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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35-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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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장 35절-39절: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
새벽 미명에 예수님께서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디서 기도하시는가’ 하며 예수님의 뒤를 탐색하면서 그 뒤를 밟아왔다. 제자들이 주님을 만나서 하는 말이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했다.
새벽이 오기도 전이니 캄캄한 시간인데 왜 어떤 목적으로 주님을 찾는가? 오늘날 새벽기도는 어떤 목적으로 주님을 찾는 것일까? 오늘날 교회마다 새벽기도는 어떤 목적으로 주님을 찾는 것인가?
예수님 당시 그 때 그들은 어떤 목적으로 주님을 찾는 것인가? 아마도 귀신 좇고 병 고치는 말을 듣고자 함이 아닌가? 아니면 병 고치는 능력을 얻고 싶어서는 아닐까? 새벽 미명이 그들이 잠도 안 자고 왜 주를 찾는 것일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벌써 아시고 제자들에게 ‘우리가 다른 곳으로 가서 전도하자. 이를 위하여 내가 왔노라’고 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천국복음을 전하러 오셨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에서 오셨으니까 천국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시는 것이고, 또한 인간창조의 목적이 천국의 사람으로 만들어서 데리고 올라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품이 온전케 되는 이게 천국복음이다. 그렇게 인도하고 깨닫도록 가르치는 이게 천국복음이다. 이게 인간창조의 목적이다.
인간이라면 하나님의 성품을 입고 가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인간 자기를 사람으로 만들어 놨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져 가는 그 목적으로 먹고 마시고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 목적은 없고 ‘어떻게 하면 돈 많이 벌고, 먹고 마시고 잘 살다 가나’ 그거다. 하나님께서 인간 자기를 만든 목적과는 딴판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뭐가 되겠느냐?
말을 더듬던, 말이 줄줄 나오던, 말이 앞뒤가 바뀌었던 한 마디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그 목적이 들어 있으면 그건 옳은 거다. 그게 옳고 말을 잘하는 거다. 인간을 만든 목적에 맞는 말을 하는 그게 말을 잘하는 거다. 딴 말을 줄줄 잘한다고 해서 그게 말 잘하는 게 아니다. 그건 다 목적에서 이탈된 말이고 중언부언이다. 쓸데없는 말이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온전케 되는 천국복음과 상관없이 주님을 찾고 따르고, 그리고 기도로 그런 것을 구하는 자들은 하나의 구경꾼들이고 주님을 귀찮게 하는 자들이다. 제자들이 주님이 기도하시는 거기를 뭘 새벽같이 찾아와서 기도도 못하게 하고 귀찮게 하느냐? 그러니까 예수님이 ‘우리 딴 데로 가자’고 하신다. 즉 그들의 소원 목적을 안 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주님의 의사성을 볼 때 오늘날 새벽기도를 할 때도 주님의 그 뜻에 적중성으로 기도를 해야 들어주시는 거지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도 계속 기도를 한다고 해서 그 기도를 들어주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뜻도 아닌 걸 잡고 ‘계속 기도를 하면 들어주리라’ 하는 건 제 생각일 뿐이다.
천국복음과 상관없이 주를 찾는 자들을 위해서 주님이 만나줄 필요는 없으시구나. 그러니 기도도 적중으로 잘 해야 한다. 기도를 잘한다는 게 ‘더듬거리지 말고 하라’ 그 말이 아니라 적중성으로 하라 그 말이다.
우리는 몸이 성하던 성격이던 성질이던 전부는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에, 주님의 지혜지식성 도덕성에 능력성에 맞춰서 기도하고 소원하고 목적하고 늘 마음을 그렇게 갖는 게 옳다. 그렇게 될수록 자기는 능력자가 되고 모든 삶이 바로 들어간다. 일을 크게 한다는 그게 아니고 사람의 사고가 바로 들어가게 된다. 이게 옳은 거다.
사람의 사고가 바로 들어가려면 이치가 분명해야 한다. 따라서 분명한 이치라면 자기가 그걸 받아들이고 그 이치대로 만들어지려고 하고, 그렇게 안 돼 있다면 이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도록 기도하고 소원해야 한다.
사람이 틀어지면 모든 게 다 틀어진다. 사람이 허리등뼈가 틀어지면 다 틀어진다. 이렇게 되면 모든 뼈마다 진통이 온다. 그래서 정신을 갖는 면에도 똑바로, 성격 성질을 갖는 면에도 똑바로, 지식 면에도 정확하고 도덕성 면도 반듯해야 한다. 안 그러면 영적인 정신 사상 생각 면에서 전부 삐그덕 하면서 진통이 온다. 옳바른 게 하나도 없다.
자기의 몸을 보면서 자기의 생각을 빨리 깨닫는 게 현명한 사람이다. 넘어간 뒤에는 안 세워진다. 넘어가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한다. 집의 기둥이 비스듬하면 아무리 받치고 산다고 해도 미래적으로 보면 깔려죽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건 불안한 거다. 날마다 불안한 거다.
신앙의 기둥을 바로 세워라. 안 그러면 이건 날마다 불안하다. 성격적으로 바로 세우고 성질적으로 바로 세우고. 안 그러면 날마다 불안하다. 진리기둥을 붙잡고 자기를 진리기둥에다 세워라. 그래야 옳다. 자기 생각대로 산다는 것은 위험하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라 왔다. 그들이 나를 알아준다고 해서 거기에 붙들리지 말라. 거기에 붙들리면 너는 이용당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미리 피하신 것은 너희들도 나처럼 피하라는 것이다.
무리들이 진리성도를 찾는 이유가 뭐냐? 그들의 소원 목적이 도대체 뭐냐? 그것이 하나님의 적중성이 아니거든 피하라. 그들에게 붙잡히면 안 된다. 이 이치를 모르는 거짓된 자들은 거기에 붙들려서 종살이를 한다. 이건 목회가 아니고 종살이다.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종살이다. 그러니까 이걸 간단히 말하면 귀신들린 자 병든 자를 유형교회로 불러서 안수해서 낫게 해준다는 건 네가 그런 사람들의 종이다. 너부터 고치자 그 말이다. 너부터 신앙중심을 바로 고치자.
그런데 자기가 그건 모르고 몸에 병든 사람을 자꾸 따라가면서 고쳐주겠다고 하게 되면 상대가 안수해 달라고 하면 해줘야 한다. 그러면 너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거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의 종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신 것을 영의 눈으로 보면 말씀을 가지고 천국의 사람으로 바로 세우고자 하는데 있다. 예수님의 말씀이 ‘나는 천국복음을 위해 왔다. 딴 데로 가자’고 했다.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39절): 전도는 땅에 목적을 둔 땅의 복음이 아니라, 세상복음이 아니라 천국에 목적을 둔 천국복음이다. 천국복음은 이 땅에서 하는 거지 천국에 올라가서 하는 게 아니다. 그러면 천국에 올라가서는 땅의 복음운동을 하느냐? 그게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어지는 천국복음 운동을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천국에서 사람 예수로 오셨으니 예수님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일을 하신다. 곧 그리스도의 일은 천국의 소식을 알림이요, 당신의 백성을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만드는, 성령의 사람으로 만드는 일을 하시는 거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에게 신의 성품이요 신의 생명을 입게 하고 천국의 소식을 알리는 것은 천국이 있기 때문이요, 인간이 이 천국을 누리고 쾌락하기 위해서는 인간 나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면 천국이 없다면? 나를 인간으로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도 짐승처럼 만들어 놓는 것이다.
하나님이 할 짓 없어서 사람을 짐승처럼 만들어 놓고 다른 짐승과 같이 놀다 죽게 만들겠느냐? 그건 아니다. 인간 나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 놓은 이유는 천국이 있기 때문이다. 없다면 우리는 없는 거다.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인간생각으로 하나님께서 개나 돼지를 만드는 게 쉬운 건지, 인간을 만드는 게 더 쉬운 건지, 아니면 똑같은 건지? 하나님이 뭘 만드는 게 제일 어려울까? 일반적으로 판단을 해 봐라. 육신적으로도 짐승을 만드는 게 쉬울까, 인간을 만드는 게 쉬울까? 인간을 만드는 게 어렵다. 짐승이 오각의 오감성이나 가치판단성이 인간 자기처럼 닮은 게 있느냐? 없다. 일반적으로도 보면 인간은 엄청난 하나님의 작품이다.
인간을 이렇게 오각의 오감성이나 가치판단 평가성을 넣어서 만들어 놓은 것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닮아가는 그게 있어서이다. 그러니 인간 하나가 얼마나 가치가 있느냐? ‘지구를 줄 테니 네 목숨을 내놔라 하면’ 인간을 지구와 바꿀 수 있느냐? 바꿀 수 없다. 그만큼 존귀한 너다. 그런데 이처럼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처럼 닮아진 구석이 있어야 할 텐데 왜 사람이 흉물스럽게 들어갈까?
인간의 아름다움이 얼굴에 있느냐, 마음에 있느냐? 마음에 있다. 마음이 아름다우면 다 아름답게 보인다. 마음이 마귀 같다고 하면 다 미워진다. 그래서 우리교회 청년들은 마음을 보는 눈을 가져라. 껍데기 기준은 안 된다. 껍데기로 보는 기준을 가지면 너는 공동묘지에 들어갈 때까지 큰 고통이다. 그래서 과거적으로 껍데기를 보고 결혼을 했더라도 이제는 그 눈을 바꿔라. 껍데기는 금방 시든다.
그리스도 예수로 통해서 천국복음으로 천국의 정신으로 사람을 온전케 하신다. 주님은 당신의 교훈을 가지고 사람을 늘 온전케 하신다. 땅의 것을 욕심내고 불에 타질 것을 구하고 분별을 못하는 너를 신령천국의 말씀으로 예수님 당신처럼 온전한 자로 만들어 주심이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다. 이게 기쁜 소식이다.
이 타락되고 저주받은 세상에서 어느 종교가 인간 자기를 창조하신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알려줄 수 있겠느냐? ‘동양종교다, 서양종교다’ 하는 건 인간들이 하는 말이고 성경은 세계 인류 전체를 지으신 인간창조의 원인 동기 목적을 말해주고 있다. 이걸 모르는 사람들이 ‘예수교는 서양종교고, 불교는 어떻고, 유교는 동양종교다’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의 종교는 뭐냐? 단군이냐?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된 모든 인류 중에 어느 한 족속만 선택을 했다면 이는 하나님은 불공평이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족속이 일어나서 ‘왜 우리를 선택을 안 해 주는 겁니까’ 그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거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만을 선택을 했을까?
이스라엘 백성이면 다 선택을 하는 거냐, 아니면 선택된 백성들이 이스라엘이냐? 이 말이나 저 말이나 다 같으냐? 어떻게 들리느냐? 선택된 백성이 이스라엘이다.
그러면 이스라엘이면 다 선택이 되는 거냐? 이스라엘 백성이면 다 선택이 된다? 여기에는 허점이 있다. 육적 이스라엘 백성이면 다 선택이 돼 있느냐?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왜 한 무리가 애굽에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 거냐? ‘선택된 백성은 이런 삶을 산다’ 그 말인가, 아니면 ‘선택된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간다’ 하는 그 말인가? 어느 말이 맞느냐? 말귀를 잘 알아들어야 한다. 같은 것 같아도 차이가 나는 거다.
처음부터 인류의 시조로부터 역사를 하시되 인간의 자유로 하나님을 찾고 말씀에 순종하는 그들을 통해서 오늘날 영적 생명의 구원계대가 나온 것이다. 이 구원계대를 계시하고자 하는 방편이 육적 이스라엘이 되는 거다. 무슨 말이냐? ‘영적 이스라엘은 이 길로 간다. 이런 삶을 갖는다’고 하는 걸 이스라엘로 통해서 미리 계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성경은 계시다.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된 자는 하나님의 말씀통치를 받는다. 그런데 자기가 이스라엘이라고 하면서 말씀통치를 안 받고 있다면 그건 참 이스라엘은 아니다.
육적 이스라엘의 그 속을 영의 눈으로 보면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의 생명의 구원계대가 나온다. 즉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받은 자라야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다.
이방 신은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은 아니다. 타락된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만물을 통치하고 지배하고 다스려야 할 인간이 이방 신을 믿고 있다면 이방정신 곧, 이방귀신이 들린 정신이다. 인간 자기가 자기 신을 만들어서 ‘이것이 나의 하나님이다’ 하고 있는 것은 귀신들린 정신이다. 이방인들이 이상한 걸 만들어 세워놓고 ‘이것이 나의 하나님이다’ 하는 것은 귀신들린 정신이다.
그럴 수는 없겠지만 가령 교회 안에 허수아비를 갖고 와서 ‘이게 우리 하나님이다’ 하면 귀신들린 것이냐, 안 들린 것이냐?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은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을 우상으로 세우고 그것을 자기 신처럼 삼고 사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처럼 허수아비를 교회에 가지고 들어와서 ‘이게 우리 하나님이다’ 하면 귀신들린 거냐, 아니냐? 귀신들린 거다. 이건 이방 신이 들린 거다. 이방인들이 그러는 거니까.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얻기 위해서 자기가 정신통일을 하건, 뭘 만들어 놓고 거기다 비비건 그건 귀신들린 거다.
이방인들은 자기들과 같지 않은 말을 하거나 같지 않은 활동을 하면 그 사람이 귀신이 들렸다고 하지만 우리가 볼 때는 자기들 차원에서 귀신들린 자를 그렇게 보는 그들까지도 귀신들린 정신으로 본다.
“너를 만드신 하나님이 분명히 계시는데 네가 왜 세상 것을 놓고 공 드리고, ‘그게 내 하나님이다’ 하고, 그게 있어야 내가 행복하다고 그러느냐? 그러니 너는 귀신이 들렸다” 하면 이방인들은 이 말을 못 알아듣는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을 보는 그 차원이 영의 눈을 가지고 절대 정확한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보면 그들의 소원 목적이나 정신상태가 다 나온다.
우리는 성경이라는 안경을 가지고 사람을 봐야지 일반 선악과 따먹은 지식의 눈을 가지고 사람을 보면 사람을 바로 못 본다. 우리는 생명과 먹은 지식을 가지고 사람을 보는 거다.
선악과를 따먹은 사람은 사람을 보는 게 껍데기로 본다. 학력 재물 하는 게 다 껍데기다. 생명과를 먹은 사람들이 사람을 보는 것은 속사람을 보고 들어간다. 그러니 오늘날 자기는 무슨 눈을 가지고 사람을 봐야 하겠느냐? 신앙심도 그렇고 신앙도 그렇고 모든 보는 눈이 무슨 눈을 가지고 봐야 하겠느냐?
인간 자기가 자기 신을 만들어 놓고 ‘이게 우리 하나님이다. 나의 하나님이다’ 하는 것은 이방정신 곧, 이방 귀신들린 정신이다. 과거 북조 이스라엘이 그랬다. 인간이 신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 만들 수 없다. 신이 자기를 만드는 거다. 인간이 만든 참 진짜 신도 있느냐? 없다. 아무리 진짜 신이라고 해도 너만도 못하다. 네가 만들었으니까 너만도 못한 것이다.
불완전한 자기가 신을 만들어 놓고 ‘이게 내 신이다’ 하면 미쳤다. 정신병자다. 그러니 이건 이치의 정신을 못 갖는 거다. 성경은 우리로 이치의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버리고 돌이나 나무로 반수만인 또는 어떤 짐승의 모양 또는 어떤 고기의 모양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게 자기의 소원을 빌고 있다면 이것이 정상적인 사람이냐, 비정상적인 사람이냐? 비정상적인 사람이다. 정확하게 봐야 한다. 말씀을 가지고 보면 정확하다. 신앙세계는 그 판단이 정확하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런 정신이 다 귀신들렸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사람의 성격에 따라서 그게 확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안 나타나기도 하지만 그러나 사건이 오면 얼마든지 뒤집어질 요소를 앉고 있는 것이다. 그걸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미 당했다 라기 보다도 그런 성격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 사건은 언제든지 들어오게 돼 있다. 때와 기한은 네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허락만 되면 그냥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본질의 사람으로 지혜지식적으로 신적인 하나님의 도덕성으로 신적인 능력성으로 부지런히 바꿔치워야 한다. 그게 예수 믿는 거고 바로 믿는 거고 옳은 정신이다. 자기의 불완전성을 알았을 때는 성경도 보고 기도도 하고 마음의 소원성도 바로 가져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이 15년 이상 진행되면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신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알고 진리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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