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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막13:21-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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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권오대 형제 |
참고 : | http://www.saegilchurch.or.kr/380513 |
하늘 소리
(마가복음 13:21-26, 고린도전서 2:6-13)
2014년 3월 30일 주일예배
권오대 형제
마태복음 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마태 24:21&29/마가 13/누가 23)
세상의 끝 날을 예수께서 말씀한 것이라고 성경에 기록된 것이 윗부분입니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오로 이어지며 태동한 과학이 지동설을 알렸으나 사람들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예수의 큰 환난은 그 세대에 오지 않았고 점차 실감을 잃어 간 말씀이 되어갔습니다.
[스크린 설명]
1785년 경 프랑스의 아티스트가 과학 교과서에 쓰이기 위해서 그린 판화그림입니다. 지구는 부동의 중심이고 해가, 그리고 달이.... 별들은 이렇게... 당시 아티스트는 이미 약 150년 전, ‘별들의 소식’이 로마의 베스트셀러가 되기까지 지동설 증거를 만천하에 알려주었는데도 무식하게 시대에 뒤떨어졌습니다. 시대에 앞섰던 고흐의 ‘별밤’ 그림과는 무척 대조가 되지요.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상대론과 양자론이 출현하며 현대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작년 어느 강연의 제목처럼 다시 21세기에도 양자론 학문은 다시 변화에 직면하고 있지요. 1926년 보어와 ‘확률적 코펜하겐 해석’을 논하던 아인슈타인은 그 후 대세에 밀려 자신의 양자론이 불확정성적 해석원리에 압도되는 수모 속에 삶을 마감했지만, 21세기에 그 논란은 다시 불이 붙고 있습니다.
이제 그의 상대론을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Hales : Wilson 산의 정상을 방문하고 1908년 결정한다. 유리를 녹여 부으며 100인치 직경의 대형렌즈 유리에 흠결이 없도록 만들고 또 만들다. 표면의 마모작업도 거울같이. 수레로 무거운 철골들을 마차로 산정에 실어 나르기 등, 카네기 등 굴지의 재력가들 도움을 받아내면서 약 10년간 악전고투 끝에 윌슨천문대를 완공한다.)
헤일즈는 왜 그랬을까요? 1620년경 갈릴레오는 은하수가 별들의 덩어리라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갈릴레오 이후 뉴턴은 반사망원경을 발명하여 성능을 더 높였습니다. 17-19세기에는 더 큰 망원경들이 만들어지고, 더 많은 별들이 자꾸 보이니, 더 많은 별 이름 붙이기에 별 보는 사람들이 바빴습니다. 그런데 헤일즈는 기존의 망원경들과 달리 엄청 큰 망원경을 10년에 걸쳐 만든 것입니다. 더 많은 별들을 보려고? 아니, 그것이 아니라 새로운 하늘을 알고 싶다! 단 하나의 그 꿈으로 세상에 없는 윌슨천문대를 세웠습니다.
그 꿈은 헛되지 않았지요. 잘 아시지요. 허블입니다. 그는 거구의 미식축구선수였는데, 영국 유학까지 갔던 변호사 지망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카고대학에 돌아와서 어릴 때 보던 밤하늘의 별들을 알고 싶어 다시 천문학을 공부합니다. 허블은 혼자 있기를 좋아합니다. 밤마다 혼자서 별을 보는 윌슨천문대에 취직합니다. 그 후, 1923년 안드로메다에서 초신성 셋을 찾았는데, 그 중 하나는 변광성임을 알아챕니다.
당시 ‘하버드 컴퓨터’라고 있었는데, 밤에 찍은 영상 건판에서 수많은 별들의 밝기 계산 등의 통계를 내는 컴퓨터입니다. 20세기 초에 비밀 컴퓨터? 그렇죠, 없지요. 그 컴퓨터는 인간 컴퓨터였습니다. 피커링이란 하버드천문대장이 여성반을 조직했는데 그 별명이 ‘여성 컴퓨터’였습니다. 당시 여성금지의 남성위주 직장에서 배제된 여성들 중 셈을 잘하는 여성들 10여명이 컴퓨터입니다. 천문학 분야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던 레빗(Leavitt)이 밝기가 변하는 경우의 별들을 처음 주목했습니다. 그러한 변광성들에서 지구와의 거리를 알아낼 수 있다는 단서를 발견한 겁니다. 천문 관측법에 크나큰 전환기를 이룩한 겁니다. 오늘 같으면 노벨상 받아야죠.
그러한 변광성 하나를 발견함으로써 허블은 그것이 속한 안드로메다 성운은 백만 광년쯤이라는 엄청난 거리에 있음을 발견한 겁니다. 당시 하늘의 모든 별들은 우리 은하에 속한다고 믿었습니다. 은하의 직경은 1만이냐 2만이냐 아님 기껏해야 10만 광년 미만으로 추측했는데, 백만 광년이라니! 그것은 분명히 우리 은하 밖에, 그것도 아주 멀리 있는 별들의 집단, 새로운 은하라는 엄청난 발견이었지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허블은 다시 5-6년을 조용히 별을 관측하며 지냈습니다. 왜? 또 다른 은하사냥에 나섰지요. 은하들을 여러 개, 그리고 그것들에 따로따로 박힌 변광성들의 관측, 즉 그것들의 거리 및 속도까지... 그렇게 총 10년가량 얻은 최종 연구결과가 세상을 뒤흔들었습니다. 우주는 엄청나게 광대했고 은하들이 온 우주에 퍼져 있었으며, 그 우주는 끝없이 팽창하고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뉴스! 현대 천문학 최대의 분기점입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현미경 하느님과는 또 다른, 이 광대한 우주 하느님의 경이로움!??
그렇게 밝힌 허블의 팽창하는 우주는 아인슈타인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10여년 걸려 1916년 발표한 일반상대론 장방정식이 영원불변의 우주에 잘 맞도록 우주상수란 반중력 항을 일부러 끼워 넣었는데, 우주가 변한다니! 미국 순방강연 때, 아인슈타인은 1931년 L.A. 북동쪽 윌슨천문대를 방문하여 허블을 만나고 학문적 답례를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상수를 추가한 것이 “나의 큰 실수(big blunder)”라고 평했지요. 이야기는 이 때부터입니다. 80여년이 흐르는 동안, 팽창하는 우주는 시작이 있음을 암시했고, 그래서 빅뱅이론도 탄생했습니다. 우주의 표준모델이 실제 상황에 부합하는 조건으로, 1980년 경 ‘인플레이션 우주’를 제안하고 MIT 교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코넬대학 에서 그룹세미나를 말없이 함께 듣던 앨런 구스(Guth), 30여년을 기다린 그가 이번 가을 노벨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최근 보도되었습니다. 한 가지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보이는 우주는 전체의 3-4%에 그칠 뿐, 26% 가량의 암흑물질, 그리고 70% 가량의 암흑에너지는 아직 오리무중이어서 아인슈타인의 우주상수가 70%의 반중력 항으로 다시 필요한 현실이니, 결국 그는 실수까지도 천재적인, 그래서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를 대표한 인간 아인슈타인은 전무후무한 인간세계 역사입니다.
[스크린][[NYT 자료-생략: 급팽창 이론 기초를 놓은 앨런 구스 -
“우주의 처음, 중력부터 도입하고, 우주를 날려버린 이것, 과연 뭘까?”
NYT/3/25/2014 What is this stuff that “turns gravity on its head”
? as Alan Guth of M.I.T., a founder of inflation theory, has put it
? and blew up the universe?]]
그렇다면, 왜 예수를 이야기합니까? 왜 이 마당에 예수를 이야기해야 합니까?
마태복음 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마태복음 24: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스크린 설명]
약 150년 전 ‘별들의 소식’에서 지동설 증거를 알려준 갈릴레오마저 몰랐는지 그림이 참 무식하고 그 시대에도 뒤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우주 말씀이 더 정확한 듯합니다. -병에 물이 반쯤 찼는데, 한 사람은 이것밖에 안 남아서 큰일, 또 한 사람은 아직 반이나 남아서 다행- 예수의 끝날 경고가 반이나 정확해서 다행이라고 해보겠습니다. 세상의 끝 날에 해가 사라지고(사실은 빵처럼 부푼 해가 지구까지 삼키면서), 달은 물론 사라지고, 별도 떨어지는 말씀도 알고 보면 과학적입니다. 왜냐고요? 끝 날이 갈수록 가속팽창 하는 우주의 최후(?)에 만일 인간들이 남아있다면, 그들이 초초고대 첫 인간들 역사는 잃은 지 오래이겠고, 은하들이 없어진 것도 모르게끔 별들은 이미 거의 사라졌을 겁니다. 우주는 가속 팽창으로 점점 더 빠르게 멀어져 안 보일 것이니까요. 그때가 되면 하늘의 권능이 흔들립니다. 무력화하는 통일장 이론 자체의 권위가 무의미할 상황이 그럴 겁니다. 이렇게 해석을 한 경우 ‘세상 끝날’은 어찌 느껴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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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두 번째, ‘하늘 소리’를 보겠습니다. 위 1 & 2 항에서 天命이란 바로 하늘 소리일 것입니다. 바로 앞에서 하늘을 우주빅뱅을 말씀드리다가, 이제 갑자기 하늘소리, 그 소리를 말씀드립니다. 저의 80년대 삶이 그랬습니다.
[새길 자료: 외경을 보면]
환상을 본 막달라 마리아[복음서]가 그 이유를 묻는데, 예수는 ‘영혼을 통해서도 보지 않고, 정신을 통해서도 보지 않으며, 둘 사이에 (있는) 마음을 통해서 본다.
다음과 같은 소스들도 있습니다.
1. 영혼을 분리하여 영과 혼으로 나눠버린다.
이성적 판단, 지식과 생각, 선하고 아름다우려는 것, 감정-충동-의지, 이 모든 것은 혼에 속하며 영 안에 있음은 아니다. 독립적이고 단독적인 마음 정리가 ‘양심’, 의지와 생각의 도움 없이 직접의 느낌이 ‘직감’, 하느님을 경배하는 ‘교통’만이 3가지 ‘영’의 기능이다.
2. 영혼이 ‘하느님 너머의 하느님’인, 즉 ‘신을 떠나서’ ‘신’의 근저로 ‘돌파’한다. 디오니시우스 (cf.성 아우구스티누스), “인간이 하느님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내적 풍요의 지혜’로 침묵하는 데 있다.”
[[<마이스터 엑카르트의 영성사상 -길희성> 자료-생략: 신성은 원천의 ‘하나’이며 활동이 없음. 모든 변화 너머, 고적한 절대 실재. 신은 활동하며, [피조물] 인간과의 ‘관계’속에서 ‘생성되고 해체되는’ ‘상대적’ 존재. 하느님은 (인식불가로서) 이름이 없다. 초존재적 ‘무Nichts’이다.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 ‘알려고 하지 말라.’
신과 인간의 특별한 관계: ‘지성intelligence이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인간영혼을 가리키며, 신과 인간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세계이다.]]
[[위는 유대교 철학자 마이모니데스(1135-1204)가 아래와 같이 ‘지성’을 중시한 것과 유사하다. 아인슈타인이 오래된 신학철학자 중 주목하여 유일하게 그를 추모하는 에세이를 남긴 사례이다. -생략- Maimonides answered, The knowledge of God is a form of knowledge which develops in us the immaterial intelligence, and thus confers on man an immaterial, spiritual nature... One who has attained a correct knowledge of God has reached a condition of existence....Spinoza‘s doctrine of immortality was strikingly similar. But Spinoza teaches that the way to attain the knowledge which confers immortality is the progress from sense-knowledge through scientific knowledge to philosophical intu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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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1]과 [2]의 차이를, 즉 그 누군가와 엑카르트와 차이를 약간 느끼십니까? 그 누군가는 20세기 중국인 영성사상가, 하지만 제2차 대전 때, 옥중 순교한 ‘워치만 니’입니다. 그가 이단이냐 아니냐의 말이 있지만, 우린 그 컨텐츠만을 본 것입니다.
좀 다른 주제이지만, 순복음 교회에 간접적인 한마디를 추가합니다. 즉 ‘순복음 교회’의 미국 뿌리라 할 ‘전복음교회(Full Gospel Church)’ 자료를 간접적으로 전합니다. 순복음교회가 신비주의, 복음 영성 등의 영향에 어떻게 바람직한지 연구될 일입니다.
하비 콕스(Harvey Cox)는 전복음교회를 ‘대중영합의 신비주의’, 그래서 칼빈주의보다 오히려 가톨릭에 가깝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남미에서 일고 있는 전복음교회를 복음주의 교회가 아니라 토착대중성 가톨릭의 한 변종으로 쉽게 이
해된다고 했습니다.
벨기에의 디오시즈 추기경은 1975년 오순절에 10,000명이 운집한 로마집회를 폴 4세 교황과 함께 가졌습니다. 존 폴 2세 교황은 1981년 그들과 함께 카리스마운동을 바티칸 가든에서 열었습니다. 2004년에 교황은 오순절영성(Pentecost spirituality)이 교회에 충만하며 일상에서 다시 찾기를 기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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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직전 겨울, 저는 야구 하다가 발이 부러져서 누워 지내며 한권의 책을 정독하며 읽었습니다. 김형석(연대 철학 교수)의 ‘세계 명언집’ 책이었는데, 거기서 얻은 한 마디가 성경과 관련되어 뇌리에 남았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가복음 15:34/ 마태복음 27:46)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입니다.
또 하나의 철학 배우기로서, 대학에 가서 사상계를 가끔 읽었는데, 안병욱 숭실대 철학교수의 불교 소개논문들이었습니다. 4홍서원이란 무엇인가? 8정도란 무엇인가? 교회도, 사찰도 찾아가진 않았지만요.
유학 스트레스를 푸느라고 73-74년 사이 겨울, 미국에서 얻은 영어성경을 처음 천천히 보았습니다. 고교시절 영어 공부 삼아서 잠시 보던 때는 안 보였던 임마누엘 끝의 EL... 가브리엘 끝의 EL? ... “왜 엘 엘이 자꾸 보이지?” 그래서 “엘리Eli 엘리Eli 라마 사박다니”를 다시 상고했습니다.
“EL EL, 엘 엘? 뭐지 이거?”
봄 학기 말의 박사자격시험이 끝난 후 다시 몰입한 성경에 ‘EL, 엘’의 행진이 계속되었습니다. “벧엘? 엘리야? 사무엘? ... 엘? 엘? 왜 이렇게 엘 엘 천지인가?”, “아하! ‘엘로힘’ 신앙의 뿌리가 되는 ‘신’의 의미가 있는 거로군.”
“그런데 이게 도대체 뭘까? 혹시 우리말로? ‘얼’이 아닐까? 그렇지, 얼의 옛말, ‘아래아 알’ 이 대응된다. ‘아래아 알’의 현대어 변형은 알..얼..올..울..일.. 그렇지, 그렇게 고대 원시어가 의미의 다양화 과정을 겪을 것이고, 그렇다면 다음을 가정해도 될 것이다:
‘엘’ = ‘아래아 알’
그런데 이런 언어의 의미 생각은 그만 하고, 그 핵심 속성은 과연 무엇일까?”
그 해 여름까지 오랜 기간, 저는 연구실에서 이 생각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맞아! 이건 텐서 관계성을 보이는 것이 틀림없어! 텐서본성의 기초이다! 보통 고3수학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벡터가 아닌, ‘텐서’이다! 고3에서는 뉴턴의 법칙: F=ma - 힘 벡터[F]와 가속도 벡터[a] 뿐이다. 방향과 크기로서 정해지는 벡터, 그런 벡터 차원을 초월하는 속성, 대학 고등수학에서 배우기 시작하는 텐서! 무한 차원도 가능한 텐서! 텐서는 스스로 방향을 내보이지 않고 크기도 숨겨진 차원이다. 당시 수학과에 가서 배우던 ‘텐서 이론’에서 직감을 얻은 명제이었다. 무한히 다양한 차원으로 무한 확대되는 잠재성 텐서! 이것이 바로 < (‘엘’ =) ‘아래아 알’ = 텐서> 라는 명제가 탄생한다.”
사실 텐서를 처음 들은 건, 태릉의 공릉동 서울 공대 시절, 응용물리학과, 응용수학과에 가서 수강하던 시절입니다. ‘텐서’가 복잡스러우면 ‘천사’라고 하지요. 속성상 비슷할 겁니다. 나중에 ‘아래아 알’의 텐서 공간은 신인초공간이 될 것이므로, ‘천사’의 역할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여호와란 신의 이름은 어떻게 하지? 불교의 무량불, 혹은 옥황상제, 이런 게 아니고, 왜 유별나게 희한스런 이름이지? 여호와의 증인이라니? 참...”
이렇게 우스꽝스런 이름을 이제 유학 중 다시 봅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봅니다. 구약에서 더 많이 봅니다. 두꺼운 웹스터 영영사전을 보니, 옛 유대인들은 처음 JHVH, YHWH, 등등 4자씩 자음을 나열함으로, 감히 입으로 발성하지 못하는 4자성어로 신을 상징했다는군요.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서 입으로 신을 달리 부르던 adonai에서 모음을 취하여 사이사이에 넣으니, JHVH= JeHoVaH, YHWH= YaHWeH 라고 만들어 비로소 불러지니, 여호와, 야훼라고 소리로 부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엘로힘 신’을 숭배하는 갈래와 ‘야훼 신’을 숭배하는 갈래가 성경에는 이렇게 나란히 흐르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럼 우리의 ‘아래아 알’은? 그렇다. 하늘 속에 있다.”
원시어 ‘아래아 알’ 에서 알, 얼, 올, 울, 일, 이렇게 진화하는 동안, 원시어 ‘아래아한’+‘아래아알’에서 ‘한+아래아 알’, 그리고나서 ‘하늘’이 되었다고 보면, 그리고 ‘하’ 또는 ‘한’의 몇 가지 뜻이 마찬가지로 진화했을 것까지 종합하기에 이르면, 우리는 ‘아래아 한+아래아 알 --> 한+아래아 알 --> 하늘’에 대한 수십 가지의 조합으로 의미 변형을 세세히 밝혀낼 수도 있습니다. [생략]
제가 묵던 라이스대학 자취집에는, 한국에서 교육 파견 왔던 직업인이 몇 달 함께 묵었었는데, 기독교인인 이 사람이 위처럼 무신자인 제가 급변한 것을 보고, 당시 휴스턴의 유일한 한인교회에 데리고 가고, 두어번 세미나도 시키고, 침례를 받도록 했지요. 저는 그 교회(를 차용하는 모체는 메인스트리트의 미국인 남침례교)에서 오웬 씨라는 분으로부터 꽤 집중적인 영어성경공부를 했는데, 이 시간만은 눈을 감고 듣는 저 앞에서 예수의 언행 하나하나 모두가 피할 수 없는 총알이 되어 한방 또 한방 제 심장을 갈랐습니다. 가상현실 안경을 낀 시험자가 몸을 비틀며 체험하는 것처럼, 미국인 전도사를 통한 ‘투영극’에서 예수 공생애 상황들이 생생한 모습으로 제 뇌리에 박혔습니다. ‘처음 된 자가 나중 된자’의 말씀이 어떤지는 몰라도, 저는 그 때 무척이나 뜨거웠던 거 같습니다.
다시 몇년 후, 1978년 코넬대 연구그룹에서 앨런 구스의 존재도 아는 등 연구에만 매진하다가, 1979년에는 코넬대 학생교회를 여신 백영흠 목사님을 뵙고, 그분은 12·12때 바로 귀국하시고, 저는 한편 유학생들과 성경 및 독서토론을 가지며 위급하게 전개되던 한국 상황 학습을 학생들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의식화 된 것이죠. 1982년엔 토론토 한인교포들에게 수소문하며 물어서 김재준 목사님을 찾아뵙고, 유학청년 동인들의 문서운동에 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잡지의 이름을 물으셨습니다. 한?의 몸이 ‘한‘아래아 알’몸’을 만들겠다고 설명 드렸고, 다음 달 목사님이 주신 창간사를 실으면서 그림처럼 잡지가 창간되었습니다.
[스크린 설명]
2-3년간 경제적 손실이 좀 쌓였고, 당시 서울대에서 받았던 임용장도 그냥 썩힐 수밖에 없었으나, 30여년 후 지금 그 길을 간 것에 큰 후회는 없습니다. 이렇게 저는 학문 외의 삶을 생각하는 습관이 붙었습니다.
80년대 당시 L.A.에서는 김상일 씨가 ‘한 사상’을 논하는 것이 흥미로워서 서신교환을 한 정도이고, <(‘엘’ =) ‘아래아 알’ = 텐서> 라는 명제 생각도 조금은 늦추었습니다.
그 뒤에 숨겨진 역사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귀국 부임한 한신대 김상일 (지금은 감신대) 교수는 ‘한 사상’이라는 주제의 책도 내고, 우리의 뿌리가 고대 메소포타미아로 거슬러서 수메르까지 닿기에, 우리말 기초를 수메르어에까지 가져갑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나이 60이 넘어 이화여대 신대원 문을 두드리게 되는 길을 갔고, 약 25년의 먼지가 쌓인 <‘아래아 알’ = 텐서>를 다시 상고하게 되었습니다. 2-3년의 청강기간 후 그 문을 나오던 길에서 화이트헤드 철학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원래 저는 아인슈타인의 생각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1] 아인슈타인이 칼텍 방문교수로서 두 번 째 미국을 방문할 즈음 뉴욕 타임즈 매거진의 요청으로 종교와 과학에 관한 장문의 글을 게재하였다. 그 발췌 내용 (1930.11.9):
[중략]
원시인들은 ‘두려움의 종교’에 매달렸다... 그후 인류는 ‘도덕 종교’를 발전시켰다. 신약성서도 그렇게... 그런데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종교적 경험의 제3단계가 있는데, 순수한 경험으로는 ‘우주적 종교 감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이러한 감성을 깨닫고 그 감수성 활동이 보존되도록 함이 인문과 과학 분야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나는 믿는다... [중략]
[2] 아인슈타인이 프린스턴 신학대학에서 1939년 5월 19일 행한 초청강연['Out of My Later Years (1950)'에 수록] 발췌
[중략] (종교와 과학) 둘 사이에는 긴밀한 상관성과 상호의존성이 존재한다... 그 경우를 다음과 같이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요 과학없는 종교는 무지몽매한 것이다. (science without religion is lame, religion without science is blind). ... [중략]
아인슈타인은 제3단계의 ‘우주신cosmic God’을 수용하고, 과학자들에게도 개인화 종교는 사절하고 ‘순수한 영성화’를 추천하였다. 우리가 아인슈타인의 ‘우주신’을 상정한다면, 우리의 영은 ‘신인초공간’을 이루는 것이고, 이것이 결론부터 얘기하면 화이트헤드 과정철학에서 ‘영원한 대상(영상, EO)’이며 텐서 본성이 숨은 ‘초공간’이다.
이상이 아인슈타인의 종교와 과학을 맺어주는, ‘아인슈타인 영성’ 이슈를 고찰한 것입니다. 그런데,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의 <과정과 실재Process and Reality>라는 과정철학(=유기체철학) 책의 내용이, ‘엘’ = ‘아래아 알’= 텐서 명제관련 나의 사고를 뒤흔들었습니다.
결론만 언급하면, ‘현실적 존재(Actual entity)’는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의 씨앗개념 둘 중 하나로서 그 특성이 바깥세상으로 나타나는데, 그런 의미로 벡터특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이트헤드 스스로도 ‘벡터특성(Vector character)’이란 말을 하는 것이 경이롭습니다. 벡터는 외성적입니다. 한편, <‘엘’ = ‘아래아 알’= 텐서> 명제에 의하여 앞의 내성적인 ‘신인초공간’도 텐서공간이며 화이트헤드의 ‘영원한 대상(Eternal objects)’이 될 것입니다. ‘영원한 대상’이 그의 나머지 하나의 핵심개념이며, 이는 ‘현실적 존재’가 되는 과정으로 ‘진입(Ingression)’하기 위한 잠재성의 형태로만 기술될 수 있습니다. 현실세계는 한 과정이며, 그 과정은 현실적 존재들의 ‘됨’입니다. 화이트헤드의 강한 주장대로, 현실세계에 ‘있음’은 없고 ‘됨으로’만 있습니다.
[스크린 설명]
<과정과 실재> 뒤편은 대개 논의를 멈추는 부분인데 잘 보면 화이트헤드도 ‘변형’이란 주제를 논합니다. 사실 이것은 나중 미시적 현대 고체[액체]물리에서 ‘텐서’개념으로 학장되는 개념입니다. 그의 제자들이 ‘과정신학’을 가꾸는 바탕도, <‘엘’ = ‘아래아 알’ = 텐서> 명제에 불원 연계될 것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2013년 제9회 화이트헤드 국제학회 자료에 게재함(폴랜드 크라카우)]
[[ 화이트헤드는 1920년대까지의 양자론 일부를 도입하고 과정이론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현대 양자론은 ‘진동’ 에너지 외에 ‘대칭성’이 하는 주요 역할을 빠트릴 수가 없도록 발전하였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화이트헤드 과정이론의 바탕에는 ‘진동’ 외에 ‘대칭성’을 추가로 보강하는 논리가 필요하다. - 생략]]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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