 예전 안에서 “싸움은 끝나고 생명의 승리 얻었네 개선가 높이 부르세 할렐루야.” 하는 공허한 노래일 뿐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진정으로 유일무이한 한 번의 사건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갈릴리로 가셨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루살렘에서의 예수를 갈릴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그가 일으키는 사건을 다시 체험하게 된다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하고, 체험하게 했던 모든 일들을 다시 갈릴리에서 경험할 수 있다는 말씀 아닙니까? 그걸 희망하고 이해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 부활’을 증언하고 목격하는데 초점을 두지 않고 ‘그가 일으킬 계속되는 사건’에 집중한 게 아닙니까?

물론 예수님은 유일무이한 존재 맞습니다. 그러나 인류역사상 단 백만분의 일초라도 살았다가 죽은 인간 모두는 생물학적 형질상으로 유일무이한 존재들입니다. 나와 같이 살다가 죽는 인간이 또 어디 있단 말입니까? 단지 생물학적으로 30년을 살다 죽건, 50년을 살다 죽건 그걸로는 모두가 유일무이한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유일무이하다고 할 때 그건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몇 년을 살아서가 아니라 그가 일으킨 ‘삶 속에서의 사건과 그리고 그 사건의 지속성’ 때문에 예수의 삶이 ‘유일무이의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논리입니다.

단순한 죽음이 예수님의 ‘유일무이’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의 삶과 그 삶의 지속성’이 예수를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그의 삶이 멈추지 않고 갈릴리에서 학곡리에서 그를 따르는 또 다른 사람들에 의해 2천년이 지나도록 지속 되고 있음으로 ‘예수는 유일무이한  존재’이며, 예수는 ‘부활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처형당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이나 이야기는 2천년이 지난 외딴 이곳의 사람들에게 여전히 그 생명력을 발휘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생명력은 제2, 3의 예수를 통해 계속 역사의 무대 위에서 살아나고 있을 떼, 그걸 예수의 부활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생물학적으로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역사속에서 그분을 그리워하고 희망하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부활하여 역사를 창조하는 새 힘과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해골을 숭배하는 예전주의적인 종교로 탈바꿈을 하면서 교회는 더 이상 예수의 부활사건이 일어나는 공간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부활절 이후’라는 곤룡포를 입고 의자에 앉아만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부활절’이전의 ‘예수 부활’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부활절’만 부활을 기리고는 닫아 두었다가 1년이 지난 다음에 다시 꺼내서 제사처럼 모시는 ‘사당안의 영정’이 되어버린 예수를 우리는 믿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고 기리는 예수의 부활사건은 고통으로부터 헤어 나오길 소망하는 이들의 현실 위에서, 좀 더 돈과 군력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갈망하는 삶속에서 계속 사건화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는 자의, 교회의 신앙의무인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부활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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