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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예수의 [복음]이 필요하다.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995 추천 수 0 2014.08.22 23:5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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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43-45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4.7.22 주일예배 http://sungamch.net 춘천성암교회 

이런 예수의 [복음]이 필요하다.
막1:43-45





오늘 예수님의 사건은 갈리리의 어느 지역에서 나병환자를 고쳐준 일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에게 사제에게 가서 깨끗해졌음을 증명 받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일이 널리 알려지고, 이로 인해 예수님은 더 이상 동네로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상한 일이죠. 고칠 수 없는 병을 고쳤는데 훈장을 주기는 커녕 미움을 사게 되었다니 말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을까요? 어떤 경우에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나요? 마을 사람들이 참으로 고약합니다. 심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서는 그렇게 고약한 마을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습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나병’‘나병’하니까 의학적으로 말하는 한센병을 말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나병’이란 신체에 혐오스럽게 혹이 나거나 전염성이 강한 피부병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겉보기에 불쾌하니까 그런 환자들을 격리하기 위해 ‘나병’이라고 낙인을 찍은 겁니다. 이런 낙인 한 번 찍히면 회복이 거의 불가능해 집니다. 그러므로 성서에서 말하는 나병은 순전히 이기주의적인 개인의 편견이나 감정의 관성과 같은 것입니다.

예전에 제가 아는 어느 공무원이 빼빼 말라가다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밑도 끝도 없이 그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말을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에 사람들은 모두 그는 에이즈로 죽었다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뭐 말하자면 이런 식이라는 겁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나병을 천형이라고 했습니다. 하늘이 내린 병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격리시켰습니다. 오염이 될까봐서입니다. 부정함이 옮길까봐서 그랬던 겁니다. 나병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그는 ‘이미 와버린 죽음’을 품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예수에게 왔다는 것입니다. 나병환자가 일반인에게로 왔다는 이것만으로도 경을 칠 일인데 가만히 있지 않고 자기를 고쳐 달라고 애원을 했다는 겁니다. 감히 천형을 면해 달라는 것이니 이는 더욱 경을 칠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건강관리체제와 천형을 받았다는 징벌적인 사회의 관성을 아무 거리낌 없이 마주대하십니다. 이게 예수다움입니다. 적어도 예수 믿는 다는 것은 이런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세상의 관행과 종교적인 터부를 무시하고 본질을 관통하는 길을 가시기 때문에 그가 진리요 생명이 되는 겁니다. 예수는 그렇게 사회와 사람들의 편견에 내몰린 그를 마음 밖, 몸과 삶의 밖으로 밀어내지 않고 끌어들입니다. 그를 ‘측은하게 여겼다’가 그것입니다. 이게 세상을 거꾸로 사는 법입니다. 다 밀쳐 냈는데 그는 끌어 안아줍니다.

그 나병환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았습니다. 그러면 그가 다시 가정과 사회에 받아 들여졌을까요? 나병은 신의 저주이기 때문에 그를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는 사회정치적인 형별이 내려졌고, 사람들도 그런 사람을 불결의 상징으로 여겨 회피하는 것, 심지어 질병에 걸린 그 자신조차 이런 사고에 말려들어서 자기 자신을 저주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책이었던 게 바로 나병의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나병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사제가 그를 정결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이것은 사회적인 형별의 해제를 의미하는 거죠. 단순히 한 개인의 고통스러운 질병이 고쳐진 것을 넘어서는 큰 의미의 사건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습성화된 의식이나 감정은 그를 포용할 수 없습니다. 만약 사람들의 감정적인 관성조차 해제될 수 있다면, 이 문제에 대한 정치사회적인 제도는 있으나마나 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런 제도를 무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문제는 사회종교적으로 나병을 세상과 결별시키는 게 아니라 바로 사람들의 의식의 문제가 더 큰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적어도 법적으로는 불이익이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성화 된 편견이 문제입니다. 그가 나병이 나았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에게 향했던 경계를 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치유 받은 나병환자의 운명이 이렇다면, 그를 측은히 여기던 예수의 마음과 그런 마음으로 그를 치료한 예수는 실수한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견고하게 자리 잡은 사회적인 편견을 너무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이 일로 인해 예수는 그 자신이 난처함에 빠졌고, 나병환자에게도 행복은커녕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처함에 빠뜨린 꼴이 되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몹쓸 질병을 고치는 치유행위라 가 아니라 배제당한 자를 복권 시키는 일, 격리의 해제를 선포하는 일, 이것이야 말로 병 고치는 일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병 고치는 것’이 복음으로 간주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과 마음속에 자리 잡은 관성과 편견을 넘어서는 일’이야 말로 진정한 복음이라는 것이며, 예수는 바로 이러 복음을 세상에 널리 펴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이 시대에 필요한 복음인 것입니다. 이런 복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개인의 감정적이고 물질적인 형편과 처지를 변모시키고 부흥케 하는 ‘개인주의 적인 복음’을 넘어서는, 사회 속에 관성으로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감정과 편견을 넘어서는 ‘해제의 복음’이 바로 예수 복음의 실제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나병환자와 같은 대접을 받는 이들은 누굴까요? 노숙자들이 그들 중 한 부류일 겁니다. 오늘날 그들은 마치 사회의 나병환자처럼 배제된 새로운 항목의 인간집단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도시의 밖으로, 생활 영역 외부로 밀쳐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적어도 우리네 삶의 공간에서 거의 망각된 존재로 되어 있습니다. 나병이라는 혐오의 대상은 사라지고 노숙자라는 새로운 배제의 인간군을 타의로 자의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을 유의하게 드리고 싶습니다. ‘나병환자처럼 이 사회에서 배제할 인간군을 자의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는 말 말입니다.

인간에겐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약간씩 가학성이라는 게 있습니다. 남을 골탕먹일 때 느끼는 즐거움 같은 거 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어릴 때부터 배제하길 습관처럼 합니다. 그러면서 긴 역사를 통해 늘 그 대상을 물색하여 지목하곤 집단으로 때론 개인으로 폭력을 써왔습니다. 유대인 학살이나, 일본 대지진 당시 한국인 학살이 역사적으로 그런 류에 해당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마리아인의 배제도 그런 것입니다. 가학성의 대상이 언제나 필요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노숙자들을 그런 가학성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들을 ‘일하지 않는다’고 비난합니다. 노동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폐인이라고 낙인찍습니다. 개별 인간의 이런저런 사정은 불문에 붙이고 오로지 노동하지 않기 때문에 버려진 인간으로 취급해 버립니다. 인간의 존재 가치가 노동으로 평가되어, 노동하지 않는 인간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관성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노동을 하지 않는다고(일하지 않는다고)불완전한 존재라고 여기며 폐인이라고 치부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삶속에서 또는 의식 속에서, 감정 속에서 내 몰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노동이라는 게 뭡니까? 상품을 생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다시 상품의 가치를 생산하는 능력을 노동이라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주부의 가사일이나, 학생의 공부 따위는 엄밀한 의미에서 노동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상품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성차별이나, 아동차별의 사회경제적인 근거가 생깁니다. 인간의 존엄성이 곧 노동과 직결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고, 그 노동의 능력에 비례해서 쓸모 있는 인간과 쓸모없는 인간이 규정되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적인 체제 안에서 노숙자는 천형을 받은 나병환자와 같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복음이 뭐냐?
잘 먹고 잘살게 해 주는 게 예수의 복음이 아니라, 이렇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못된 사회질서와 의식을 혁파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그런 뜻을 품은 예수를 알 수 없어서 비난을 하겠지만, 그래서 여전히 자기 좋은 대로 무의식의 행동을 통해 자기만 살려고 하겠지만, 그래도 예수는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그가 하실 일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더라도 예수의 패기어린 객기는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바로 그런 배제주의적인 인간의 관성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제 분명해진 것은 나병환자가 죄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죄인은 나병을 천형이라고 규정짓고 나병환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가 바로 유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숙자 같은 배제된 인간군을 만들어내는, 또 우리 안에서 점점 확산되어 갈지 모르는 그런 관성화 된 의식과 삶의 태도에 도전하여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가 둘러친 그런 정치사회적인 장치를 위반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믿는 자로써 그렇게 살지 않으면 우리가 어떤 사랑의 행위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은폐하는 무서운 범죄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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