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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2: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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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허태수 목사 |
참고 : | 2014.7.29 주일예배 http://sungamch.net 춘천성암교회 |
문 없는 문(無關門)-다른 門
막2:1-12
여름을 나려고 너덧 권의 책을 샀습니다. 계산대에 있던 책방 주인이 저더러 “두 권 포개면 베고 주무시기에 알맞은 두께네요.”합니다. “난 한 권 만 베도 됩니다.” “아? 낮게 베시는 군요.”
그 책 중 한 권의 제목이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라는 책입니다. 절간의 스님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가부좌를 하고 앉아 어떤 문장 하나씩을 명쾌하게 해석해 내야 하는데, 처음에는 그게 천 가지도 넘었답니다. 그러다가 한 500 문장으로 줄이고, 그걸 다시 50개 쯤으로 가려 뽑아 놓은 책이 있습니다. 그걸 무문 스님이 했다고 해서 그랬는지 어땠는지 제목을 [無門觀] 즉, ‘없는 문으로 들어가기’입니다. ‘문이 없는데 문으로 들어간다’는 말이 조금 우습지 않습니까? 그러나 진리란 없는 문으로 들어가야 진리지, 누구나 드나드는 그런 문으로 들어가면 그건 진리가 아니라 그저 상식이고 일반일 뿐입니다. 서양에서는 이걸 영어로 The Gateless Gate 라고 한답니다. ‘문 없는 문으로 들어가기’입니다.
그러면 절간의 스님들만 이런 고상한 방식으로 진리를 획득했느냐? 아닙니다. 예수님도 일찌감치 [無門觀]을 실행하셨습니다. 휴가철이기도 하니 오늘은 간략히 그 정수를 맛보십시다.
한 집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집에 예수님의 일행이 들어갑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는 아닙니다. 집 주인이 있었을 테지만 성경은 집 주인의 이름 따위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런 군더더기는 없는 문을 찾아 들어가는데 더욱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인을 밝히지 않음으로 이 대목을 읽는 이들을 잠시 혼돈에 빠뜨립니다. 주인이 없으니까 아무나, 아무 때나 제 집처럼 드나들 수 있겠구나 하고 말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문이 없는 게 아니라 아주 넓고 커서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집이라고 생각을 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집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선입견을 간단히 거부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그 집은 이미 빽빽이 채워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사람이 많이 와서 채웠으니 그 집의 문은 아무에게나 열려 있는 문이로구나 하시지는 마세요. 분명히 창녀가 세리, 전염성이 강한 질병을 가져서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사람과,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거부했을 것이고, 그들 또한 사람들의 따가운 배제의 눈을 모른 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완력이 부족한 아이들도 그 집의 문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여자들도 제외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통상 그랬으니까요. 그러니 누구에게는 그 집의 문이 문이지만 이런 사람들에게는 문이 있어도 문이 없는 것과 다르지 않았겠죠? 그러므로 이 집의 대문은 그런 사람들에게 굳게 닫혀 있는 것과 진배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중풍병자에게 이 집의 문은 어땠을까요? 그에게도 이 집의 문이 활짝 열린 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문은 문이지만 들어갈 수 없는 문’이었을까요? 그가 설사 예수를 간절히 필요로 한다고 해도, 호기심으로 구경나왔을 건강한 남자들을 헤집고 들어갈 문은 없습니다. 그야말로 ‘無門’아닙니까? 이렇게 문이란 필요에 따라 열고 닫거나 들고 나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능력에 따라 개방되는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통령이 살고 있는 청와대의 문은 아무에게나 열린 문이 아닙니다. 그건 우리 같은 이들에겐 닫힌 문입니다. ‘無門’말입니다.
그렇게 문이 없습니다. 이 중풍 병 환자에겐 그 집의 문은 문이 아닙니다. 들어갈 수 없는 문입니다. 그런데 4절을 보세요. 그 중풍 병 환자는 지붕을 뜯고 예수에게 다가갑니다. 이 때 뜯겨진 지붕은 지붕이 아니라 그에게는 ‘다른 문’ 또는 ‘또 하나의 출입구’입니다. 그야말로 ‘[無門觀]-The Gateless Gate 인 것입니다. 그의 처지로는, 개인적인 생물학적인 능력과 사회적인 인간의 지위로는 문을 통해 들어갈 수 없지만, 그는 새로운 문을 만든 것입니다. 이 문은 아무도 생각지 않는 문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없는 문입니다. 오로지 그에게만 문인, 그만의 문인 것입니다. 문이 아니지만 문이 되는 문입니다.
빽빽이 채워진 많은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그런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문, 딱히 없는 문을 만들지 않고서도 들어갈 수 있는 그런 문으로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냥 구경꾼들일 뿐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게 뭐냐? 세상과는 다른 문 만들기 이고, 그 만들어진 문으로 들어가기 입니다. 없는 문을 통해 들어가기 이니 [無門觀]입니다. 또 다른 문으로 들어가 전혀 다른 경험의 세계에 사는 이들을 그리스도인이라, 예수 믿는 사람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에게 들어가는 문입니다. 예수 신앙도 그런 의미에서 [無門觀]의 깨달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서늘해지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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