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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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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장 1절-5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예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지난주에 이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그러니까 복음은 누구로부터 시작이 되느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그래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를 좀 더 분해하면 예수는 구원이라. ‘구원’ 하면 예수고.
예수는 구원이라. 이 구원이 질이 무엇으로 되어 있느냐?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들어있다. 즉 성령으로 들어있다. 우리에게 성령의 역사로서 들어간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이 되는데, 이 구원은 하나님의 신 성령으로부터 내가 만들어진다.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만들어진다.
예수님의 교훈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했으니 예수는 구원이다. 그 구원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교훈이 들어간다. 이 교훈은 하늘의 이치로서 하늘의 성격으로서 하늘의 성질로서 하늘의 성분으로서 들어있다. 즉 하나님의 것으로 들어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지혜지식이요, 하나님의 도덕성 즉, 선 사랑 거룩 진실이요, 능력성 즉, 의와 거룩으로 들어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하는 자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로 들어가 있으면 거기에는 믿음이 생겨지고 사람이 구원이 된다. 즉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으로 이뤄진다. 사람이 하나님을 닮아간다.
이렇게 되는 것이 이 세상을 만들기 전에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의중 의지세계에서 설계가 되어 있고, 예정이 들어가 있고, 하나님의 사람을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세상물질을 엿새 동안 만든 것이다. 이 세상을 그냥 만든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을 따르면서 만들어지는데 사용하고 활용하고 이용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성도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그 목적으로 물질세상을 만들었으니 세상의 모든 물질 하나하나가 세상 학적으로 말하면 과학적 법칙으로 들어가 있는 거지만 그 법칙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깨닫고 이치적으로 만들어지는데 이용 활용을 잘 할 수 있도록 된 것이다. 세상물질도 만사도 역사의 진행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깨달을 수 있도록 다 들어가 있다. 하나하나마다 안 들어가 있는 게 없다.
그래서 이태백이는 배 타고 달을 보며 술잔을 기울이겠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달을 보고 달 사이로 구름이 지나가니 달빛이 가려지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과 나 사이에, 주님과 나 사이에 그 어떤 것이 끼어지면 내가 어두워지는구나. 어두워지면 내가 답답하다. 갈 길을 모르고 더듬고 헤맨다’ 하고 깨닫는 것이다.
빛이 밝으면 모든 게 구별 분별되어서 훤하게 다 안다. 구별 분별 등치 큰 거, 기장, 장광, 색체, 활동, 영의 눈으로 볼 때 그 배후에서 무엇이 어떤 영이 들어서 사람 속에서 그걸 움직이게 하는지 알게 된다. 밤에 나무가 흔들거린다. 무엇에 의해서? 바람에 의해서. 사람이 움직인다. 활동을 한다. 일을 한다 할 때 무엇에 의해서 저 활동이 나오는지 그 활동 이전의 마음속의 감화성을 안다.
사람의 소원 목적이 땅으로 땅의 것으로 세상 것으로 들어가 있으면 그 사람 속에 마귀가 역사를 하는 건지, 성령이 역사를 하는 건지? 밤중에 나돌아 다니면 귀신이 들었는지, 성령이 들었는지? 낮에 일하고 정확하게 하루를 잘 지키면서 활동을 하면 그 사람 속에 악령이 들어서 그 활동을 하는 건지, 성령님이 들어서 그 역사 그 활동을 하는 건지 이게 다 나온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경으로 통해서 인간 자기를 깨닫고,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을 가르쳐서 바른 길로 인도하게 된다. 성경은 사람을 가르친다. 사람이 사는 목적과 그 목적을 향해 가는 길을 가르쳐 준다. 예수 잘 믿는 길을 가르쳐 준다. 무턱대고 ‘예수 믿고 부자 되고, 세상만사 형통되고, 성령 받고’ 이렇게 떠드는 건 잘못 돼 있다.
창조의 설계가 예수 그리스도요, 역사진행의 섭리가 예수 그리스도요, 창조의 시작과 끝이 예수 그리스도요, 세상 마지막 심판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으로 끝난다.
믿는 나는 이 땅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신령천국에 들어가서 그 신령천국을 누린다. 이것이 현재 인간 내가 존재하고 있는 재세기간의 목적이요 인간 나를 창조한 목적이다. 이것을 떠난 것은 어떤 것이라도 복음이라 할 수 없다. 간단히 말해서 예수 믿는 내가 예수님으로 닮아지는, 하나님으로 닮아지는 그 교훈과 그 이치를 그 성품을 빼놓은 모든 교훈과 가르침이라면 이것은 거짓이요 이단이요 이질이요 세상적이요 육적이요 마귀적이다.
우리가 예수 믿는 건 본질로 들어가야 한다. 단순히 인간 자기의 감정과 자기의 열심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말씀을 명철하게 깨닫는 거기에서 자기의 열심도 나오고 지혜도 나오고 생각도 나오고 도덕성도 나오고, 예수님으로 닮아진 것으로써 나와야 한다.
2절: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 감화를 받아서 무엇이라고 기록하였느냐?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감화 감동시켜서 그 선지자의 입을 열게 해서 네 앞으로 하나님 당신의 사자를 보내주신다. 그러니까 이렇게 해서 나를 만드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설정대로의 그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나에게 당신의 사자를 보내서 더 잘 만들어지게 하신다.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뭘 가르치느냐? 인간 나의 길을 예비해 주시는 사자라.
모든 인생은 길을 가고 있는데 예수님을 안 믿는 자들은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소원 목적한 넓은 길을 간다. 세상을 소원 목적한 이 길을 한 사람만 가는 게 아니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간다. 소원 목적이 같으면 같이 그 길을 가게 된다.
청년들이 결혼하는 것도 결혼할 두 청년이 목적이 같아야 한다. 목적이 다르면 물과 기름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그 결혼을 말려야 된다. 부부가 한 길을 가면서 그 다음에 아무래도 서로가 다르니까 서로 싸우면서 고쳐나가야 한다. 안 고쳐지면 그만큼 대립이요 불행이다. 길을 가면서 싸우는 것보다 혼자 길을 가는 게 심심은 하지만 나을 것이다.
안 믿는 사람들은 세상 넓은 길로 가고, 예수 믿는 자들은 예수 믿는 길로 간다. 예수 믿는 길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품이 만들어지는 길. 쉽게 말하면 하늘을 향해서 가는 길. 점점 하나님의 마음으로 만들어지면서 가까이 가까이 하늘나라로 가는 길.
그런데 예수 믿으면서 세상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은 예수 덕으로 잘 살아보려는 세상에 대한 목적이 들어있는 것이다. 이건 넓은 길, 사망 길, 멸망 길, 심판 길이다. 우리는 생명 길, 좁은 길, 주님 가신 길을 가는 것이다.
만인간들은 세상길을 가는데 믿는 우리는 주님이 나를 불렀으니 주님이 먼저 살으신 길이요 진리의 길, 좁은 길을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길을 가면서 한 눈 팔지 않고 가면 좋겠는데 세상이 옆에서 자꾸 손짓을 하니까 그것을 쳐다보고 잠깐 세상으로 나갔다가 또 좁은 길로 들어오고, 나갔다가 또 좁은 길로 들어오고 한다. 그러니 곧장 갈 수 있는 그 길을 빨리 못 가고 힘이 든다. 어떤 사람은 저만큼 갔는데 자기는 간다고 하면서 옆으로 삐졌다 또 오고, 옆으로 삐졌다 또 오고. 그러니 얼마나 힘이 드느냐?
예수 믿는 자는 자기가 가는 길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는 이 길은 하나님께서 나를 인간으로 만드신 그 목적대로 가는 길이다. 이게 온전한 참 길이요, 참 믿음이요, 참 사람이요, 참 신앙이요, 참 교회요, 참 교인이요, 참 목사다. 이게 아닌 것은 다 거짓이고 가짜다.
누구든지 자기가 인간으로 지어진 인간 존재의 목적과 ‘내가 이 땅에서 왜 사나’ 하는 인간이 사는 목적을 모른다면 이는 세상길로 가는 사람이다. 그러나 인간은 도덕성을 가진 인격자로 가치판단을 가진 자유자로 지어짐이 분명하다. 따라서 자기가 알던 모르던, 원하던 원치 않던 자기는 반드시 심판이 따르는 존재로 지어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기가 자기의 자유를 가지고 자기를 바로 다스리지 못한다면 자기는 고통을 겪는다. 그래서 음식을 먹을 때도 먹고 몸이 안 아프도록 자기가 자기의 자유를 가지고 자기를 잘 다스려 나가면 자기는 그만큼 고통이 없다. 그런데 자지가 자기를 잘못 알고, 잘못 다스리고, 잘못 관리한다면 자기는 큰 고통 속에 빠진다. 그러니 자기의 자유를 가지고 자기를 바로 다스려야 한다.
그리고 인간들은 다 자유한다고 하는 거지만 안 믿는 사람은 참 자유가 없다. 이들은 아예 죄 아래 들어있고 물질 밑에 들어있다. 자기의 세상의 소원이 자기 머리 위로 올라가 있다. 소망 소원이 세상물질로 들어가 있는 고로 자기는 그 물질 밑에 들어가서 자유롭게 산다고 하지만 실은 자기는 세상의 어떤 목적을 위해서 노예생활을 하는 겪이다. 그래서 그 자기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이 소원 목적이 아니고 구원목적으로 사는 고로 모든 세상은 자기의 발밑에 있다. 발밑에 있으니 사용하고 활용하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소원 목적적으로 세상을 자기 머리 위로 올리면, 사람보다 세상을 더 올리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올리고 한다면 자기는 고통 중에 빠지게 된다. 이는 정신이 병들었고 정신이 정상으로 놓이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 인간--> 물질(세상)이 순위적으로 바로 된 것이고 이게 성경대로 들어가는 거다. ‘세상’ 하면 사건도 들어있고 일도 들어있고 돈도 들어있고 차도 들어있고 건물도 들어있다.
자기 머리 위에는 하나님이 있어야 한다. 모든 좋은 은혜는, 지혜지식 도덕성 능력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진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니 우리 예수 믿는 자는 하나님의 지혜지식성과 도덕성과 능력성을 받아서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만들어놓은 이 세상물질을 머리 위에 올리지 말고 잘 활용을 해서 관계성을 잘 가져서 부지런히 참 사람으로 만들어져라. 만물이 그런 사람을 위해서 쓰여지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다. 그런 사람을 위해서 나에게 쓰여지려고 아직까지 물질세상이 저렇게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은 어둡다. 선악과 따먹은 세상은 어둡다. 어두운 세상은 빛이 필요하다. 어두운 세상은 빛을 원한다. 예수님은 빛이시다. 이 예수님의 교훈을 받고 가는 성도들은 그 빛을 받고 어두움을 밝혀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빛이 밑으로 올라가야 되겠느냐, 위로 올라가야 되겠느냐? 윈칙적으로 빛은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둔다. 이게 이치다. 성경말씀은 너를 빛 된 사람으로 만들어서 올리려고 하는데, 불만 켜지면 너를 올리려고 하는데 너는 불을 붙이려고 하지를 않는구나. 그러니 어두운 세상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
성경을 바로 깨닫고 예수 바로 믿으면 자기가 돌이나 나무나 구더기나 곤충이나 짐승처럼 만들어지지 않고 하나님을 닮을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드신 하나님의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있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밥 먹고 똥만 싸다 죽어질 내가 아니다. 나라고 하는 인간 존재 가치를 네가 알아라. 이걸 성경이 가르쳐주고 있다.
그런데 왜 네가 먹고 마시는 것으로 머릿속에 집어넣어서 생각하는 모든 소원 목적이 먹고 마시고 싸고 잠자고, 먹고 마시고 싸고 잠자고 하며 짐승처럼 살려고 하느냐?
우리 인간 모두에게는 이런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있는 고로 그 목적대로 사는 것을 가르쳐 주는 하나님의 사자를 나의 앞으로 보내준다고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신실한 하나님의 종을 보내주신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당신보다 6개월 먼저 보낸 세례요한을 보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렇다. 당신을 맞이할 수 있게 미리 보내주시는 선지자를 우리는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속으면 안 된다. 즉 하나님의 본질을 모르면 속기 쉽다. 바른 것 바른 답을 모르면 속는다. 바른 것을 가르쳐 주고 바른 것을 알면 안 속는데 바른 것을 모르면 너는 속는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이 복음이라는 신앙의 본질을 아는 것이 참 중요하다. 즉 정답을 알면 틀린 답에게 안 속는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 종은 내가 속아 넘어갈 것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마귀의 속셈까지 다 알게 해 준다. 거짓 종 이단자들의 속셈까지 알게 해 준다. 교회가 뭐하는 곳인지 그 본질을 알게 해 준다. 인간 너는 어떤 존재인지 알게 해 준다.
옳은 진리이치를 알게 해주지 않고 ‘일 열심 충성봉사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 건 마귀의 속셈이고, 거짓 종들이 교인들을 사기 쳐 먹을 수 있는 속셈들이다.
옳은 선생은 학생의 머리를 잘 깨우쳐준다. 그런데 실력이 없는 선생은 일만 잔뜩 시킨다. 그러면 학생들 머리가 못 깨우쳐진다. 인간이란 인간은 일을 하던 공부를 하던 뭘 하든지 깨우침을 받아야 그 일을 잘 하게 된다. 농사를 지어도 그렇고, 공부를 해도 그렇고, 예수님을 믿는 것도 바른 이치를 알고 믿으면 안 속고 예수 믿기가 쉽다.
성경에 예수님이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 짐을 올려준다’고 했느냐, ‘내려준다’고 했느냐? 내려준다고 했다. 그러니까 가벼워진다.
그러면 ‘예수 믿어서 열심 충성봉사 하면 상 많이 받고 세상의 복을 많이 받는다’고 하면 이건 짐을 덜어주는 거냐, 더 올리는 거냐? 이건 짐이 덜어지는 게 아니라 더 올리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그랬다. 오늘날 교회의 거짓 목사들이 바로 그렇다. 성경대로 죽을 때까지 깨우침을 받아도 성경의 이치를 다 못 깨닫는 건데 한 이치도 모른 채 열심히 충성봉사만 하면 어쩌겠다는 거냐?
말씀이 깨달아지는 건 돈이 없어도 깨달아지는 거고, 가난해도 깨달아지는 거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열심 충성봉사는 돈 없으면 못하고, 병들면 못하고, 가난하면 못하고, 시간 없으면 못한다.
자기가 깨우침을 잘 받으면 참 사람이 되고, 참 지식이 있고, 참 지혜자가 되고,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고, 인간이 저질적이 되지 않고 아주 고차원적인, 그래서 안 믿는 사람들이 보고 ‘예수 믿는 사람은 저렇게 영리하고 똑똑하구나’ 하게 된다.
예수님 말씀이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게 해 주겠다는 건 그만큼 깨달음의 차원, 지식의 차원, 모든 도덕성의 차원이 세상 사람과 같지 않고 참 사람으로 되어 있으니 그렇게 머리가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대학교 공부를 많이 하면, 학박사를 따면 그게 머리냐? 사람이 안 되어 있는데 그게 머리 되는 사람이냐? 그러니 얼마나 도둑질 해먹고 사기 처먹고 그러느냐? 사람이 안 돼서 그렇다. 그건 영리하고 똑똑한 게 아니라 자기 공부를 가지고 자기를 완전히 망치는 것이다. 사람 폐인이다. 공부는 많이 했는데 머릿속에 돈밖에 없고 세상밖에 없으니 그건 폐인이라. 하나님이 보실 때 쓸모가 없는 사람이라.
하나님의 사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도록 인도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의 온전자가 될 수 있도록 성경대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를 잘 깨닫도록 인도해 준다. 마귀가 보내는 모든 거짓된 종들은 불타질 세상 것으로 자랑하고 ‘예수 믿어 부자 됐네. 어쨌네. 장사가 잘 되네. 어쩌네’ 하며 그런 세상 것을 가지고 자랑한다. 세상을 욕심을 내게 해서 ‘나도 그래야지’ 하게 한다. 그거 못쓴다.
사람 속에 물욕심이 들어가면 부모형제도 못 알아본다. 칼부림이 나게 돼 있다. 물질 이해타산을 가지고 칼부림이 나게 돼 있다. 요즘 신문에 종종 뜬다. 자녀를 결혼을 시키는데 뭘 안 해 온다고? 예단? ‘올 때 얼마나 해 왔느냐’ 이런 식. 그러니 그 싸움을 누가 붙여놓고 누가 헤어지도록 만드는 것이냐? 부모들이 사람이 안 돼서 그렇다. 결혼을 돈을 가지고 따지는 건 사람이 안 된 것이다.
사람이 많이 깨달아지고 부지런하고 정직하고 열심이 있으면 산꼭대기에 갖다 놔도 둘이서 잘 산다. 바닷가에 갖다 놔도 잘 산다. 뭘 얼마나 잔뜩 해 가면 그것가지고 잘 살겠느냐? 그게 아니다. 그렇게 만난 자들은 싸움판이 일어나서 헤어지게 돼 있다. 결혼자금 가지고 싸우는 부모들은 사람이 안 됐다. 절대로 그런 집에 아들 딸 주지 말라. 열심 있고 건강하고 부지런하고 정직하면 얼마든지 부자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것으로 욕심을 내게 돼 있다. 그 이치를 분명히 알라. 아무리 사람이 좋아도 물질을 가지고 사람을 따지게 돼 있다. 그게 타락된 사람이다. 길바닥에 앉아서 똥오줌 안 싸도, 아무리 대학물을 먹고 큰 집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한다고 해도 그 사람 속에 항상 세상 것이 들어있으면 그 세상 것으로 사람을 무시하게 돼 있고, 사람이 만들어지는 그 면을 모르니 설령 미스코리아 진선미를 다 데리고 살아도 ‘사네, 못 사네’ 하게 된다. 사람이 안 돼서 그런 것이다.
사람이 안 된 것만큼 그 자는 사람의 중심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의 외모 외형 형틀 큰 것, ‘많이 가졌느냐, 큰 집 가졌느냐, 좋은 차 가졌느냐’ 하고 이해타산이 그리로 들어간다. 이렇게 되면 사람이 살다 보면 쭈그러지기도 하고 가난해지기도 하고 병이 들기도 하는 건데 물질에 욕심을 가졌으니 자꾸 남이 가진 걸 쳐다보게 된다. 그러니 붙었다 헤어지고, 또 붙었다 헤어지고 한다. 그게 사람이냐, 개지.
성경은 사람이 만들어지기를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소원 목적은 뭘 가졌는지, 어떻게 사는 건지, 산 후에는 어떻게 되는 건지를 다 가르쳐준다. 우리가 이걸 모르면 안 된다.
어쨌든 세상 것으로 가졌다 해도 세상 것은 언젠가 다 불타질 것이니 죽을 때 못 가져간다. 그렇게 살면 죽을 때 허무한 인생으로 마친다. 세상에서 존귀와 영광을 받을수록 늙어지면서 허무해진다. 그러나 주님을 잘 믿고 있는 사람은, 속에 주님으로 성품이 채워져 가는 사람은 세상 것이 아무 것이 없어도 그 사람 속에는 노래가 깃들어져 있다. 찬송이 깃들어져 있다. 심령천국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 자기를 지으실 때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소원과 목적이 있는 존재로 지었는데 우리 인간은 이것을 모르고 살고 있다. 한 마디로 인간 자기는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할 바로 자기다. 하나님께서 인간 자기를 사랑할 사랑의 제 1 목적물이다. 하나님 사랑의 제 1 목적물로 너는 되어 있다. 그런데 왜 세상으로부터 자꾸 사랑을 받으려고 하느냐?
한 마디로 나는 신령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존귀 영광자로 영광중에 그 천국을 누릴 나이다. 그만큼 내가 귀한 존재다. 속성적으로 성품적으로 모든 사고방식 이해타산 모든 면에서 내가 그렇게 고차원적으로 만들어지라는 것이 성경의 말씀이다. 예수 믿는 자기에게 선지자와 종들을 보내서 ‘너는 존귀자로 영광자로 실속 있게 만들어지라’ 하는 이게 들어있다. 그러니 인간 자기가 만물 아래 들어 있어야 되느냐, 만물 위에 들어 있어야 하느냐? 만물 아래가 아닌 만물 위에 있어야 한다. 그게 가치 있는 사람이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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